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면서도 핵심만 딱딱 짚어주시는 명강의. 워털루에 대한 자료 중 가장 컴팩트하면서도 요점은 다 말씀해주신것 같습니다. 특히 각국마다 감정 이입이 심하다는 점은 저도 관련 다큐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그것도 잘 짚어주심. 1. 일단 프랑스~ 정말 아쉬워하면서 이길 수도 있었던 전쟁,,, 이는 나폴레옹 본인의 말이기도 했는데 암튼,,,그러기에는 여러차례의 치명적 실수가 결국 사단을 낸 것이니 프랑스 측에선 아쉽다는 식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듯 하며 2. 영국: 육군에 대해서 약간의 열등감이 있었고 특히나 미국 독립전쟁때 어쨌건 미국-프랑스 연합군에게 요크타운 전투의 패배를 끝으로 광대한 미국 식민지를 잃었으니 대규모 육전에서 만큼은 자신 없어 했는데 워털루에서 무려 나폴레옹의 정예 프랑스 군과 정면 승부를 벌여서 이겼기 때문에 자랑스러워하고 전쟁의 주역임을 내세우지만 3. 독일/프로이센: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아무리 영국군이 잘 싸웠다고 한들 워털루 전날인 6.17 리니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호되게 박살났지만 그래도 질서 정연하게 와브르로 퇴각했고 나폴레옹이 이를 추적하는데 실패한것을 첫번째 패전 원인으로 꼽을 정도로 이후 프로이센 군이 반전하여 그루시 원수의 추격 별동대 3만3천을 미끼밥 부대 1만 7천 떨궈놓고 가서 발을 묶었기 때문에 프로이센 군이 리니 전투와 워털루 전투에서 올바른 퇴각 기동과 반전, 위기에 빠진 영국군을 구출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군이 먼저 영국군을 격파하고 이후 프로이센 군도 각개 격파 당할 가능성이 높았기 워털루 전쟁에서 주도적으로 전장의 흐름을 끌고 가고 결정적인 승리에 공헌한건 프로이센 군이라고 주장,,, 암튼 서로의 감정대로 주장하는 것을 보고 아무리 학자라 하더라도 감정까지 극복하긴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ㅋ
한니발도 이탈리아에서 카르타고로 돌아올때 자신의 정예병의 상당수를 잃었습니다. 전부다 데리고 갈순 없으니... 그리고 스키피오의 일전에서 패배하고 다시는 재기할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상승장군 밑에는 그만큼의 대단한 참모와 중하급지휘관들이 포진하고 있고 이 시스템이 무너지면 제 아무리 천재라도 이를 회복하기 어려웠을겁니다. 러시아원장에서의 대실패 이후로 줄어든 지휘체계를 나폴레옹은 이를 혼자 감당해야 했으니 천재라도 이미 나이가 46세임을 감안하면 순발력이나 체력면에서 상당히 힘겨웠을것이라고 봅니다. 사람이란 완벽할 수 없으니 워털루 전투는 이길 수 있는 전투를 진것이라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그리고 51세에 사망하였으니 이 당시도 신체적으로 정상은 아니였을 것이고 활력도 많이 떨어져있었을 겁니다.
@@inkorearetrothex-japantrib7583 /그건 배제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비소 중독설을 읽었는데,,, 현재는 위암으로 밝혀졌습니다. 참고로 그의 집안 자체가 가족력이 있어서 부친, 누이동생 둘, 나폴레옹 본인까지 6명이나 위암으로 일찍 사망했었습니다. 임상 증상은 말기 위암과 일치하고 평소에 위궤양 증상등으로 항상 손을 옷자락 속에 끼워 넣고 배를 누르는 자세는 초상화에서 나오는 유명한 자세이지요.
많은 변수가 있는 전투였죠. 파리에 유능한 장군들을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전날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나폴레옹이 일찍 전투를 시작했더라면, 그루시가 일찍 전선에 복귀했더라면, 나폴레옹이 중간에 지쳐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어느 하나만 충족되었어도 나폴레옹이 이길 수 있었다는... 물론 워털루에서는 한번 이기더라도 장기전으로 가면 결국 몰락이지만.
