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공신 책봉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있어 해당 부분은 영상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TIME LINE📌 00:00 오프닝🙌 01:42 오늘의 과몰입 대상, '선조' 02:31 '선조'가 즉위한 시기의 조선 03:55 '선조'의 혈통 콤플렉스 05:19 '선조'의 정치 전략 (Feat. 사림)✏ 07:33 운수 좋은 '선조'⁉ 08:34 🔵'선조'의 딜레마#1🔴 11:09 '선조'와 '임진왜란', 그리고 '이순신'⚔ 13:50 '임진왜란', 그 후의 이야기 (Feat. 광해군)👑 14:30 🔵'선조'의 딜레마#2🔴 15:50 '광해군'을 미치게 한 '선조'의 선택⁉ 16:57 'RUN조'에 대한 변명? 18:30 '선조'가 시~원하게 내린 결정! 19:07 마무리👋 달리 오리지널 역사 콘텐츠, 조선 역사 속 인물에 과몰입하라!
아니... 선조가 한 쓰레기짓이 얼마나 많은데 하... 뭔가 변호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선조라는 피고인을 변호하려고 유리한 사실만 어떻게든 좋은쪽으로 포장만 한거같아요. 역사로 배운 악행은 사실상 광해군 파트밖에 안나오고 나머지는 싹다 빠졌네요. 죽었다 깨어나도 선조는 쓰레기입니다. 방계에 환경이 어쩌니해도 애당초에 왕이 되면 안되는 사람이었죠. 선조는 얘기만 들어도 화가나네요.
이씨왕실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고 얼마전에 현금으로 강남 건물을 살 만큼 부자임 효령대군 후손 종가는 민간인 상대로 몇십억 사기치고도 처벌 피함 선조 인조는 이씨조선 중시조임 그 세력이 아직도 존속함 다 지은 시민 아파트 부시네마네 난리친 김포 왕릉뷰 아파트 주인공이 바로 인조 아버지 정원군임
어릴적에는 시대순으로 왕의 업적, 잘못, 사건 등을 배우면서 외웠던 것 같은데요. 설명해주시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 사람인 왕에 대해서도 다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네요. 또 선조가 임진왜란 발발후 도망쳤던 사건이 결론적으로는 일본군들의 혼란을 야기해 전쟁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의견도 색달랐습니다! 너무 유익한 방송이네요~ 오래오래 방송해주세여😊
@@ESSAY_J 그 외교란거 사르후전투부터 어긋나기 시작했고, 인조의 외교정책은 광해군말기랑 크게 다를바 없는데? 인조의 기본외교는 후금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정묘호란 후의 조약은 외교적타협의 결과임. 하지만 그 외교적 타협을 깨고 외교가 아닌 강압과 복종을 강요한건 청나라임. 병자호란을 그저 외교적 실패라고만 생각하는건 정말 일차원적인 생각이지.
@@ESSAY_J 사람들이 하도 광해군을 빨아주느라 청나라 침공을 외교적으로 막는다느니 중립외교를 했어야 한다느니 하지만 이건 마치 영국이 히틀러를 외교로 제어해서 전쟁을 막을수 있었다는 생각과 같음. 광해군은 이미 대규모 정예병력을 파견해서 소모해버렸다는 큰 실책을 저질렀고 이에따라 후금과의 전쟁을 공격적인 토벌이라기보다, 수성적인 방어전으로 전환하게된 시기였을 뿐 딱히 외교적으로 배명을 하자는 스탠드가 아니였음. 이점에서 설사 광해가 왕이였다고 해도 후금은 조선을 쳤을꺼임. 정묘호란때 후금이 원하는건 소극적 적대관계라는 애매한 위치가 아닌 확실한 우위관계였고, 병자호란때 원한건 우위관계를 넘어 복종을 원했음. 광해군은 중립이라기보다 전쟁은 피하면서 후금을 적대하는거였지 후금과 조공관계를 맺자는게 아니였고 그건 인조도 마찬가지였기에 후금이 조선을 치는건 필연적이였음.
역시나 선조는 런조... 광해군한테는 그렇게 하면 안됐는데...ㅠㅠ 광해군이 책봉됐다면 조선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거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갔던게 그나마 왜군에게 혼돈을 줘서 이득?이였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고가서 유익했습니다 다음엔 어떤 왕을 주제로 조선사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네요! 너무 재밌어요😊
개인적으로 선조는 컴플렉스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개혁안을 추진하거나(성과는 그닥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종계변무 해결 등의 성과를 내고, 전후 처리도 꽤나 괜찮게 했지만, 자신의 컴플렉스를 이기지 못해 주변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신하들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그로 인해 여러 신하들이 피해를 입었죠.(대표적으로 이순신) 치세의 명군 소리를 들을 정도의 위인은 못 되는 사람이지만, 이순신에 대한 박대를 이유로 지나치게 폄하되는 점이 어느 정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선조에 대한 율곡 이이의 평가를 인용해봅니다.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움은 많으시나 덕을 쓰심이 넓지 못하고 좋은 말 듣기를 매우 좋아하나 많은 의심을 버리지 못하십니다."
@@하트호야-d5h 1.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런 평가가 의미가 있습니다. 왕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때에 저러한 비판이 있었고, 그럼에도 이이가 목숨을 유지한 것은 그러한 비판이 당시에도 합당하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2. 당시 왕권이 조선 초만큼 강하지도 못했고, 여러 정치적 풍화를 겪으며 신하의 발언권이 보장된 당시 분위기를 고려하면 저러한 평가는 다른 때에 비해 비교적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선왕이던 명종 때 남명 조식의 사직상소인 단성소에 "자전(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과부에 지나지 않고, 주상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외로운 아드님, 고아이실 뿐이니..."라는 당대에는 모욕에 가까운 거침없는 언사가 등장함에도 명종은 개인적인 불편함을 표시할 뿐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관도 불편함을 드러낸 왕을 비판하고 조식을 칭찬했으니 저러한 비판이 어느 정도 용인되던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당시 서인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이이의 위치나 성향을 생각하면 저런 구절의 의미를 지나치게 폄하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호감 탑 1은 인조입니다 ㅋㅋ 인조는 장점이 없어. 그래도 선조는 아리까리하지만 족보가 꼬인 자신의 처지때문인지 성격이 예민해서 선조가 인간적으로 보기엔 쓰레기처럼 보여도 인재를 보는 선견지명은 누구보다 뛰어났음. 이리저리 싸움 붙여서 경쟁시키고 공을세우면 공신책봉도 하면서 희망? 여튼 노력이란걸 하게만듬. 그러면서 선조는 평소엔 가까이서 구경하면서 전쟁땐 더 멀리서 구경.ㅋㅋ 캐릭터가 쫌 재밌긴함.
