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고초를 다 겪고 마지막에 신비의 나라 신라를 방문하여 조력자를 얻고 귀국하여 나라를 되찾는다. 오디세우스의 신화와 흡사한 영웅과 민족적 부흥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느껴진다.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라기 보다는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폐허가 되었지만 페르시아 문명을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이야기는 페르도우시 대왕(Ferdowsi the Great)의 샤나메(Shahnameh)에서 나온 것입니다. 샤나메는 여러 면에서 중요합니다. 이란인들에게 페르도시는 영웅이다. 그는 샤나메를 써서 페르시아어를 구한 사람이다. 즉, 페르시아어 참고서이자 백과사전이 되었다고 해서 언어가 아랍어로 바뀌지 않았다. 시인은 아랍의 침략 이후 페르시아어를 구하겠다는 목표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랍 시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파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시를 전설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왕과 영웅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영토를 넓히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동방 왕자 및 왕자들과 많은 결혼을 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 책의 대부분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서와 유사하며 실제 책입니다.
사막? 알보르즈 산(Mount Alborz)과 다마반드(Damavand), 그리고 그곳의 천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TH-cam에서 Alborz Montain을 검색하세요. 이 시는 이 지역과 Damavand 산에 관한 것입니다. 이란을 사막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TH-cam에서 검색해 보세요.
@@Hoxy-in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일 뿐이죠. 원성왕대 이후 .... 그러나 아브틴이 신라에 온 것은 문무왕 19년 즉 679년 무렵입니다. 그때 아브틴은 43세였고 문무왕은 54세로 안압지 옆에 동궁을 짓고 사천왕사도 건립합니다. 서역인의 신라 도래는 통일신라 시기입니다. ^^
@@최동호-c5d 1. 문무왕 19년이라는 근거가 뭔지 말씀해주세요. 2. 이븐 크루다지바의 '모든 도로와 모든 왕국 안내서'에서 직접 신라로 진출한 것이 846년이라고 나옵니다. 이 시점은 삼국사기의 기사인 궁복의 죽음과 연관이 있죠. 3. 해상무역을 장악한 장보고의 사망은 서역인의 직접진출을 가능하게 했고 장보고가 841년에 사망하였으니 기록상 846년 서역인의 신라진출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죠. 4. 문무왕은 아들만 3명이 있었고. 공주는 없었죠. 소명태자와 신문왕이 되는 정명태자 그리고 후궁소생 아들만 있었는데 쿠쉬나메에 나오는 신라공주는 누구죠? ㅎ 그리고 그 공주와 낳은 자식인 페레이둔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재건하였나요? 왜 신화적 소설과 역사를 혼돈하시는지...
1,2부 정말 관심있게 보며 중간중간 아쉬워도 그러려니 이해하고 보는데 마지막에 반전학자를 인터뷰해서 그동안의 영상을 소설로 만드네요. 제작한 방송국이 제일 문제이지만 김명곤님의 그동안 삶의 궤적을 보면 속았다.아님.눈감고 지나갔다. 저는 전자를 믿고 싶지만 속기에는 명곤님이 그리 멍청하지 않아서...너무 현명하다 생각하고 믿은 제가 참 맘이 힘듭니다. 제 맘에 연주자들과 함께했던 아리랑은 잊지않을게요. 그것 만으로도 두시간은 아깝지 않았습니다.
@@삼-t5m 새로하나 배웠습니다. 쿠쉬나메에는 실라와 바실라 두군데를 따로 나와있고 신라는 입방설도라고 조선 8도처럼 방이 행정구역 단위입니다. 그래서 가설단계로 신라방을 옮겨적으며 바실라가 된거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충무로를 st.Choong-mu 이렇게 표현하듯이요.