그런데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지 않았겠죠.. 그런데 안하무인의 경지가 극에 달한건지는 몰라도 엘바섬탈출이후 재집권까지는 뜻대로 되었지만 과연 그 이후 즉 자기가 주도권을 쥘수있는 프랑스 국내문제는 어쩐다해도 전혀 그럴수없는 외국들과의 관계는 사실 자신이 나름 아무리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했더라도 결국은 도박성 기대에 불과한 것인데 애초 당시 나폴레옹이 과연 이러한 그에게 점령당했던 피지배층들의 반응에 얼마나 이해도가 높았는지는 몰라도 실제 나폴레옹에 대한 적개심을 생각하면 엘바섬 탈출시작부터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실상 그의 최악의 오산인거죠. 워털루에서 이긴들 다가오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페인군 등등 전유럽군대와 대결이 곧 기다릴텐데 자신이 무슨 재주로.. 워털루직후 바로 포기하고 영국군에 항복한건 그의 기대와는 달리 프랑스국민들 또한 열렬한 지지는 커녕 혹시나했다가 패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완전 턴페이스 해버렸으니 그 천재가 가장 중요한 부분에대한 분석은 제대로 못한것이라고도 생각되네요. 세인트헬레나에서 악질 영국총독에게 시달리며 제대로 대우도 못받고 죽은건 개인적으로 초라한 최후이긴하지만 나폴레옹의 자업자득입니다. 자신의 야망으로 죽어간 수백만의 원혼을 생각하면 뭐..
나폴레옹 전쟁은 관련 영상이 기억에 남는게 하나 있었는데, 해외 영상중에 시간순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준 영상이 있었네요. 워털루까지 가는 길목에서 어느 길목에서 길을 잘못들어서 부대가 러시아군의 화망에 걸렸는데 5천명이 죽었다고 무미건조하게 설명하는게 아직도 기억에 남더라고요. (....)
@@yas065gh 그건 님이 전략전술을 잘 몰라서 그럽니다. 양쪽에서 조이는 게 승리하는 있어서는 더 불확실한 요소가 되죠. 떼어놓고 각개격파 하거나 이격시키는 게 상책입니다. 그리고 그루시에게 줬던 건 기병대라고 어디에서 봤고 반프랑스 동맹병력 프랑스군 2배이상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humanplusscience4449 네 그거예요. 방금 위키 보고왔는데 애초에 한번 프로이센 밀었네요. 프로이센 패주하는 줄 알고 그루시에게 추격하라 보냈는데 블뤼허가 미끼 던지고 주력은 워털루로 향한 거네요. 블뤼허 때문에 망한 거라는.. 나폴레옹 회고록에도 다이긴 전쟁이라고 했답니다. 실제로 영국군 패배직전이었구요. 프로이센이 영국군과 합류하는 것 막으려고 그 중앙으로 끼어들어서 프로이센 선빵 후 추격하고 주력은 영국군 치는 멋진 전략.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이번 편은 팩트 확인이 좀 부실하신 것 같습니다. 블뤼허는 리니전투에서 낙마하긴 했어도 후퇴하는 프로이센군 수습해서 그루시 따돌리고 팽팽한 워털루 전투에 결정타를 날리고 파리에 개선까지 했었는데요. 그리고 애초에 프로이센군이 13만이나 되어서 패주한다 해도 그루시에게 한 개 사단만 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워낙 극적인 전투라 이러니저러니 말들은 많지만 워털루를 이겼어도 이어질 대불연합군의 웨이브를 감당 못했겠죠. 그루시는 그래도 나름 전공을 세워 마샬 반열에 올랐었는데 저 사건 한방에 파리 마샬대로에 이름도 못 남기고 평생 변명하다 쓸쓸히 가셨다는..
패주한 프로이센 군이 3개 군단 병력이나 되어서 적은 병력을 줄 수 없었다는건 납득할 수 있지만 왜 연대장, 사단장 역량 밖에 안되는 그루시에게 맞겼냐는 것이죠. 기보포 3만 3천이 전체 프랑스 군 1/3이나 되는 규모였지만 단독으로 프로이센 군을 맞서기 충분한 병력도 아니였고 애초부터 나폴레옹의 명령이 애매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추적과 견제라면 충분한 병력이였지만 추적을 뿌리치고 재편성을 한 프로이센을 격파할 정도는 안되었을 겁니다. 차라리 그 병력이라면 영국군 격파를 좀더 빨리 할 수 있었고 그러면 각개 격파후 전쟁 승리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란건 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이죠. 나폴레옹도 무난히 돌파할것으로 생각했던 영국군이 선전하자 아차 싶었는지 그루시를 빨리 복귀하라고 슐트에게 명령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고 뜨아~~ 하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 되는 것이죠. 결국 나폴레옹의 실책이 너무나 컸다는,,, 베르띠에라면 20명은 보냈을텐데,,,,, 등등. 워털루 전역에서 나폴레옹의 인사는 최악이였죠.
