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사님! 참 대단하십니다. 어쩌면 그리 박식하시고 그많은 지식을 가지시고 그렇게 기나긴 설명을 하시면서도 단 한번도 실수를 안하시니... 참 타고나신 언변의 학자십니다. 부럽습니다. 제가 하루종일 혼자 있는데 그동안 서부영화만 보다가 이박사님 역사강의를 만나고 요즘은 하루종일 박사님 강의로 하루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적 확실한 고증이 없이 우리는 그저 야사에 흘러 내려오는 이야기를 정설로 믿얻고 역사드라마를 너무 믿었었네요 선생님 팩트역사를 듣고보니 웃음도 나오고 이렇게 왜곡 될수도 있었네요 나옹선사 유명하신 고승입니다 하처거 하처래 라는 단어는 불경 천도재 지낼때 장엄염불에 등장합니다
전문가들 말에 따르면 현재 연세대 자리가 경복궁 자리와 대비된 곳이었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는데 그러던 중 1:06:42 이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무악재 고개라면 연세대 방면과 큰 차이가 있고 금화터널이 뚫리기 전 당시엔 차이가 더 심해 아예 다른 지역이었을텐데 현재 연세대 쪽과 신촌 방면이 아닌 무악재 쪽이 도읍지로 고려됐었다고 보는게 맞을 수도 있을까요? 무학대사가 선바위 쪽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나 풍수지리적으로는 주산을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연세대는 좌청룡우백호가 없어서 평소 연세대 방면이 아니라 무악재쪽이 도읍지로 거론됐던 곳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그게 정말 맞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무악재고개에서 이성계가 토론을 하고 묵었다는 점이나 뒷산이 약하고 낮다는 점 너무 좁은 골짜기에 끼어있다는 점 수구가 쌓이지 않는다는 점은 새로 알았는데 무악재는 일제시대 때 깎여서 더 낮아지긴 했지만 당시에도 높지 않은 수준이었을거고 옛날 지도를 보니 영은문쪽까지 한강이 들어왔었고 연세대와 신촌일대는 경복궁 일대만큼 버금가게 넓고 골짜기라고 하기 어렵지만 무악재 남쪽으로는 좁은 골짜기형태인 점이 연세대보다는 무악재 쪽이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더 들게 합니다 당시 중국을 높게 여기던 시절 사신을 맞이하고 영접했던 모화관이 있었다면 그에 걸맞는 중요하고 좋은 자리였을텐데 그 자리에 일부러 감옥을 세워서 의병들을 탄압하고 무악재 고개 산을 깎아 전차를 놓고 건물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 무악재가 아닌 연세대 쪽을 추정해서 무엇이 맞는건지 의아합니다
세세한 강의 참 좋았습니다!~ 역사는 크게 또는 작게 돌고도는 것으로 1만여 년을 주기로 반복을 하고있습니다!~ 지금도 1만여 년전의 울카이었던 우크라이나와 아틀란티스인들의 두갈래인 러시아와 미국의 대립된 일로 서유럽의 연합세력이 합세하고 있는 것이 옛이나 지금이나 흡사하게 이루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있습니다!~ 1만년전의 일인 그때도 1만년전 일을 반복한 것이었다하고 그일은 또다시 1만년전의 똑같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던 일이라는 것도 기록들이 있는데 비기나 비사를 모르면 있던일도 없는것일까요? 구전의 야사는 수없이 많은 것을 알고들 있듯이 그렇게 인류의식문화문명의 흐름은 피는듯 하다가 멸망의 주기로 암울하게만 흘러가니 인류의식의 깨어나고 완성된 의식문화사회의환경은 언제쯤 되려는지요!~ 존 요한이요 현장승을 지나 무학승을 이어 주문모신부를 지나 최제우를 지나 무지를 조금벗어 열반의식을 가고있어도 깊은말들을 할 수 없는 사회환경이니 이러한 돌대가리의식보다 훌륭한 선배들이 세상에 나오겠는가 말입니다!~ 제발 이젠 고수들이 나오는 사회환경의 세상을 만듭시다!~ 가짜들만 설치고 있으니 ~~ 지공이요 나옹이 예수요 세레요한이요 하고 나왔다해도 믿지못할 사회의식환경 ㅎㅎ 말로는 저 거지가 또는 저 병든아기가 예수님일지도 몰라 하며 광고문구가 성한데도 ㅎㅎ 막상 그들이 나타나며 내가 예수다 내가 세례요한이다 요한이다 하면 전혀 믿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수십억년의 역사는 쉽게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수십년 함께 보고 살았다!~ 우주의 기록을 보고 말하고 베껴쓰며 공부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크게 깨어나고 거듭 우주적으로 더욱 크게 깨어나 진정 거듭난 열반의식을 이루어 더이상의 퇴보가 없는 만세반석의식은 되어야만 하는 것이라 봅니다!~♡~ 역사의 위기라지만 내가 지금 진정 크고바르게 깨닫고 더욱 익혀 두번째 크게 깨닫는 단계까지 속히 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세상에는 방법의 정보가 찾아보면 많습니다!~
태조와 태종의 관계를 생각하면 태종이 무학대사를 좋아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깍아 내렸을거다. 아마 살아 있었으면 당시의 태종 이방원의 행태를 볼때 죽였을거다. 그러므로 무조건 태종 이방원 때의 기록만 가지고 얘기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태조 이성계는 김무생임.
