갑골 박사 최명희 갑골문 강좌 11강 | 갑골문에서 찾은 풍백, 우사, 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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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19 พ.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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ความคิดเห็น • 28

  • @awesome-mz2lj
    @awesome-mz2lj 24 วันที่ผ่านมา +12

    환인 환웅 고조선...??
    너무 익숙한 이야기네요...풍사 운사 우사...
    그냥 신화가 아니라 명백한 근거가 있는 전승이네요...

  • @sungbeomahn4108
    @sungbeomahn4108 21 วันที่ผ่านมา +2

    좋은 내용 항상 감사합니다.

  • @yongha7716
    @yongha7716 24 วันที่ผ่านมา +2

    오늘도 방송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user-nx4fo7ro6h
    @user-nx4fo7ro6h 24 วันที่ผ่านมา +2

    감사히 듣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davidjacobs8558
    @davidjacobs8558 24 วันที่ผ่านมา +11

    사마천의 사기 에 보면, 황제 헌원의 벼슬이 운사 라고 나옴.
    그리고 산해경에 보면, 황제 가 치우랑 싸우는데, 치우가 풍백, 우사 를 대리고 와서 황제와 싸웠다고 나옴.
    다시말해 황제가 원래 치우 천황의 3 신하들인 풍백, 운사, 우사 중 한명 이었다는 소리.
    그런데 황제가 배반을하고 전쟁을 일으켰다는 소리.

    • @user-mc6qi7en8f
      @user-mc6qi7en8f 19 วันที่ผ่านมา

      건방진 뙷넘 황티. 자손을 너무 많이 싸질렀구나.

  • @hinova77
    @hinova77 24 วันที่ผ่านมา +5

    내용을 보니 고조선관련 신화이지 한족의 신화가 아니다. 여기에는 바람신 봉황이 나오는데,
    한족은 현재 까지 그들의 용을 찾고 있다는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알 수있다.