역사의 핵심이 빠져 있다. 나폴레옹 군대가 왜 두 번 다 영국군에게 졌을까? 1. 스페인의 프랑스군은, 잘 무장된 영국군에게 패배했다. 2. 워털루에서도, 최고의 명장이자 영웅으로 칭송받는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하는 부대가, 잘 무장된 웰링턴의 영국군에게 패배했다!! 3. 나폴레옹이 멍청해서? 바로 직전에 프로이센 군을 격파했는데? 조금 있으면, 프랑스 군대는, 프로이센 군대에 작살나고, "마지막 수업"이라는 글에서처럼, 알자스, 로렌 지방을 프로이센에게 가져다 바치면서 항복하는 신세가 된다! 자꾸만, 명장이 승리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보니, 오류가 발생하는 것! 나폴레옹을 유럽 최고의 명장이자 영웅이라고 칭송했는데, 워털루에서 작살났는데?? 그럼 다시 생각하자! 이탈리아, 또는 오스트리아에 웰링턴이 있었다면 나폴레옹에게 이겼을까? 오스트리아가 참패한 것은, 웰링턴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포가 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에 웰링턴이 있었다면, 나폴레옹에게 이겼을까? 역시, 대포가 없는데? "마지막 수업"에서의 프로이센은, "몰트케"의 신출귀몰한 전략 전술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보다 더 많은 대포로 프랑스 군대를 작살냈다!!"
@@humanplusscience4449 아뇨, 대포와 장비가 결정한다는 예시로, 조금 후일의 "몰트케"와 "나폴레옹 3세"를 가져온 것일 뿐입니다. 나폴레옹이 무능했거나, 전략적 착오 때문에 웰링턴에게 진 것이 아니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과는 달리, 잘 무장된 영국군과의 전투에서는 이길 방법이 없었지요.
00:00 시작
00:47 황제 나폴레옹의 몰락, 그리고 죽음
02:42 나폴레옹의 뒤바뀐 운명!
05:43 나폴레옹의 100일 천하
08:54 워털루 전투 패배 요인
18:30 근대 전쟁 가장 대규모적 기병 돌격
21:30 나폴레옹의 도주
22:45 나폴레옹의 최후
"전쟁에서 승리는 언제나 실수를 가장 적게 저지르는 자에게 간다." 이 말 완전 띵언이네요.
전략 게임에도 먹힐 말이네요 ㅋㅋㅋ 스타나 워크 토탈워도 상대가 실수 해줄때 휘몰아치면 이기더라고여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 아닌가요?
@@wonyoungpark700 이게 어떻게 까는거임? 나폴레옹이 실수한걸 실수했다 잘못했다는걸 잘못했다고 하는건 까는게아님. 그냥 그 사람의 모습을 비춘거지. 명장이라고 잘못 안할 수 없는거고 그랬다고 한들 명장이 아니게 되는게 아님
@@wonyoungpark700 까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지혼자 발작하고 신나서 떠들고있누
박사님 덕분에 금요일이 행복해요 항상 감사합니다 👍❤❤❤
전력질주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아주 숨가쁘게 나폴레옹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사님의 훌륭한 강의, 제작진 여러분의 뛰어난 편집 덕분입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음 전쟁사 읽어드립니다는 어떤 이야기가 찾아올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박사님 항상 RESPECT!!!
전쟁사는 임용한 박사님만 믿고 갑시다!!!
간결하면서도 핵심만 딱딱 짚어주시는 명강의. 워털루에 대한 자료 중 가장 컴팩트하면서도 요점은 다 말씀해주신것 같습니다. 특히 각국마다 감정 이입이 심하다는 점은 저도 관련 다큐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그것도 잘 짚어주심.
