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때가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고 반주도 좋았다는 느낌이에요.40에 접어든 선희누님의 목소리도 미모도 절정인 것 같고..이분은 정말 부러운데..처음 뵌 스무살 적의 모습이나 50대인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거에요.누님..앞으로도 지금처럼만^^♡더도 덜도 말고..지금이 딱 좋거든요^^♡
20주년땐 들을 수 없던 노래들..soneday..그 중에 그대를 만나..인연..그땐 없는 노래였으니까.공연초반의 노래는 20주년 때가 더 좋았다..중반 이후는 30주년때가 더 좋았다..ㅋㅋ.특히 30주년땐 아~옛날이여,갈등..아름다운 강산..시원한 기타연주로 인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20주년공연에서는 마지막에 부른 바로 그 노래..j에게..이때 와..섹시한 목소리..좋다..어느 여가수에게서도 들을 수가 없는 섹시한 목소리..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1984년도의 j에게..뽀글머리에 큰 안경..아직도 기억한다.그때 나 여섯살이었는데도 기억난다.그때부터 지금,4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많이 따라부른 노래.. 중학교때는 선희누님의 상징인..안경..기억나는 사람 있는지 모르겠는데,90년대초반인가? 중반인가..화니맥스라고 안경렌즈에 누님이 cf모델로 나온 적 있었다.안경 쓴 친구들이 렌즈에 입김을 불어 보여주며 이게 바로 이선희가 광고찍은 그 안경렌즈라며 자랑하던 기억도 있다.입김 불면 렌즈에 화니맥스 로고가 나타나던데.이게 선희누님이 광고 찍었다는 렌즈라고 하던 것 같다.난 안경 안 써서 모르지만ㅋㅋ.(40인 지금도 나는 시력이 좋다.시력검사판의 모든 글자와 숫자를 식별한다.시력과 후각이 탁월하지만 귀는 아주 약간 안 좋음ㅋㅋ.일상생활에서 타인과의 대화에는 지장없음) 고등학교때 나쁜 길에 빠져 방황하고..학교서도 자퇴했을 때,다시 마음 고쳐먹고 킥복싱도 배우러 다니면서 고졸검정고시도 준비하면서 주유소,노래방 등 알바하면서 입대전까지 열심히 살기 시작한 계기도 선희누님이었다.훗날,선희누님 같은 스타일의 여자를 만나 남겨진 인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결국 그 소원을 이루지는 못했다.그리도 좋아하던 그녀가..다만 내가 주먹 쓰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싫다고 그러더라..헐..(왜 이러시나~난 링 밖에선 주먹 안 써..) 선희누님 덕분에 한글도 일찍 배우게 되었다.선희누님이 j에게 부르며 데뷔하던 당시..노래 가사집(악보와 가사가 수록된 책 있었다.기타나 피아노 치는 분들도 그걸 사다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거 봤는데.)에 있는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귀에 들리는 노래와 눈에 보이는 가사를 베껴적고 받아적어 보면서 한글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남들 같으면 유치원 들어갔을 나이..7살일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담임선생님이 그러더라.넌 유치원도 건너뛰고 곧장 국민학교 들어왔는데 한글은 어디서 배웠는고? 그때,선희누님의 노래가사를 연필로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j에게..또 뭐 있더라..? 아무튼 1집 노래였다.가사집을 보고 노래를 반복하여 들어보면서 베껴적고 받아적으면서 알게 되었다 대답하니 하시는 말씀이.. -너에겐 내가 아니라 이선희씨가 선생님이다. 흠..맞는 말 같네요..ㅋㅋ.누님보다 15살이나 어린 까마득한 나지만..노래 듣다보면 어느새 나도 공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늘 술에 젖어서 사는 아버지가 싫었던 그때..자퇴하고는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뛰쳐나온 20여년전..18살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에게..선희누님은..어머니와도 같은 분이었다.(실제로 이름도 어머니랑 같네..) 군에 입대할 때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갔었다.