추측컨데 춘정 변계량 선생은 합천 초계변씨로 알고 있고 사후 비문을 지었다고 하니 동향인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선조때 조 남명 선생의 수제자로 내암 정인홍 선생과 무학대사 세분 모두 합천 출신이네요 임난이라는 시대적 전환기에 무학대사가 등장한다고 하니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내암선생과 연관이 없는지 아니 우연이겠지요?
왕십리라는것은 무학대사 께서 땅을 판게 아니랍니다 역사를 1도 모르는 인간같 으니ㅉㅉㅉ 무학대사께서 조선의 기틀이자 왕의궁의 자리를 찾아헤메일적에 무 학대사께 경보라는 스님께 서 왕십리에서 10리쯤 더 가게되면 그곳에 궁궐의터 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보라 해서 가보게된 곳이 현재의 경복궁 자라입니다 아둔한 인간아 본인이 말한 경보스 님은 후삼국시대 도선대사 의 제자이면서 고려 태조왕 건과 사제지간이며 고려태 조는 유발제자였음 어디서 허무맹랑한 댓글을 다는지 모르겠으나 거짓의 역사는 최소한 알리지말자 쪽팔리 게 어디서 듣보잡 상상의나 래를펴서 너만의 역사관의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네 ?? 너의 댓글에 Re댓글쓰 는 나보다도 역사관념없는 것같은데 신라시대가 왜나 왔는지 모르겠으나 개똥같 은 소리는 양심이 있다면은 하지마라 어디가서 개망신 당하기전에~!!!!!
ㅎㅎ 역사는 아카시크 레코딩 하는 존재들의 수행구룹에서 직접 보고 듣고 논의들하고 있는 정보가 비교적 좋았던 것 같습니다ㅎㅎ 직접 과거 현재 미래를 보는 의식의눈을 가진 에텔에너지요 오딕에너지가 충만한 선배님들과 살아갈 때에 들은것은 먼 우주의 시간대는 노란빛의 우주세계에서도 살았었고 비교적 최근인 7,500만년 전에는 물고기좌에서 함께 수행하던 교우였던 2,000여년 전의 예수의 이름을 잠시 갖았던 그 존재와 함께 수행을 했던 존재라고 했고 예수라는 이름을 썼던 그 의식의 존재와 함께 이곳 지구에 까지 오게 되었고 거의 언제나 한시대에서 살아가는 관계였던 것을 압니다. 그후에 알게된 것이지만 세레요한도 그때 함께온 것이라고 저로서는 확신합니다. 지공이 예수고 나옹이 세례요한 무학이 요한으로서 부끄럽지만 여러 세대마다 저 요한이 가장 차원이 뒤떨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의 시대에서도 이 세 의식은 함께 살아가며 각각의 맡은분야에서 온 인류들을 위하여 열씸히 일들을해나가고 있습니다. 오사구 강태공 현장 존 요한 춘추 왕건 무학 주문모 최제우를 거쳐 현 생애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도중인 것입니다. 입정 통일장 혼원일기 신의의식 견성계합은 말할것도 없는 것이며 확철대오를 거치고 신인이요 진인이요 하던 의식을 지나고 무색계과정을 지나 만세반석의식이요 열반의식에라도 되어 안정이 된 후에라도 되어야만 겨우 작은 말을 할 수라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진실로 진실로의식으로 설할 때이고 싯다르타 께서 부처를 이루기 직전 에서의 의식차원으로서 설하시던 때이기에 섣불리 설익은 의식으로 떠들어대서는 안되는 것이라 봅니다. 예전의 무학이 우리민족 수행법인 풍류도의 12만수 가운데 무위의춤인 무와 음률의 흐름인 악으로서 수행을 하다 확연히 열린 의식에서 진정 무색계인 무로 들어가는 시절이 되어 무학으로 이름을 고치고 수행을 하다 공부를 더 진행을 해나가야 하지만 임무수행의 지시가 내려오면 중단하고 그 맡은 바를 수행하느라 이성계의 일을 도와 다시 새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도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다른 존재들도 마찬가지지만 예수와 세례요한과 요한 이 세의식은 언제나 피눈물과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서 충격적인 자극을 주어가며 인류들의 빠른 진화를 위해서 잠잘 시간도 없이 열씸히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것입니다. 