(28:27~ 29:23) : 이 세상의 모든 군사들이 공격한다 해도 산 때문에 멈춰 설 수밖에 없습니다. 신라 백성들은 두려울 게 없고 다른 이들과 싸움을 벌일 일도 없습니다. 사막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군사들이 있습니다. 바실라는 워낙 견고한 땅이고 난공불락의 땅이기 때문에 함부로 범접할 수가 없다. 아주 풍요롭고 물자가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심지어 당시 세상을 호령하던 (아랍 왕) 자하크와 그를 따르는 세력들조차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난공불락의 땅이 바실라였고 그 땅을 다스리는 왕이 타이후르였다. ---당나라에서 자하크 세력에 의해서 목숨이 위험해서 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곳이 신라였다면, 이 쿠쉬나메의 모티브가 되는 신라는 한반도 남부 한쪽에 자리잡은 소국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가 아니었을까.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한 사람은 역사공부 안했거나 생각을 많이 안한 사람인 것같아요. 본신라는 7세기까지 중국 대륙에 있었습니다. 7세기 이후 왕실이 경주로 이동한것임. 그래서 1천년이 넘는 신라역사에서 왕과 귀족의 무덤이 거의 없죠. 장보고 청해진은 완도가 아니라 중국 산동반도 청해시가 맞음. 거기가면 장보고가 지었던 법화원도 현재 존재함 완도는 섬인데. 섬을 무역의 거점지로 삼았으면 각국 상인들과 무역한 후 다시 육지로 상품을 옮겼다는 것인데.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되는가? 싡라는 중국 본토에 있었고.서양인이 China 부른 것도 신라의 영향력 때문으로 보임.
배경으로 한국사의 신라(시기상 삼국통일전쟁 직후 후기 신라)가 등장해 여러 차례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쿠시나메는 페르시아와 신라 간에 어느 정도의 교류와 외교가 있었으며 페르시아가 신라를 나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4] 다만 상술한 줄거리를 보듯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처럼 적당히 신비롭고 막연한 이국적 이미지를 활용한 서사 신화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듯. 일단 진정한 왕자 파리둔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폭군 자하크를 무찌른다는 내용은 사산 왕조 시대의 전설을 담은 서사시 샤나메에서 차용해온 줄거리이다. 그리고 쿠샤나메의 줄거리 자체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못한 '아랍에 대한 이란의 복수'로 끝나는 데서 알 수 있듯 애초에 이 이야기는 현실적인 역사 기록이 아니라 임진록[5], 박씨전[6]과 비슷한 페르시아의 대체역사물급 고전 문학이다. 즉 전제부터가 가공의 작품인데 신라사 파트라고 꼭 실제 역사와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다. namu.wiki/w/%EC%BF%A0%EC%8B%9C%EB%82%98%EB%A9%94
“바”가 장소,공간이요. 아랍어로 바이트가 집이라서요. 아마 알만한 동네를 예로 들자면.. 중동 언어가 서로 사투리 수준으로 비슷비슷하고 대충 말도 통하며 서로 영향도 받는데 이스라엘로 가면 바이트가 베트이고 저 동네는 빵으로 유명한 동네=빵의 집=베들레헴(베트레헴)이란식으로 고유지명에 넣어 불렀어요. 우리가 토스터를 토스트기 토스터기라고 사용하며 도구에는 -기를 붙이는 언어 습관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거같네요
이 이야기는 페르도우시 대왕(Ferdowsi the Great)의 샤나메(Shahnameh)에서 나온 것입니다. 샤나메는 여러 면에서 중요합니다. 이란인들에게 페르도시는 영웅이다. 그는 샤나메를 써서 페르시아어를 구한 사람이다. 즉, 페르시아어 참고서이자 백과사전이 되었다고 해서 언어가 아랍어로 바뀌지 않았다. 시인은 아랍의 침략 이후 페르시아어를 구하겠다는 목표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랍 시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파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시를 전설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왕과 영웅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영토를 넓히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동방 왕자 및 왕자들과 많은 결혼을 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 책의 대부분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서와 유사하며 실제 책입니다.
