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 조선총독부가 친일파를 양성하기 위한 경성제국대학이었다 그런데 해방 후 미군정이 들어서자 미군정 하아지 중장의 학무국장이었던 엔스테드 대위가 친일계와 친미계 대학총장과 밀실 에서 모여 경성제대를 서울대학으로 만드는 모의를 한다. 그래서 서울대학은 친미파를 양성하기 위해 미군정이 세우는 학교가 되었다. 이 당시 국민들은 미군정의 신탁통치를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동시에 서울대학의 국립 대학화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국립 서울대학교의 초대 총장은 미군 해리 B 앤스테드 해군대위 였다.당시 임명권은 미군정 장관에게 있었던 만큼 당연한 인사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초대 수장이 미군 장교이었다는 사실은 좋든 싫든 서울대가 한국 사회 에서 차지하는 법인 국립대 로서의 위상에 대한 각양의 해석을 가능케 한다. 초대 앤스테드 총장이 1년 2개월만에 물러난 뒤 최초의 한국인 총장으로 취임한 이춘호 박사는 재임 7개월만에「국대안」반대운동 파동으로 물러나 최단명 총장으로 기록됐다. 국대안 파동은 경성의전 수원농전 등 기존의 대학을 통합, 서울대를 설립하려는 미군정의 추진을 대상 학교들이 반대하고 나서고 서울대 내부 교수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들끓었다. 국민들이 일제 경성제대를 폐교조치 안하고 오히려 미군정이 서울대로 전환 시킨 것에 대한 국대안 반대 여진이 계속돼 동맹 휴업 좌우 사상 논쟁으로 번져갔다. 결론적으로 서울대는 미 군정이 친일파 교육자들가 밀실에서 모여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대학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립대 으로서의 정통성을 상실한 까닭에 법인대학으로 변경 되어 겨우 자리 매김한 대학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영발 마지막 발표하고 왔는데 에릭 교수님 반은 아니지만 완전 위로 + 용기가 되는 말씀이에요...🥺 남은 대학 생활동안 위험감수성을 가지고 마구 실수하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에릭교수님...!! 오랜만이네요 졸업하고 교수님 얼굴을 볼 수 있다니...여전히 귀여우시네요
내용 너무 좋습니다.
교수님 마인드가 멋지네요
일제 시 조선총독부가 친일파를 양성하기 위한 경성제국대학이었다
그런데 해방 후 미군정이 들어서자 미군정 하아지 중장의 학무국장이었던 엔스테드 대위가 친일계와 친미계 대학총장과 밀실 에서 모여 경성제대를 서울대학으로 만드는 모의를 한다. 그래서 서울대학은 친미파를 양성하기 위해 미군정이 세우는 학교가 되었다.
이 당시 국민들은 미군정의 신탁통치를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동시에 서울대학의 국립 대학화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국립 서울대학교의 초대 총장은 미군 해리 B 앤스테드 해군대위 였다.당시 임명권은 미군정 장관에게 있었던 만큼 당연한 인사였다. 그러나 서울대의 초대 수장이 미군 장교이었다는 사실은 좋든 싫든 서울대가 한국 사회 에서 차지하는 법인 국립대 로서의 위상에 대한 각양의 해석을 가능케 한다.
초대 앤스테드 총장이 1년 2개월만에 물러난 뒤 최초의 한국인 총장으로 취임한 이춘호 박사는 재임 7개월만에「국대안」반대운동 파동으로 물러나 최단명 총장으로 기록됐다.
국대안 파동은 경성의전 수원농전 등 기존의 대학을 통합, 서울대를 설립하려는 미군정의 추진을 대상 학교들이 반대하고 나서고
서울대 내부 교수진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들끓었다.
국민들이 일제 경성제대를 폐교조치 안하고 오히려 미군정이 서울대로 전환 시킨 것에 대한 국대안 반대 여진이 계속돼 동맹 휴업 좌우 사상 논쟁으로 번져갔다.
결론적으로 서울대는 미 군정이 친일파 교육자들가 밀실에서 모여 신탁통치를 찬성하고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워진 대학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립대 으로서의 정통성을 상실한 까닭에 법인대학으로 변경 되어 겨우 자리 매김한 대학인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