런조는 런이라도 잘 쳤지 거기다 평시상황에서는 능력이 꽤 좋은 왕이었음... 근데 인조는 런도 못 치고 질투심도 많고 폭군 연산군 보다도 더 최악의 왕으로 선정된것은 문제가 있는 왕임. 연산군은 폭정을 했긴했지만 재위 12년 중에 10년은 그래도 국사를 잘 돌보긴 했음 근데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됐다면 조선의 역사도 바뀌었겠지
시대상으로 보면 선조의 도망은 잘 한거겠지만..... 선조의 도망을 잘한거라고 보기엔 그러면 이승만 박사의 미국 망명도 잘한것일까.. 란 생각이 드는데.....둘다 국가를 책임지는 국가원수인데.... 이렇게 국민들.. 백성들을 버리고 가는 게 맞는걸지는 조금 생각해봐야할 문제...
저당시에 동서 통틀어 광해군 상황에 페모살제 같은 행동 안하던 권력자들이 있나ㅋㅋ솔직히 페모살제로 욕하는건 말도 안됨 저당시 서인들이야 자기들 정권 잡고 싶어서 명분으로 내세운거지 현대사에서도 자기 권력 라이벌 생기면 독살 사형 언론등으로 죽이는 세상인데 저당시에는 광해군의 저 선택이 일반적인거지 왕이 되면 일단 자기 형제부터 정리하는게 당시 모든 왕들이 했던건데 그래야 나라 시스템이 안정되지
@@jaewonlee4928 못지 않은게 아니라 그냥 인조랑 선조랑 비교하는건 선조에게 실례임. 선조가 직접 파격승진시킨 인재 대표가 이순신이랑 권율인것처럼 자기가 의심병 걸리지 않는 이상은 능력 잘 보고 밀어주기도 잘 함. 그리고 의병장들이 역모 연루되었을 때도 전공 확실하고 결백해 보인다고 하면 불문에 부쳐버리기도 하기도 했고. 근데 인조는 반역 진압한 장군들을 도리어 한직으로 밀어버림.
선조의 몽진은 이해되는 부분이나 공신책복이나 그렇게 많은 인재를 가지고 활용 못한 것은 축구에서 보면 예를 들어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홍명보 등이 동시대에 뛰는 선수들이라고 가정하면 이 선수들을 가지고 겨우 월드컵 16강에만 들고 자기가 잘했다고 하는 것이랑 똑같이 들리네요. 여하튼 비호감 조선 왕에서 탑 3에는 위치합니다. 이건 불변할. 것
선조 도망한 것은 적에게 허를 찌른거다. 선조의 썩은 인성은 광해군은 망쳤지만, 그래도 이순신을 초고속 승진시켜서 어째거나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능양군은 대체 왜 반정을 일으켜서 왕을 했는지 의심이 간다. 청에 항복한 까닭에 소현세자가 잡혀가서 선진문물을 배워왔는데.. 정적으로 여기고 죽인 것만으로도 비호감 1위다.
당시왕이 세종대왕이나 정조였더라도 튀는게 옳은 선택아닌가? 본인감정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거같군요.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왕이 잡히면 그나라 문닫는거지뭐. 더 중요한점은 선조가 사람은 진짜 기가 막히게 쓴다는거죠. 나라 꼬라지를 저렇게 만들고 왕권히 강하고 신하들을 숙청알수 있다. 엄청난 정치기술자 아닌가? 좋은 인간은 아니지만, 나라가 망하는거 보다야 뭐...
선조는 역시나 런조.... 광해군이 책봉됐다면 조선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거같아요ㅠㅠ 중립외교잘해서 청나라랑 그렇게 척지지 않았을거같은 개인적인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떠난게 왜군에게 혼란을 줘서 우리에게 이득?이였다는걸 새롭게 알고갑니다 다음엔 어떤 왕을 주제로 조선사를 풀어낼지 궁금하네요! 다음시리즈 얼른 내주세여!!😊
처음에 선조에 대한 평가는 당대의 시선으로 보자는 말에 평소 저의 생각과 같았기에 아주 기뻤으나 이후 선조수정실록,난중일기,징비록 같은 후대에 지어지거나 개인적 의견이 강조된 사료를 인용하시기에 실망을 했네요;; 저는 실록만 보았기에 실록에 기록된 내용과 다른 점을 지적하고 싶네요 1.원균은 이순신이 못하는 부산공격을 자신은 할수있다고 주장하고 통제사가 된거 아닙니다 자꾸 원균이 전라병사 일때 선조에게 올린 장계를 오역하시는데, 그 내용은 육군의 공격이 별성과가 없으니 수군이 빠른 경선으로 가덕도 등지에서 게릴라전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2.칠천량에서 대패했다는 기록들은 후대에 지어진 내용입니다 당시에 탈출한 선전관,군관들과 칠천량 이후 남해를 탐문했던 체찰사 이덕형의 보고등을 종합해보면,많은 수의 적선이 덮쳐서 방어를 하다가 배설같은 장군들이 도망을 가기 시작하면서 방어진이 무너졌고 이후 육지로 상륙하여 항전하다가 원균,이억기,최호 등이 전사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수들과 병사,격군들은 도망을 쳐서 죽은 이가 별로 없다고 했구요 그때 도망친 대부분의 장수들이 이후 이순신의 밑에 들어가서 큰공을 세우고 있기에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단, 이순신에게 판옥선을 전달하고 탈영햇다가 잡혀서 참수당한 배설 장군은 죄목이 주장 원균을 보호하지 않고 도망간죄와 탈영죄 였습니다 3.도원수 권율이 부산공격을 주저하는 원균에게 직접 곤장을 친게 아니라 원균의 무관에게 친겁니다 그렇게 단호한 명령임을 강조한것인데, 권율은 이전에 이순신의 무관에게도 2번이나 곤장을 친적이 있습니다 4.