그 깊은 비밀의 철저한 임무적인 수행함을 잘 모르기에 험악한 모습으로 죽어가곤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우리의 친부모님들은 목숨걸고 몸팔아가면서도 자녀들을 부양해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찌 계부 계모가 그리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녀가 핍박을 주어도 말없이 행해나가는 것이 친 부모인 것입니다. 처절하고 비굴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며 잠못자고 계획하고 이행해나가는 것입니다. 저 무학보다 나옹인 세례요한은 차원을 달리하는 어마어마한 존재이고 지공인 예수는 더욱 차원을 달리하는 어마어마한 존재인 것이 사실인 것이며 현장법사가 인도에 도착 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 못하고 기다리던 스승이 예수요 지공의 전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식과 존 요한의식은 언제나 형제와 같이 비밀리 가고 있는 것입니다. 보실 분만 보시도록 님의 글 뒤에 올립니다!~^♡^~
드라마로 역사를 배우는 건 어리석은 짓임을 알고 갑니다 그리고 고려말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의 위선과 그놈의 체통 명분으로 나라가 결국 일제에 짓밣힌 거고 지금의 유도회라는 단체들은 국민들한테 석고대죄해도 모자랍니다 실용을 버리고 명분에 집착한 결과는 나라 패망의 길일 뿐 아니라 국민들만 고통에 빠트릴뿐입니다
태조 평소 화를 안낸다 자초무학를불러 개인적으로 개인이야기를했을거다 성석린이 산세물길통해길지인지 뒷산약해서 땅이기울어지고~ 정총도풍수논리로 반대 이때, 정도전이 골짜기라 종묘사직 쓰기 별루다ㆍ 정치가 잘잘못은 사람에게있다ㆍ 이귀절이 풍수로부터벗어나는 계기인데 600년이지나도 풍수가 아직도 언급이 되는것이 벗어나야한다ㆍ
11개월 전의 영상에 뒤 늦게
시청을 합니다.
세세한 설명에 찬사를 보냅니다.
쎔,,역사지식이 한결 이해롭게 잘 들려서 재밌고 많은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와 비슷하게 진행하시는것 같아 흥미로왔습니다..
이박사님!
참 대단하십니다.
어쩌면 그리 박식하시고 그많은 지식을 가지시고 그렇게 기나긴 설명을 하시면서도 단 한번도 실수를 안하시니...
참 타고나신 언변의 학자십니다.
부럽습니다.
제가 하루종일 혼자 있는데 그동안 서부영화만 보다가 이박사님 역사강의를 만나고 요즘은 하루종일 박사님 강의로 하루를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역사적 확실한 고증이 없이 우리는 그저 야사에 흘러 내려오는 이야기를 정설로
믿얻고 역사드라마를 너무
믿었었네요 선생님 팩트역사를
듣고보니 웃음도 나오고 이렇게
왜곡 될수도 있었네요 나옹선사
유명하신 고승입니다 하처거
하처래 라는 단어는 불경 천도재
지낼때 장엄염불에 등장합니다
오늘 처음 본 영상인데 논리정연한 역사분석에 경의를 표합니다.
수고하셨읍니다.
오늘 강의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좋은 내용의 강의를 끊지않고 하나로 쭉 연결해서 들을수있도록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늘 애청합니다❤❤❤감사합니다
유익하게 잘 보았습니다..
전문가들 말에 따르면 현재 연세대 자리가 경복궁 자리와 대비된 곳이었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는데 그러던 중 1:06:42 이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무악재 고개라면 연세대 방면과 큰 차이가 있고 금화터널이 뚫리기 전 당시엔 차이가 더 심해 아예 다른 지역이었을텐데 현재 연세대 쪽과 신촌 방면이 아닌 무악재 쪽이 도읍지로 고려됐었다고 보는게 맞을 수도 있을까요?