1. 일단 프랑스~ 정말 아쉬워하면서 이길 수도 있었던 전쟁,,, 이는 나폴레옹 본인의 말이기도 했는데 암튼,,,그러기에는 여러차례의 치명적 실수가 결국 사단을 낸 것이니 프랑스 측에선 아쉽다는 식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듯 하며
2. 영국: 육군에 대해서 약간의 열등감이 있었고 특히나 미국 독립전쟁때 어쨌건 미국-프랑스 연합군에게 요크타운 전투의 패배를 끝으로 광대한 미국 식민지를 잃었으니 대규모 육전에서 만큼은 자신 없어 했는데 워털루에서 무려 나폴레옹의 정예 프랑스 군과 정면 승부를 벌여서 이겼기 때문에 자랑스러워하고 전쟁의 주역임을 내세우지만 3. 독일/프로이센: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아무리 영국군이 잘 싸웠다고 한들 워털루 전날인 6.17 리니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호되게 박살났지만 그래도 질서 정연하게 와브르로 퇴각했고 나폴레옹이 이를 추적하는데 실패한것을 첫번째 패전 원인으로 꼽을 정도로 이후 프로이센 군이 반전하여 그루시 원수의 추격 별동대 3만3천을 미끼밥 부대 1만 7천 떨궈놓고 가서 발을 묶었기 때문에 프로이센 군이 리니 전투와 워털루 전투에서 올바른 퇴각 기동과 반전, 위기에 빠진 영국군을 구출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군이 먼저 영국군을 격파하고 이후 프로이센 군도 각개 격파 당할 가능성이 높았기 워털루 전쟁에서 주도적으로 전장의 흐름을 끌고 가고 결정적인 승리에 공헌한건 프로이센 군이라고 주장,,,
암튼 서로의 감정대로 주장하는 것을 보고 아무리 학자라 하더라도 감정까지 극복하긴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ㅋ
이것만 일주일 기다렸다
한니발도 이탈리아에서 카르타고로 돌아올때 자신의 정예병의 상당수를 잃었습니다. 전부다 데리고 갈순 없으니... 그리고 스키피오의 일전에서 패배하고 다시는 재기할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상승장군 밑에는 그만큼의 대단한 참모와 중하급지휘관들이 포진하고 있고 이 시스템이 무너지면 제 아무리 천재라도 이를 회복하기 어려웠을겁니다. 러시아원장에서의 대실패 이후로 줄어든 지휘체계를 나폴레옹은 이를 혼자 감당해야 했으니 천재라도 이미 나이가 46세임을 감안하면 순발력이나 체력면에서 상당히 힘겨웠을것이라고 봅니다. 사람이란 완벽할 수 없으니 워털루 전투는 이길 수 있는 전투를 진것이라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그리고 51세에 사망하였으니 이 당시도 신체적으로 정상은 아니였을 것이고 활력도 많이 떨어져있었을 겁니다.
나폴레옹 이야기가 끝나서 너무 아쉽습니다. 매주 기다리던 재미가 있었는데
잘봤습니다 박사님! 너무 재밌었습니다!
너무재밋게보고있어요
드디어 나폴레옹편이 다 올라왔군요! 잘봤습니당
영국과 동맹국들이 나폴레옹을 사형시키지 않고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시킨 이유가 뭔지 궁금하네요. 분명히 사형시키자는 의견도 많았을 거 같은데.
임박사님 말에 따르면, 중세 시대부터 "왕은 사형시키지 않는다"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독살설 있어요 머리카락에서 수은검출됨
아무리 몰락했다고는 하나 지지하는 대중이 그 당시에도 꽤나 많았고, 그리고 특히 영국이라는 세력이 프랑스의 황제였던 사람을 사형시키는데 주도했다는 것이 큰 국민적 반감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니 세인트 헬레나 섬은 정말 최적의 선택지였을겁니다.
큰 그림으론 브루봉왕가가 무너지면서 혁명이 퍼지지 못하도록 하려고 한 전쟁인데 황제를 죽일 순 없죠. 기존 유럽세계에서는 황제는 죽일수 없는 자여야하니
@@inkorearetrothex-japantrib7583 /그건 배제 되었다고 합니다. 저도 비소 중독설을 읽었는데,,, 현재는 위암으로 밝혀졌습니다. 참고로 그의 집안 자체가 가족력이 있어서 부친, 누이동생 둘, 나폴레옹 본인까지 6명이나 위암으로 일찍 사망했었습니다. 임상 증상은 말기 위암과 일치하고 평소에 위궤양 증상등으로 항상 손을 옷자락 속에 끼워 넣고 배를 누르는 자세는 초상화에서 나오는 유명한 자세이지요.