조정에서 다대포를 출발하여 서생포로 가는 가등청정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이순신이 거부해서 통제사에서 급히 해임하고 체포했는데요, 때마침 1주일전에 경상도수군 통제사 겸 경상우수사에 임명했던 원균을 삼도수군 통제사로 다시 임명한 겁니다 5.통제사에 임명된 원균은 삼도수사들과 회의후 부산공격이 어렵다고 몇번이나 장계를 보냅니다 만약 수군이 공격할려면은 육군과 동시공격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도 햇구요 하지만 도원수 권율,비변사,체찰사 등이 더이상 육군의 정병이 어렵기에 수군의 단독 진격을 독촉했다고 나옵니다 그렇게 체찰사의 종사관이 한산도에 들어와서 독촉하여 원균이 어거지로 출진할때의 함선규모가 크고작은배 100척이라 했습니다 실록 어디에도 원균이 예전에는 부산공격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제와서 딴말하냐고 꾸짖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원균과 삼도수사들은 지금 부산으로 가면 많은 병사들이 죽을텐데 라며 걱정하는 내용만 있을뿐이죠 오죽했으면 선조가 출진을 거부하는 수사들 이름을 별도의 서책에 항명으로 따로 기록해 놓으라 명했을까요 6.이순신 신격화와 짜맞추기식 내용만 보다보니 역사가 어긋나는 겁니다 실록에서 이순신은 통제사에서 해임되기전에 몇번이나 선조가 커버해 줬습니다 사후선 3척이 소실되고 병사들이 많이 죽은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하여 권율과 이순신을 파직해야 한다는 양사의 상소가 1주일간 계속되었지만 선조는 무마했구요, 이순신의 부하가 남원에서 징집을 하다가 그곳 병방을 죽인일로 백성들 원망이 자자하다는 상소도 올라왔고,남해를 순시하던 광해군이 몇번이나 사람을 보내서 이순신에게 찾아오라 했지만 이순신이 바쁘다고 거절했으며,원균이 공훈명단에 12세 남자아이를 올린거 가지고 원균의 아들일꺼라 모함하다가 체찰사 이덕형에게 걸린거, 부산 왜군영에 방화하여 큰 피해를 준 사건을 자신의 부하가 한거라 거짓보고 한거 등등 나중에 얼마나 선조가 열받았으면 이순신이 가등청정의 목을 가져오더라도 용서할수 없다고 했을까요 7.선조가 쪽팔림을 무릎쓰고 이순신에게 통제사를 다시 맡아달라며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냈다 하시는데,그런 편지는 대부분의 신하들에게도 그렇게 내렸습니다 원균이 충청병사와 전라병사에 임명되었을때도 선조는 그런 격려 편지와 함께 양마,전마 같은 말도 같이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8.원균이 무식한 장수이다 라는 내용의 사책을 믿는 분들이 많으시던데,원균은 무과 2등 합격자 이고 이순신은 14등 합격자 입니다 또한 당시 무과시험에는 병법을 다루는 병과도 있었습니다 이순신,원균 둘다 여진족 토벌의 공이 있었구요, 차이점은 원균은 순차적으로 승진하여 임진왜란 발발 3개월전에 경상우수사가 된 반면, 이순신은 이산해,유성룡 등의 천거로 불차채용하여 임진왜란 발생 1년전에 전라좌수사로 벼락승진 한거죠 원균은 이순신보다 5살 많고 9년 선배인데,파직 경험도 있는 이순신이 먼저 정3품 수사에 임명된거니 엄청난 혜택인거죠 9.임진왜란이 발생하고 경상우수사 원균은 활용가능한 판옥선 4척과 기타함선 10여척만 가지고 거제현령등과 함께 왜군들을 격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과부적이라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는데,이순신이 왕명을 핑계로 출진을 주저하니 부장 정운이 이순신을 베려고까지 했습니다 이후 왕명이 내려오고 이순신의 함대가 거제도에서 원균과 만난때가 왜란발생 20일후 였죠 이순신의 출진이 늦어진 이유가 수령은 관할지를 임의로 벗어나선 안된다는 규정때문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통제사가된 이순신은 멋대로 내륙의 수령들을 해안가로 이동시켰다가 도원수 권율에게 경고를 먹기도 하죠
아나운서분 진행을 하시는 분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냥 답정너 식으로 강의를 걸러듣는 태도로 영상을 꾸려나가면 이 영상의 의도는 뭔가요? 역사를 이해하고 뭔가 배우려는게 아니라 지금의 기준으로 딱잘라 잘잘못을 따질거면 배우는 의미도 없고 강사분 초청한 의미도 없습니다. 태도를 좀 고치셔야 할듯 합니다. 이런식으로 영상 만들거면 그냥 강사분 혼자 이야기하는것 보다 못한것같네요.
*이순신의 공신 책봉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있어 해당 부분은 영상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TIME LINE📌
00:00 오프닝🙌
01:42 오늘의 과몰입 대상, '선조'
02:31 '선조'가 즉위한 시기의 조선
03:55 '선조'의 혈통 콤플렉스
05:19 '선조'의 정치 전략 (Feat. 사림)✏
07:33 운수 좋은 '선조'⁉
08:34 🔵'선조'의 딜레마#1🔴
11:09 '선조'와 '임진왜란', 그리고 '이순신'⚔
13:50 '임진왜란', 그 후의 이야기 (Feat. 광해군)👑
14:30 🔵'선조'의 딜레마#2🔴
15:50 '광해군'을 미치게 한 '선조'의 선택⁉
16:57 'RUN조'에 대한 변명?
18:30 '선조'가 시~원하게 내린 결정!
19:07 마무리👋
달리 오리지널 역사 콘텐츠,
조선 역사 속 인물에 과몰입하라!
