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and.peace99 6.25 를 거치면서 족보 등 자료가 많이 소실되었다고 해도 모든 족보가 소실된게 아니므로 복원이 가능했음. 족보라는건 파가 적혀있는거니까. 그리고 후손들끼리 얼굴을 알고 있으니 직접적인 확인도 가능했음. 이게 이해가 안 될 수 있기에 당신에게 되레 묻겠음. 당신 외삼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의 외삼촌인지 어떻게 알음? 이제 ㅇㅋ? 이해가 됨?
궁예를 보면 경멸하거나 화가 나는 것보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버린 신라 왕조를 경멸하는 것이 언뜻보면 사실상 그것에 대한 복수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궁예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죽인 사람들이 호족이었다는 사실은 몰랐어요. 그리고 궁예가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았더라면 궁예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이 더 많이 남았을 거라는 생각과 궁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네요. 오늘도 역사 잘 알아가고요, 재미있게 설명해 주시는 심용환 작가님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궁예에 대한 기록들이 고려시대에 적혀있었으니 궁예를 깎아 내리진 않았을까 싶어요. 왕건도 궁예를 죽이기를 꺼리다가 여러 신하들이 청하니 결국 죽인 내용을 보면 죽인 것 자차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었던 것 같고.. 처음엔 엄청난 민심을 얻었던 궁예이고 어쩌면 그때까지 민심을 조금 잃긴 했어도 백성들의 지지가 꽤 컸기에 주저리 주저리 눈치를 본 느낌이에요. 물론 기득권층을 싫어하던 궁예가 호화스러운 옷을 입은 건 문제가 되지만 적어도 영상에서 나온 호화스러운 생활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옷 뿐이고, 궁예도 한나라의 왕이니 화려한 옷 정도는 사치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호족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정도의 위엄을 보이어야 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 호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했지만, 당시 기득권층에 반발을 가지고 있던 궁예에게 처음에 동조하고 공평한 세상을 꿈꾸던 민중들에게는 그것 자체는 큰 위험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필리핀 경찰도 마약과의 전쟁 선포하며 일종의 공포정치를 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지지하고 있었던 걸 보면 그것보다 소수인 호족들에 대한 공포정치정도야 싫어하진 않았을 것 같고, 또 궁예가 아예 호족들 전부를 포용을 못하는 인물은 아니었으니 민심을 잃은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초심을 잃었다고 할 만한 계기도 아닌 것 같고. 비록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하는 건 조금 너무 갔지만.. 궁예가 왕건을 이용한 호족들을 이용은 하면서도 자신의 목표인 공평을 위해 어떻게 포용해야 할지를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거나, 결국 자신이 집권하고 난 다음에 왕권을 비롯한 호족들을 다 죽이려고 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었을 것 같고 관심법도 그 선에서 나온 일일거라는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관심법 등은 호족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책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불경을 짓고 이에 반발한 고승을 때려 죽이는 시점부터는 어떤 대의를 위한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결정적으로 황후가 궁예의 무도함을 간하자 불에 달군 철퇴로 죽이고 말리던 두 아들마저 죽였다는 사건은 뭐 어떻게 궁리해봐도 죄를 면책할 방법이 없네요. 그 사건 자체가 통째로 허구가 아닌 이상… 즉, 왕건이 궁예를 칠 수 있었던 건 그에 상응하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물론 고려시대 때 기록이니 궁예에 대해 부정적으로 씌여졌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왕건은 군사적재능은 떨어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음. 기록에 나오는 왕건의 군사적업적은 궁예시절 이뤄진다는것임. 궁예사후 유금필이 없을때 왕건의 전쟁기록을 보면 첨담함. 고려에서 남긴 기록이 그 정도라면 실제론 더 비참하게 패한 경우가 많았겠지. 이런 왕건의 군사적능력을 볼때 왕건이 궁예시절의 전공이 실질적으론 왕건이 주도한건 아닐꺼라고 보는 견해가 있음. 왕건이 참전한 전쟁중 이긴전쟁을 왕건이 주도한 전쟁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냐는거지.