무학대사가 선바위 쪽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나 풍수지리적으로는 주산을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데 연세대는 좌청룡우백호가 없어서 평소 연세대 방면이 아니라 무악재쪽이 도읍지로 거론됐던 곳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그게 정말 맞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무악재고개에서 이성계가 토론을 하고 묵었다는 점이나 뒷산이 약하고 낮다는 점 너무 좁은 골짜기에 끼어있다는 점 수구가 쌓이지 않는다는 점은 새로 알았는데 무악재는 일제시대 때 깎여서 더 낮아지긴 했지만 당시에도 높지 않은 수준이었을거고 옛날 지도를 보니 영은문쪽까지 한강이 들어왔었고 연세대와 신촌일대는 경복궁 일대만큼 버금가게 넓고 골짜기라고 하기 어렵지만 무악재 남쪽으로는 좁은 골짜기형태인 점이 연세대보다는 무악재 쪽이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더 들게 합니다
당시 중국을 높게 여기던 시절 사신을 맞이하고 영접했던 모화관이 있었다면 그에 걸맞는 중요하고 좋은 자리였을텐데 그 자리에 일부러 감옥을 세워서 의병들을 탄압하고 무악재 고개 산을 깎아 전차를 놓고 건물을 세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 무악재가 아닌 연세대 쪽을 추정해서 무엇이 맞는건지 의아합니다
대학교양 수업 수준의 양질의 강의를 이렇게 유튜브로 해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튜브 시청이 아니라 수강생의 자세로 배움에 임하겠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과제도 하고 시험도 보고 싶네요ㅎㅎㅎ
대단한 열정입니다
공부 나이들어도 공부
되새김하는데 좋지요
70세도 공부합니다ㆍ
한양천도는대한민국의수도로가장좋은 곳이다 국토의중앙이고 북악산이배후에있고 한강이 있으니 배산임수의 위치다
따뜻한 음성 잠이 잘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역사도 배우고
역사 강의중 최고로 객관적인 사실에 의한 강의라고 생각합니다
재밋게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강의 들으면서
잘 배우고 있어요 꾸벅
교수님 영상 항상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여러 번 봐도 새롭게 재미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강의로 제대로 역사를 배웁니다~
세세한 강의 참 좋았습니다!~
역사는 크게 또는 작게 돌고도는 것으로 1만여 년을 주기로 반복을 하고있습니다!~
지금도 1만여 년전의 울카이었던 우크라이나와 아틀란티스인들의 두갈래인 러시아와 미국의 대립된 일로 서유럽의 연합세력이 합세하고 있는 것이 옛이나 지금이나 흡사하게 이루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있습니다!~
1만년전의 일인 그때도 1만년전 일을 반복한 것이었다하고
그일은 또다시 1만년전의 똑같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던 일이라는 것도 기록들이 있는데
비기나 비사를 모르면 있던일도 없는것일까요?
구전의 야사는 수없이 많은 것을 알고들 있듯이
그렇게 인류의식문화문명의 흐름은 피는듯 하다가 멸망의 주기로 암울하게만 흘러가니 인류의식의 깨어나고 완성된 의식문화사회의환경은 언제쯤 되려는지요!~
존 요한이요 현장승을 지나 무학승을 이어 주문모신부를 지나 최제우를 지나
무지를 조금벗어
열반의식을 가고있어도
깊은말들을 할 수 없는 사회환경이니
이러한 돌대가리의식보다 훌륭한 선배들이 세상에 나오겠는가 말입니다!~
제발 이젠 고수들이 나오는 사회환경의 세상을 만듭시다!~
가짜들만 설치고 있으니 ~~
지공이요 나옹이 예수요 세레요한이요 하고 나왔다해도 믿지못할 사회의식환경 ㅎㅎ
말로는 저 거지가 또는 저 병든아기가 예수님일지도 몰라 하며 광고문구가 성한데도 ㅎㅎ
막상 그들이 나타나며 내가 예수다 내가 세례요한이다 요한이다 하면 전혀 믿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수십억년의 역사는 쉽게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수십년 함께 보고 살았다!~
우주의 기록을 보고 말하고 베껴쓰며 공부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크게 깨어나고 거듭 우주적으로 더욱 크게 깨어나 진정 거듭난 열반의식을 이루어 더이상의 퇴보가 없는 만세반석의식은 되어야만 하는 것이라 봅니다!~♡~