일을 함에 있어 중요도 파악 10점
일을 추진함에 있어 역량 -5점
일이 끝난후 포상에대한 생각 -1억
비.호.감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 선조가 인재가 많었던 것도 이름 남기기 좋은 파이 임진왜란 이 있어서 아니까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다음편도 기다려지네요 :)
다음 인조 부탁드립니다 🙏
아니... 선조가 한 쓰레기짓이 얼마나 많은데 하... 뭔가 변호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선조라는 피고인을 변호하려고 유리한 사실만 어떻게든 좋은쪽으로 포장만 한거같아요. 역사로 배운 악행은 사실상 광해군 파트밖에 안나오고 나머지는 싹다 빠졌네요. 죽었다 깨어나도 선조는 쓰레기입니다. 방계에 환경이 어쩌니해도 애당초에 왕이 되면 안되는 사람이었죠. 선조는 얘기만 들어도 화가나네요.
진짜 너무 공감되내요. 아직도 선조&인조를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는게 소름 돕내요. 아니 이 세상에 의병이 있는 나라도 거의 없는데, 그 의병장을 고문하고 죽이는 유일한 왕! 선조!!!
이씨왕실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고 얼마전에 현금으로 강남 건물을 살 만큼 부자임 효령대군 후손 종가는 민간인 상대로 몇십억 사기치고도 처벌 피함 선조 인조는 이씨조선 중시조임 그 세력이 아직도 존속함 다 지은 시민 아파트 부시네마네 난리친 김포 왕릉뷰 아파트 주인공이 바로 인조 아버지 정원군임
어릴적에는 시대순으로 왕의 업적, 잘못, 사건 등을 배우면서 외웠던 것 같은데요. 설명해주시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 사람인 왕에 대해서도 다면적으로 생각해 보게 되네요. 또 선조가 임진왜란 발발후 도망쳤던 사건이 결론적으로는 일본군들의 혼란을 야기해 전쟁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의견도 색달랐습니다! 너무 유익한 방송이네요~ 오래오래 방송해주세여😊
이해쏙쏙되는설명..👍
사실 진짜 비호김1순위가 되어야할 왕은 선조(런조)가 아니라 인조(런도 못한조)가 아닐까...
ㅇㄱㄹㅇ
"싸울 수 있을 때는 싸우고 싸울 수 없을 때는 지키고 지킬 수 없을 때는 도망가고 도망갈 수 없을 때는 죽는다"
전근대 사회에서 런이라도 잘해서 자기 왕조 지킨거임. 원균 억빠한건 트롤링이지만
@@cushing5602 인조는 사람 맞아요?
둘다 쓰뤡기야 ㅋㅋㅋ
인조는 3번 토낀 인간인데
(이괄,정묘,병자)
이 인간은 어떨까요?
중종반정과 달리
이 인간은 지가 왕이 되겠다고 마음도 먹은 인간인데
외교력도 군주의 능력 중 하나라 봤을때
그리고 토낀 전적이 선조보다 많은걸 봤을때
얘가 선조보다 더 욕먹어야 되지 싶습니다만
절대군주제에 범부가 왕이되면 무슨꼴이 일어나는지 알려주는 훌륭한 반면교사라고 생각합니다
@@Mushroomhead0707 애초에 전쟁방지 예방했으면 복구 문제 없었을건데?
그러라고 외교하는거 아님?
@@ESSAY_J 그 외교란거 사르후전투부터 어긋나기 시작했고, 인조의 외교정책은 광해군말기랑 크게 다를바 없는데? 인조의 기본외교는 후금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정묘호란 후의 조약은 외교적타협의 결과임. 하지만 그 외교적 타협을 깨고 외교가 아닌 강압과 복종을 강요한건 청나라임. 병자호란을 그저 외교적 실패라고만 생각하는건 정말 일차원적인 생각이지.
@@ESSAY_J 사람들이 하도 광해군을 빨아주느라 청나라 침공을 외교적으로 막는다느니 중립외교를 했어야 한다느니 하지만 이건 마치 영국이 히틀러를 외교로 제어해서 전쟁을 막을수 있었다는 생각과 같음. 광해군은 이미 대규모 정예병력을 파견해서 소모해버렸다는 큰 실책을 저질렀고 이에따라 후금과의 전쟁을 공격적인 토벌이라기보다, 수성적인 방어전으로 전환하게된 시기였을 뿐 딱히 외교적으로 배명을 하자는 스탠드가 아니였음.
이점에서 설사 광해가 왕이였다고 해도 후금은 조선을 쳤을꺼임. 정묘호란때 후금이 원하는건 소극적 적대관계라는 애매한 위치가 아닌 확실한 우위관계였고, 병자호란때 원한건 우위관계를 넘어 복종을 원했음. 광해군은 중립이라기보다 전쟁은 피하면서 후금을 적대하는거였지 후금과 조공관계를 맺자는게 아니였고 그건 인조도 마찬가지였기에 후금이 조선을 치는건 필연적이였음.
@@Mushroomhead0707 허이구 인조의 기본외교가 후금을 자극 안하는 거였다고? 정묘호란 이후에 뭔 타협을 했음 대체? 홍타이지한테 빌미를 안 주는게 먼저였는데 애초에 인조반정 이후에 친명배금 짓거리를 안했다고? 사르후 이후에 이미 대세 결판난거 다 아는데?
역시나 선조는 런조... 광해군한테는 그렇게 하면 안됐는데...ㅠㅠ 광해군이 책봉됐다면 조선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거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갔던게 그나마 왜군에게 혼돈을 줘서 이득?이였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고가서 유익했습니다 다음엔 어떤 왕을 주제로 조선사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하네요! 너무 재밌어요😊
런조보다 능양군이 더 싫음 으..
개인적으로 선조는 컴플렉스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개혁안을 추진하거나(성과는 그닥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종계변무 해결 등의 성과를 내고, 전후 처리도 꽤나 괜찮게 했지만, 자신의 컴플렉스를 이기지 못해 주변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신하들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그로 인해 여러 신하들이 피해를 입었죠.(대표적으로 이순신) 치세의 명군 소리를 들을 정도의 위인은 못 되는 사람이지만, 이순신에 대한 박대를 이유로 지나치게 폄하되는 점이 어느 정도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선조에 대한 율곡 이이의 평가를 인용해봅니다.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움은 많으시나 덕을 쓰심이 넓지 못하고 좋은 말 듣기를 매우 좋아하나 많은 의심을 버리지 못하십니다."