결국 같은 지역출신의 선배를 군대서 만나게 되어 나 입대한 사실이 아버지에게 알려졌지.군대동기가 되어버렸네ㅋㅋ. 오히려 내가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열여덟에 뛰쳐나가 독립생활을 시작한 것은 잘 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그때를 계기로 아버지는 술 끊고,친구 되시는 분에게서 땅도 빌려 농사지으며 열심히 사신다는 소식이 군대동기이자 지역선배인 유상병에게서 전해져 왔다.고등학생때 심하게 다퉜던 아버지와 재회하고 화해하게 된 것은 전역한 이후였다. 아들이 그렇게 뛰쳐나가 7년째 얼굴도 안 보이니까,뛰쳐나간 아들이 돌아오게 하려면 본인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재회..화해..얼마 되지 못해 간암 말기판정..돌아가셨지만.이제라도 아버지로서의 떳떳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고,이제라도 아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곧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그러시더니 그날밤이 마지막이 되었다.병원에서 그러더라.당장에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중증상태인데도 힘겹게 버텨오신 것이라 하더라.몇년전에 술과 가난 때문에 아들에게 진 빚은 갚고 떠나야 할 텐데..하며 한숨을 쉬더란다.떠나더라도 아들과 화해하고,화해주 한잔 마시고 떠나야 한다며 버티고 살아계시다 떠난 것이라 했다. 집 뛰쳐나간 지 몇년만에 돌아왔다..이젠 술도 끊고 열심히 살겠다며 친구 되시는 분과 체결한 농지임대계약서까지 보여주시던 아버지..그날이 마지막이었다.그 땅을 내가 대신 가져다 농사짓고 살았다.몇년간 배추,샐러리,양상추,당근,브로컬리,감자 등을 심어서 키웠다.농사에 대해 몰라 땅 빌려주신 분(아버지의 친구)에게 이리저리 따라다니면서 배웠다.결국 임대료도 못 갚고 홀랑 말아먹어서 망했지..ㅜㅜ.아버지가 하셨다면 성공적이었을 텐데.아버지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게 많고 일도 잘 하는 분이었으니까. 아무튼..선희누님의 20주년공연은 나에게도 의미가 크다.오랜만에..술 끊고 열심히 살기로 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뵙고,그날이 아버지의 마지막이 되어버렸던 그 해..선희누님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아버지가 하다 만 농삿일을 내가 배턴 이어받아 하느라 개고생하는 와중에도..수확철이라 바쁜 와중에도 누님 공연을 보러 갔었다.당시 선희누님의 공연이 있던 시기가..대관령은 감자,무,배추 수확시기로 가장 바쁜 시기였다ㅋㅋ. 동업하는 친구에게 욕 많이 먹었다.바빠 죽겠는데 태평스럽게 콘서트 보러 가서 3일내내 코빼기도 안 보이고 전화도 안 받으니 속 터지더라는 것이었다.친구야 미안하다.ㅋㅋ.한 3년째까지는 농사도 잘 되었고 가격이 한창 좋다 싶을 때 잘 팔아먹어서 재미 좀 봤었다.동업하는 친구가 욕심 부리고 잘못 판단해서 4년째에 말아먹었지.이를 계기로 나는 손 떼고 그 친구 혼자 농사짓는데 욕심부리다 홀랑 다 날렸더군.농사는..잘못하면 들어간 자본의 몇배가 빚으로 남을 수도 있다..이게 힘든 부분이다.몸 쓰고 힘 쓰는 게 어려운 일 아니다.. 수백억대 자산가가 아니어도 좋다.그저 빚이나 없으면 잘 사는 거지 뭐..(이건..등산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선희누님에게 들은 얘기임ㅎㅎ.이분 등산 자주 가시므로 등산을 즐기는 분이라면 마주칠 확률 있을 것 같다.) 나중에..바쁜 와중에 보러 간 콘서트가 선희누님 공연이었다고 밝혔더니 그 친구..미안하다..그때 선희누님 공연이었다 말했으면 뭐라 안 했을 텐데 말을 안 했냐고 그러더군.(실제론 의리없게 그런 에이스급 가수의 공연인데 너만 다녀왔냐 하더군.) 선희누님..그때 정말 좋은 공연이었어요.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내고..누님 덕분에 힐링..아주 좋았네요.
40주년 콘서트 빨리 보고 싶습니다ㅡㅡ찐팬
잘지내시고 계시죠
나의거리 제가 좋아하는곡
노래하는 모습 보고 싶습니다
이땐 참 귀여우시고 열정이 넘쳤군요 ㅡ그립네요
자주 나와 주세요
예쁜사람^^ 이선희 인기가영원하길^^
멋지다 짱
콘서트에서 빨리 보고 싶어여~~❤❤
이선희씨 건강하고 사랑합니다
.... 좋은팝송 좋은노래 넘 잘 들어습니다.~~~~
이선희씨 콘서트 아닌 충주
언제 한번 찾아오시면 좋겠어
요.🎵🎵🎵 보고 싶습니다....
