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월 27일 실시간방송) 북한 체제를 바로 알고 자유통일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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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เผยแพร่เมื่อ 28 ธ.ค. 2024
- #김길선#North Korea#북한#
70년 이상의 인위적 분단으로 형성된 북한의 모든 이질적 장벽들을 구석구석 성의껏 알려드리는 것으로써 언젠가는 도래할 북한 자유화와 한반도자유통일 시(時) 남북민 사이의 이해와 소통에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이 창을 개설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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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선 기자님 😊
늘 응원하며, 건강관리에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
김길선 기자님, 존경합니다. 요즘의 국내 정치상황을 보면 일말의 답답한 마음을 숨길수가 없는데... 우리 기자님의 냉철한 분석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보전에 대한 열망을 읽을때마다 , 저 또한 각오를 되새깁니다. 친북/친중세력에 대한 일침 항상 감사드립니다.
김길선님 응원합니다~^
늘 경청합니다 ~~^^
김길선 기자님. 대한민국 위태로운 상황 입니다. 탈북민들 모두 모여 더불어민주당과 싸워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주의 파괴에 다 같이 동참해주세요
자느라 라이브 놓침
10대원칙은 기독교 10계명을 따라한거고.생활 총화는 매주 예배 보는거임
황장엽의 KBS 인터뷰(2010.10.17)
KBS "주체사상의 기초를 놓으신 걸로 돼있는데.."
황장엽 "우선 주체사상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김일성 자체가 스탈린주의자인데, 주체사상은 스탈린주의를 민족적 요구에 맞게 적용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건 이론 서기로서 문제를 정리하는 것도 응당히 내가 할 일이고 그걸 내가 체계화하고 뭐 다 맞지 않는 말이라고 봐요
인간중심철학, 그건 내가 개발했다고 해도..
글쎄 내가 혼자서 한 것 보다도 선배들한테 배우고 해서 된 것이지만 하여튼 시작은 내가 한 것은 사실입니다"
황장엽이 인용한 김일성의 만경대혁명학원에서의 발언(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너희들은 황장엽 같은 수정주의 철학자가 되지 말라
황장엽은 진짜 철학박사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조금씩 따다가 조립식으로 글을 만들어낸 조립식 박사이다"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리고, 현대사 증언이라는 엄중한 자리에서 조차 솔직담백하지 못했던 황장엽의 태도는 말을 안하느니만 못했고, 황장엽의 글 빚은 후대의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을 무력 대신에 교화를 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옳을 수도 있습니다.
마땅히 가장 힘써야 할 것은 교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양 지식인사회 일각의 목소리가 대댓글로 걸맞을듯 하네요
"북조선, 비밀회합의 밤" (이영화, 1994)
"나의 체류 예정기간이 다 되어 마지막 학습모임을 갖게 되었다. 지난 번 모임에서 닷새쯤 지난 날이었다. 이번에는 학습모임이라기보다 나를 위한 송별회였다. 그때까지 나는 이 나라의 실정에 대해 여러 가지 배울 수 있었다. 북한 사람들이 문제의 소재와 해결방법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뭔가 도발이 예상되었지만 이번에는 본심을 드러내 보기로 했다.
"당신네들의 생각은 그런 대로 알겠다. 하지만 아무리 이러쿵저러쿵 해 봐야 소용없는 것 아닌가.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공부모임은 의미가 없지 않은가"
돌연 엄숙한 분위기로 변했다.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지배했다. '내 말이 지나쳤나' 생각하고 한 사람 한 사람 표정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험악한 표정을 하고 있다. 리더격인 컴퓨터 기사가 조용히, 그러나 분노를 섞어 말했다.
"우리를 비겁자라고 말하고 싶은가" 나는 침을 삼켰다.
"우리는 재일교포 당신네보다 용감한 지도 모른다.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나 하나만 희생한다면 내일이라도 데모든 뭐든 한다. 하지만 이 나라의 탄압은 장난이 아니다. 가족이나 친족까지 강제수용소로 보내 버린다. 나이든 양친, 처자까지 짐승같은 생활을 시킬 각오가 필요하다. 입장을 바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한국에서는 반체제 시위가 있는데 북한에서는 어째서 없는지 아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남쪽은 데모가 '가능하지만' 북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방안의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지자 사내는 슬쩍 웃으며 말을 맺었다.
"때가 오면 우리도 일어선다. 당신도 일본에 돌아가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길 바란다. 성원(聲援)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최고의 무기가 된다. 그 다음은 북한 민중이 한다"
PS.
북한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한다는 북측의 승인을 받고서 입북한 재일 조총련계 대학교원이 1991년 4월 ~ 12월 기간에 약속과 다르게 평양 해방산호텔 - 대동강호텔 방에서 노동당의 교수요원에게 1:1 개인교수를 받던 시기의 평양 체험수기를 한일 양국에서 출판했습니다
이영화 씨가 공개한 북한 반체제 저항의 불씨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79년간 북녘에서 현재진형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인터넷 공간에서 검색됩니다
이영화 씨는 전향하지 않은 재일 공산주의자들이 결성한 반북 인권운동단체 RENK(구출하라 북한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의 대표이며
미공급 시기의 참상을 외부세계에 최초로 알린 RENK의 초대 대표 김영달 씨가 김정일의 살수에 의해서 살해되자 김영달 씨의 뒤를 이었습니다
RENK가 규합한 재중 탈북청년들이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서 외부정보 유포 및 몰카 동영상을 채증하던 무렵에, 탈북자 주성하의 블로그질은 "안기부는 왜서 불쌍한 탈북자를 희생시키느냐?"라고 궁시렁대며 한국사회의 말없는 다수의 염장을 질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