@@user-zj5mb1bo2u 사실을 이야기 했는데, 왜 삐딱하다고 느끼는 것은 뭐죠? 사실이 아닌데도 그것을 사실인냥 이야기 하고 추적하게 만든것은 문제가 될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냥 구전이나 신화 등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인간사의 비극 중 하나는 마치 유토피아가 있는 것처럼 진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마치 지난 공산주의처럼...
If We let them continue talk, then they really hang our necks....such shallowness!! Find same street ones to listen to your street talks and knowledge. Even they do not know own looters.
서남아시아에 신라,고구려기록 유럽의 고구려,고려의 기록을 볼 때 대륙 삼국설을 기반으로 지명을 따져가며 연구해봐야 한다. 고대사의 기본은 당시 재패한 국가의 지배계층의 민족성 확립을 위해 기존의 역사서를 태우고, 역사를 다시 쓰기 때문이다. 그의 증거는 어느 나라도 빠짐 없이 해왔기 때문.
온갖 고초를 다 겪고 마지막에 신비의 나라 신라를 방문하여 조력자를 얻고 귀국하여 나라를 되찾는다. 오디세우스의 신화와 흡사한 영웅과 민족적 부흥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느껴진다. 이란은 이슬람 근본주의라기 보다는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폐허가 되었지만 페르시아 문명을 자신의 고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반도 신라가 아니라 대륙신라 지금 안휘성 합비시가 금성이었습니다
26:35 아리랑은 가사와 선율이 너무 아름답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정서와 음악 ❤
신라시대 유물들 보면 이란사람들 얼굴과 닮아 있네요
아주 아주 인상적인 이야기입니다.
부산 시립 박물관에 코끼리 모양 신라 도자기를 기증했어요
사실과 픽션이 섞였겠지요 신라가 페르시아에 자세히 알려졌다는 건 당시의 국력과 문화 수준을 웅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로 만들면 좋을듯
영화로 1시간에 담을만한 작품이 아님 주몽처럼 50부작 가야죠
아리랑 가사가 어쩜 이리 구수하고 지혜가 담겨있게 들리는지.
석조유물보고 소름..진짜 이란과 우리나라의 관계가 피로 엮여있었다니 ㄷㄷ
그당시 저 숙박시설 대단하다
머나먼 외국에서 신라 공주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딸을 그리워하는 신라왕의 마음은요? 그 때는 비행기가 없어서 돌아오기 쉽지 않았을텐데요.
공주 파라랑에 랑은 신라시대 공주를 뜻하는 단어인데 파라공주는 어떤 공주였을지 타이후르는 어느왕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이 이야기는 페르도우시 대왕(Ferdowsi the Great)의 샤나메(Shahnameh)에서 나온 것입니다. 샤나메는 여러 면에서 중요합니다. 이란인들에게 페르도시는 영웅이다. 그는 샤나메를 써서 페르시아어를 구한 사람이다. 즉, 페르시아어 참고서이자 백과사전이 되었다고 해서 언어가 아랍어로 바뀌지 않았다. 시인은 아랍의 침략 이후 페르시아어를 구하겠다는 목표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랍 시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파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시를 전설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왕과 영웅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영토를 넓히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동방 왕자 및 왕자들과 많은 결혼을 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 책의 대부분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서와 유사하며 실제 책입니다.
th-cam.com/video/Ocy8cftgoBA/w-d-xo.htmlsi=n85Lu7NNWzZ9uJKy
프라랑이 아니라 화랑...
정말 귀한 영상 잘 봤습니다,
너무 너무 재밌었어요!! 이런 다큐만 보고 싶네요. 고품격입니다, 다큐의 나래이션과 함께 동행한 분은 배우님인 거 같은데요, 정말 잘 봤습니다! 🙃
사막같은 나라에 살다가 우리나라에 왔다면 진짜 지상낙원이라 느꼈을듯!!!
사막? 알보르즈 산(Mount Alborz)과 다마반드(Damavand), 그리고 그곳의 천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TH-cam에서 Alborz Montain을 검색하세요. 이 시는 이 지역과 Damavand 산에 관한 것입니다. 이란을 사막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TH-cam에서 검색해 보세요.
th-cam.com/video/Ocy8cftgoBA/w-d-xo.htmlsi=S0xqWY3JXO0hGz7o
내용은 좋은데 왜이렇게 반복되는 내용이 많은지.. 어떻게든 늘려서 2편으로 만들려고한것같네..
