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제 교수의 전방후원분 강좌 1강 |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들이 밝히는 임나일본부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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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5 ต.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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ความคิดเห็น • 67

  • @02loveu_G
    @02loveu_G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천손민족 고대사 연구에 감사 드립니다 !👏👏💦

  • @정재성-c1l
    @정재성-c1l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역사에 대해서 바라보는 시각을 고칠것이 있는데 저당시의 민족 국가관을 현대의 한국과 일본으로 구분해서 보아서는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의 민족국가를 구분하는 것은 7세기후반~8세기가 넘어서야 가능한 사안입니다. 저당시에 왜라는 세력은 일본에 건너간 백제계 정치세력이라고 해석해야 하고 그당시만 해도 백제와 왜에 대해서는 딱히 별개라고 구분하기에 애매한 유기적인 존재들입니다.

  • @TheKimjinman
    @TheKimjinman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균형있는 연구가 돋보입니다

    • @rootwide
      @rootwide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후삼국 고려때도 나주지역은 호족세력이 강했지요.
      신라의 통일시기를 지나 거슬러올라 몇백년전이니.
      충분히 백제 정부에서 견제하려 했을듯 싶어요

  • @SeaCat-g5m
    @SeaCat-g5m 19 วันที่ผ่านมา

    국내 장고형 고분강의들은 대개가 일본 장고형 고분의 기원과 발전 양상을 설명하지 않으니 정보가 없는 몇몇은 장고형 고분의 기원이 전남이라는 뇌피셜을 내세우는데 장고분은 3세기 중반부터 일본에서 나타나 퍼져가는 무덤 형태로 시기적으로 전남쪽 장고분은 일본에서 전파되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든 점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 @심민찬-s4p
    @심민찬-s4p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전방후원분은 뒷쪽은 도혈 즉 복숭아 모양의 둥근형태 명당혈 이곳에는 피장자가 모셔지는 자리, 앞쪽은 방형의 명당혈로 배향혈이다. 셋팅된 혈이다.

  • @jongsulee434
    @jongsulee434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백제가 왜(예족일파)의 호족과 관료, 군사를 동원시킬 정도면 왜 자체는 백제처럼 부여계이지 않을까요. 통역도 필요없이 왕래가 잦았다면 언어도 서로 통했을 것이며 왜(예족 일파)가 그 이전에 한반도의 한 세력이었다가 점점 세력이 약해져 큐슈쪽으로 넘어가 세력을 다시 키운게 아닐까 생각듭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 @cijjeehh2302
    @cijjeehh2302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그냥 반일감정이네 뭐네 그냥 사실을 알려주세요.

  • @MrTimuruu
    @MrTimuruu 9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장군도 고분을 만드나요 보통 호족이 아닐거 같은데 고분 크기가 상당히 큰거 같은데

  • @문기강-v2i
    @문기강-v2i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우리역사 탐사라는 유투버에서 교토의 신라계 하타 씨의 일본의 네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전방후원분, 헤비츠카(=사총=뱀무덤)의 현장답사 사진과 함께 방송했습니다. 이 무덤은 봉분의 흙이 다 없어지고 돌만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설명하신대로라면 영산강 유역에 백제 왕궁이 있어야 할텐데 백제의 본강역은 중국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지 않습니까? 신라인이 일본 교토에 전방후원분을 만들었다는 것은 신라의 묘제 중의 하나였다는 의미이겠죠.

  • @이상돈-o4x
    @이상돈-o4x 10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시기를 측정한게 맞는지 모르겠네!!!강단사학자라는 자들은 한국관련시기는 팍팍내리기를 내리기좋아해서!!!

  • @TheKimjinman
    @TheKimjinman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임나일본부 는 마산항쯤에 설치된 일본사람들의 왜관 정도면 됩니다
    철제제품을 무역하기위해서 일본인들이 사는 왜성을 쌓은 것
    조선시대도 허용된 왜성 몇군데 있음

  • @이승구-v5z
    @이승구-v5z 10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삼국사기,삼국유사,일본서기등,자주가야나신라에침범하는것봐서는남해안지역에상당기간왜의세력있었음은부인할수없겠지요,국뽕을빼고객관적으로봅시다

    • @timekim7194
      @timekim7194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백제 용병들이죠. 당시 일본은 대한해협 횡단 가능한 배도 못만들던 수준입니다. 당시 일본은 백제 마한의 영향권입니다.

    • @kunufelix
      @kunufelix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timekim7194 평양 한복판에 한사군 낙랑 유적과 유물이 어마어마하게 나와도 부정하는 국수주의자들...도래인들이 자기 조상이 중국인이라고 해도 한국인이라고 우기는 거 보면 중국 동북공정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든다..

  • @실크로드다시보기
    @실크로드다시보기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6

    당시 일본인은 백제인 이죠

    • @KoreanMonkey-IQ.60-80
      @KoreanMonkey-IQ.60-80 10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반대겠지요 백제는 일본 속국이였어요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0

