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을 일차적이고 근원적인 것으로 보는 연기설의 입장에서는 자연세계를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인식되는 것으로 봅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대상과 함께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자아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인식되는 것으로 봅니다. 십이입처의 외입처와 내입처는 바로 이러한 연기설의 입장에서 본 세계와 자아의 모습인 것입니다. 따라서 연기설의 입장에서는 세계와 자아의 본질을 외부에 존재하는 자연대상에서 구하지 않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중아함 과 같은 곳에서는 “존재의 실상을 찾기 위해서는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 산란하게 하지 말고 안에 머물도록 하라” 고 당부하십니다. 불교의 선정은 이렇게 존재의 실상을 찾기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연기설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는 나에 의해 인식되고 있는 현상일 뿐입니다. 나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즉 나에게 원천적으로 인식이 될 수 없는 대상의 존재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생각되지도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근본불교에서 ``一切(sabba)``와 ``一切法(sabba-dhamma)``, 그리고 ``一切有(sabba-atthita)``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一切``는 모든 ``있음``의 근원으로서 十二入處를 의미한다. 그리고 ``有(atthita)``는 ``있음``의 실상에 무지한 중생들이 實有하는 존재를 지칭하는 개념으로서,붓다는 이 개념을``있음``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붓다는 우리가 명사로 표현하는 존재를 ``有(atthita)`` 대신에 ``法(dharma)``이라고 부르는데, ``法(dharma)``은 연기법이라고 하는 질서정연한 과정 속에 나타나는 ``있음``을 지칭하는 동사적 의미의 명사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아비달마불교에서는``一切``를``一切法``과 동일시하고, ``一切法``을 ``一切有``로 해석함으로써,붓다는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 즉``一切有``를 인식함으로써 붓다가 되었다는 입장을 갖게 된다. 그 결과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을 緣起法이 아니라``一切有``로 보는 오류를 저지른다. 이러한 오류는 근본불교의 철학체계를 본질적으로 파괴하여 변질시켰다. 근본불교의 철학체계는 연기설이다. 근본불교철학은``十二入處``라는``一切``에서``一切法``이 연기하는 구조를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비달마불교에서 이러한 연기의 구조는 왜곡되고, 연기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들, 즉 十二入處,十八界,五蘊은 일체의 實有하는 존재들의 세 가지 범주체계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불교 이해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十二入處는 內六入處와 外六入處로 구성되어있다. 내부에 존재하는 자아가 보고,듣는 인지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망념이 內六入處이고,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이 형태나 소리 등을 통해 인지된다고 생각하는 망념이 外六入處이며,이들을 十二入處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十二入處는 무지한 중생들이 일으킨 망념이며, 이러한 망념이 중생들의 괴로운 세계의 근원이 된다는 의미에서 붓다는 十二入處를``一切``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망념의 상태에서 지각할 때, 외부의 대상을 분별하는 六識이 발생하며, 十二入處라는 망상 위에 이들 六識이 발생하여 나타난 의식구조가 十八界이다. 그리고 十八界라는 의식구조에서 대상을 경험하는 것을``觸(phassa)``이라고 부르며, 그 경험을 통해 受, 想, 思등이 연기한다. 중생들이 자아라고 집착하고 있는 五蘊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十二入處에서 연기한 것이다. 붓다는 중생들이 자아라고 집착하고 있는 五蘊이 연기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十二入處와 十八界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와 같이``一切``와``一切法``,``一切有``의 의미를 명확히 구분할 때, 붓다가 사용한 개념들의 의미가 분명해지고, 그 개념들에 의해 교시된 붓다의 철학,즉 연기설은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이중표교수 님의 강의는 진짜 어마어마한 강의네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인식하고 있는 동안 시작도 끝도없는 부처님 법이 펼쳐지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하나. 나의 실상은 오로지 법 하나. 연기법.
연극같은 세상.
대본없는 세상.
덧없느 세상.
생각장난
말장난.
소꿉장닌질.
그냥 그렇다.
불교공부는 첨인데
어려운듯 하면서도
엄청 구미가 댕기니 숨쉬듯 계속 듣고파요.