아브틴이 도착했던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을 통해 막 삼국 통일을 한 문무왕 때였습니다. 신라의 전성기 때였죠.
문무왕때 무슨 서역인이 와요? 서역인이 등장하는 때는 통일신라 후기입니다
@@Hoxy-in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일 뿐이죠. 원성왕대 이후 .... 그러나 아브틴이 신라에 온 것은 문무왕 19년 즉 679년 무렵입니다. 그때 아브틴은 43세였고 문무왕은 54세로 안압지 옆에 동궁을 짓고 사천왕사도 건립합니다. 서역인의 신라 도래는 통일신라 시기입니다. ^^
@@최동호-c5d 1. 문무왕 19년이라는 근거가 뭔지 말씀해주세요.
2. 이븐 크루다지바의 '모든 도로와 모든 왕국 안내서'에서 직접 신라로 진출한 것이 846년이라고 나옵니다. 이 시점은 삼국사기의 기사인 궁복의 죽음과 연관이 있죠.
3. 해상무역을 장악한 장보고의 사망은 서역인의 직접진출을 가능하게 했고 장보고가 841년에 사망하였으니 기록상 846년 서역인의 신라진출은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죠.
4. 문무왕은 아들만 3명이 있었고. 공주는 없었죠. 소명태자와 신문왕이 되는 정명태자 그리고 후궁소생 아들만 있었는데 쿠쉬나메에
나오는 신라공주는 누구죠? ㅎ
그리고 그 공주와 낳은 자식인 페레이둔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재건하였나요? 왜 신화적 소설과 역사를 혼돈하시는지...
@@최동호-c5d근거는요?
꾸며낸 얘기가 아닙니다. 다만, 신라의 자료가 없을 뿐 ....!
비단의나라 신라. 비단길은 신라와 관련이 있어요. 왜 하필 당나라보다 신라를 더 언급했을까요. 중원에 신라가 있었기때문입니다. 신라의 대륙역사 고려의대륙역사는 명과 조선이건국 되면서 역사지우기를 통해 대량으로 없어졌고 일제시대 식민사관으로 축소 왜곡돼었다고 합니다.
그럼 우린중국인인가요?
@@WheyBab 중국인은 화하족 한국인은 동이족이지요. 현대 중국인은 여러민족 혼혈되있다고 하던대요. 중원은 당나라의 선비족, 원나라의 몽골족,청나라의 여진족 등 순수하게 화하족이 지배한건 한나라,송나라,명나라 정도라고 봐야죠.
이 소재를 드라마로 만들면 진짜 대박 이겠는데.....
1,2부 정말 관심있게 보며 중간중간 아쉬워도 그러려니 이해하고 보는데 마지막에 반전학자를 인터뷰해서 그동안의 영상을 소설로 만드네요.
제작한 방송국이 제일 문제이지만 김명곤님의 그동안 삶의 궤적을 보면 속았다.아님.눈감고 지나갔다. 저는 전자를 믿고 싶지만
속기에는 명곤님이 그리 멍청하지 않아서...너무 현명하다 생각하고 믿은 제가 참 맘이 힘듭니다.
제 맘에 연주자들과 함께했던 아리랑은 잊지않을게요.
그것 만으로도 두시간은 아깝지 않았습니다.
반도사관에 갇혀있으니 고작 소설로만 생각하는거죠...
저기 나오는 신라의 위치와 삼국사기의 신라 지명, 그리고 일식기록 모두 일치합니다.
우리가 배웠던 역사는 모두 일제강점기에 쓰였던 사관을 그대로 배우는것이지요...
So The sports 'Polo' is eccencially, originally came from Persia(Iran).....