    ♥호남지역의 전방후원분은 비류백제 유적♥ 비류백제의 호남지역 이동은 분구묘(미리 흙이나 돌로써 봉분과 같은 분구를 조성하고 그 위에 매장시설을 만드는 무덤양식) 등 호남지역의 4세기 중반이후 고고학적 물질문화 변화로도 증명됩니다(호남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비류백제 왕의 왕관)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주서(周書) 백제전에 『후한서 동이열전 부여 왕인 위구태가 백제를 세웠다』고 했으니, ♥후한서 동이열전의 부여가 비류백제이고, 마한은 온조백제다.♥ 진서(晉書) 백제에 비류백제(부여) 의라왕(우복)이 모용씨에게 밀려, 4세기 중순 영산강으로 이동했고 일본열도로 진출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1) 『주서 이역열전 백제』에는 구태란 사람이 처음으로 대방에 나라(백제)를 세웠다는 내용이 있고, 『북사 동이열전 백제』에는 동명의 후손 구태가 대방의 옛땅에 백제를 건국했는데 공손도가 딸을 구태에게 시집보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후한서 동이열전과 정사삼국지 위서동이전』 부여에는
      졸본부여 동명왕이 부여선조로 기록되어 있고, 공손도가 (일족의) 딸를 부여왕 (위)구태에게 시집보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따라서 ♥ 『후한서 동이열전과 정사삼국지 위서동이전』 부여가 『주서 이역열전과 북사 동이열전 』 백제니 『후한서 동이열전과 정사삼국지 위서동이전』 부여는 비류백제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2) 『정사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진서 동이열전』 부여에 부여국 가운데에 옛 예성이 있는데 예맥의 성이라 했고, 『한서 무제기』에서 예(동예=예맥)의 임금(예군, 濊君) 남여가 항복하여 한무제가 창해군을 설치했다고 했는데 후한서 동이열전에 수년 후에 (창해군을) 곧 폐지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7

    ■개로왕은 송서에 여경으로 부여씨-> 문주왕은 남제서에 모도로 모용씨 -> 삼근왕은 모용씨로 추정 --> 동성왕은 삼국사기에 모대로 모용씨 -> 무령왕 부터는 비류백제의 우씨로 추정됨(우태의 우씨) (후한서, 삼국지, 진서의 부여 위구태는 주서의 백제시조로 부여는 비류백제임)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무령왕 재위 시기가 AD 501~523년이고, 무령왕의 아들이 성왕 (재위 523∼554) 인데, ♥북제(557∼581)의 역사서인 주서(周書)에♥ 백제 시조가 후한시대 부여왕 위구태로 기록되어 있으니,일본열도를 다스리던 백제 좌현왕 곤지계열인 무령왕은 비류백제계로 추정됩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하북성 창주시에 있었던 후한시대 부여는 비류백제로, 4세기 중반 호남 영산강 지역으로 진출한 후 일본열도로 건너가서 일본열도를 다스렸습니다 ■일본열도를 다스리던 개로왕 시기 백제 담로 왕을 송서에 백제 좌현왕 여곤(곤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 @수구리suquri
      @수구리suquri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그리고 모용씨의 전연, 후연, 북연, 남연은 백제의 속국으로 보입니다 ※주) 위서(북위서)에 나오는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 내용 임 「북연의 풍씨가 국운이 다하자,그 유민이 (백제로 부터 )도망하여 고구려로 간 후에 고구려가 강성해 졌다」

    • @gn.l3762
      @gn.l3762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요서백제는 후연 남연과의 경쟁에서 승리하여 대륙백제가 된것입니다. 이로부터 모용씨는 멸망했습니다.

    • @j3459
      @j3459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모용씨는 멸망한적 없어요
      성을 김씨로 바꾸고 살죠

  • @풍백-k1l
    @풍백-k1l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익산 이남의 호남지방은 신라가 삼국통일 할때까진 왜인들의 세력지(임라4현) 였음. 삼국사기에도 7세기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백제지역으로 전혀 나오지 않은 이유가 뭐겠어요? 국뽕으로 유적.유물을 왜곡해서는 안되며, 역사는 역사적 사실로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귀여운여고생
      @귀여운여고생 13 วันที่ผ่านมา

      내 생각에는 전라남도 지역에 왜가 있었던것 같음 (그 증거로 영산강 일대 에서만 발견되는 전방후원분과 일본인 유전자가 가장 많은 지역, 일본 규슈에서만 발견되는 cis-ab형이 전남 해안가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백촌강 전투때 백제를 도우려 일본열도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 먼거리를 어떻게 와서 백제를 도울수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왜가 전남에 있다면 설명이 가능해짐 당시 왜의 중심지인 나주 일대에서 전북까지 지원하러 왔다고 하면 궁금증이 풀림 그리고 백제부흥 운동이 실패하고 나서 신라가 전라도 지역까지 장악하자 백제와 전남에 있던 왜인들이 일본열도로 도망가서 일본을 세운거지
      삼국시대는 많은 것을 생략하여 만든거임

  • @구진황
    @구진황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전방후원분?전방후언분?

    • @우리역사바로알기
      @우리역사바로알기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네, 수정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우리역사바로알기
      @우리역사바로알기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전방후원분이 오타가 있습니다.
      수정하도록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Kenny-fh3om
    @Kenny-fh3om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소설 일본서기 보고 또 다른 소설 그만 쓰세요..영산강 전방후원묘에 군사나 관료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습니다...😅😅😅

  • @탱자탱자-p8z
    @탱자탱자-p8z 10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일본서기에 명백하게 주석을ㅈ달아서 임나일본부가 영사관 정도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더만 무슨 논쟁인지.
    일본이나 한국 사학자들 둘다 웃겨

    • @kunufelix
      @kunufelix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뭔소리야...일본서기에서는 야마토가 원래 자기 소유였던 전남 지역을 백제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다른 사료와의 교차 검증으로 역사적 사실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일본서기에서는 자기 영토였다고 기록함. 이건 백제가 요서 지역을 지배했다는 억지와도 똑같은 태도. 백제에 유리한 기록 외에는 교차검증은 하지도 않고 고고학 조사는 무시하는..

  • @다물주0111셔블
    @다물주0111셔블 11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임나일본부는 임나일본총독부이다. 일본조선총독부는 일본에 있지 않고 조선에 있다. 마찬가지로 임나일본부는 일본에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