몰락은 나폴레옹이 했는데 왜 내가 씁쓸한 걸까?
나폴레옹 전투 언젠가 디테일하게 듣고 싶네요!
이야호~~~~ 박사님 ❤❤❤ 늘 건강하세요
나폴레옹을 믿고 따른 프랑스군이 너무 측은하다. 허나 그들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충성심에 경례를!!!
저녁밥 먹을때 뚝딱하기 좋아요… 이야기 듣는기분🥰
많은 변수가 있는 전투였죠. 파리에 유능한 장군들을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전날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나폴레옹이 일찍 전투를 시작했더라면, 그루시가 일찍 전선에 복귀했더라면, 나폴레옹이 중간에 지쳐 쓰러지지 않았더라면... 어느 하나만 충족되었어도 나폴레옹이 이길 수 있었다는... 물론 워털루에서는 한번 이기더라도 장기전으로 가면 결국 몰락이지만.
비 ㅈㄴ 자주오는 영국에서 ‘전날 비 오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은 너무 코미디 아닌가요
@@Maple684 워털루는 벨기에 땅입니다.
@@humanplusscience4449 아;; 그렇군요..
죄송 ㅎ
@@Maple684 /워털루 역을 포함해서 이후 영국에서 사방에 워털루 지명을 훔쳐다 쓰긴 했죠. ㅋ
워털루에서 이겼다면 그래도 협상의 여지가 있었을테고 나폴레옹도 그 점을 노렸으나...
개인의 실책과 운적 요소까지 너무 안 따라줬죠...
워털루 이겼어도 결국은 힘든 전쟁 이었죠
나폴레옹이 평생 황제의 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다면, 역사는 꽤 많이 바뀌었겠네요
크 18분전 잘보겠습니다!!!
드디어!!
나폴레옹 전술의 특징인 기동을 통한 국지적 화력 우세, 포병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형 선택 혹은 형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워털루 전투였군요.
프로이센의 군제개혁이랑 명 장군참모,장군들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세월은 덧없이 그 강한 황제도 늙게하내요 나폴레옹이 혼자 다하려 말고 부하를 잘 키웠다면
대단한 전략보다 실수를 피하려 끝없이 노력하는 건 어떤 현장에서나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일보다 작은 걸로 더 사고와 사건이 많이 일어나다 보니….
그런데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지 않았겠죠.. 그런데 안하무인의 경지가 극에 달한건지는 몰라도 엘바섬탈출이후 재집권까지는 뜻대로 되었지만 과연 그 이후 즉 자기가 주도권을 쥘수있는 프랑스 국내문제는 어쩐다해도 전혀 그럴수없는 외국들과의 관계는 사실 자신이 나름 아무리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했더라도 결국은 도박성 기대에 불과한 것인데 애초 당시 나폴레옹이 과연 이러한 그에게 점령당했던 피지배층들의 반응에 얼마나 이해도가 높았는지는 몰라도 실제 나폴레옹에 대한 적개심을 생각하면 엘바섬 탈출시작부터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사실상 그의 최악의 오산인거죠.
워털루에서 이긴들 다가오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스페인군 등등 전유럽군대와 대결이 곧 기다릴텐데 자신이 무슨 재주로.. 워털루직후 바로 포기하고 영국군에 항복한건 그의 기대와는 달리 프랑스국민들 또한 열렬한 지지는 커녕 혹시나했다가 패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완전 턴페이스 해버렸으니 그 천재가 가장 중요한 부분에대한 분석은 제대로 못한것이라고도 생각되네요.
세인트헬레나에서 악질 영국총독에게 시달리며 제대로 대우도 못받고 죽은건 개인적으로 초라한 최후이긴하지만 나폴레옹의 자업자득입니다. 자신의 야망으로 죽어간 수백만의 원혼을 생각하면 뭐..
뭐 나폴레옹은 그시대상에서야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봅니다. 혁명의 지옥같은 혼란 해외의 미친듯한 침범.. 욕심을 너무 부렸지만 ㅎㅎ
8:20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서 이루어진 실수인 듯 합니다.
애매한 명령을 내리는 것은 실패시 변명할 구멍을 만드는게 가장 큰 이유죠.