그럴수도
이란왕자 탄생설화~ㅋ
처용가가 생각나긴하네~처용이 이란인~
처용은 예멘사람
그리고 그건 서역인 의 신라 부인이 바람난 얘기임 ㅡㅡ;'
30:00 바실라는 대륙에 신라방 입니다. 아랍어는 단어는 왼오로 읽지만 문장은 오왼으로 읽습니다.
신라방 실라바 바실라 순서로 바뀐것입니다. 방은 신라에서 입방설도로 조선8도 처럼 행정구역 단위입니다.
그냥 “바”가 장소,공간에 붙이는 말임 중동말이 비슷비슷해서 히브리어(이스라엘어)에서는 “베”가 장소를 나타냄
우리가 드라이어도 드라이기, 토스터를 토스트기라며 굳이 -기 붙이는게 익숙한 것과 비슷한거임
@@삼-t5m 새로하나 배웠습니다. 쿠쉬나메에는 실라와 바실라 두군데를 따로 나와있고 신라는 입방설도라고 조선 8도처럼 방이 행정구역 단위입니다. 그래서 가설단계로 신라방을 옮겨적으며 바실라가 된거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충무로를 st.Choong-mu 이렇게 표현하듯이요.
이란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이란의 고대언어학자 다르유시 박사는 바실라의 ‘바’가 ‘더 좋은’ ‘아름다운’이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라 풀이하더군요. 아름다운 신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Ghyunseo 그분이 학식이 뛰어나겠지만 부정적 입니다. 쿠쉬나메에는 신라와 바실라가 같이 나오니 구분짓는 뜻이 더 맞다고 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힘차게
[청정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28:27~ 29:23) : 이 세상의 모든 군사들이 공격한다 해도 산 때문에 멈춰 설 수밖에 없습니다. 신라 백성들은 두려울 게 없고 다른 이들과 싸움을 벌일 일도 없습니다. 사막의 모래보다도 더 많은 군사들이 있습니다. 바실라는 워낙 견고한 땅이고 난공불락의 땅이기 때문에 함부로 범접할 수가 없다. 아주 풍요롭고 물자가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심지어 당시 세상을 호령하던 (아랍 왕) 자하크와 그를 따르는 세력들조차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난공불락의 땅이 바실라였고 그 땅을 다스리는 왕이 타이후르였다. ---당나라에서 자하크 세력에 의해서 목숨이 위험해서 더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곳이 신라였다면, 이 쿠쉬나메의 모티브가 되는 신라는 한반도 남부 한쪽에 자리잡은 소국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가 아니었을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이집트 박물관에 바신라 지도가 있습니다.
양쯔강을 중심으로 다수의 신라가 존재함
이슬람화됐지만
이란전통ㆍ역사전통성을
잊지않으려는 지식인들의 노력
자신의 뿌리를 잊으면 중국인처럼 된다는걸 중국 문화혁명으로 이란인들도 알고 있으니까요
사막근처 살다가
한국땅 산과들ㆍ파라다이스죠
th-cam.com/video/Ocy8cftgoBA/w-d-xo.htmlsi=S0xqWY3JXO0hGz7o
타이후르는 태후를 다르게 발음한 것 아닌가요? 그럼 비공식적(실세) 신라왕은 여성 아닌가요?
신라는 여왕도 셋이나 있었지요.
태휼인것 같은데 김태휼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한 사람은 역사공부 안했거나 생각을 많이 안한 사람인 것같아요.
본신라는 7세기까지 중국 대륙에 있었습니다. 7세기 이후 왕실이 경주로 이동한것임. 그래서 1천년이 넘는 신라역사에서 왕과 귀족의 무덤이 거의 없죠.
장보고 청해진은 완도가 아니라 중국 산동반도 청해시가 맞음. 거기가면 장보고가 지었던 법화원도 현재 존재함
완도는 섬인데. 섬을 무역의 거점지로 삼았으면 각국 상인들과 무역한 후 다시 육지로 상품을 옮겼다는 것인데.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되는가?
싡라는 중국 본토에 있었고.서양인이 China 부른 것도 신라의 영향력 때문으로 보임.