36:05 에 나오는 이성계 족보문제는 종계변무를 말씀하시는거 맞나요? 이건 명나라쪽에서 망명한 반이성계파로 인해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명나라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것으로 인해서 발생한 외교문제 아닌가요? 이인임은 이성계와 정적이었는데 그 아들로 기록되었으니 수차례 수정을 요구했고 태종때 영락제가 기록잘못한 이들을 처벌하고 고치겠다고 하교한 예부자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개정이 실행되지는 않았죠, 영락제가 개정을 명하기는 했지만, 태조 홍무제의 조훈조장을 우선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 조훈조장 서문에는 ’한 글자라도 바꿀 수 없다.‘라는 문장때문에 따라서 명에서 조선과의 외교적 약속보다 홍무제의 명을 우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건국초기 명나라로부터 고명을 받지 못한건 단순히 족보불분명이라고 할수는 없지 않나요??
공민왕은 진짜 안타까운게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 타이틀 가져가고 아내 생전엔 좋은 왕이었잖아. 아내인 노국공주도 원나라 공주 출신이면서 남편의 편이 되어줬었고. 그 전에 충 자 돌림 고려왕놈들이 한 거 보면 기가 막히는데 공민왕은 개혁한다고 하다가 아내가 자기 애 낳던 중 사망, 후계자가 될 아이도 사망해서 미쳤다는데 유일하게 내 편이던 사람 잃고 미쳤다고하면 동정여론 쌉가능이지. 고려가 망하고 남은 기록이라 신빙성의심도 있다해도 인간으로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듦.
민비를 평하는 기록. 일제에의해 살해당한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조선말 역사기록도. 36년간 일본식민지배 받았으니 그 긴 세월.조선말 기록은 일제의 압력으로 조작 기록되었을 가능성있다. 피박당한 희생양의 지금의 그후손들이, 일제가 몰고 가고자했던 방향으로 같이 타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차미경-t7k 주여! 꼬여도 한참 꼬이셨네요?! 내로남불이시네요. 스스로 다 안다고, 똑똑하다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교만이고 사탄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죄악중에서 가장 큰 죄가 바로 교만입니다. 흥하는 말씨가 있고 망하는 말투가 있어요. 이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다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반드시 결과와 책임이 따르는 법이잖아요. 다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고 땅은 절대 배신하지 않거든요. 콩심은데 콩나는거 당연하니까! 각자의 삶속에서 반드시 나자신에게 되돌려받게 돼있어요. 세상에는 3가지 일만 있습니다. 1. 내가 할 일 2. 당신(여러분)이 할 일 3. 하나님께서 하실 일 모든 일은 3가지 경우뿐입니다. 1. 일 2. 경력 3. 사명 저는 이세상 그 누구에게도 잘보이려고 하지 않고 잘 지내고 싶을뿐입니다. 꽃길만 걸으세요? 꽃길로 만드세요! 꽃길로 여기세요! 🚫 허벌라이프는 약이나 치료제가 아니고 종교와 상관없습니다. 개인의 경험과 결과이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갠적으로 저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믿습니다. 🚫
공민왕이 후사가 없자 불임원인이 자신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자기부를 받는 방법으로 후사를 얻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불임이 지속되면 여성을 절로 보내 1개월 이상 정자기증을 받는 풍습이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불임원인이 남성에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정자를 주는 기부자는 당시 최고의 지성과 지위계급인 승려이고 요즘으로치면 의대생에게 정자를 받고자 하는 체외수정과 비슷합니다. 공민왕의 성적취향으로 몰고가면 고소한 오징어 씹을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후사가 없는 공민왕 입장을 생각하면 가장 합리적 선택 아니었을까요? 후사는 얻고 기증자는 죽이고. 신돈(중) 아들 이야기도 마찬가지. 자제위들 개개인 입장을 고려해도 젊고 똑똑하고 아직 어려서 정치적 사고의 경력도 없고 왕에게 절대 충성을 바칠 수 밖에 없고 설령 죽임을 당해도 사고사로 얼버무리고 자제위 집에 재물과 벼슬을 좀 주어 보상하고.