하..... 금요일 저녁의 박사님 컨텐츠.... 이건 마약이다 ㅋㅋ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연구할 가치가 많은 인물인 것 같습니다.
한 인간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치있는 일이네요.
그당시에 프랑스군은 나폴레옹의 과거일이 진짜 대단했나보다.. 진짜 많이 모이긴했네
나폴레옹 전성기때 얼마나 대단했던겅ㅁ가
토전사에서 다뤘으면 진짜 얼마나 재밌게 봤었을까 너무 아쉽
토전사에 다루던중 프로그램이 펴지되었었습니다 ㅜㅜ
10:58 과부화(X) 과부하(O)
나폴레옹의 마지막은 너무나 초라한 한 사람의 모숩 이었다.
박사님 목소리가ㅠ감기걸리셨나요ㅠ
오랫동안 건강하세요
여기서 이겼어도... 결국은 안될확률이 높은 전쟁
나플레옹은 결국 영국을 빼고 전체 유럽을 점령했지만... 러시아에서 패배가 사실상
독재는 진짜 계속 하다보면 독이 되는건 누구든 똑같네. 특히 독재와 같이 늙을 수록 추악해지는거같음.
드디어 올라왔다.
러시아 원정실패로 인해 대규모 병력손실, 이때부터 이미 운이 다 끝난듯.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육손에게 대패후, 촉의 운이 내리막 가듯이.
너무 많이 잃었음 40만중 4만만 살아남았는데 20만 정도만 살았어도 국가 전체가 이렇게 흔들리지는 않았을거임
확실히 실제 전쟁 전술, 전략이라는건 우리같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고 변수가 많은 듯...
워털루 전쟁을 이기든 지든 나폴레옹에게 별 해법이 없었다는걸 생각하면 나폴레옹은 마지막 전투를 승리로 마치고 싶었을지도요...
6.25 한국전쟁사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영국하면 해군을 떠올리지만 해군이 강하기 이전부터 훨씬 적은 인구와 병력으로도 많은 전투에서 몇배 많은 프랑스군을 두들겨 패고 다녔다는 헨리5세는 프랑스왕 잡아서 항복받고 차기 프랑스왕 약속 받기도 ㅎㅎ
다음에는 어떤, 전쟁사가 나올까??
사병들은 죽고 최고지휘관은 제 몸 중 한줄 알고 잘도 도망가고, 예나 지금이나 같네요.
사실 저기서 잘못 알려준건데 원래 그냥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죽으려고 버티다가 부하들이 억지로 끌고갔다고하네요
글씨가 저만 흔들리나요?
이제 나폴레옹 편이 끝났으니 1970년대 나온 전설의 나폴레옹 워털루 전쟁영화를 다시 봐야겠군요!
그래도 유배지 보내서 자서전 쓰다가 죽게 하는건 나름 신사적이네ㅋㅋㅋㅋ
천재가 꼰대가 되어 최후를 맞이했네
정상적인 생각이면 그냥 조용히 짜져있었을텐데 나플레옹이라 가능했던 ㅋㅋ
제목부터 흥미롭네요.. 이게 썸네일뽑는 능력??
가만보면 루이 15세가 너무 무책임했네요.
여색에만 미쳐서 왕위를 계승할 손주들을 너무 방치했었나봐요.
잘보겠습니다 😊
나폴레옹은 인복이 좀 ㅜㅜ 결혼 부터 해서 가족들도 큰 힘이 ㅜ
러시아 원정은 자만 ㅇㅈ하는데 워털루때는 거의 과로사 직전이라 쓰러지듯이 쉬었던걸로 압니다. 물론 그 잠깐사이에 미셸 아니오가 일을 저지르긴 했지만...
비소 수은 중독
끼요오옷
나폴레옹 전쟁은 관련 영상이 기억에 남는게 하나 있었는데, 해외 영상중에 시간순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준 영상이 있었네요.
워털루까지 가는 길목에서 어느 길목에서 길을 잘못들어서 부대가 러시아군의 화망에 걸렸는데 5천명이 죽었다고 무미건조하게 설명하는게 아직도 기억에 남더라고요. (....)