장난하냐? 왕이 멍청하다고 해서 멍청하다고 말 할수 있나? 저런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트호야-d5h
1.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저런 평가가 의미가 있습니다. 왕의 권위가 절대적이던 때에 저러한 비판이 있었고, 그럼에도 이이가 목숨을 유지한 것은 그러한 비판이 당시에도 합당하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2. 당시 왕권이 조선 초만큼 강하지도 못했고, 여러 정치적 풍화를 겪으며 신하의 발언권이 보장된 당시 분위기를 고려하면 저러한 평가는 다른 때에 비해 비교적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선왕이던 명종 때 남명 조식의 사직상소인 단성소에 "자전(문정왕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과부에 지나지 않고, 주상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외로운 아드님, 고아이실 뿐이니..."라는 당대에는 모욕에 가까운 거침없는 언사가 등장함에도 명종은 개인적인 불편함을 표시할 뿐 어떠한 처벌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관도 불편함을 드러낸 왕을 비판하고 조식을 칭찬했으니 저러한 비판이 어느 정도 용인되던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당시 서인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이이의 위치나 성향을 생각하면 저런 구절의 의미를 지나치게 폄하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트호야-d5h할 수 있는데요? 연산군 때 못 봤음? 죽을걸 알면서도 왕 앞에서 비판을 했던게 조선시대 신하들임 성리학 학자는 책에 쓰여진대로 하지 않으면 급발진 하던 사람들이 많았음 왕 앞에서도 대놓고 비판함 물론 죽을걸 각오하고 했겠지만
전체적인 의견은 동의하지만 마지막 구절은 진짜 욕한건 맞습니다. 아무리 조선초기 왕권이 약하다 하더라도 대놓고 미사여구 안붙이고 욕박으면 유배형입니다
@@하트호야-d5h대놓고 왕 욕한단다 장난하는건 너지 ㅋㅋㅋ
재원쌤쏙쏙강의재미져요~~
재원쌤 나오시는건 다 챙겨봐야지
김재원 교수님 관상만 보고 날카롭고 예민할거같았는데
유머도 많으시고 재밌게 풀어주셔서 다른 채널에 나온것도 꼭 챙겨봐요 파이팅
인조도 다뤄주실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선조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질까 봤지만 역시는 역시로 인조랑 선조는 끔찍하게 싫다
ㅋㅋㅋㅋ요즘 존잼
계속 해주라…제발 ㅜㅜㅜ
선조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요 재밌네여 ㅋㅋㅋ
7:11 이 장면 대박입니다. 재원선생님 심정이 이해갑니다. ㅋ
7:48 아나운서님의 갠적인 심정 이해갑니다.
여기 역사맛집이군요 ㅋㅋㅋㅋㅋ
아귀찜의 미더덕 처럼 아주 긴장감있네요 ㅋ
항상 보이는것만 볼 수는 없죠~~재미와 생각을 더하는 프로그램이네요♡
김재원쌤 팬입니다 항상 잘보고있습니다.고맙습니다
비호감 1위는 인조아니었나?
선주, 인조는 부관참시해야 한다.
걍 국민이 투표하는 나라에서 왕정을 이해 할 수가 없음. 범인들이 어떻게 1인자의 삶을 이해하겠어요.
머야 지 주위사람만 챙기는건 현재 대한민국 왕하고 비슷한데?
진짜
지금 대똥하는짓이랑 똑같은조선조 임금들
빙고
지 살라고 주위사람한테 죽어라 다물어라 하는 사람보다야 ㅋㅋㅋ
@@katein777ㅋㅋㅋㅋ ㄹㅇ 거스르면 죽음뿐
자기 주변사람 7명째 자살'당하게' 해버린 그양반보단 낫지
언제 또 하나요
선조가 방계의 방계라서 더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불호하면 역시 인조가 탑이죠
사람들이 참 이긴 역사만 선별적으로 좋아해
비호감 탑 1은 인조입니다 ㅋㅋ 인조는 장점이 없어.
그래도 선조는 아리까리하지만
족보가 꼬인 자신의 처지때문인지 성격이 예민해서 선조가 인간적으로 보기엔 쓰레기처럼 보여도 인재를 보는 선견지명은 누구보다 뛰어났음.
이리저리 싸움 붙여서 경쟁시키고 공을세우면 공신책봉도 하면서 희망? 여튼 노력이란걸 하게만듬.
그러면서 선조는 평소엔 가까이서 구경하면서 전쟁땐 더 멀리서 구경.ㅋㅋ 캐릭터가 쫌 재밌긴함.
우리 재원쌤이당
당시 선조가 내린 명령은 현해탄에 배를 정박하고 있다가 카토가 넘어오면 잡으라는 거고 원균이 곤장맞고 현해탄에서 한나절 대기하다가 도저히 못견뎌서 철수하다가 지친 병력이 아무것도 못하고 전멸해 버린 것
광해군만 인정 잘해줬으면 역사 진짜 많이 바뀌었을듯
런조는 런이라도 잘 쳤지 거기다 평시상황에서는 능력이 꽤 좋은 왕이었음... 근데 인조는 런도 못 치고 질투심도 많고 폭군 연산군 보다도 더 최악의 왕으로 선정된것은 문제가 있는 왕임. 연산군은 폭정을 했긴했지만 재위 12년 중에 10년은 그래도 국사를 잘 돌보긴 했음 근데 인조는...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됐다면 조선의 역사도 바뀌었겠지
효종이 조선후기 최고의 왕인데 소현세자핑계대냐 ㅋㅋ
시대상으로 보면 선조의 도망은 잘 한거겠지만..... 선조의 도망을 잘한거라고 보기엔 그러면 이승만 박사의 미국 망명도 잘한것일까.. 란 생각이 드는데.....둘다 국가를 책임지는 국가원수인데.... 이렇게 국민들.. 백성들을 버리고 가는 게 맞는걸지는 조금 생각해봐야할 문제...
아니 우리나라는 왕이나 윗대가리들이 제일 먼저 튐...... 국민이 나라를 지킴 대한민국 국민들👍🏻짱
선조가 도망쳤다고 하지만...
한양에 남았으면 지킬 병력은 있었나?