✔핵심 재미만 콕콕 집어주는 역사읽다 댓집게✔
0:00 오프닝
0:32 궁예
12:23 왕건
24:46 공민왕
34:01 이성계
46:33 명성황후
1:01:28 허준
[역사 읽어드립니다 시즌3]로 역사 정주행하고 싶다면?
👉 th-cam.com/play/PLWFNKrYyaIP46MaZU2AvbILrWkceFgcIt.html
ㅠ
'
cccccç😊😐🤗
ㅣㄱ
..
31:50 정세운 장군 후손입니다. 제사지내기전 부모님과 족보 보면서 조상님 대화할때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만 들었었는데 교과서에서 보지못했던 이야기 너무 감사합니다.
몰랐는데 정세운 장군 본관이 광주였군요. 저도 광주 정씨 22대손입니다.
⁰q
누구누구의 후손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나요?
조선멸망 무렵에 노비가 전국민의 60-80%에 이르렀다고 하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돈을 받고 노비를 해방시켜 주었으며 족보를 돈주고 샀습니다.
그러므로, 족보의 신뢰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war.and.peace99 6.25 를 거치면서 족보 등 자료가 많이 소실되었다고 해도 모든 족보가 소실된게 아니므로 복원이 가능했음. 족보라는건 파가 적혀있는거니까. 그리고 후손들끼리 얼굴을 알고 있으니 직접적인 확인도 가능했음.
이게 이해가 안 될 수 있기에 당신에게 되레 묻겠음. 당신 외삼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의 외삼촌인지 어떻게 알음? 이제 ㅇㅋ? 이해가 됨?
@@war.and.peace99 그리고 어디가서도 족보가 제로라는 허튼 소리는 제발 닥쳐주길 바람. 그거 남의 조상 헐뜯는거임. 내가 지금 당신 부모 욕하는거랑 다를바 없다는걸 인지 좀 하길. 못 배워처먹은 애들이 부모나 조상 흉보는건데...ㅉㅉ
궁예를 보면 경멸하거나 화가 나는 것보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버린 신라 왕조를 경멸하는 것이 언뜻보면 사실상 그것에 대한 복수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궁예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죽인 사람들이 호족이었다는 사실은 몰랐어요. 그리고 궁예가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았더라면 궁예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이 더 많이 남았을 거라는 생각과 궁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네요. 오늘도 역사 잘 알아가고요, 재미있게 설명해 주시는 심용환 작가님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전 모 장군과 박모 징군도 사람 죽인것으론 뒤지지 않을 텐데요...
@@하노이봉 전땅크랑빡통은 서민들을 죽임
견훤 인생이 진짜 세계사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스펙타클하지... 자기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너무 이야기가 재밌어요. 쏙쏙 빨려드네요.
고종과 명성황후는 자신의 지위를 뺏기지 않으려 연연했지 절대 백성과 국가를 위한 왕과 왕비는 아니였다
완전팩트.
이제 다들 명성황후가 아니라 '민비'라는 정식명칭을 씁시다. '민비'가 정식 명칭이라고 함. 황후라는 표현 붙일 자격도 없는 쓰레기...
@@theGreatAlexander-jg2fk 정답임다
@@theGreatAlexander-jg2fk 민비만 문제가 아니였으니 걍 민씨로 합시다.
