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섬.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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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11 ต.ค. 2024
  • 제주 서귀포시 법환동에 위치하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무인도 문화유산재로 그 모양은 성산일출봉과 비슷한 형태의 독특한 모양이고, 지리적으로 절벽에 둘러싸여 있고 절벽위에는 숲이 위치해 있다. 범섬과 멀지 않은 곳에 강정마을이 있다. 이 조용한 아름다운 섬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백제와 신라에 조공을 바치며 독립을 유지한 탐라국이 1105년 고려에 편입되었고 그 때부터 평화로운 제주가 외지인(육지것)들의 지배로 고통을 받게된다. 몽골 원나라의 속국이 된 고려의 무신정권 잔존세략인 삼별초는 강화도를 거쳐 제주까지 쫒겨 오며 결사항전을 위한 요새(항파두리 토성)와 해안 성벽(환해장성)을 세우는 일은 제주 섬사람들의 몫이었으니 그 고초가 많았을 것이다. 만여명의 고려와 몽골 연합군에 삼별초는 1273년 진압되고 그 이후 몽고의 직할령으로 지배를 100년 간 받게 된다. 일본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와 몽고병의 핵심 병기인 말을 키우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춘 전략적 곳이어서 원제국의 14개 목마장 중 하나로 운영된다. 제주도민들은 고려 관료와 원제국의 말 사육 전문가인 목호(牧胡)들로 부터 이중의 수탈을 당했다. 세월이 지나 원이 힘이 빠지고 명나라를 섬겨야 하는 고려에 명이 제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말 2천 필을 요구하여 고려는 제주에 사신을 보내 명의 요청을 전하나 100년 동안 섬을 지배해온 목호세력이 오히려 사신을 죽여버리고 거부한다. 이에 공민왕은 최영을 사령관으로 하는 당시 섬주민 전체 인구에 버금되는 수만의 토벌대를 보내나, 이는 1700여 명에 불과한 목호세력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섬사람들과 피가 섞였다고 보고 그들 까지 섬멸하려 한 계획으로 보인다. 결국 목호 세력은 밀려 밀려 서귀초 법환 포구 앞 바다에 있는 범섬까지 퇴각하고 결국은 범섬 절벽으로 떨어져 자결하거나 생포되어 처형되었다. 범섬의 최후가 있고 나서도 토벌대는 섬을 샅샅이 뒤져 목호 잔당과 연루자들을 모조리 찾아내 처단하였다. 당시 섬 하늘은 까마귀 천지였다 하며 들과 바다에 널린 시신들은 까마귀 밥이 되었다. "칼과 방패가 바다를 뒤덮고 간과 뇌가 땅을 덮었으니 말하면 목이 멘다." 당시의 참상을 묘사한 엣 기록의 문장 한 줄이 그 처절함을 말해주고 있다. 섬 인구의 절반이 죽어간 역사의 한 사건이다.
    출처; '제주 다크투어 목호의 난, 범섬'. 이영철 여행작가의 인문노트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1

  • @유진태-l2e
    @유진태-l2e 5 วันที่ผ่านมา +1

    풍경이 아름다습니다
    잘봐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