역사의 위기라지만 내가 지금 진정 크고바르게 깨닫고 더욱 익혀 두번째 크게 깨닫는 단계까지 속히 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세상에는 방법의 정보가 찾아보면 많습니다!~
제가 말투나 목소리에 민감한 편인데 진짜 말씀을 잘하시네요 목소리도 좋으시고 항상 재미있게 듣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는 글씨만
잘쓰는사람으로만 알았는데 고증학까지 대단한인물
좋은 강의 정말. 잘듣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워갑니다
좋습니다❤
믿고 보는 교수님 역사 강의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머니태몽 떠오르는해가
품안으로 들어오는꿈
18살 출가 고려말쯤
향리집안에서는 스님되는걸 영광으로 알았다ㆍ
27때 원나라연경으로 유학
인도승려지공스님만나게된다 (양주회암사인도랑비슷) 고려에 많은영향을 줌
고려사람 모두 죽겠구나
(지공스님은고려망한다는것이겠죠ㆍ 또 나옹선사도
유학중에 무학을만났다
나옹제자로 들어간다ㆍ
이익되는 역사의 사명대사책을 몇번이나 읽은 예날이 생각이 납니다,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임경업장군에 대하여 방송 해주실 수 있으세요,
어릴때 아버지께서 읽어 주시던 임경업전 50년전에 들은 이야기라 흐릿하게 생각은 나지만 자세한 것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을뿐입니다.
유익한 강의 항상 감사합니다.
완전 명강의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과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신 지식들의 차이가 상당함에 놀랐습니다. 배우고 배웁니다
😅😅
ㅈㅁㅆ@@이승하-e7n
역사를 가르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태조실록에 무학대사의 발언이
거의 없는 건
사관이 유교편향적이었을
가능성은 없지 얺았을까
라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좋지 얺을까 합니다
공감합니다. 정권을 잡은자의 기록이니 삭제했을 수도 있습니다.
동감합니다
들을수록 어떤 신비속으로 빨려드는감이 드네요
신비의세계를 연구 하시려면 신을 만나서 현시대를 직시하는 혜안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새하늘 새땅을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토요일인데도 업로드하셨군요
위대한 천도의 풍수 강의 유명 말씀 감사드림니다 그중에 내가본 풍수는 앞에 노적봉 있는 서울 남산 때문에 한국 이 부자나라 입니다
요즘(?) 신촌,홍대,합정 마포쪽이 핫한거 보면 하륜 말대로 풍수지리설로 좋은 위치긴 한거 같네요 ㅎㅎ 강남도 괜찮은데 이상하게 그쪽은 양기가 강하게 느껴저서 기빨리더라구요 ㅎ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첫구독햇음니다
유익한영상이었음니다
큰발전을기대함니다
선생님 신기해요 어떻게 다 외우셔요 ㄷㄷ;;😂
무학대사역은 역시 박병호님입니다.
ㅋㅋㅋㅋ
재밌어요.
재밋네요.잘 들었습니다
조선왕족을 위하여
무학대사님이 기도하는 기도첩이 있는데
이는 어떻게 해석 하셔야 겠읍니까 ?
이익주 교수님이 아니면
허튼소리들이 날개를 달뻔했다.
이런 과학적인 고증으로 다시 역사를 연구해야 한다.
숭유억불이기 때문에 실록에서는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았을까요?..그나마 저정도의 기록이 있는것도 왕이 편을들기 때문에 기록으로는 더 좋게 나올리는 없을것 같습니다..신하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선택했다면 뭔가 다는거 아닐까요?
무학대사는 무학인데도 대사가 되었군요. 어느나라 대사로 갔을까요?
참 재밌네요. 저만 웃었을까요? 내일까지도 웃기에 충분합니다.
비봉에 올라서 비문을 읽은 것보다 거기에 비석을 세운게 더 대단한거 아닌가요?
지금이세대는
왜왜 선생님같은분이
없을까요
참교육.참역사
교과서에실려야될듯합니다
응원합니다
태조와 태종의 관계를 생각하면 태종이 무학대사를 좋아 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깍아 내렸을거다. 아마 살아 있었으면 당시의 태종 이방원의 행태를 볼때 죽였을거다. 그러므로 무조건 태종 이방원 때의 기록만 가지고 얘기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태조 이성계는 김무생임.
신하들도 태종 시절 인물들....하륜은 대조영 드라마에서 아버지...배우 이름은 모르겠네요.