세계 인류역사상 대중을 위한 지도자는 몇 없었다, 국뽕을 위해 각색해서 이용해먹을 뿐
좋아하는 역사시간 아주아주 재미있어요
설강사 자기생각 쇼 강의 보다 이게 훨씬 귀에 잘 들어오고 듣기도 좋음 개인적인 생각도 많이 절제하면서 냉정하게 풀어주는것 같다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잼있게 들을수 있어서 좋은거 같네요~
ㅋㅋ 팩폭 금지
@@리기-z1l 죄송합니다 ㅋㅋ
난 그래도 설 좋음
설 이후로 진심 연기해가며 썰풀듯 역사얘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어요..ㅠㅠ
듣기싫어.. 반면 그나마 이분은 듣기가 편하네요
그 분, 논문 표절하신 분 아닌가요?
태조왕건 어린 나이에 정말 재밌게봤었는데~ 생각이 나면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정확한 핵심내용 찍어주시네요~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고증해주시니 관심있게 보겠습니다.
너무 재밌고 유익해요 어릴 때 역사 선생님이 셨다면 그 시간 그리 졸지 않았을텐데 ㅎㅎ 대 유 잼
이런 유익하고 깔끔한 강의영상에 조회수에 비해 좋아요가 너무적네요. 1시간 가는줄도모르고 잘봤습니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역사강의-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we are proud of our Country People 카~ 국뽕에 취한다 주모~ 여기 막걸리 하나만! With North Korea 🇰🇵
역사는 사료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임. 아무리 유학자가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하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 조선 건국 과정에서 고려왕조에 대한 조작이 없었다고 보긴 힘들다고봄.
그렇죠. 더불어 당시에는 다 기록했다 한들 후에 후손들이 기록을 훼손하고 조작하지 않었을 거라는 홗신도 없고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본주의'를 추구한 조선이 있었기에
21세기 현재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진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정말 정말 잘 봤어요.!!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꽤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는 드라마 작가들이 만들내는게 아닌가 싶네요.
드라마와 역사적 사실은 구분해야 하는게 맞는데 말이죠.
심용환 작가님 자주 뵙기를 기대합니다.
교수님 안경을 안쓰신게 훨씬 어려 보이십니다 ㅎㅎ 교수님 역사이야기는 언제들어도 재밌네요~
좋은영상 잘보고 갑니다 좋아요 꾸욱 ~^^♡
넘 잼있고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너무 유익한 영상이네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10년 20년 정도 지나면 대한민국 최근의 현대사도 이런식으로 편향된 관점없이 배울 수 있을까요?
드라마가 생각보다 훨씬 역사에 충실했다는게 더 놀랍네요
허준 이야기 짱 재밌다......
1시간이란 시간이 언제 갔ㄴㅏ 싶을정도로 집중도도 높고 재미있고 유익한 영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스크롤을 내렸는데 대부분의 댓글들이 쓰레기라 놀람
중간에 자막 잘못된 부분 있네요!
1:11:44
자막은 '조선성리학'인데 설명은 조선성리학이 아니라 불가, 그러니까 '고려 불교'에 대해서 말하고 계시네요ㅎㅎㅎ
수면영상으로 클릭했다가 잼나서 다 보게 됨;
#어쩌다어른 #역사읽어드립니다 이게 제일 좋음ㅋ _나이_ _들어서_ _그런가?_ ㅋㅋㅋㅋㅋ
작가님 이야기가 젤 잼있어요
재밌네요
이야기를 정말 재밌게 들었어요~시간순삭이었어요:)
8명의 공신이 죽은 산을 팔공산이라 하고
도망쳐나와서 하늘을 봤는데 반달이었는데 그곳을 반야월이라 말했고,
어느정도 빠져나와서 이제 안심이 된다고 해서
그 지역이 안심이 됨
[참고자료] "죽주"는 현재 안성시의 동쪽 3개면인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의 옛땅 이름.
우리선조들의 피와 땀이 헛되질 않았네요 국민교육헌장이 생생하게ㅡ 이러한 선생님들이 강의하고 국난에 대거
대비참여해서 우리의 것을 지킨다면 무엇이두려울까요 다시는 우리의어린이들과 딸들은 과거처럼 되지않을것
설명를 넘 빠르게 합니다~~
실제로 가담한 사람의 편지가 남아있어서 다행이군요.
