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도 해태는 타격, 마운드 모두 최강의 해였습니다. 최초로 팀700점을 돌파했고(701점) 팀방어율도 다른 팀들은 전부 4점대 였는데 해태만 2.89로 유일한 2점대 팀방어율을 기록했죠. 그리고 2위와도 승차도 너무 벌어졌었구요. 해태가 4전 전승을 한 원동력은 정규시즌의 모든 기록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큰경기 약한게 아니라 김영덕 감독 운영덕에 전력에 비해 정규시즌 성적이 괜찮았습니다 실제 전력은 해태에 비해 투타가 열세였고 그 실력차가 한국시리즈같은 진검승부에서 나타났던겁니다 학생으로 치면 해태는 원래 머리좋고 공부잘한 학생이고 빙그레는 족집게 일타강사 김영덕 찍어준 내용 달달 외워 단기간에 성적 급상승한 학생. 결국 둘의 표면적 성적은 엇비슷하지만 실제 내공은 해태가 한수위실력
당시 프로야구협회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본래 창단 자체가 바닥에서 구르면서 온갖 모욕을 주려한 것인데 정반대로 고공행진을 했고, 7차전을 치르면서 흥행수입을 노리는데 심판진은 언제든지 편파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고 악만 남아 집중력으로 야구를 하는 해태는 한번이라도 대충 할 수 없었다. 또한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 삼성,롯데의 한국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최동원의 임사적 투구로 삼성이 덜미를 잡혀버린 예도 있으니 웬만하면 7차전 가는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오히려 정권의 입김으로 협회에선 좋아했다고 하죠 어차피 흥행 목적으로 프로야구 만든게ㅡ아니고 최대한 호남 민심을 야구에 묶어둘수가 있었고 영남 충청지역 야구팬들은 해태에 대한 반감으로 아울러 호남에 대한 감정도 안좋아졌으니 DJ와 호남을 고립시키려한 정권의 의도대로 굴러간것이지요 이런 기조는 82부터 전두환 노태우 10년간 이어집니다 DJ로 정권교체되고 타이거스가 다시 우승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린게 우연이었을까요?
@@정봉기-i6v 아니에요. 92년은 빙그레가 타격이 셌을때였습니다. 이정훈 장종훈 이강돈 강정길 강석천이 있었거든요. 이중 장종훈은 홈런 42개였구요. 그리고 1992년 롯데는 똑딱이 부대입니다. 빙그레가 왜 코시에서 다 무너졌냐하면 김영덕감독이 코시때 전략을 ㅂ ㅅ같이 짜서입니다. 1988년 코시때는 해태 vs 빙그레였는데 정규시즌 방어율 6점대 투수가 코시에서 2번 나왔습니다.
th-cam.com/channels/MGrSwDHFGuz0nNNrWPVD5A.html
‘전설의 타이거즈’ 채널이 독립 오픈하였습니다.
타이거즈 야구팬들을 위한 콘텐츠만 올릴 예정이니
구독, 좋아요, 알람설정은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설의 타이거즈’ 채널에서 만나요~
해태팬이지만 타팀 선수로 가장 좋아했던 선수가 이정훈이었음. 91슈퍼게임때도 가장 잘했고.
8090. 한국야구는 해태타이거즈의 시대임
참으로 멋진 추억의 영상이다.;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는 선동렬벽도 있었지만 수비에서 차이났음
역대급 우승세레모니
이 시리즈는 3차전이 백미... 내 생애 가장 짜릿한 역전 승부. 퍼펙트 위기에서 기적같은 역전승...
이순철 찬스에 정말 강한 강타자입니다. 임팩트 짱
맞어요~ 표정은 야구하기 귀찮은거 같이 보이는디ㅋ
감동의 영상...
우승 세레모니가 정규시즌 1승 정도 했을때 하이파이브 ㅋㅋㅋㅋ
코레시리즈가
주말경기보는줄
앤커 먼가 시쿵둥한 목소리 ᆢ
ㅋㅋ
늘 추억의 해태 경기 영상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혹시 91 한국시리즈 3차전 경기도 녹화본이 있으시다면 올려주시는거 부탁드려요! 상대 투수의 퍼펙트를 깨고 (그것도 4아웃 남겨두고) 역전승 하고 코시우승까지 이어졌던 경기여서인지 늘 떠올리게 되네요.
빙그레이글스도 정말 운이 없는 팀인듯...
업셋준우승도 2번이나 있고(1989, 1992).
김영덕 당시 감독의 1984년 뻘짓으로 인한 저주인듯. 그래도 현재의 한화이글스와는 달리 빙그레이글스는 정말이지 강력한 팀이였던건 확실함.
제가 기억하기도 분명
다이나마이트 타선 하면 이글스 였는데
지금은.....
빙그레 4번 준우승팀
92 롯데에게도 졌음
88 89 91 92 모두 한국시리즈진출한 대단한 강팀입니다.