격구(폴로)도 발전시켜서 올림픽 게임 종목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
결론은 페르시아 왕조 후손은 한국인이다 는 거다
아랍으로부터 회복하고 페르시아 왕으로 등극한 페레이둔은 신라 공주와의 아들이다.
이란과 한국은 사돈 국가이다.
우리 할매가 낳은 아들이 페르시아로 가서 왕이 되었다는 페르시안들의 옛날 이바구네요. 주모 여기 막걸리 한되 더욧 !
이게 처용과 관계있을지도
일단 드라마보다 연극이나 뮤지컬로 만들어 보자,. 뮤지컬로 만들어서 초대박 나면 드라마로 안만들수가 없다. ,
신라천년의그광범한 영역을 잊지말라.한반도라고?카자흐스탄에서도 신라금장식물,그리스의장식품들이 신라와 흡사.
끝부분에 나오는 사람은 뭐야! 바실라를 계속 섬이라고 하네 뉴라이트야 뭐야?
페르시아 페리둔 고향ㆍ아몰
دماوند در رشته کوه البرز
Damavand
천공의 목소리와 이란의 최고 지도자 목소리가 너무 비슷해서 유튜브 에서
신라 페르시아로 검색하니 이 채널이
나옴. 나의 촉이 맞은거
신화ㆍ역사의 결합
배경으로 한국사의 신라(시기상 삼국통일전쟁 직후 후기 신라)가 등장해 여러 차례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쿠시나메는 페르시아와 신라 간에 어느 정도의 교류와 외교가 있었으며 페르시아가 신라를 나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4] 다만 상술한 줄거리를 보듯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처럼 적당히 신비롭고 막연한 이국적 이미지를 활용한 서사 신화로 이해하는 편이 나을 듯. 일단 진정한 왕자 파리둔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폭군 자하크를 무찌른다는 내용은 사산 왕조 시대의 전설을 담은 서사시 샤나메에서 차용해온 줄거리이다.
그리고 쿠샤나메의 줄거리 자체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못한 '아랍에 대한 이란의 복수'로 끝나는 데서 알 수 있듯 애초에 이 이야기는 현실적인 역사 기록이 아니라 임진록[5], 박씨전[6]과 비슷한 페르시아의 대체역사물급 고전 문학이다. 즉 전제부터가 가공의 작품인데 신라사 파트라고 꼭 실제 역사와 일치해야 할 필요는 없다.
namu.wiki/w/%EC%BF%A0%EC%8B%9C%EB%82%98%EB%A9%94
바.. 는 뭘까요. 바실라..?
신라방 = 방신라 = 바신라
@@TV-gs2gg 근데 신라방이 뭐에요? 방... ?
“바”가 장소,공간이요. 아랍어로 바이트가 집이라서요.
아마 알만한 동네를 예로 들자면.. 중동 언어가 서로 사투리 수준으로 비슷비슷하고 대충 말도 통하며 서로 영향도 받는데 이스라엘로 가면 바이트가 베트이고 저 동네는 빵으로 유명한 동네=빵의 집=베들레헴(베트레헴)이란식으로 고유지명에 넣어 불렀어요.
우리가 토스터를 토스트기 토스터기라고 사용하며 도구에는 -기를 붙이는 언어 습관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거같네요
이란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이란의 고대언어학자 다르유시 박사는 바실라의 ‘바’가 ‘더 좋은’ ‘아름다운’이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라 풀이했습니다. 아름다운 신라로 해석됩니다.
아몰 카스피해 근처
유전매장지이자ㆍ휴양지
지금? 의도는?
이 이야기는 페르도우시 대왕(Ferdowsi the Great)의 샤나메(Shahnameh)에서 나온 것입니다. 샤나메는 여러 면에서 중요합니다. 이란인들에게 페르도시는 영웅이다. 그는 샤나메를 써서 페르시아어를 구한 사람이다. 즉, 페르시아어 참고서이자 백과사전이 되었다고 해서 언어가 아랍어로 바뀌지 않았다. 시인은 아랍의 침략 이후 페르시아어를 구하겠다는 목표로 이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랍 시대에 쓰여졌기 때문에 파괴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시를 전설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또한 왕과 영웅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영토를 넓히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동방 왕자 및 왕자들과 많은 결혼을 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 책의 대부분은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서와 유사하며 실제 책입니다.