루이루이 ㅠ
오오오오
프로이센을 막기 위해서 1개 군단을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프로이센은 만만한 군대가 아니거든요. 영국 웰링턴을 앞에두고 비등한 병력배치를 하고 나머지를 프로이센을 상대하는 데 할애했다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거겠죠. 그루시가 무능한 장군이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
님 의견이 더 이상한데요 옆에서 13만이 몰려오는데 몇천명 쥐봐야 어떻게 막나요 차라리 승기보이는 영국군 과의 전투에 최선을 다하는게 단 1%라도 승기가 보이겠네요 나폴레웅초창기 였으면 그렇게 할거 같아요
@@yas065gh 그건 님이 전략전술을 잘 몰라서 그럽니다. 양쪽에서 조이는 게 승리하는 있어서는 더 불확실한 요소가 되죠. 떼어놓고 각개격파 하거나 이격시키는 게 상책입니다. 그리고 그루시에게 줬던 건 기병대라고 어디에서 봤고 반프랑스 동맹병력 프랑스군 2배이상 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yas065gh 선택의 문제였을 거 같네요. 1) 프로이센 13만을 어차피 못 막을 거, 처음부터 영국군에 몰빵할 것인가? 2) 1개 사단으로는 안 되겠지만, 1개 군단으로는 적어도 몇 시간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 동안 영국군을 치자.
@@humanplusscience4449 네 그거예요. 방금 위키 보고왔는데 애초에 한번 프로이센 밀었네요. 프로이센 패주하는 줄 알고 그루시에게 추격하라 보냈는데 블뤼허가 미끼 던지고 주력은 워털루로 향한 거네요. 블뤼허 때문에 망한 거라는.. 나폴레옹 회고록에도 다이긴 전쟁이라고 했답니다. 실제로 영국군 패배직전이었구요. 프로이센이 영국군과 합류하는 것 막으려고 그 중앙으로 끼어들어서 프로이센 선빵 후 추격하고 주력은 영국군 치는 멋진 전략.
@@yas065gh 영국군에 올인하더라도 프로이센측에 군대를안보낼순없습니다 시간을 지연시키고 포위되는걸 막기위해서라도
👍
비만.. 비만이 원인이었네요..
😅😅😅
다부는...아무래도 마르몽이 1814년에 배신하여 파리를 개방한 기억 때문에 가장 믿을 수 있는 다부에게 파리를 맡긴 것 같습니다..
토전사 폐지는 국방티비에서 할수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 편을 마무리도 못하게 시간조차 주지않고 바로 폐지한건 용서가 안된다.
전쟁상황자체는 나폴레옹한테 극히 불리하게 흘러갔음에도 승리직전까지 간 것만으로도 나폴레옹이 천재는 천재구나 하는 생각도 듬
러시아 원정...단 한번의 잘못된 선택으로..ㅜㅜ
워털루 ㅈㄴ 아쉽긴 하지
제관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이번 편은 팩트 확인이 좀 부실하신 것 같습니다. 블뤼허는 리니전투에서 낙마하긴 했어도 후퇴하는 프로이센군 수습해서 그루시 따돌리고 팽팽한 워털루 전투에 결정타를 날리고 파리에 개선까지 했었는데요. 그리고 애초에 프로이센군이 13만이나 되어서 패주한다 해도 그루시에게 한 개 사단만 줄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워낙 극적인 전투라 이러니저러니 말들은 많지만 워털루를 이겼어도 이어질 대불연합군의 웨이브를 감당 못했겠죠.
그루시는 그래도 나름 전공을 세워 마샬 반열에 올랐었는데 저 사건 한방에 파리 마샬대로에 이름도 못 남기고 평생 변명하다 쓸쓸히 가셨다는..
패주한 프로이센 군이 3개 군단 병력이나 되어서 적은 병력을 줄 수 없었다는건 납득할 수 있지만 왜 연대장, 사단장 역량 밖에 안되는 그루시에게 맞겼냐는 것이죠. 기보포 3만 3천이 전체 프랑스 군 1/3이나 되는 규모였지만 단독으로 프로이센 군을 맞서기 충분한 병력도 아니였고 애초부터 나폴레옹의 명령이 애매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추적과 견제라면 충분한 병력이였지만 추적을 뿌리치고 재편성을 한 프로이센을 격파할 정도는 안되었을 겁니다. 차라리 그 병력이라면 영국군 격파를 좀더 빨리 할 수 있었고 그러면 각개 격파후 전쟁 승리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란건 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이죠. 나폴레옹도 무난히 돌파할것으로 생각했던 영국군이 선전하자 아차 싶었는지 그루시를 빨리 복귀하라고 슐트에게 명령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고 뜨아~~ 하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 되는 것이죠. 결국 나폴레옹의 실책이 너무나 컸다는,,, 베르띠에라면 20명은 보냈을텐데,,,,, 등등. 워털루 전역에서 나폴레옹의 인사는 최악이였죠.