  • @user-bf6fv1cu3y
    @user-bf6fv1cu3y 24 วันที่ผ่านมา +8

    아리수에 대한 고찰(考察)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라 불리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는 BC 1만년 3천년 이전까지 한반도 서해는 육지였으며, 한반도 전체 크기보다 큰 면적의 대평야였습니다 / 왜냐하면 서해는 대부분이 40미터 미만의 대륙붕으로 되어 있고, 가장 깊은 곳이 80미터이니까요 ... / 그야말로 산하나 없는 지평선만 계속되는 평야였고, 중국대륙과 한반도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에 해수면은 가장 낮은 깊이로, 지금 보다 120m 정도 내려가 있었습니다 / 그리고 서해 한복판에는 현재의 중국 황하, 요하, 양쯔허 등과 한국의 압록강, 대동강, 한강, 영산강, 낙동강 등이 합쳐진 “아리수”라는 거대한 물길이 있었고, 현재 일본 오키나와열도 인근에서 태평양으로 흘러들어 갔습니다.
    한민족은 신석기시대 “아리수” 서쪽의 넓은 초원에서 사냥을 했을 것이며, “아리수” 동쪽의 평야에선 농사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BC 1만 3천년부터 빙하가 녹으면서 5천년간 해수면이 급격하게 상승했고, 태평양으로부터 “아리수”를 거슬러 바닷물이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중국대륙과 한반도 사이에 서해가 생겨났고, 일본 열도가 분리되었으며, 현재 해안선이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아리수” 인근에서 살던 한민족은 물길 상류로 피신을 했고, 서쪽에서는 중국 황하, 요하, 양쯔허 인근으로 이동했으며, 동쪽에서는 한반도 압록강, 대동강, 한강, 영산강, 낙동강 인근에 정착했습니다.
    옛날부터 한민족은 매우 큰 것을 [아리] 또는 [하] or [허]라고 표현했고, 매우 큰물인 [아리수]에 지류는 황하, 요하, 양쯔허 이며, 작은 물은 압록강, 대동강, 한강, 영산강, 낙동강 등입니다 / # 물길구분 : 水 > 河 > 江 > 川
    gaundekr.tistory.com/15793655
    한민족은 세계최초로 벼농사를 시작했으며, 신석기시대 지구상 고인돌의 70% 이상이 한반도에 있습니다 / 세계 최초 자포니카(japonica)벼 재배는 BC 15,000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 유적입니다 / 열대기후 품종 인디카(indica)벼 재배는 BC7,000년 중국 양쯔허 하구 허무두(河姆渡)문화에서 논농사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 중국 황하 북부 밀농사는 BC 5,000년 양사오(仰韶)문화 유적에서 발견되었고, 터키 아나톨리아(Anatolia)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BC 96세기부터 5천년 넘게 한반도에서 신석기문화를 발전시켜왔던 한족(韓族)들은 BC 45세기 청동기 제조기술을 개발했고, 만주 요하유역 홍산(紅山)문화을 탄생시켰습니다 / BC 28세기 요서지역의 맥족(貊族)들이 청동기 문물을 앞세워, 황하유역으로 남하하면서 용산(龍山)문화를 일구었고, 하-상-주(夏-商-周)나라를 건국했습니다 / 한문(漢文)은 BC 16세기 동이족(東夷族)이 황하유역에 건국한 상(商)나라부터 사용한 문자(甲骨文字)이며, 중국인들이 조상으로 생각하는 周, 秦, 漢, 隨, 唐나라을 건국한 것은 선비족(鮮卑族)입니다 / 몽고의 원나라 시조 “징기스칸”과 만주의 청나라 시조 “누루하치”도 중국인이라고 우기지만, 한족(漢族)이라고 말하지는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중국 인구의 91%는 한족(漢族)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천년간 한족(漢族)출신이 중국을 통일한 것은 명나라로써 3백년도 안됩니다.
    만주와 한반도에는 지난 5천년간 농경민족 예족(濊族)과 기마민족 맥족(貊族)이 어우러져 살아왔습니다 / BC 23세기 요동지역의 예족(濊族)은 요서지역을 통합하면서, 한반도 한족(韓族)과 연대하여 [조선(朝鮮) (아침 朝, 고울 鮮)]을 건국했고, 요동지역을 진한(振韓), 한반도를 마한(馬韓), 요서지역을 번한(番韓)이라 했으며, 2천년간 1代에서 43代 단군(檀君)이 통치했습니다 / 조선(朝鮮)이 BC 1세기 쇠락하면서 예족(濊族)을 주축으로 백제, 가야를 건국했고, 맥족(貊族)을 중심으로 고구려, 신라를 건국했습니다 / AD 7세기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하였고, 백제와 가야 유민들이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면서 한반도는 맥족(貊族)이 중심세력이 되었고, 일본 열도는 예족(濊族)이 장악해 나아갔습니다 / 맥족(貊族)은 예족(濊族)을 비하하면서 “왜구”라고 했습니다.
    중국 CHINA의 어원은 지나(支那)이며 (가지 支, 나라이름 那)입니다 / 과거 예맥족(濊貊族)은 본국에서 갈라져 나간 (가지 나라)를 지나(支那)라고 불러왔습니다 / BC 2800년부터 BC 1046년까지 황하 중·하류 유역(中原)을 지배하던 동이족(東夷族)과 상(商)나라 사람들은 황하 상류지역에 선비족(鮮卑族)이 세운 나라들을 지나(支那)라고 불렀습니다 / 현재도 우리는 중국의 동쪽 바다를 “동지나해”, 남쪽 바다를 “남지나해” 라고 합니다 / 특히 중국대륙 동/남해안에 건국한 수많은 나라에 주민들은 지나(支那)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지난 3천년간 해외 교역을 하면서 수시로 바뀌는 국가이름 대신 지나(支那)라고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면서 CHINA가 정착한 것입니다 / 특히 비류백제는 중국 동/남해안을 장악했고, 온조백제가 한반도 서해안을 거점으로 신라와 경쟁했습니다 / 백제는 뛰어난 조선기술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해상무역의 중심세력이었으며, 전세계로 퍼져나간 화교들은 대부분 해상무역을 하던 동이족(東夷族)입니다.

    • @user-ig3wq2vp2f
      @user-ig3wq2vp2f 24 วันที่ผ่านมา

      13000년전 서해는 바다가 얼고 빙하로 덮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냥을 했다? 아니라고 봅니다 빙하기 시절 한반도 중국 내륙도 빙하로 덮여 인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리수는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대홍수가 발생하던 시기
      한반도 살던 사람이 중국 만주로 진출했다는 것은 논리에 맞지않습니다
      삼한중 마한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신라가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어떠한 고고학적 증거가 없습니다