그때 한양에서 선조가 잡혀죽었으면
일제36년이 아니라 일제 360년이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다가 다 죽었겠지
ㅇㄱㄹㅇ인게 지금의 4대문 안밖만 서울이었던 당시의 도성을 지키는데만 최소 3만은 있었어야 했는데, 그만한 병력도 당연히 없었을 뿐더러, 이미 신립이 탄금대에서 해먹은 병력만 해도 근 7천에 달했음
이승만도 안심하라고 녹음기 틀어놓고 도망쳤잖아요!!!
간다효 런승만 편 참조
저당시에 동서 통틀어 광해군 상황에 페모살제 같은 행동 안하던 권력자들이 있나ㅋㅋ솔직히 페모살제로 욕하는건 말도 안됨 저당시 서인들이야 자기들 정권 잡고 싶어서 명분으로 내세운거지 현대사에서도 자기 권력 라이벌 생기면 독살 사형 언론등으로 죽이는 세상인데 저당시에는 광해군의 저 선택이 일반적인거지 왕이 되면 일단 자기 형제부터 정리하는게 당시 모든 왕들이 했던건데 그래야 나라 시스템이 안정되지
난 인조가 젤 싫다.....😢
인조도 못지 않죠
@@jaewonlee4928 못지 않은게 아니라 그냥 인조랑 선조랑 비교하는건 선조에게 실례임.
선조가 직접 파격승진시킨 인재 대표가 이순신이랑 권율인것처럼 자기가 의심병 걸리지 않는 이상은 능력 잘 보고 밀어주기도 잘 함.
그리고 의병장들이 역모 연루되었을 때도 전공 확실하고 결백해 보인다고 하면 불문에 부쳐버리기도 하기도 했고.
근데 인조는 반역 진압한 장군들을 도리어 한직으로 밀어버림.
잘봤습니다 선조 임금은 겁이많은임금인게 분명하내요
선조는 인간성은 옹졸한 인간이 맞는데
그럼에도 무능력한 왕은 아니였음
최악은 세조임 개싫음
세조도 좀 거시기 하지만 연산군 광해군 인조 고종 순조 순종에 비해서는 양반
@@Aqljaegkmskag 광해군 >>> 수양대군입니다.
거상이란 말에 움찔😅
세계사를 봐도 왕의 도망은 일반적이지. 런 안하고 체급 안되는데 버티다 망한 왕조가 더 많지.
선조의 몽진은 이해되는 부분이나 공신책복이나 그렇게 많은 인재를 가지고 활용 못한 것은 축구에서 보면 예를 들어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홍명보 등이 동시대에 뛰는 선수들이라고 가정하면 이 선수들을 가지고 겨우 월드컵 16강에만 들고 자기가 잘했다고 하는 것이랑 똑같이 들리네요. 여하튼 비호감 조선 왕에서 탑 3에는 위치합니다. 이건 불변할. 것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무능은 인조
그래도 선조는 도망이라도 갔지만
인조는ᆢ
런조와 런도못한조
인조 (X) -> 능양군 (O)
선조(X)=> 개씹ㅅㅐㄲㅣ(O)
인조(X)=> 몽진 신기록자(O)
고종(X)=> 졸렬한 징징이 ㅅㅐㄲㅣ(O)
지금까지도 조선시대를 살고있는 정치판.
잘 배웠습니다^~^
선조정도면 영조랑 비슷한거같은데
머리가 좋고
아들 미친놈만들고
인재등용 잘하고
신하갈라치기잘하고
김재원쌤땜에 시작해봅니다
선조 도망한 것은 적에게 허를 찌른거다.
선조의 썩은 인성은 광해군은 망쳤지만, 그래도 이순신을 초고속 승진시켜서 어째거나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끌었다.
능양군은 대체 왜 반정을 일으켜서 왕을 했는지 의심이 간다.
청에 항복한 까닭에 소현세자가 잡혀가서 선진문물을 배워왔는데.. 정적으로 여기고 죽인 것만으로도 비호감 1위다.
ㅋㅋㅋ 이러니까 사극이 사람을 망치지. 소현세자는 병으로 죽었을 뿐더러 인조는 당장 자기 형제가 광해의 미친짓으로 죽었는데 왜 반정을 일으켰는지 모르겠다 이러네
음모론에만 빠지지 말고 역사에 관심이 있으면 역사서를 좀 읽어라
믿고 보는 김재원!
인조하고 고종이 있는데 선조가 1위라고?;;;;
ㄹㅇㅋㅋ
저도 더 비호감😊
런조왕릉 별점 1.1의 위엄 ㅋㅋㅋ
왕이 말타고 싸울수도 없고 도망가는건
당연한건데 의주에서 한반도 버리고
요동가겠다고 떼쓰는건 진짜 못봐주겠다ㅋ
고구려,백제왕들과 달라서 무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선조는 후계자
정하지도 않은 상태라서 도망치는
일밖에 못함.
왜군이 왕 잡는다고 눈에 불 킨 것이 뻔히 보이는데 굳이 한양에서 농성을 벌일 필요는 없음 따라서 북쪽으로 도망칠 수는 있음
근데 이건 지 살려고 도망친거지 나라를 위해서 도망친게 아님 명나라로 튀려고 한 역사기록이 남아 있음ㅋㅋㅋ
서로 주고받고 하는게 너무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조선이란 나라가 비호감임
ㄹㅇ ㅋㅋ
그냥 비호감 ㅋ 저나라는 사상부터가 잘못된나라라 제대로된 인물 손에 꼽을만치 없음
마치 지금 북한에 누가 인물이다 이런소리 못하는것처럼
유교텔레반
세조의 자폭(=계유정난)으로 인해 재야에 숨어있던 고려 유신들의 후학들에게 먹힌 나라...
그런데 그 이미지를 본인들이 처 만들어 놓고
이제와서 싫어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못배운 양반이라 말하는 작태가
가관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변명은 누가 못할까?
삼치 문약 조선의 변명이 옳다면 이완용같은 매국노도 우국충정의 충신이지
😂😂😂😂😂😂😂😂😂😂😂😂😂😂😂
ㅆㅂ 그 조선이 지금 한국인데 뭔..ㄷㄷ
조선족들이냐?