가담한 사람이 실행후 친구한테 보낸 편지가 얼마전에 나왔어니.
이성계도 장군 출신으로 고려 조정에 진출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창업했는데 궁예 대조영 견훤과 같이 나라를 세운 것에 포함이 되지 않을까요?
20:40 실제로 대구 팔공산 쪽으로 차타고 올라가다보면 신숭겸장군 유적지가 있습니당
개인적인 생각인데 궁예에 대한 기록들이 고려시대에 적혀있었으니 궁예를 깎아 내리진 않았을까 싶어요. 왕건도 궁예를 죽이기를 꺼리다가 여러 신하들이 청하니 결국 죽인 내용을 보면 죽인 것 자차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었던 것 같고.. 처음엔 엄청난 민심을 얻었던 궁예이고 어쩌면 그때까지 민심을 조금 잃긴 했어도 백성들의 지지가 꽤 컸기에 주저리 주저리 눈치를 본 느낌이에요. 물론 기득권층을 싫어하던 궁예가 호화스러운 옷을 입은 건 문제가 되지만 적어도 영상에서 나온 호화스러운 생활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옷 뿐이고, 궁예도 한나라의 왕이니 화려한 옷 정도는 사치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호족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정도의 위엄을 보이어야 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 호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했지만, 당시 기득권층에 반발을 가지고 있던 궁예에게 처음에 동조하고 공평한 세상을 꿈꾸던 민중들에게는 그것 자체는 큰 위험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필리핀 경찰도 마약과의 전쟁 선포하며 일종의 공포정치를 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지지하고 있었던 걸 보면 그것보다 소수인 호족들에 대한 공포정치정도야 싫어하진 않았을 것 같고, 또 궁예가 아예 호족들 전부를 포용을 못하는 인물은 아니었으니 민심을 잃은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초심을 잃었다고 할 만한 계기도 아닌 것 같고. 비록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하는 건 조금 너무 갔지만.. 궁예가 왕건을 이용한 호족들을 이용은 하면서도 자신의 목표인 공평을 위해 어떻게 포용해야 할지를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거나, 결국 자신이 집권하고 난 다음에 왕권을 비롯한 호족들을 다 죽이려고 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었을 것 같고 관심법도 그 선에서 나온 일일거라는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관심법 등은 호족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책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불경을 짓고 이에 반발한 고승을 때려 죽이는 시점부터는 어떤 대의를 위한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결정적으로 황후가 궁예의 무도함을 간하자 불에 달군 철퇴로 죽이고 말리던 두 아들마저 죽였다는 사건은 뭐 어떻게 궁리해봐도 죄를 면책할 방법이 없네요. 그 사건 자체가 통째로 허구가 아닌 이상… 즉, 왕건이 궁예를 칠 수 있었던 건 그에 상응하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물론 고려시대 때 기록이니 궁예에 대해 부정적으로 씌여졌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말씀을 정말 재미있게 잘하시네요 내용도 좋고.. 존경합니다! 너므 재밌어요 👍
제목 썸넬 내용 27:50
우리는 언제부터 지금의 말을 쓰기 시작했나요? 쓰는건 세종대왕 때부터겠지만 말은 언제부터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이성계가 흙수저? 아웃사이더? 전부 아님 존나 다이아수저임 그러고 고려중앙정계로 보면 아웃사이더이긴한데 고려의 전체로 보면 그것도 아님
그러고 개인의 무력도 개쩌는걸 기록을 보면알수있음
추가하자면 동북면(고려때는 없었지만 조선대 편입된지역)이 조선때갑자기 국토에 편입된걸로만 봐도 알수있음 그지역이 이성계 개인영지 같은거였음
동북면의 왕같은 존재 ㅋㅋㅋㅋㅋ
정조대왕 같은 신궁 이었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왕건은 군사적재능은 떨어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음.
