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준비가 된 상황에서도 방송국이 컬러방송을 송출하지않은 이유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과 신문사들의 반발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과 관련된 기업들의 의견은 충분히 들어 주었음에도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다 같이 흑백방송 보자는 기존의 흑백TV 사용자들을 배려(?)한 정책 탓. 박정희는 "흑백도 없는 사람이 많은데 흑백보다 더 비싼 컬러가 나오면 없는 사람들은 더 비참한 생각을 갖게 될 것" ...이런 이유로 유신시대에 컬러 방송이 가능해 졌음에도 억지로 컬리방송을 막았었죠 기술적으로는 이미 세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능했던 시절이라네요
역시최숙자,옛날가수들이,트로트는잘부른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젊은이들이 꼭 봐야될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98년 범띠 입니다 감사합니다
현인 선생님. 최희준 선생밈 그립습니다
세월이참빠르게흐르는군요 옛추억이생각나는군요 무정한세월아
최정자님,노래가,나를울립니다ㅡ내고향목포,떠난지몇해인지,조만간가보렵니다
박정희 대통령님 의 멘토가 김희갑 선배님 이셨는데.......
마음 이 새롭구나.
나이가 들수록 옛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여가수들 참 곱다,,,,,,,,,,,,,,,,,,,,,,,,,,,,,,,,,,,,,,,,,,,,,,,,ㅗ보고싶다,,,, 희갑선생님도 젊으시고,,,
별이되신 부모님 떠올라요 감삿합니다
보면 볼수록 새롭습니다
제가 9살 때인데 김희갑 선생님 불효자는웁니다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
정말 '목포의 눈물'은 최정자 버전이 제일 나은듯합니다. ^^
저 시대를 겪어보진 않았지만 영상을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상념에 젖게 된다.
당시 흑백TV로 보았는데 컬러 영상 자료가 있었군요. 이런 귀한 자료들도 볼 수 있다니 참 좋습니다.꽃다운 청춘의 가수들이 이제 세상을 뜨신 분도 많고 연세도 드시고... 안타깝습니다 ㅜ.ㅜ
김희갑선생님 진행 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게 다가오는군요,!
예전에 장충단공원 근처에서 한번 봰 기억이 납니다.!
이 영상 제작할 당시는 6.25 일어난 지 20년 밖에 안되었네요
20년 금방 지나가는데요
그래서 옛날 노래 여전하네요
내가 6학년 때네요
지금은 그로부터 다시 53년이 또 지났네요
참 세월 빠르네요
71년 제작... 49년전 캬
목포의 눈물은 최정자 버전이 제일 나은듯!~7~80년대 라디오나 길거리에서 들었던 버전이 최정자 버전인듯!
최정자님. 수십년 만에 화면을 통해 뵙습니다
그옛날 12석 라듸오 스피커를 통해 님의 노래를 부모 형제들과 들을때가 참!좋았습니다
그시절이 그립네요...
노래하면 옜날 노래가
일품이지 요즘 젊은
애들 노래는 지랄이지
노래던가!!
옜날이 그립구나!!
현미선생님 눈물흘리시네요 가슴아퍼요
은쟁반의 옥구슬의 소유자 최정자님 목포의 눈물 누가있어 저리 부를수 있나 그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신의경지 이다
1971년 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인데 김회갑 백년설 이분들 노래 어릴적 들었는데 또 들어도 옛생각이 납니다
김희갑 선생님 영화배우 가수 코메디언 다양한 재주를 가지고 있지요.
영화 팔도강산을 보고 기쁘했습니다. 김희갑 선생님 고해(苦海)를 벗어나 편히 쉬소서 !!!
정법거사 합장.
71년도제작이면 김포에서 군복무하다 제대한년도입니다벌서80줄이 다됩니다 아련한추억그립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국민학교 4학년 때네요
현인형은 ㅇ영화배우하셔도 큰 ㅇ인기를 끌었을것 입니다,,,
현인 선생님 저당시 남자가수중에서도 외모가
출중하신듯~
남인수 선생 라이벌다운 백년설선생
이인권님 저기 나오시고 다다음해에 돌아가셨네요
여자들 저때 헤어스탈이
두발을 뒤로 비스듬이 틀어올려 볼륨을 주면서
쌓아올리는 스타일이 유행했었지.
미장원에서 머리를 한다면
대부분이 저런 모양.
일명 고데라고도 했음.
머리뽕? 엄청 무거워보임
고향설 목소리는 남백송 입니다 ㅋㅋ 멀알고 했으면 얼마좋을까요
유랑극단댕기던시절이생각나네요
백설희 가수와 김부자 가수 얼굴이 같으네요?
노래는 민족의 젖줄 이였죠 .
목포의 눈물이 맞나요 목포의 설음이 맞나요?
누가 미자 누님을 못생겼다고 했나???????
저때 컬러가 가능했나요?
모지?
70년대에 준비가 된 상황에서도 방송국이 컬러방송을 송출하지않은 이유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과 신문사들의 반발이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수출과 관련된 기업들의 의견은 충분히 들어 주었음에도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다 같이 흑백방송 보자는 기존의 흑백TV 사용자들을 배려(?)한 정책 탓. 박정희는 "흑백도 없는 사람이 많은데 흑백보다 더 비싼 컬러가 나오면 없는 사람들은 더 비참한 생각을 갖게 될 것"
...이런 이유로 유신시대에 컬러 방송이 가능해 졌음에도 억지로 컬리방송을 막았었죠
기술적으로는 이미 세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가능했던 시절이라네요
tmdcjf0628 한국의 컬러tv는 1980년초부터 송출됬지요
저건 TV 필름이 아니고 영화필름 입니다
70년도에 중학2 학년 때
신촌 신영극장에서 고은아
신성일 주연의 소문난 여자를 친구와 몰 래 들어가
본 기억이 그 때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칼라였지요
저대 김희갑시 나이 49인데 지금 69세 보다 더 늙어 보이네?ㄷㄷ
ㅎㅎ
그때 49면 영감임. ㅋ
13:20- 아메리칸 차이나타운이 백설희라고? 김부자 아니냐
김부자 맞네요 😅
송은이가 가방쓴줄
외노래끈어
딱봐도 유신시절의 체제선전으로
시작되는구만
패스하고 가수들의 영상을 보는
재미만 즐기고 있다
인생은짤고 예술은길다누가말했단가
김희갑선생님을뵈오니 그때
그시시절 영화 한 장면 한명회
옛날 일본의 가요곡 같은 멜로디 일제 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