모든가수가그렇지만. 세월을 속일순없죠.누나니까 아직도 가창력을 끌어올리지않나봅니다.늘 건강하셔야되요~♡♡
티아라 노래 듣다가 선희누님 영상 넘어왔네요.
선희누님 제일 좋아해요.그러면서 티아라나 코요태,포미닛 등 다른 누구의 어떤 노래도 안 가리고 즐겨듣는 편.
선희누님의 팬이라고 자부한다면 다른 누구의 어떠한 노래도 즐겨들을 줄 알아야 진짜죠~
이선희씨 좋은팝송이 넘넘
멋져 멋져 멋져보려요.....
7080 팝송 선희씨 앞으로도
팝솜노래 많이 부르세요.....
30주년공연보다도 이때가 더 좋아 보입니다.
이선희콘서트가고프다 갈기회가올지 가까이서보고프다
아름다운 강산..캬..신중현 원곡부터 김종서,마야..시나위..등 여러 가수들이 부르기도 했는데..선희누님에게서 들으니..제일 신난다.ㅋㅋ.원래 이분의 노래였던 것 아닌가? ㅋㅋ.
김남욱
김남욱 ㅈ
열정적인모습 참 좋습니다
멋지시고 귀여우시네요
대단하다.! 벌써이시대에.엔콜곡.다불하도니!!! 수고하셧어요! 이선희선생님.하고몃명정도밖헤옵다고봅니다! 몸관리잘하시고.대뷔40주년공연멋지게헤주십시요! 감사합니다.영상올려주신분.대단희감사합니다.한글공부중.재일교포올림*****👍🕴️
개인적으로 이때가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고 반주도 좋았다는 느낌이에요.40에 접어든 선희누님의 목소리도 미모도 절정인 것 같고..이분은 정말 부러운데..처음 뵌 스무살 적의 모습이나 50대인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거에요.누님..앞으로도 지금처럼만^^♡더도 덜도 말고..지금이 딱 좋거든요^^♡
저두요. 개인적으로 넘 좋아하고 같은 친구입니다....
64년생이고 띠도 같은 용띠
입니다.~~~♡♡♡
이신희씨다양한활동바람니디😊
20주년때는 파워가 느껴지고
30주년때는 완숙미가 절정의 감동을 준다.
그렇지...
가수는 이런 분이 해야지...
정말 열정적이고 맨트도 예쁘게
잘하네요 반주와 음향도 최고인듯~
2016년콘서트도 내인생에 행복한
하루였답니다^^
J에게는 30주년 마지막 곡이 가장 나은듯하네요 우렁차고 깊은 울림 ~~♥♥♥
오랫만 영성보지만 온쟈봐도 이선희 선샹 다운 발름으러 ?!? 열심히를 느낍니다 ABBA.🎼Waterroot Dancing Queen ㅋㅋ 잘하십니다 내년🌐🌐2024 년은대뷔40,주년 어니바사리 기대만땅 공연 장소확임 별일 없으면 저차갈되니.🎫🤗일본에서...😍🥰🥳
금요일에 전주콘 가여! 넘 좋다
반주는 20주년이 훨 나은듯하고요. ㅋ
어디까지나 제 생각 ㅎㅎ
사랑해요 선희 언니야♥♥♥
개인적으로 80년말~90년초중반이 최고라생각.파워가제일넘쳐보였음.현재는 원숙미가있음.
이때가 제일 쩌렁쩌렁하다
이때가 제일 전성기이지 않았나 해요. 지금은 목소리에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만 이때는 말 그대로 성대의 전성기... 물론 지금까지 그 정도로 유지했다는 것부터가 넘사벽 수준이시긴 하지만ㅎㅎ
이선희20주년콘서트2부축하합니다
당신이너무좋아!
아 옛날이여, Bass line 너무 좋다 . . . 아마도 이태윤 선생님이겠죠'ㅡ'? 가 아니네....ㅋㅋ 인재현님(자막) 민재현님(선희누나 목소리)처음 알았는데 간결하면서도, 곡의 특성을 잘 살려주시기에, 이태윤 선생님인줄..ㅋ
제가 장애자데 나쁘게
생각 안했으면 좋겠어요....
저두 알고보면 착한 사람이고.