기록에 나오는 왕건의 군사적업적은 궁예시절 이뤄진다는것임.
궁예사후 유금필이 없을때 왕건의 전쟁기록을 보면 첨담함.
고려에서 남긴 기록이 그 정도라면 실제론 더 비참하게 패한 경우가 많았겠지.
이런 왕건의 군사적능력을 볼때 왕건이 궁예시절의 전공이 실질적으론 왕건이 주도한건 아닐꺼라고 보는 견해가 있음.
왕건이 참전한 전쟁중 이긴전쟁을 왕건이 주도한 전쟁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냐는거지.
36:05 에 나오는 이성계 족보문제는 종계변무를 말씀하시는거 맞나요? 이건 명나라쪽에서 망명한 반이성계파로 인해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명나라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것으로 인해서 발생한 외교문제 아닌가요? 이인임은 이성계와 정적이었는데 그 아들로 기록되었으니 수차례 수정을 요구했고 태종때 영락제가 기록잘못한 이들을 처벌하고 고치겠다고 하교한 예부자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개정이 실행되지는 않았죠, 영락제가 개정을 명하기는 했지만, 태조 홍무제의 조훈조장을 우선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 조훈조장 서문에는 ’한 글자라도 바꿀 수 없다.‘라는 문장때문에 따라서 명에서 조선과의 외교적 약속보다 홍무제의 명을 우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건국초기 명나라로부터 고명을 받지 못한건 단순히 족보불분명이라고 할수는 없지 않나요??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유학자출신이고 궁예는 승려출신 왕이었음
역사는 승자의기록이고 다양한관점으로 해석해야함
명성황후 얘기를 객관적으로 들은것 같아요
심용환작가님 제발 계속 나와주시면 안될까요? ㅠㅠㅠㅠ
어 !!!이 분 세계테마기행 크로아티아편에서 봤는데 ㅋㅋㅋ
왕건은 구테타
아니 볼때마다 느끼지만 쌤 손이 너무예뻐서 손만보여요ㅋㅋㅋ
선교사들 결혼에 100냥도 많은데 100만냥이라니..국고 탕진 맞네.
솔방울 맞춘얘기.올림픽에서 활쏘는 양궁경기에서 한국팀이 정중앙에있는 초점카메라 렌즈를 몇번깼을 정도 였고 각종 올림픽에서 수없이 금메달이나 각종 메달을 땄던거 보면 그 얘기가 사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후백제를 역사로 봐야하나요 ?
41:42
조일신, 김용, 신돈은 다 공민왕이 죽인 겁니다. 그들에게 권력을 줘서 반대세력 혹은 2인자 될 세력 혹은 인물을 제거시킨 후 다시 그들을 제거시키는 방법으로 왕권을 유지시키려 했던거고 마지막에도 그러려다 살해 당한겁니다.
와.. 허준 정말 깨어있는 사람이었네
깨어있는 사람이라기보다 현실적인 사람인거지
왕건의 ㅡ역사기록이고ㅡ지방호족의ㅡ권리를ㅡ백성에게ㅡ주려다ㅡ호족연합왕건에게ㅡ당한거겠지
0:35 바닥에서 시작한 사람 3명 궁예 견훤 대조영 셋뿐이라면서요 😂
34:00 이성계도 바닥부터 시작한 거 아임미까
너무 유익하게 보고 있다가 피식해서 적어봅니다 항상 너무 좋은 영상들 덕에 제 지식도 풍성해지는 느낌 감사합니다 🙏🏻
청광 등 왕자들이 살아남았고, 그 후손들이 무슨 김씨로 내려온다는 역사스페셜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신돈을 보니 진나라 여불휘가 생각나네요.