진짜 인재만 따지면 역대급인데,,, 그런 인재들을 두고 나라를 ㅉㅉ
영상 제목 뭐임 ㅋㅋ
런조는 런도못친조에 비함 양반이지
게임 광고가 맘에안들어요
몽진 이미지가 나빠진 건 사실 근현대사 그분 때문이라 뭐 선조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임
실제로는 그 분은 서울에 남아서 유엔군 올때까지 지휘하길 원했는데 측근들이 끌고가다시피 해서 내려간거지
조선임금 최초 서출 임금..
좋은 군주도 아니고 ,
좋은 아비도 아니었다.
비호감 1200.
인조 , 선조는
귀쌰대기 마렵지
선조때문에 이순신의 이름이 알려졌다
인조가 진짜 런조임
선조런 잘못됐다는 사람들은 정강의 변과 토목보의 변 부터 보고 와야 함
하성군-광해군-능양군 역대급 암군이 연속으로 셋이나 나왔던 라인 조선시대 최대 암흑기
광해군?
광해군은 명군입니다.
정철이 ?
비호감 1위는 인조 이고, 선조는 2위
선조를 강의하는데 도요토미 ???
당시왕이 세종대왕이나 정조였더라도 튀는게 옳은 선택아닌가?
본인감정과 역사적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거같군요.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왕이 잡히면 그나라 문닫는거지뭐.
더 중요한점은 선조가 사람은 진짜 기가 막히게 쓴다는거죠.
나라 꼬라지를 저렇게 만들고 왕권히 강하고 신하들을 숙청알수 있다.
엄청난 정치기술자 아닌가? 좋은 인간은 아니지만, 나라가 망하는거 보다야 뭐...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 백제에게 전쟁에서 사망했지만
왕위계승자가 있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선조는 후계자를 정하지 않아서
사망하면 위험한 상태
선조는 역시나 런조.... 광해군이 책봉됐다면 조선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거같아요ㅠㅠ 중립외교잘해서 청나라랑 그렇게 척지지 않았을거같은 개인적인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떠난게 왜군에게 혼란을 줘서 우리에게 이득?이였다는걸 새롭게 알고갑니다 다음엔 어떤 왕을 주제로 조선사를 풀어낼지 궁금하네요! 다음시리즈 얼른 내주세여!!😊
광해군은 책봉도 책봉인데 차라리 의인왕후가 장수했으면... 하는게 있죠
처음에 선조에 대한 평가는 당대의 시선으로 보자는 말에 평소 저의 생각과 같았기에 아주 기뻤으나
이후 선조수정실록,난중일기,징비록 같은 후대에 지어지거나 개인적 의견이 강조된 사료를 인용하시기에 실망을 했네요;;
저는 실록만 보았기에 실록에 기록된 내용과 다른 점을 지적하고 싶네요
1.원균은 이순신이 못하는 부산공격을 자신은 할수있다고 주장하고 통제사가 된거 아닙니다
자꾸 원균이 전라병사 일때 선조에게 올린 장계를 오역하시는데, 그 내용은 육군의 공격이 별성과가 없으니 수군이 빠른 경선으로 가덕도 등지에서 게릴라전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2.칠천량에서 대패했다는 기록들은 후대에 지어진 내용입니다
당시에 탈출한 선전관,군관들과 칠천량 이후 남해를 탐문했던 체찰사 이덕형의 보고등을 종합해보면,많은 수의 적선이 덮쳐서 방어를 하다가 배설같은 장군들이 도망을 가기 시작하면서
방어진이 무너졌고 이후 육지로 상륙하여 항전하다가 원균,이억기,최호 등이 전사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수들과 병사,격군들은 도망을 쳐서 죽은 이가 별로 없다고 했구요
그때 도망친 대부분의 장수들이 이후 이순신의 밑에 들어가서 큰공을 세우고 있기에 처벌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단, 이순신에게 판옥선을 전달하고 탈영햇다가 잡혀서 참수당한 배설 장군은 죄목이 주장 원균을 보호하지 않고 도망간죄와 탈영죄 였습니다
3.도원수 권율이 부산공격을 주저하는 원균에게 직접 곤장을 친게 아니라 원균의 무관에게 친겁니다
그렇게 단호한 명령임을 강조한것인데, 권율은 이전에 이순신의 무관에게도 2번이나 곤장을 친적이 있습니다
4.조정에서 다대포를 출발하여 서생포로 가는 가등청정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이순신이 거부해서 통제사에서 급히 해임하고 체포했는데요,
때마침 1주일전에 경상도수군 통제사 겸 경상우수사에 임명했던 원균을 삼도수군 통제사로 다시 임명한 겁니다
5.통제사에 임명된 원균은 삼도수사들과 회의후 부산공격이 어렵다고 몇번이나 장계를 보냅니다
만약 수군이 공격할려면은 육군과 동시공격을 하게 해달라고 간청도 햇구요
하지만 도원수 권율,비변사,체찰사 등이 더이상 육군의 정병이 어렵기에 수군의 단독 진격을 독촉했다고 나옵니다
그렇게 체찰사의 종사관이 한산도에 들어와서 독촉하여 원균이 어거지로 출진할때의 함선규모가 크고작은배 100척이라 했습니다
실록 어디에도 원균이 예전에는 부산공격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제와서 딴말하냐고 꾸짖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원균과 삼도수사들은 지금 부산으로 가면 많은 병사들이 죽을텐데 라며 걱정하는 내용만 있을뿐이죠
오죽했으면 선조가 출진을 거부하는 수사들 이름을 별도의 서책에 항명으로 따로 기록해 놓으라 명했을까요
6.이순신 신격화와 짜맞추기식 내용만 보다보니 역사가 어긋나는 겁니다
실록에서 이순신은 통제사에서 해임되기전에 몇번이나 선조가 커버해 줬습니다
사후선 3척이 소실되고 병사들이 많이 죽은 사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하여 권율과 이순신을 파직해야 한다는 양사의 상소가 1주일간 계속되었지만 선조는 무마했구요,