    • @billparr
      @billparr 24 วันที่ผ่านมา

      支那. --- 많은 땅을 다스려 지탱하다. 이것은 나라 이름이라기보다 정치의 중심지를 뜻하는 것이고 아마도 한민족이 대륙을 다스린 중심지를 지나라고 부르다 지금은 세상이 뒤바껴 대륙인들이 대륙 영토를 차지하며 지나를 영국이 대륙을 불렀던 이름 China로 쓰는것일것입니다.
      참고로 China는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대륙을 부르던 이름이었고 영국이 가져다 중국을 의미하는 이름으로 쓴 계기는 중국이 도자기에 차를 담아 마셨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아직도 도자기를 China라고 부릅니다. Chai 라는 뜻이 여러 나라에서는 마시는 차라는 뜻으로 인식하고 있고 서양이 대륙에서 가장 흔하게 구매했던 대륙의 무역물품이었기도 했습니다.

    • @user-bf6fv1cu3y
      @user-bf6fv1cu3y 21 วันที่ผ่านมา

      @@user-ig3wq2vp2f 잘못알고계시는군요. 빙하는 최대 북위 40도까지 내려왔었으며, 그 이하 남쪽은 빙하가 없었습니다.

    • @user-ig3wq2vp2f
      @user-ig3wq2vp2f 20 วันที่ผ่านมา +1

      ​​@@user-bf6fv1cu3y 빙하가 없었는데 중국, 일본과 어찌 연결됩니까? 빙하가 없었더라도 인간이 살기에는 극악조건

  • @user-mo5ye4ep2p
    @user-mo5ye4ep2p 20 วันที่ผ่านมา +1

    책보고 시청 해 보세요

  • @user-dw4vg1dn5c
    @user-dw4vg1dn5c 23 วันที่ผ่านมา +1

    무엇을 말하려는지...!

  • @gn.l3762
    @gn.l3762 24 วันที่ผ่านมา +5

    고조선(숙신)의 중심지 아사달(요동군)은 하북성북부 조백하 상류 동쪽지류였고 은나라 무정시기 백악산 아사달(백랑산 요동군)로 옮겨갔는데 지금의 내몽골 적봉시 영성현이다.ㅡ

    • @user-ig3wq2vp2f
      @user-ig3wq2vp2f 24 วันที่ผ่านมา +2

      적봉시 아사달은 배달국 수도일 가능성이 더 높읍니다 그 이후 배달국도 만주, 산서, 하북, 산동으로 확장한 듯 합니다 치우천황때 이미 대륙 진출했습니다

    • @gn.l3762
      @gn.l3762 24 วันที่ผ่านมา +1

      @@user-ig3wq2vp2f 배달국 수도는 대흥안령 남단의 최고봉 황강량이 태고의 태백산이며 후에 백두산으로 그아래 서요하 시라무렌강 일대가 神市입니다. 환웅 무리 아홉이 모였다 하여 九黎라 했고 후에 句麗 또는 高離라 했다가 이를 합쳐 고리구려 즉 高句麗가 된것입니다.ㅡ고주몽의 고구려 졸본은 요령성 환인의 오녀산성이고요.

    • @gn.l3762
      @gn.l3762 24 วันที่ผ่านมา +2

      @@user-ig3wq2vp2f 치우천자는 헌원을 제압한후 靑邱로 옮겨 갔는데 산동성 태산 북동지역 입니다.ㅡ 사마상여의 자허부에 제나라 임치 동쪽에 청구가 있다 했습니다.

    • @user-ig3wq2vp2f
      @user-ig3wq2vp2f 24 วันที่ผ่านมา

      @@gn.l3762 졸본은 하북성에 있는 걸로 압니다

    • @user-vw7lz2lx5n
      @user-vw7lz2lx5n 15 วันที่ผ่านมา

      ​@@gn.l3762산꼭대기 오녀산성은 수도로 삼을 터전이 아닙니다. 허허..

  • @user-db2mm7og6f
    @user-db2mm7og6f 18 วันที่ผ่านมา

    풍백 , 우사, 운사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환웅, 단군 뿐.

  • @gn.l3762
    @gn.l3762 24 วันที่ผ่านมา +3

    동방의 上帝 태호 복희씨가 아니고 唐堯시기 또 다른 동방의 上帝 帝俊이 계셨는데 제곡 고신을 말한다.ㅡ 그런데 제준과 당요는 서로 적대적 인 것으로 볼때 제준이 제곡고신이라는건 잘못된거고 단군 왕검으로 볼수밖에 없다.

  • @y2k2000y2k
    @y2k2000y2k 19 วันที่ผ่านมา

    은허 갑골 풍백 운사 우사 =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