궁예가 남긴 명언..........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
4달라
?? : 아니
그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영화대사ㅋ 이병헌이 신민아 좋아해서
이성계 집안이 북방으로 이주하기 전에도 지방호족이였고, 이주후에도 지방토호의 군벌집단이였는데... 흙수저라니... 삼성=중소기업 소리랑 진배없음 ㅋㅋㅋ
아닙니다 당시 권문세족이 엄청난 부와 지금보다심한 엘리트주의를 모르셔서그러신 말씀이세요 권문세족에서 볼땐 이성계집안은 변방촌놈정도로 보이는게 맞습니다 다이아금수저들에게는 은수저로도안보였을껍니다
27:45=공민왕=쌍화점
사람은 이빨이 아니고 이아닌가요 동물은 이빨로 알고있는데
전씨 형제도 말 해주세요
동훈아~굥민왕 스토리 이거 우리 얘기 맞지?
그런데, 난 초보라 외교 잘 모르는데??
ㅋ 록시 손바닥에 왕자새매직으로써서 왕된분 게실가요? ㅋㅋ
공민왕은 진짜 안타까운게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 타이틀 가져가고 아내 생전엔 좋은 왕이었잖아.
아내인 노국공주도 원나라 공주 출신이면서 남편의 편이 되어줬었고.
그 전에 충 자 돌림 고려왕놈들이 한 거 보면 기가 막히는데 공민왕은 개혁한다고 하다가 아내가 자기 애 낳던 중 사망, 후계자가 될 아이도 사망해서 미쳤다는데 유일하게 내 편이던 사람 잃고 미쳤다고하면 동정여론 쌉가능이지.
고려가 망하고 남은 기록이라 신빙성의심도 있다해도 인간으로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듦.
오이소는 그보이소는 들어본적없음니다 ㆍ^^
여흥민씨는 고려와 조선 두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
민비를 평하는 기록. 일제에의해 살해당한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조선말 역사기록도. 36년간 일본식민지배 받았으니 그 긴 세월.조선말 기록은 일제의 압력으로 조작 기록되었을 가능성있다. 피박당한 희생양의 지금의 그후손들이, 일제가 몰고 가고자했던 방향으로 같이 타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제목만 들었을때 쌍화점 인줄
주몽 온조 박혁거세 등등 어디에 있누
정세운...!?...
고창전투~~~
왕건에 의해 이름 지어진 곳이 많네요.
안동도 그렇고 삼태사가 있고
누가 가즈아 소릴 내었는가!!!
중이 뭐냐 스님이지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8명의 장군이 누구인가요?
공사나 대사가 아닌 선교사에게 100만냥. 당시 조선 정부의 1년 예산의 30%를 때줬는데 그게 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거라고요? 그냥 지맘에 드니까 준거고 어찌보면 비자금 만들려고 했다고도 볼수 있는거지
이성계가 흙수저라고 변방이래도 성주의 자식인데 강원도 국회의원 자식은 흙수저,? 중견기업 회장 아들은 흙수저?
님의 사각과 내 시각은 차이가 좀 있어요.
후궁과 호위무사를 동침하게 한사람은 어떤사람입니까
31:41 정세운-개경대첩!
똑같이 나누고 공평하게 나누고가 앞뒤가 맞냐?....공에따라 대우를 해 줬다며? 사기지....'위아래가 높이가 같다' 라는 말이 통한다는게 웃긴다.
아멘!
여기저기 댓글달면서 아멘질이심!!!
아멘은 아멘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나 외치셈
교회쟁이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멘만 봐도 토나옴 우웩
@@차미경-t7k 주여! 꼬여도 한참 꼬이셨네요?! 내로남불이시네요.
스스로 다 안다고, 똑똑하다고 지혜롭다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교만이고 사탄마귀가 주는 마음입니다. 죄악중에서 가장 큰 죄가 바로 교만입니다.
흥하는 말씨가 있고 망하는 말투가 있어요. 이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다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반드시 결과와 책임이 따르는 법이잖아요.
다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고 땅은 절대 배신하지 않거든요.
콩심은데 콩나는거 당연하니까!
