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서울을 걷다 -- 옛 서울, 서울사람들 /Walking in Seoul in 1900, Old Seoul, Seoul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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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เผยแพร่เมื่อ 9 ก.พ. 2025
- 1890년대부터 늘기 시작한 외국인 여행객들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오늘의 우리가 도저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모습이었으며 그들이 남긴 여행기마다 기록되어 있는 서울의 악취는 길마다 널려 있는데, 소변이 그 원인이었다.
대로와 소로를 불구하고 모든 서울 거리는 늘 악취가 진동하여 외국인들은 코를 쥐어 싸잡고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한 서양인은 동양인들의 청결의 차이에 대해 “일본인은 몸과 옷이 다 같이 청결하고, 한국인은 옷의 청결함은 고집하면서 몸에는 관심이 없는 반면, 중국인들은 둘 다에 관심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알렌’은 왜 침례교가 한국에서는 정착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성공했느냐를 설명하면서 청결을 그 이유로 들기도 했다. 한국인은 목욕을 싫어하기 때문에 침례교가 뿌리를 내릴 수 없었고,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05년 서울 서린동 근방에 한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생겼지만, 사람이 오질 않아 곧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에 한국인들이 집 안에선 청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 밖에서는 청결에는 오불관언,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바람에 악취가 진동하는 조선의 수도 서울이 되고 말았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냄새에 쉽게 적응하듯이 한국인이야 으레 그러려니 하겠지만 서양인들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