이때는 해태보다 타격능력 출중했고
35년 역사상 타격이 가장 좋았던 시즌이었죠.
그 당시에는 정말 강팀이었습니다.
@@adobemastertutorial4924 빙그레가 엄청 셌던 팀은 맞습니다.
그런데 투수력이 해태에 비해서는 엄청 딸립니다. 단기전이면 투수력이 센 팀이 코시우승을 할수있구요.
그리고 빙그레의 고질적인 문제는 수비였습니다
MBC스포츠
91프로야구한국시리즈4차전
해태타이거즈 대 빙그레이글스
1991.10.13 대전한밭종합운동장
선발투수
한용덕 빙그레 김정수 해태
캐스터 양진수 해설 허구연-김소식
입장관중 9924
해태4승 5 : 4 빙그레4패
MvP 장채근 노지심 .467 7/15
91년도 해태는 타격, 마운드 모두 최강의 해였습니다. 최초로 팀700점을 돌파했고(701점) 팀방어율도 다른 팀들은 전부 4점대 였는데 해태만 2.89로 유일한 2점대 팀방어율을 기록했죠. 그리고 2위와도 승차도 너무 벌어졌었구요. 해태가 4전 전승을 한 원동력은 정규시즌의 모든 기록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태는 멤버들도 좋았고 선후배질서문화가 엄청강했고 군기반장까지있었고 투타가 좋았죠 다이너마이트빙그레 빠따야구삼성보다도 더포스가 강했던팀이 해태죠
해태는 어쩔 수 없다쳐도 92년 롯데한테 져서 준우승한건 빙그레입장에서 너무 뼈아픈 일이었죠
홍현우 선수, 한대화 선수도 모셔서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 (이순철 해설위원과 코감독도)
저게 무슨 우승 세레머니야ㅋㅋㅋㅋㅋㅋ
걍 정규시즌 1승 세레머니고만ㅋㅋㅋㅋ
선동렬 포옹후 선수마다 하이파이브 끋!!!!
전날 3차전도 해태가 8회초 투아웃까지 송진우선수에게 퍼팩트로 지고 있다가 역전한걸로 기억나네요
이 검빨의 기억 때문인지...여름철 나의 출근 할때 입는 옷이 붉은 계열 와이셔츠에 검정 바지....
구장 부시는 수준으로 리모델링했네
'91시즌당시 타격왕을 차지한 원조악바리 이정훈 선수와, 한국프로야구 최초 40홈런의 벽을 깬 홈런왕 장종훈 선수를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빙그레는 80년대의 삼성과 비슷하게 큰경기에서 약하고 해태처럼 팀 전원이 근성있는 플레이엔 못미치는 늘 아쉬운 팀 이었음
큰경기 약한게 아니라 김영덕 감독 운영덕에 전력에 비해 정규시즌 성적이 괜찮았습니다 실제 전력은 해태에 비해 투타가 열세였고
그 실력차가 한국시리즈같은 진검승부에서
나타났던겁니다
학생으로 치면 해태는 원래 머리좋고
공부잘한 학생이고 빙그레는 족집게 일타강사
김영덕 찍어준 내용 달달 외워 단기간에
성적 급상승한 학생. 결국 둘의 표면적
성적은 엇비슷하지만 실제 내공은 해태가
한수위실력
사실 타자들은 나름 제 몫을 했습니다
선동열 공략도 잘 했고
다만 평소 견고해보였던 투수진이
해태 타선을 견디지 못했고
결정적 순간 실투와 수비실책으로 폭망했죠
ㅋㅋㅋㅋㅋㅋ 1991 빙그레 이글스가 투수가 좋았다고? 1991 빙그레이글스는 타격이 극강이었고 투수력은 형편없었던 팀이었다 이 야알못아.
넌 이글스역사상 투수력이 가장 좋았던 연도가 1999년하고 2002년 2006년이라는 사실은 모르고있지?
1:06 성곤이 아부지?
김영덕 감독은
김응룡 감독에게
86. 삼성에서
88.89.91 빙그레에서 모두 졌네요.
아쉽습니다.
그러나 정규리그 우승은 제일 많으니 진정한 명장이라고 하는 응룡 감독님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습니다.
다음 영상은 93년!
th-cam.com/video/xTKZLTYVK0Q/w-d-xo.html 7차전 선동열 투구 하이라이트 영상도 보러오세요 :>
빙그레는 타선만 다이너마이트이지 수비는 행복수비였네. 동열이성 공 잘쳤어도 수비가 안받쳐주니....
1991년 해태는
고정 선발이 선동열-이강철-신동수-송유석
조계현-이광우-김정수-문희수가 고정 선발이 되지 못 한 , 선발이 남아 돌 던 역사상 최강 마운드
유일한 약점이 기동력(역대 타이거즈 도루 최하위 )
역시 이순철 하도우승을 밥먹듯이해서 선수들 별 감흥이없네요ㅋㅋ 그리고 김소식 해설위원님 목소리 반갑네요👍👍
이걸 역전에 재역전 하네 해태~~~ 이러니 열광했지
03:56 4:4인데 3:3 동점이라고 캐스터 실수하네요
1991시리즈는 빙그레가 못했다기보단 해태가 원체 셌음.