추측컨데 춘정 변계량 선생은 합천 초계변씨로 알고 있고 사후 비문을 지었다고 하니 동향인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선조때 조 남명 선생의 수제자로 내암 정인홍 선생과 무학대사 세분 모두 합천 출신이네요 임난이라는 시대적 전환기에 무학대사가 등장한다고 하니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내암선생과 연관이 없는지
아니 우연이겠지요?
38:48 에서 언급하신 나옹선사의 주류(?) 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무학대사입니다
조선시대중에 무학대사보다 신비로운 이들이 많습니다 실제 신선들도 여럿이었으며 게중 상상 초월하는 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서울 근교의 명산을 볼 때마다 무학대사의 혜안에 탄복한다. 선플밉니다.
무학대사는 실존 인물인가요
😅
@@희우송실존인물입니다
@@희우송😅😢
??
자초는 법명이고 무학이 호면 속명(세속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조선시대에 고승을 법명보다 아호로 부른 것은 유교풍이겟죠.
역사적 사실과 내가 알고있는것은 들을것을 포함된거라 ㆍ관점에따라 달라지는건은 역사가 아니다ㆍ
무학대사가 순창군 구림면에 사찰 만일사에서 무학이 만일동안 태조이성계 왕을만들기 위에서 공을 만일동안드려다고 만일사라고 한것 ㆍ😂😂😂😂😂😂😂
공양왕도 천도주장
보면서 줄기차게 하고자
하는것 연복사창건을 못해서 쫓겨남을 보고~
이성계는 2가지
반대하는것을 보고
무학을 선택
그때불교계가 이성계를
밀지않아서 무학이 적임자였을거다
드라마 속 인물 이미지를 가져 온 듯한데요. 태조는 김무생이고요, 지금 이미지는 태종 유동근이네요. ㅋㅋㅋ
1:28 여기서요
연복사 5층탑어마어마하다
몽골때 불타ㆍ공민공양왕때 정통성 회복하려고
중창하려했다ㆍ
태조왕건이 지었던것이라
위업을계승하고자
어디에 있는 절인가요?
서울 근교에서 좋은 산 많고 좌청용 우백호 같춘 산은 누구나 알겠지만 궁터가 또 있는곳은 도봉산 앞이넗고 노적봉은 불암산 임니다 내 죽기 전에 말해 줌니다
도미원(하남)
두모포(옥수동)
이성계가 개인적으로
무학을 불렀을거다ㆍ
유교시대 왕사로삼기어렵다
往十里 지명은 현재의왕십리 에서 땅을 파보니 신라 시대때 묻어놓은 비석이라 들었어며 비석의 자리에서 십리를 더가라는 말이며 풍수지리상 현재의 경북궁 조선왕실 이다
왕십리라는것은 무학대사
께서 땅을 판게 아니랍니다
역사를 1도 모르는 인간같
으니ㅉㅉㅉ 무학대사께서
조선의 기틀이자 왕의궁의
자리를 찾아헤메일적에 무
학대사께 경보라는 스님께
서 왕십리에서 10리쯤 더
가게되면 그곳에 궁궐의터
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보라
해서 가보게된 곳이 현재의
경복궁 자라입니다 아둔한
인간아 본인이 말한 경보스
님은 후삼국시대 도선대사
의 제자이면서 고려 태조왕
건과 사제지간이며 고려태
조는 유발제자였음 어디서
허무맹랑한 댓글을 다는지
모르겠으나 거짓의 역사는
최소한 알리지말자 쪽팔리
게 어디서 듣보잡 상상의나
래를펴서 너만의 역사관의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네
?? 너의 댓글에 Re댓글쓰
는 나보다도 역사관념없는
것같은데 신라시대가 왜나
왔는지 모르겠으나 개똥같
은 소리는 양심이 있다면은
하지마라 어디가서 개망신
당하기전에~!!!!!
무학대사는 경남합천삼가에서 1327년9월20 태어났다고 조선실록에 자초로 전해진다 아버지 박인일과 어머니 고성채사이에 태어났다한다 지금의 대병면대지리 산2
태조의 각별함이
부도를 살아있을때만들었다
무학은 계룡시로 수도를 정했으나 정도전과 하륜같은 이들이 한양을 계속 밀어서 결국 계룡시 천도는 취소. 한양을 수도로 삼은 조선은 5백년간 자국민 노예 체제로 국가운영하다가 일본에 강간당했지.