괜찮한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넘 멋져요 😁😁😁
기타 함춘호 퍼커션 채제민 드럼 강수호 건반 전영호..보컬 이선희;
나의거리 시작하고 얼마되지않아 잡음과 영상 끊김현상이...ㅠ.ㅠ.
9분25초부터 9분 54초까지요~
그래도 넘 잘 봤오용~~
엇? 저도 그런 현상..헐..
드럼에 강수호! 이분 제일 좋아하네ㅋㅋ
헐~~~많은분들이 버퍼링을...ㅠㅠ
ヨクシ、イソンフィ先生や!アバは私14歳の頃から聞いてました!うまいこと、映像見つけられたなー、チョッタ!イソンフィ先生のスキルからしたら当たり前やな!!ちなみにこの歌は楽しく聴くと言う具合…!カムサハムニダ🎶😊🍀
20주년땐 들을 수 없던 노래들..soneday..그 중에 그대를 만나..인연..그땐 없는 노래였으니까.공연초반의 노래는 20주년 때가 더 좋았다..중반 이후는 30주년때가 더 좋았다..ㅋㅋ.특히 30주년땐 아~옛날이여,갈등..아름다운 강산..시원한 기타연주로 인해 더욱 좋았던 것 같다.
20주년공연에서는 마지막에 부른 바로 그 노래..j에게..이때 와..섹시한 목소리..좋다..어느 여가수에게서도 들을 수가 없는 섹시한 목소리..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1984년도의 j에게..뽀글머리에 큰 안경..아직도 기억한다.그때 나 여섯살이었는데도 기억난다.그때부터 지금,4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많이 따라부른 노래..
중학교때는 선희누님의 상징인..안경..기억나는 사람 있는지 모르겠는데,90년대초반인가? 중반인가..화니맥스라고 안경렌즈에 누님이 cf모델로 나온 적 있었다.안경 쓴 친구들이 렌즈에 입김을 불어 보여주며 이게 바로 이선희가 광고찍은 그 안경렌즈라며 자랑하던 기억도 있다.입김 불면 렌즈에 화니맥스 로고가 나타나던데.이게 선희누님이 광고 찍었다는 렌즈라고 하던 것 같다.난 안경 안 써서 모르지만ㅋㅋ.(40인 지금도 나는 시력이 좋다.시력검사판의 모든 글자와 숫자를 식별한다.시력과 후각이 탁월하지만 귀는 아주 약간 안 좋음ㅋㅋ.일상생활에서 타인과의 대화에는 지장없음)
고등학교때 나쁜 길에 빠져 방황하고..학교서도 자퇴했을 때,다시 마음 고쳐먹고 킥복싱도 배우러 다니면서 고졸검정고시도 준비하면서 주유소,노래방 등 알바하면서 입대전까지 열심히 살기 시작한 계기도 선희누님이었다.훗날,선희누님 같은 스타일의 여자를 만나 남겨진 인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결국 그 소원을 이루지는 못했다.그리도 좋아하던 그녀가..다만 내가 주먹 쓰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서 싫다고 그러더라..헐..(왜 이러시나~난 링 밖에선 주먹 안 써..)
선희누님 덕분에 한글도 일찍 배우게 되었다.선희누님이 j에게 부르며 데뷔하던 당시..노래 가사집(악보와 가사가 수록된 책 있었다.기타나 피아노 치는 분들도 그걸 사다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거 봤는데.)에 있는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귀에 들리는 노래와 눈에 보이는 가사를 베껴적고 받아적어 보면서 한글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남들 같으면 유치원 들어갔을 나이..7살일 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담임선생님이 그러더라.넌 유치원도 건너뛰고 곧장 국민학교 들어왔는데 한글은 어디서 배웠는고? 그때,선희누님의 노래가사를 연필로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j에게..또 뭐 있더라..? 아무튼 1집 노래였다.가사집을 보고 노래를 반복하여 들어보면서 베껴적고 받아적으면서 알게 되었다 대답하니 하시는 말씀이..
-너에겐 내가 아니라 이선희씨가 선생님이다.
흠..맞는 말 같네요..ㅋㅋ.누님보다 15살이나 어린 까마득한 나지만..노래 듣다보면 어느새 나도 공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늘 술에 젖어서 사는 아버지가 싫었던 그때..자퇴하고는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뛰쳐나온 20여년전..18살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나에게..선희누님은..어머니와도 같은 분이었다.(실제로 이름도 어머니랑 같네..)
군에 입대할 때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갔었다.결국 같은 지역출신의 선배를 군대서 만나게 되어 나 입대한 사실이 아버지에게 알려졌지.군대동기가 되어버렸네ㅋㅋ.