이순신의 부하가 남원에서 징집을 하다가 그곳 병방을 죽인일로 백성들 원망이 자자하다는 상소도 올라왔고,남해를 순시하던 광해군이 몇번이나 사람을 보내서
이순신에게 찾아오라 했지만 이순신이 바쁘다고 거절했으며,원균이 공훈명단에 12세 남자아이를 올린거 가지고 원균의 아들일꺼라 모함하다가 체찰사 이덕형에게 걸린거,
부산 왜군영에 방화하여 큰 피해를 준 사건을 자신의 부하가 한거라 거짓보고 한거 등등
나중에 얼마나 선조가 열받았으면 이순신이 가등청정의 목을 가져오더라도 용서할수 없다고 했을까요
7.선조가 쪽팔림을 무릎쓰고 이순신에게 통제사를 다시 맡아달라며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냈다 하시는데,그런 편지는 대부분의 신하들에게도 그렇게 내렸습니다
원균이 충청병사와 전라병사에 임명되었을때도 선조는 그런 격려 편지와 함께 양마,전마 같은 말도 같이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8.원균이 무식한 장수이다 라는 내용의 사책을 믿는 분들이 많으시던데,원균은 무과 2등 합격자 이고 이순신은 14등 합격자 입니다
또한 당시 무과시험에는 병법을 다루는 병과도 있었습니다
이순신,원균 둘다 여진족 토벌의 공이 있었구요, 차이점은 원균은 순차적으로 승진하여 임진왜란 발발 3개월전에 경상우수사가 된 반면,
이순신은 이산해,유성룡 등의 천거로 불차채용하여 임진왜란 발생 1년전에 전라좌수사로 벼락승진 한거죠
원균은 이순신보다 5살 많고 9년 선배인데,파직 경험도 있는 이순신이 먼저 정3품 수사에 임명된거니 엄청난 혜택인거죠
9.임진왜란이 발생하고 경상우수사 원균은 활용가능한 판옥선 4척과 기타함선 10여척만 가지고 거제현령등과 함께 왜군들을 격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과부적이라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는데,이순신이 왕명을 핑계로 출진을 주저하니 부장 정운이 이순신을 베려고까지 했습니다
이후 왕명이 내려오고 이순신의 함대가 거제도에서 원균과 만난때가 왜란발생 20일후 였죠
이순신의 출진이 늦어진 이유가 수령은 관할지를 임의로 벗어나선 안된다는 규정때문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통제사가된 이순신은 멋대로 내륙의 수령들을 해안가로 이동시켰다가
도원수 권율에게 경고를 먹기도 하죠
원가 검거 ㅋㅋ 원균은 사상 최악의 원흉이 맞고 선조가 존나게 밀어준것도 맞음
조선왕실록이 후대에 지어지거나 개인의견이 강한 사료면 대체 어떤 사료를 이용해야하나요? 물론 수정실록은 다른 왕실록보다는 정확성이 떨어져서 여기저기 교차검증을 해야한다지만 어느 자료를 열람하셨기에 징비록,수정실록보다 더 객관적인 사료를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수정실록도 엄연히 실록이고.. 난중일기와 징비록은 지금도 국가에서 지정한 중요한 기록유산인데 도대체 그것들보다 객관적인 레퍼런스가 어디있음? 꺼무위키?
아나운서분 진행을 하시는 분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냥 답정너 식으로 강의를 걸러듣는 태도로 영상을 꾸려나가면 이 영상의 의도는 뭔가요? 역사를 이해하고 뭔가 배우려는게 아니라 지금의 기준으로 딱잘라 잘잘못을 따질거면 배우는 의미도 없고 강사분 초청한 의미도 없습니다. 태도를 좀 고치셔야 할듯 합니다. 이런식으로 영상 만들거면 그냥 강사분 혼자 이야기하는것 보다 못한것같네요.
ㄹㅇ 보는 내내 불편했음
명색이 아나운서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은 거의 뭐 20대 롤대남 정도밖에 안되고
솔직히 인조가 제일 최악이라고 생각함.
이순신장군이 그렇게 훌륭한 군사가 아닌같해요
권율의 독단적인 행동이 큰 문제 였습니다.
칠천량 해전도 조선육군이 육로로 같이 공격했으면.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이 궤멸 안 됬습니다.
사악한 정치9단 천재왕
계획? 뭔 멍멍이 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순신이었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사왜곡임 이순신 선무 원종 공신 1등이고 사림을 등용한건 성종임
왜곡은 아니고 내용 많이 짤린거 같음. 저사람 다른 방송에서 결국 1등 공신으로 이순신 올렸다고 했었음. 문제가 원균도 같이 올려서 문제라고 했지
원균의 딱 하나의 장점. 충성심 하난 높았음. 그래서 선조가 좋아한것 같음.
아니면 지랑 이름 똑같아서 좋아했나? 이균, 원균😂
임진왜란은 명나라 이순신 등 여러 상황으로 간신히 버틴거지 이긴건 아니죠
명나라때 척계광이란 장군은 밥도 못먹고 하루종일 뛰여가서 싸워서
대승을거뒀어요
중국인 유튜브좀 못 쓰게 하라
중국역사 기준으로 이복동생이 죽거나 내가 죽거나 한명은 죽어야 황제의 자리에 오를수 있습니다 광해군을 욕할수 없는 이유입니다
영창 죽인시점은 이미 왕위에 오른 이후였는데??
광해군의 왕위교지도 그녀의 외가와 영창파가 장난질칠때
그거 다 쌩까고 물리고 영창 엄마가 직접 내줬음
@@unfortunately5516 광해 끌어내리려는 쿠테타 시도는 몇번 있었지만 실패했기에 영창대군이 왕자리를 넘보는 못한것 뿐입니다
말 그대로 헬조선 500년 이였는데 뭐를 좋고 나쁨을 따지남 ㅋㅋㅋ
암흑왕조
저때 망했어야됏는데 너무잘도망가서 암흑사직이 이어짐...
@@반일센숭이
😢👍
@@반일센숭이고려도 헬고려인데 조선이나 다르빠 없지 않나요?
여말선초 헬게이트를 겪은 고려 백성들에게는 조선이 새로운 세상이지 뭔 개소리여
이쌤👍👍👍👍👍👍
❤
2빠
조선멸망의 골든타임을 놓친 애석한 시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