이교수님 강의속엔
마력이 있나봐요.
광주에서 오프라인으로 이런 강의
들을곳 있나요?
나에 의해 인식되고 있는 세상… 육근수호를 통해 유에서 벗어나면 생사 해탈이 옵니다…_()_
우리의 마음을 일차적이고 근원적인 것으로 보는 연기설의 입장에서는 자연세계를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인식되는 것으로 봅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대상과 함께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자아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인식되는 것으로 봅니다. 십이입처의 외입처와 내입처는 바로 이러한 연기설의 입장에서 본 세계와 자아의 모습인 것입니다. 따라서 연기설의 입장에서는 세계와 자아의 본질을 외부에 존재하는 자연대상에서 구하지 않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중아함 과 같은 곳에서는 “존재의 실상을 찾기 위해서는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 산란하게 하지 말고 안에 머물도록 하라” 고 당부하십니다. 불교의 선정은 이렇게 존재의 실상을 찾기 위해 행하는 것입니다.
연기설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는 나에 의해 인식되고 있는 현상일 뿐입니다. 나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즉 나에게 원천적으로 인식이 될 수 없는 대상의 존재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생각되지도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근본불교에서 ``一切(sabba)``와 ``一切法(sabba-dhamma)``, 그리고
``一切有(sabba-atthita)``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一切``는 모든 ``있음``의 근원으로서 十二入處를 의미한다.
그리고 ``有(atthita)``는 ``있음``의 실상에 무지한 중생들이 實有하는 존재를
지칭하는 개념으로서,붓다는 이 개념을``있음``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붓다는 우리가 명사로 표현하는 존재를 ``有(atthita)`` 대신에 ``法(dharma)``이라고
부르는데, ``法(dharma)``은 연기법이라고 하는 질서정연한 과정 속에 나타나는
``있음``을 지칭하는 동사적 의미의 명사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아비달마불교에서는``一切``를``一切法``과 동일시하고,
``一切法``을 ``一切有``로 해석함으로써,붓다는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
즉``一切有``를 인식함으로써 붓다가 되었다는 입장을 갖게 된다.
그 결과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을 緣起法이 아니라``一切有``로 보는 오류를 저지른다.
이러한 오류는 근본불교의 철학체계를 본질적으로 파괴하여 변질시켰다.
근본불교의 철학체계는 연기설이다.
근본불교철학은``十二入處``라는``一切``에서``一切法``이 연기하는 구조를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비달마불교에서 이러한 연기의 구조는 왜곡되고,
연기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개념들,
즉 十二入處,十八界,五蘊은 일체의 實有하는 존재들의 세 가지 범주체계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불교 이해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十二入處는 內六入處와 外六入處로 구성되어있다.
내부에 존재하는 자아가 보고,듣는 인지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망념이 內六入處이고,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이 형태나 소리 등을 통해 인지된다고
생각하는 망념이 外六入處이며,이들을 十二入處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十二入處는 무지한 중생들이 일으킨 망념이며,
이러한 망념이 중생들의 괴로운 세계의 근원이 된다는 의미에서
붓다는 十二入處를``一切``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망념의 상태에서 지각할 때, 외부의 대상을 분별하는 六識이 발생하며,
十二入處라는 망상 위에 이들 六識이 발생하여 나타난 의식구조가 十八界이다.
그리고 十八界라는 의식구조에서 대상을 경험하는 것을``觸(phassa)``이라고 부르며,
그 경험을 통해 受, 想, 思등이 연기한다.
중생들이 자아라고 집착하고 있는 五蘊은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十二入處에서 연기한 것이다.
붓다는 중생들이 자아라고 집착하고 있는 五蘊이 연기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十二入處와 十八界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와 같이``一切``와``一切法``,``一切有``의 의미를 명확히 구분할 때,
붓다가 사용한 개념들의 의미가 분명해지고,
그 개념들에 의해 교시된 붓다의 철학,즉 연기설은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사두사두사두🙏🙏🙏
아주 중요한.. 십이처와 오온의 발생을 요약해 주셧네요
감사 감사합니다
ㅂ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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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