오히려 내가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열여덟에 뛰쳐나가 독립생활을 시작한 것은 잘 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그때를 계기로 아버지는 술 끊고,친구 되시는 분에게서 땅도 빌려 농사지으며 열심히 사신다는 소식이 군대동기이자 지역선배인 유상병에게서 전해져 왔다.고등학생때 심하게 다퉜던 아버지와 재회하고 화해하게 된 것은 전역한 이후였다.
아들이 그렇게 뛰쳐나가 7년째 얼굴도 안 보이니까,뛰쳐나간 아들이 돌아오게 하려면 본인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재회..화해..얼마 되지 못해 간암 말기판정..돌아가셨지만.이제라도 아버지로서의 떳떳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고,이제라도 아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곧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그러시더니 그날밤이 마지막이 되었다.병원에서 그러더라.당장에 돌아가셔도 이상할 게 없는 중증상태인데도 힘겹게 버텨오신 것이라 하더라.몇년전에 술과 가난 때문에 아들에게 진 빚은 갚고 떠나야 할 텐데..하며 한숨을 쉬더란다.떠나더라도 아들과 화해하고,화해주 한잔 마시고 떠나야 한다며 버티고 살아계시다 떠난 것이라 했다.
집 뛰쳐나간 지 몇년만에 돌아왔다..이젠 술도 끊고 열심히 살겠다며 친구 되시는 분과 체결한 농지임대계약서까지 보여주시던 아버지..그날이 마지막이었다.그 땅을 내가 대신 가져다 농사짓고 살았다.몇년간 배추,샐러리,양상추,당근,브로컬리,감자 등을 심어서 키웠다.농사에 대해 몰라 땅 빌려주신 분(아버지의 친구)에게 이리저리 따라다니면서 배웠다.결국 임대료도 못 갚고 홀랑 말아먹어서 망했지..ㅜㅜ.아버지가 하셨다면 성공적이었을 텐데.아버지는 농사에 대해 아는 게 많고 일도 잘 하는 분이었으니까.
아무튼..선희누님의 20주년공연은 나에게도 의미가 크다.오랜만에..술 끊고 열심히 살기로 하고 다시 시작하려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뵙고,그날이 아버지의 마지막이 되어버렸던 그 해..선희누님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아버지가 하다 만 농삿일을 내가 배턴 이어받아 하느라 개고생하는 와중에도..수확철이라 바쁜 와중에도 누님 공연을 보러 갔었다.당시 선희누님의 공연이 있던 시기가..대관령은 감자,무,배추 수확시기로 가장 바쁜 시기였다ㅋㅋ.
동업하는 친구에게 욕 많이 먹었다.바빠 죽겠는데 태평스럽게 콘서트 보러 가서 3일내내 코빼기도 안 보이고 전화도 안 받으니 속 터지더라는 것이었다.친구야 미안하다.ㅋㅋ.한 3년째까지는 농사도 잘 되었고 가격이 한창 좋다 싶을 때 잘 팔아먹어서 재미 좀 봤었다.동업하는 친구가 욕심 부리고 잘못 판단해서 4년째에 말아먹었지.이를 계기로 나는 손 떼고 그 친구 혼자 농사짓는데 욕심부리다 홀랑 다 날렸더군.농사는..잘못하면 들어간 자본의 몇배가 빚으로 남을 수도 있다..이게 힘든 부분이다.몸 쓰고 힘 쓰는 게 어려운 일 아니다..
수백억대 자산가가 아니어도 좋다.그저 빚이나 없으면 잘 사는 거지 뭐..(이건..등산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선희누님에게 들은 얘기임ㅎㅎ.이분 등산 자주 가시므로 등산을 즐기는 분이라면 마주칠 확률 있을 것 같다.)
나중에..바쁜 와중에 보러 간 콘서트가 선희누님 공연이었다고 밝혔더니 그 친구..미안하다..그때 선희누님 공연이었다 말했으면 뭐라 안 했을 텐데 말을 안 했냐고 그러더군.(실제론 의리없게 그런 에이스급 가수의 공연인데 너만 다녀왔냐 하더군.)
선희누님..그때 정말 좋은 공연이었어요.아버지를 그렇게 떠나보내고..누님 덕분에 힐링..아주 좋았네요.
아휴 대단하십니다
잘~~~~~알찬 글 잘 읽었습니다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바지 곤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