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취직 어렵습니다😢 우리 내 옛날은 사돈의 팔 촌 모두 연출이 있어서 든든 했던 적도 많죠😢 대학 물 먹은 사람들 허파 의 바람 들어서 게을러서 취직 안했죠 아니, 못 했죠 배보다 배꼽이 더 컸으니😢 그래도 그리운 옛날 입니다 정겨워요 밥도 맛있게 먹잖아요😂 밥심이 힘이라고 생각을 했으니
85년이면 학력고사 시절이네요. 전국 광역시에서 인문계에서 중간 정도 해야 후기4년제 대학 겨우 들어가는 시절로 기억나네요. 그것도 재수하고 운이 좋아야 후기 턱걸이 했어요. 전문대 입학생은 후기 편입할수도 있었서 딱히 루저가 되는건 아니였음. 그만큼 학생이 미어터지던 시절이였어요. 당연히 취직도 미어터지던 시절이였습니다. 저때가 일본이 플라자 합의 하던 해인데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시작 년도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반사이익으로 단군이래 최대 호황시절 도래합니다.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 물고다니던 시절이 93년정도까지 지속되다가 금융실명제 한다고 어쩌구 하고 나중에 IMF 시발점이됨. 10년전에 유럽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만 중국다음으로 한국2등 조세회피지역 큰손이였음.
85년은 아니고 3저호황은 86~89년이고요 그때 취업도 많이 뽑고 월급도 급등하면서 소득이 엄청 높아졌죠 집값도 폭등하면서 빈부격차도 커졌지만요 그렇게 90년대 중반까지는 취업이 원활했으나 97년 후반기부터는 180도 달라졌죠 86~96년까지 대졸 취업한 세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재수 좋은 세대같아요
@@이통영-y9v 박정희 말기에 태어나 그 전두환이 시절에 시골농촌의 가난한 집에서 자랐던 나입니다. 공부를 못 한다고 아버지에게 맞고 촌지를 안 준다고 선생님들에게 뒤지도록 맞으면서도 어디 한 군데 하소연도 못 하고 편도 2.6Km, 왕복 5.2Km나 되는 구불구불한 시골 비포장길과 산을 두개나 넘어서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나입니다.
@@STARGATE_SGC 이거 보세요 편도2.6킬로 같으면 불과30분이면 걸어갈수 있는데 무슨 엄살을 떨어쌌소 시골에서 그 정도면 아주 가까운 거리 아니요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 하루 6킬로씩 일부러 운동 삼아 걷는 사람들도 많은데 오히려 돈안들이고 운동하면 좋은것 아닌가요 박정희 같은 분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가 12킬로(30리)나 떨어져 있어서 하루 24킬로씩 왕복으로 걸어다니고 통학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4년제 소학교) 그리고 당신이 머리나쁘고 게을러서 공부 못한 것을 누구탓을 해쌌소 그런식으로 본인의 무능과 모자람을 사회탓을 하면 되겠습니까 오히려 당신의 한심함을 스스로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만 해도 선생이라 하면 사회의 모범이 되는 분들인데 요즘은 교사라 해도 평범한 직업인에 불과하지만 당시만 해도 심지어 여교사가 화장만 요란하게 해도 크게 비난받을 때입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시절에 선생이 촌지 안준다고 학생을 때렸다면 아주 악질적인 인간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경찰이나 교육청에 제보를 하지 그랬습니까 그 시절에는 그런 제보 한통이면 당사자는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바로 매장됩니다 그만큼 엄한 도덕성이 요구되던 시절입니다 전두환 시절 경북 모벽촌의 시골에서 고교 교감 선생이 학부형과 간통을 한 사실이 폭로된 적이 있습니다 이게 소문이 나자 간통죄는 친고죄임에도 제3자가 검찰청에 제보를 해서 당사자는 즉각 구속된 후 겨우 합의를 하고 풀려났는데도 학교에서 파면되고 퇴직금 연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그 사람은 그후 먹고 살길이 막연한 관계로 멀리 떨어진 대구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20여년간 근무했다고 합니다 지금 같으면 공직자가 파면되어도 퇴직금 연금을 절반을 받게 됩니다 요즘은 간통죄는 폐지되었지만 폐지되기 전에는 간통현장에서 붙잡혀도 끝까지 잡아떼고 심지어 두남녀가 벌거벗은 상태에서 정액까지 채취한 상태에서 끝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잡아떼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에는 대부분 불구속상태로 기소돼 재판을 시작한것입니다 그런데 전두환 시절만 