신라가 중국이고 그전엔 고구려가 더강하고. 백제도 강하고 아시아 3대강국. 끝내 신라가 통일
신라!
중국에 당에 먼저 도착한후. 나중에 신라로 갔다는 기록 있슴
대륙신라>>지나>>치나>>차이나. 중국이 된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섬신라를 이야기 하니 한반도 신라는 아님
진행자가 넘 지루해
결론 이란에서 만들어진 꾸며낸 이야기이네요. 어쩐지 우리나라의 기록이 전혀 없더라...백제의 서동요도 꾸며낸 이야기.
왜?
삐딱하죠
구전은 그나름의
진실이 담겨있지요
쿠쉬나메 서사시
페르시아에서 대략 7세기부터 내려온 구전민화를 글자로 기록한 거라고 나오자나 ㅂㅅ아
사실을 기록한 역사책하고
구전민화를 구분 못하냐? ㅋㅋㅋ
구전민화를 보고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는 ㅂㅅ을 여기서 보네 ㅎㅎㅎㅎ
그냥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거죠. 거기엔 중국의 알라딘이라는 청년 이야기도 있는데, 중국 사람 이름이 어떻게 알라딘이겠어요. 당연히 지어낸 얘기죠. 중동 사람들의 외부세계에 대한 환상? 같은게 투영된 이야기들일뿐
@@user-zj5mb1bo2u 사실을 이야기 했는데, 왜 삐딱하다고 느끼는 것은 뭐죠? 사실이 아닌데도 그것을 사실인냥 이야기 하고 추적하게 만든것은 문제가 될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냥 구전이나 신화 등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인간사의 비극 중 하나는 마치 유토피아가 있는 것처럼 진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마치 지난 공산주의처럼...
1부를 안보셨나봐요
1부에서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 이야기는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여러번 나옵니다
If We let them continue talk, then they really hang our necks....such shallowness!! Find same street ones to listen to your street talks and knowledge. Even they do not know own looters.
서남아시아에 신라,고구려기록 유럽의 고구려,고려의 기록을 볼 때
대륙 삼국설을 기반으로 지명을 따져가며 연구해봐야 한다.
고대사의 기본은 당시 재패한 국가의 지배계층의 민족성 확립을 위해
기존의 역사서를 태우고, 역사를 다시 쓰기 때문이다.
그의 증거는 어느 나라도 빠짐 없이 해왔기 때문.
@@Silla_Gates5 머지 이 짱개는
관종임? 아니면 사부자?
이번 추석에 갈 곳은 있지?
백만명의 중국인
억지로 보이지
현재 경상도 지역의 뿌리는 한민족과 다르다... 종족이 다르다
그들도 한 뿌리다. 니 뿌리는 뭐 고구려 백제 이 계통으로 쭉 이어져 왔을거 같냐, 임진왜란떄 일본인들하고도 섞인게 이 한민족이다
페르시아의 석상과 신라의 석상의 차이는 신라것이 너무 조악하다 것이 명백히 드러남.
역시 백제유물과 비교 해 보아도 그조악한 신라 유물은 볼거없음.
경상도 사람들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다 이유가 있었군.
경상도가 폭력성이 잔인함? 아닌데
잘못알고 있네요
거짓말도 자꾸하면 추악한 진실이 되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마라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에는 폭력적이고 잔인한 사람없니 ㅋㅋ
전란도 신안군의 섬노예나 밀양의 성폭력 사건이나 일맥상통하는데 이것도 지역주의냐 ;;;
쿠쉬나메 기록의 신라는 대륙신라였다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통일 본거지는 중국대륙이었음 책보고tv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