나폴레옹 최후의말 그루시에 그루시에 그루시에 어디갔어
9:57
ㄱㅅㄱㅅ😂😂😂😂
나폴레옹 다 실수해도
누워서 총쏴라 햇음 100%
이겻음
드디어 업뎃🥺🥺🤎🤎
아니 교과서에서 섬에서 저항하다 죽었다고 배웠는데 ㅋㅋ
20분 순삭 ㄷㄷㄷㄷ
전쟁 이름에 사람 이름이 붙는 몇 안되는 사례...
네 장군 아니오 장군
그냥 결정장애와서 뒤늦게 진입하려다 쌈싸먹기 당한거임 ㅇㅇㅋㅋㅋ
잘나가는 국가 다구리는 유럽의 전통인가..ㅎ
뮈라? 뭐라?
나폴레옹 이 죽음을 위장하고
영국이 데려가 숨겨줘
명 다살고 갔다던 소문이 있던데
역시 비참한 마지막이 안쓰러워 그런 소문을 만드는지도
나폴레옹이 의자에 앉아서 존게 과로+복통때문이라는 썰이 ㅋㅋㅋ
와인하고 커피가 없었다고해요 보급이안되서
ㅌ
이상한 놈 나폴레옹.
역사의 핵심이 빠져 있다.
나폴레옹 군대가 왜 두 번 다 영국군에게 졌을까?
1. 스페인의 프랑스군은,
잘 무장된 영국군에게 패배했다.
2. 워털루에서도,
최고의 명장이자 영웅으로 칭송받는 나폴레옹이 직접 지휘하는 부대가,
잘 무장된 웰링턴의 영국군에게 패배했다!!
3. 나폴레옹이 멍청해서?
바로 직전에 프로이센 군을 격파했는데?
조금 있으면,
프랑스 군대는,
프로이센 군대에 작살나고,
"마지막 수업"이라는 글에서처럼,
알자스, 로렌 지방을 프로이센에게 가져다 바치면서 항복하는 신세가 된다!
자꾸만,
명장이 승리한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보니,
오류가 발생하는 것!
나폴레옹을 유럽 최고의 명장이자 영웅이라고 칭송했는데,
워털루에서 작살났는데??
그럼 다시 생각하자!
이탈리아,
또는 오스트리아에 웰링턴이 있었다면 나폴레옹에게 이겼을까?
오스트리아가 참패한 것은,
웰링턴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포가 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에 웰링턴이 있었다면,
나폴레옹에게 이겼을까?
역시,
대포가 없는데?
"마지막 수업"에서의 프로이센은,
"몰트케"의 신출귀몰한 전략 전술 때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보다 더 많은 대포로 프랑스 군대를 작살냈다!!"
나폴레옹 1세와 3세를 혼동하신 것 같습니다.
@@humanplusscience4449 아뇨,
대포와 장비가 결정한다는 예시로,
조금 후일의 "몰트케"와 "나폴레옹 3세"를 가져온 것일 뿐입니다.
나폴레옹이 무능했거나,
전략적 착오 때문에 웰링턴에게 진 것이 아니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과는 달리,
잘 무장된 영국군과의 전투에서는 이길 방법이 없었지요.
@@초영-y7x 글꼬라지랑 올린 영상들 어지럽네ㅋㅋ 조현병 있나
@@초영-y7x 군알못 ㅋ 전쟁에선 전략 전술이 핵심이다 바부야
아무리 군사력이 좋아도 전략전술이 나쁘면 개발린다
@@초영-y7x 군알못 개한심 ㅋㅋ
어디가서
그런소리하지마라 비웃음당한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군사력은 우세하지만 왜 패배하는 전투가 많은지 모르겠음 우세한 전투를 지는게 그들의 종특인가? 실제 프랑스와 상대한 적군이 프랑스보다 우세한 경우는 거의 없었음
마치 항우와 같구만
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