당시 프로야구협회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본래 창단 자체가 바닥에서 구르면서 온갖 모욕을 주려한 것인데 정반대로 고공행진을 했고, 7차전을 치르면서 흥행수입을 노리는데 심판진은 언제든지 편파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고 악만 남아 집중력으로 야구를 하는 해태는 한번이라도 대충 할 수 없었다. 또한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 삼성,롯데의 한국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최동원의 임사적 투구로 삼성이 덜미를 잡혀버린 예도 있으니 웬만하면 7차전 가는 일이 있을 수 없었다.
오히려 정권의 입김으로 협회에선 좋아했다고 하죠
어차피 흥행 목적으로 프로야구 만든게ㅡ아니고
최대한 호남 민심을 야구에 묶어둘수가 있었고
영남 충청지역 야구팬들은 해태에 대한 반감으로
아울러 호남에 대한 감정도 안좋아졌으니 DJ와
호남을 고립시키려한 정권의
의도대로 굴러간것이지요
이런 기조는 82부터 전두환 노태우 10년간 이어집니다
DJ로 정권교체되고 타이거스가 다시 우승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린게 우연이었을까요?
와 그래도 무적 선동렬 선수를 두들겨 패는 빙그래
5학년 때네
해태 타이거스는 총 9번의 우승을 했지만 가장 감격적인 우승은 선동열 김성한이 빠지고 시즌초 하위권으로 쳐졌다가 통합 우승을 일궈낸 96시즌이지
개인적으로 88시즌 빙그레 이글스 대 해태 타이거즈 2승 4패로 박빙이었음. 해태가 간신히 코리안시리즈 우승했지.
3:47 2루수가 잡아야지 멀대네
91年 시즌 해태 타이거즈
통산 몇번째 우승 인가요 ?
전라도 광주 김동령 드림
83년 첫우승, 86~89까지 4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1991 우승으로 이때까지는 v6이었네요.
야구장 진짜 무슨 논밭같네
저때 정회열이 지명타자로 나왔나? 장채근이 포수보고 있는데
빙그레는 수비가 안습이었네요
기아랑 해태의 차이가 뭔지?지는게 익숙한 기아
가장 경제력 없는 야구가 91해태임 피타고리안 승률로 85삼성 00 현대 앞지르는데 1점차 승부가 7승18패
참...빙그레랑 삼성은 이때 너무 콩라인을 심하게 탔지요
캐스터 양진수
해설 허구연 김소식
우승했는데 해설위원들 해설 상태가..ㅠ
진짜 92롯데한테 왜 진겨 그때만 이겼으면 롯데는 84년 전두환 정권때가 마지막 우승이 되는건데
실책남발에 수준이 영 ㅋㅋㅋ
야구협회에서 돈 좀 벌게 승리를 스트레이트로 하지 말라고 사정사정... 어림없지 왜 승부조작을 해!
승부조작 없습니다 오해마시길ᆢ
@@김단석산 한번쯤 져서 서울에서 경기하도록 계속 종용했는데 무조건 이겨버렸음.
우물안 개구리 용병도없고 일본 미국팀붙었으면 어땠을까. 항상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봤으면좋았을텐데.
빙그레 해태한테 밥 롯데한테도 밥 해태한테세번준우승 롯데한테도 준우승 김응룡 감독 보소 ㅎ 좋아서 팔돌리시네 ㅎ
역쉬 해태타이거즈!!! 역전의명수!!
빙그레가 해태에게 밥은 맞았는데 롯데 에게 밥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1992년 코시때의 전력은 빙그레가 롯데보다 더 셌고 이글스하고 롯데는 코시에서 만난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유영민-f9x 92년 당시 롯데가 3할 다섯명 나왓자나요^^ 투수는 염종석 혼자 엿지만 신수삼촌 박정태 김민호 전준호 김응국 강성우까지 당시 강병철 감독 별명이 만만디 래요
@@정봉기-i6v 아니에요.
92년은 빙그레가 타격이 셌을때였습니다.
이정훈 장종훈 이강돈 강정길 강석천이 있었거든요. 이중 장종훈은 홈런 42개였구요.
그리고 1992년 롯데는 똑딱이 부대입니다.
빙그레가 왜 코시에서 다 무너졌냐하면 김영덕감독이 코시때 전략을 ㅂ ㅅ같이 짜서입니다.
1988년 코시때는 해태 vs 빙그레였는데 정규시즌 방어율 6점대 투수가 코시에서 2번 나왔습니다.
@@정봉기-i6v 그리고 1992년 롯데우승은 투수를 팔갈아서 이룬것입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빙그레는 타선은 진짜로 강한데 수비가 문제였던 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