각자의 삶속에서 반드시 나자신에게 되돌려받게 돼있어요.
세상에는 3가지 일만 있습니다.
1. 내가 할 일
2. 당신(여러분)이 할 일
3. 하나님께서 하실 일
모든 일은 3가지 경우뿐입니다.
1. 일
2. 경력
3. 사명
저는 이세상 그 누구에게도 잘보이려고 하지 않고 잘 지내고 싶을뿐입니다.
꽃길만 걸으세요?
꽃길로 만드세요!
꽃길로 여기세요!
🚫 허벌라이프는 약이나 치료제가 아니고 종교와 상관없습니다. 개인의 경험과 결과이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갠적으로 저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믿습니다. 🚫
@@hl3053 머라는거야 개똥이다
@@차미경-t7k 당신의 생각이 곧 말이고 당신의 귀가 가장 먼저 듣고 당신의 뇌에 그렇게 지령을 내린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보고듣고 경험한만큼의 세상만 보이고 들리는 법이잖아요.
하루하루가 모여서 점이 되고 선이 되고 길이 되고 인생이 된답니다.
@@hl3053 너나 잘하세요
난 당신한테 이런말 안들어도 멋있게삽니다
아멘 같은건 예수쟁이들이 다 보는곳에나하고
여러종교인들이 섞인곳에 댓글남기는게 당신의 민폐가 아닌지요
글이 아무리 좋아도 남이 볼때 인상쓰는거면 쓸데없는거랍니다
이제 댓글 그만남기시죠
태조왕건
공민왕이 바이섹슈얼이였구낭......
민본사상은 고려 멸망에대한 명분이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고려의 왕은 천명을 다했으니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찾게되는 거죠
용환이형 올만에보노
궁예 옆에 "종간" 이 기억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옵소에ㆍ 는
들은적은 있지만요 ?!
나는 궁예의 관심법 사딸라만 생각나 ㅋㅋㅋㅋ
수달이가...주거써!
고구려 : 주몽 백제 : 온조 신라 : 박혁거세 가야 : 김수로 어디갔노 그사람들도 온갖 고생 다하면서 나라 건국 했구먼
왕이 아니라 마립간 혹은 그 아래 수준임
NTR의 역사가 깊구나..
야 잘보고 있어요... 재밌네.. 어린애들에게 참 유익하도 하고, 나에게도 유익하기도 하고, 컨셉이 정말 성인이유식 같은...
공민왕이 후사가 없자 불임원인이 자신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자기부를 받는 방법으로 후사를 얻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불임이 지속되면 여성을 절로 보내 1개월 이상 정자기증을 받는 풍습이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불임원인이 남성에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정자를 주는 기부자는 당시 최고의 지성과 지위계급인 승려이고 요즘으로치면 의대생에게 정자를 받고자 하는 체외수정과 비슷합니다. 공민왕의 성적취향으로 몰고가면 고소한 오징어 씹을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후사가 없는 공민왕 입장을 생각하면 가장 합리적 선택 아니었을까요? 후사는 얻고 기증자는 죽이고. 신돈(중) 아들 이야기도 마찬가지. 자제위들 개개인 입장을 고려해도 젊고 똑똑하고 아직 어려서 정치적 사고의 경력도 없고 왕에게 절대 충성을 바칠 수 밖에 없고 설령 죽임을 당해도 사고사로 얼버무리고 자제위 집에 재물과 벼슬을 좀 주어 보상하고.
사람 수명이 짧아야 하는이유
근대 정도전을 보면 모순이 잇던거 아닌가요? 백성을위한 왕이라도 왕권이 쌔야 자기하고싶은데로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던 자기혼자 해먹던 할텐데 그 어린 방석을 태자로 새우면 그만큼 왕권이 약해질거같은데여 그리고 지금으로 따지면 어차피 정도전이 비선실세가 되는거아닌가요?
진짜. 외교는, 고구려와 고려가 짱이였음.
진짜 그후에 망한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