이런 식민사학에 찌든 버ru지ㅋㅋ
@@michaelsung297느금
무학오심도차 어머그시대
예언 와ㅡ대단하다
무학이 길 잘못들어설거다
그때 예언이 서상에나~
어 근거없이 사람들이믿었던거다 !!!
단종은 태조의 5세가 아니라, 5대죠.
그래서
정도전은 어떻개 되었을까요?
무학대사 경남 합천군 용주면 에서. 탄생 했다 지금 합천땜 출구 하 300 m 지점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
감사합니다
옛집 찾아가보는 것이 파동상 도움이 될 것이기에 가보려 합니다.
여러 전생지와 흔적의 역사를 찾아다녀 봅니다
!~^♡^~
龍珠面은 풍수학상 용이 여의주를 물고 登天하는 형상임
제가 알기론 법명은 무학 속명은 박자초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법호: 무학 법명: 자초 로 무학자초라 합니다
500년뒤 도선ㅡ비기
예언 대단하다
무학쏘주 생각난다! 터를 잘못 잡았어...
이자춘 영흥 묫자리쓰면
왕이난다(나옹ㆍ무학)
차천로(오산설림)기록에
200년후에 써졌을까를확인해야하는데ㆍ안되는것은
좀 ??
교수님?
우리가아는최고스님은
서산대산ㅣㅁ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승은 원효죠.
이영상? 올렸던거 아닌가요? 아니구나 풀영상이구나 ㅜㅜ 죄송
무학대사 말대로 경북궁 동쪽방향으로 보고. 짓지않아서 조선은 500년 밖에 못간다고 무학대사가 예언했다고 교수님 역사 들은것 같은데
정감록
연복사는 이성계의해 완료
개성서 조선초까지있었다
권근이 1000자한문으로
쓴 비석 철도회관에있다
일본이가뎌가려고
철도로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왔다ㆍ
무학대사는 합천땜 근처에 는 (무학대사)에 대한전설이 많은 합천출신입니다
용주면
아닙니다.조선시대 무학은 삼가현 출신으로 남명 조식선생도 삼가현 동향출신인데 삼가현이 지금은 합천군 삼가면이 되었습니다.
부정은 부정을 만들지요 역사적 사실이 책에 없다고 하는데요 많는 역사 책들을 수거 해서 불태웠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ㅎㅎ
역사는 아카시크 레코딩 하는 존재들의 수행구룹에서 직접 보고 듣고 논의들하고 있는 정보가 비교적 좋았던 것 같습니다ㅎㅎ
직접 과거 현재 미래를 보는 의식의눈을 가진
에텔에너지요 오딕에너지가 충만한 선배님들과 살아갈 때에
들은것은
먼 우주의 시간대는 노란빛의 우주세계에서도 살았었고
비교적 최근인 7,500만년 전에는 물고기좌에서 함께 수행하던 교우였던 2,000여년 전의 예수의 이름을 잠시 갖았던
그 존재와 함께 수행을 했던 존재라고 했고
예수라는 이름을 썼던 그 의식의 존재와 함께 이곳 지구에 까지 오게 되었고 거의 언제나 한시대에서 살아가는 관계였던 것을 압니다.
그후에 알게된 것이지만 세레요한도 그때 함께온 것이라고 저로서는 확신합니다.
지공이 예수고
나옹이 세례요한
무학이 요한으로서
부끄럽지만 여러 세대마다 저 요한이 가장 차원이 뒤떨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의 시대에서도 이 세 의식은 함께 살아가며 각각의 맡은분야에서
온 인류들을 위하여 열씸히 일들을해나가고 있습니다.
오사구 강태공 현장
존 요한 춘추 왕건 무학 주문모 최제우를 거쳐
현 생애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도중인 것입니다.
입정 통일장 혼원일기 신의의식 견성계합은 말할것도 없는 것이며
확철대오를 거치고 신인이요 진인이요 하던 의식을 지나고
무색계과정을 지나
만세반석의식이요 열반의식에라도 되어 안정이 된 후에라도
되어야만 겨우 작은 말을 할 수라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가 진실로 진실로의식으로 설할 때이고
싯다르타 께서 부처를 이루기 직전 에서의 의식차원으로서 설하시던 때이기에
섣불리 설익은 의식으로 떠들어대서는 안되는 것이라 봅니다.
