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을 넘어서 - 니사르가다따 마하라지 책을 추천드립니다. "나의 본질은 의식도 아니고 의식을 초월해 있는, 의식을 아는자 입니다. 몸이 생겨나면 의식이 발현되고 그러면 저는 의식의 특성인 아는 능력으로 인해 내가 '있다(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의식이 형상과 동일시 되면 이 존재의 느낌 즉, '있다'의 느낌이 '내가 있다(존재한다)'는 느낌으로 되게 됩니다. 몸이 스러지면 의식은 발현을 멈추고 잠재적인 형태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참나)가 '있다(존재한다)'는 걸 모르게 됩니다.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은 몸이자 의식이지 저는 아닙니다. 저는 의식을 초월해 있습니다. 의식조차 저의 본질이 아닙니다."
컴퓨터를 켜면 가끔 보여서 영상을 몇 번 본적 있는데 써니즈님은 세월이 가도 변화가 없군요. 전에 유지 크리슈나무르티 영상도 올린 적 있죠? 앞으로 갔는가하면 뒤로 가고, 좌로 갔는가하면 우로 가고 있고 솟았는가 하면 꺼지고 있고 그러고 있군요. 모르죠 구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조회수로 먹고 살기 위해서 이런 영상을 올리고 있는 것인지도 혹은 진리도 찾고 있고, 먹고 사는 것도 하고 두 가지 목적 때문에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것인지도.. 그런데 만약 진리를 찾고 있는 거라면 지금처럼 해서는 수천년이 지난다고 해도 별 다른 소득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영상에서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한 '의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런 건 알아봤자 진리로 향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천년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고 해서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식에서 파생된 것이 마음이고 마음에서 파생된 것이 생각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보통의 사람들이 말하는 정신, 마음, 영혼, 의식 이 모든 것은 단지 모두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생각 외에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본질(의식)에서 파생된 생각(비본질)이 본질을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거울 속에 비친 상이 거울 밖의 인물의 보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리는 우리의 몸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이 아니고 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인지되고 인식되는 내용물이기 때문인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인지되는 내용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까지나 최종적인 인지자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눈은 모든 것을 보지만 눈이 그 자신인 눈을 볼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고 손바닥은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지만 손바닥이 그 자신인 손바닥을 감각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겁니다. 주체는 객체를 인식할 수 있지만 주체가 주체를 인식할 수는 없는 겁니다. 중심은 중심의 외부를 알 수 있지만 중심이 중심을 알 수는 없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인식되고 인지되는 모든 내용물들은 우리 자신이 아닌 겁니다. 우리 자신은 이러한 내용물들을 인지하고 있는 인지의 주체인 겁니다. 이러한 인지의 주체는 생각도 아니고 몸도 아닙니다. 이러한 인지의 주체는 물질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고, 인지자이며, 이스와라이고, 부처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영혼이라고 부르며 주시자, 리쉬라고도 부릅니다. 이것은 주체이기에 발견할 수 없고, 찾을 수 없으며 인지할수 없고,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이것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인식 불가능한 이것을 찾는 것이 구도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인지되지 않으며, 인식할 수 없다고 해서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그 작용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인지자는 너무나 가까이 붙어 있기에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찾는 모든 행위를 멈출 때, 인식하려고 하고, 궁금해하고, 인지하려는 모든 행위가 멈출 때 다시 말해서 의식에 의해서 파생된 마음이 그 작용을 멈출 때, 의식은 스스로 그 자신이 "의식"이라는 사실을 홀연히 드러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고자 움직이는 한 그것은 마치 연못의 물이 흐려진 것처럼 그 바닥(의식)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영원히.. 추가해서 덧붙이자면 모든 방편은 여기에 쓴 글 내용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방편 수행이란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멈추고자해서 고안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멈춘다는 것은 마음에게는 곧 죽음입니다. 죽어야 새로 태어납니다. 이것이 예수가 말한 거듭남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이 정말로 진리를 찾고 싶다면 방편 수행을 하면 됩니다. 이것 이외 지구상의 모든 이야기 그리고 모든 것들은 진리를 찾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의식의 유희에 불과한 것입니다.
물컹한듯한 의식을 이토록 잘 설명할수 있다니…. 고마워요❤정말 최고에요. 새해에 더욱 더 잘 되세요👍🙏
감사합니다.
잘들었습니다.
의식
감사합니다 오늘도
사랑합니다 💜 축복합니다 💜 평온하세요 💜
육신에서 뜨겨나가 밝게 빛나는. 터널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다 다시 후진해 육체로 돌아와 정신을 차롓다. 나의 경험이다
수술시 마취에서 깰때 그런 현상이 나타나죠
감사합니다 써니즈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의식을 넘어서 - 니사르가다따 마하라지 책을 추천드립니다.
"나의 본질은 의식도 아니고 의식을 초월해 있는, 의식을 아는자 입니다. 몸이 생겨나면 의식이 발현되고 그러면 저는 의식의 특성인 아는 능력으로 인해 내가 '있다(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의식이 형상과 동일시 되면 이 존재의 느낌 즉, '있다'의 느낌이 '내가 있다(존재한다)'는 느낌으로 되게 됩니다.