예전의 무학이 우리민족 수행법인 풍류도의 12만수 가운데 무위의춤인 무와 음률의 흐름인 악으로서 수행을 하다
확연히 열린 의식에서 진정 무색계인 무로 들어가는 시절이 되어 무학으로 이름을 고치고 수행을 하다
공부를 더 진행을 해나가야 하지만
임무수행의 지시가 내려오면 중단하고 그 맡은 바를 수행하느라 이성계의 일을 도와 다시 새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도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다른 존재들도 마찬가지지만
예수와 세례요한과 요한 이 세의식은 언제나 피눈물과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서
충격적인 자극을 주어가며 인류들의 빠른 진화를 위해서 잠잘 시간도 없이 열씸히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것입니다.
그 깊은 비밀의 철저한 임무적인 수행함을 잘 모르기에
험악한 모습으로 죽어가곤 한다고 하지만
진정한 우리의 친부모님들은
목숨걸고
몸팔아가면서도 자녀들을 부양해나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찌 계부 계모가 그리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녀가 핍박을 주어도 말없이
행해나가는 것이 친 부모인 것입니다.
처절하고 비굴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며 잠못자고 계획하고 이행해나가는 것입니다.
저 무학보다 나옹인 세례요한은 차원을 달리하는 어마어마한 존재이고
지공인 예수는 더욱 차원을 달리하는 어마어마한 존재인 것이 사실인 것이며
현장법사가 인도에 도착 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 못하고 기다리던 스승이 예수요 지공의 전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식과 존 요한의식은 언제나 형제와 같이 비밀리 가고 있는 것입니다.
보실 분만 보시도록
님의 글 뒤에 올립니다!~^♡^~
그 넘의 체통과 명분 때문에 시진핑의 말처럼 우리는 500년간 중국의 속국으로 살다가 1910년에 종주국이 일본으로 바뀌면서 근대화가 되었다.
드라마로 역사를 배우는 건 어리석은 짓임을 알고 갑니다 그리고 고려말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의 위선과 그놈의 체통 명분으로 나라가 결국 일제에 짓밣힌 거고 지금의 유도회라는 단체들은 국민들한테 석고대죄해도 모자랍니다 실용을 버리고 명분에 집착한
결과는 나라 패망의 길일 뿐 아니라
국민들만 고통에 빠트릴뿐입니다
청소보단 천자문등 학을 때엿다 ,가 더 좋앗을걸 청소 ?
법호: 무학 법명: 자초
변계랑 비문에
나옹제자로 있을때서로알력이 있어서 무학이 떠났다
김정희 대단하다
저배우 이름 뭐였죠
무학대사
박병호
무학이 길을가는데 어떤노인이 쟁기질을 하다 이 무학 같이 멍청 한 소 야 하니까 무 학이 노인께 가서 물어보니 한양은 학 성국인데 학성국 날게에 도읍을 옮겨서 비상 하기가 힘들다 했다한다
😂😂😂나도 봤는데
무서워 내려올 때
철길낭떠러지네
자료가 없다고 하시는데요 옛날에는 배워서 글을 쓰시는 분들이
얼마나 있어나요
스님
무학오심도차
김정희가 고증했다(함초령비,북한산비)
오라가보니 신라순수비다
승가사에서 보여서가봤다
그래서 무학오심도차는
잘 못 구전된것이다
예언까지는 아니다ㆍ
무학대사는 실존 인물 인가요
감사합니다.
왕십리전설도 뒤에보니
역사적사실이아니다
승가에 책은 조선에서 불태워졌다 회암사에 돌들은 왕궁에서 만들어졌다 가서보면아껏이다
태조 평소 화를 안낸다
자초무학를불러 개인적으로 개인이야기를했을거다
성석린이 산세물길통해길지인지 뒷산약해서 땅이기울어지고~
정총도풍수논리로 반대
이때, 정도전이 골짜기라
종묘사직 쓰기 별루다ㆍ
정치가 잘잘못은 사람에게있다ㆍ 이귀절이 풍수로부터벗어나는 계기인데
600년이지나도 풍수가
아직도 언급이 되는것이
벗어나야한다ㆍ
네 그래서 사람의 참의식을 찾고
그 의식으로서 모든 것을 밝게 알고 이치원리인 물리가 열린 의식으로서
잘 살펴 다스려나가는 것이 생활화 되어야 하며
이러한 이치원리를 가르치는 것이 우년기 부터 구전으로 입력이 되어져야 합니다.
ㅎㅎ
서울구경 놀이 등등 같이요 ㅎㅎ
나도 어려워서 못하는 청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