몸이 스러지면 의식은 발현을 멈추고 잠재적인 형태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제(참나)가 '있다(존재한다)'는 걸 모르게 됩니다.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 처럼 보이는 것은 몸이자 의식이지 저는 아닙니다. 저는 의식을 초월해 있습니다. 의식조차 저의 본질이 아닙니다."
모르겠어요.ㅜㅜ 그래서 의식은 누가 만들었냐고요
안녕하세요
의식은 현상이방대하게 동시연결되어 있는것이랍니다
나의 의지의 방대한의식이 나와상관없는 의지와동시에 연결되어있음을 알때 현존을 맛보게된답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써니즈님 ~
의식하거나 느끼기위해서. 최소한의 에너지와 기억이라는 것이 필요할것이다ᆢ 그런 의미에서 생물학적 죽음의 상태 이후에는 의식도 없어졌다고 할수 있으리라ᆢ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써니즈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써니즈님
마음에 쏘옥 들어오네요~~^^
물질도 무한하다.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감사합니다 ~
몸도 영원한 것이다라는 말씀도 있읍니다 참고하셔요
❤
컴퓨터를 켜면 가끔 보여서 영상을 몇 번 본적 있는데 써니즈님은 세월이 가도 변화가 없군요. 전에 유지 크리슈나무르티 영상도 올린 적 있죠? 앞으로 갔는가하면 뒤로 가고, 좌로 갔는가하면 우로 가고 있고 솟았는가 하면 꺼지고 있고 그러고 있군요. 모르죠 구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조회수로 먹고 살기 위해서 이런 영상을 올리고 있는 것인지도 혹은 진리도 찾고 있고, 먹고 사는 것도 하고 두 가지 목적 때문에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것인지도.. 그런데 만약 진리를 찾고 있는 거라면 지금처럼 해서는 수천년이 지난다고 해도 별 다른 소득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영상에서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한 '의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런 건 알아봤자 진리로 향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천년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고 해서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식에서 파생된 것이 마음이고 마음에서 파생된 것이 생각인데 솔직하게 말해서 보통의 사람들이 말하는 정신, 마음, 영혼, 의식 이 모든 것은 단지 모두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생각 외에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본질(의식)에서 파생된 생각(비본질)이 본질을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거울 속에 비친 상이 거울 밖의 인물의 보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우리는 우리의 몸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각이 아니고 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지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인지되고 인식되는 내용물이기 때문인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에게 인지되는 내용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까지나 최종적인 인지자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눈은 모든 것을 보지만 눈이 그 자신인 눈을 볼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고 손바닥은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지만 손바닥이 그 자신인 손바닥을 감각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겁니다. 주체는 객체를 인식할 수 있지만 주체가 주체를 인식할 수는 없는 겁니다. 중심은 중심의 외부를 알 수 있지만 중심이 중심을 알 수는 없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인식되고 인지되는 모든 내용물들은 우리 자신이 아닌 겁니다. 우리 자신은 이러한 내용물들을 인지하고 있는 인지의 주체인 겁니다. 이러한 인지의 주체는 생각도 아니고 몸도 아닙니다. 이러한 인지의 주체는 물질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고, 인지자이며, 이스와라이고, 부처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영혼이라고 부르며 주시자, 리쉬라고도 부릅니다.
이것은 주체이기에 발견할 수 없고, 찾을 수 없으며 인지할수 없고,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하는 모든 행위가 바로 이것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인식 불가능한 이것을 찾는 것이 구도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인지되지 않으며, 인식할 수 없다고 해서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그 작용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인지자는 너무나 가까이 붙어 있기에 알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찾는 모든 행위를 멈출 때, 인식하려고 하고, 궁금해하고, 인지하려는 모든 행위가 멈출 때 다시 말해서 의식에 의해서 파생된 마음이 그 작용을 멈출 때, 의식은 스스로 그 자신이 "의식"이라는 사실을 홀연히 드러내게 될 겁니다. 그러나 스스로 무엇인가를 찾고자 움직이는 한 그것은 마치 연못의 물이 흐려진 것처럼 그 바닥(의식)은 보이지 않을 겁니다. 영원히..
추가해서 덧붙이자면 모든 방편은 여기에 쓴 글 내용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즉.. 방편 수행이란 무엇인가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멈추고자해서 고안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멈춘다는 것은 마음에게는 곧 죽음입니다. 죽어야 새로 태어납니다. 이것이 예수가 말한 거듭남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이 정말로 진리를 찾고 싶다면 방편 수행을 하면 됩니다. 이것 이외 지구상의 모든 이야기 그리고 모든 것들은 진리를 찾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의식의 유희에 불과한 것입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
방편 수행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까?@@sunneedsaudio
침묵은 보는 자를 보는 것
알아차리는 자를 알아차리는 것
4.17
채사장 이런것도 하는구나
죽은자 말업다고 멋대로 만들지 말라 죽은자으예가아니다 예수도 부활 못햇다 그런일이있었는지가 궁금해야지 교회기본 신으존제를 먼저찻으라 복음서도 으문투성 예수는 아버지가버린자식으로 들통낫다 그런대 방언이 말이안되는소리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