해도 간통죄는 증거고 나발이고 간에 제보만으로도 바로 구속되던 시절입니다 1983년에 최고인기 여배우 정윤희 씨가 (당시 27세) 중소기업 사장이던 43세의 유부남과 자기집(아파트)에서 바람을 피우다가 현장을 덮친 유부남의 부인과 경찰관들에게 적발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그 부인은 일부러 방송사에 제보를 해서 언론사 카메라까지 동원했는데 현장에서 두사람은 옷을 입은채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는데 처음부터 정윤희가 엉엉 울면서 용서를 비는 장면이 생중계 하듯이 뉴스에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두사람은 함께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 상태로 있다가 그사장이 부인과 합의를 하고 3일인가 있다가 함께 풀려났는데도 정윤희는 그대로 연예계를 떠나고 그 사장과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덕성이 높은 시절이었습니다
83년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 장학금으로 5만원을 받은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래서 85년도에 30만원이면 시골에서도 생각보다 큰돈은 아닌데, 가끔보면 전원일기 작가분들이 당시 현실 보다 어렵게 묘사하는 것 같군요. 전원일기에 배경이 되는 곳과 멀지않은 곳에서 중학교 시절까지는 보냈는데, 어쨌든 그래도 옛날 생각나고 좋습니다.
시골에서 안 살아서 헛소리를 하시는가 봅니다 1980년대 초반에 30만원이면 짜장면이 5백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까 그걸로만 비교하면 현재 가치로 3백만원 정도 하겠지요 그런데 저 시절에 농촌과 도시의 수준차이가 너무 커서 농촌에서는 현금이 귀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현금1만원도 귀하게 여길 때입니다 그래서 현금품귀 현상으로 어지간한 거래는 현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애들 학원비 교회 십일조도 현물로 내고 병의원 한의원 진료비도 연말에 몰아서 후불 현물로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때만 해도 시골 한의사들은 초등학교 정도 나온 도제식 한의사들이 많았는데 대한민국에서 한의과대학이 정식으로 설립인가 받고 개교한 것이 1970년인가 그렇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시골에는 의대 치대를 나오지 않고 조수출신 도제식 의사 치과의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로 그 지역에 한해 (주로 읍면지역) 진료허가를 받은 한지의(限地醫)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의사 공병우 선생님도 의대를 다닌적이 없습니다 (회고록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81년 대학입학정원을 대폭늘려 80년대중반 일시적으로 취업난일때가 있었음. 특히 문과계통은.. 물론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항상 일정기간 취업못하는 부류는 있어왔음.. 그거 자체는 있을수 있는데 대학졸업하고 1년남짓 취업안된다고 낙심해서 귀향해서 농사짓는다는 설정은 무리가 있음. 보통은 부모들이 내려오라해도 도망다니면서까지 안내려오는게 일반적..
김대중 김영삼 시절에도 선거때는 공짜로 술사고 밥사고 현금 박치기로 표를 사는 일이 비일비재 입니다 저때만 해도 선거때마다 전국 식당 술집 인쇄소(불법 홍보물이 난무함)가 호황을 누리고 했습니다 얼어붙은 경기가 선거만 되면 풀리고 심지어 노태우와 3김이 맞붙은 1987년 대선후에는 물가폭등으로 전국에서 집값이 크게 폭등했습니다 1987년 6월에 대구시 수성구에서 2천만원 하던 집이 1988년 6월에 1억에 거래됐습니다
@@sanglee7877 1980년대에는 대구공고만 나와도 어지간하면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같은 곳에 정규 생산직 사원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2003년에 보니까 울산 현대자동차의 5년차 생산직 사원 연봉이 1억원 입니다 창원 대우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의 전설적인 기능의 명장 김규환(20대 국회의원 1956년생) 씨는 초등중퇴의 학력으로 사환으로 입사했다가 사장급으로 승진한후 퇴사했지요
@@sanglee7877 1980년대에는 공고만 나와도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자동차 같은 곳에 다 들어갔습니다 2003년에 보니까 울산 현대자동차의 생산직 사원 연봉이 1억원 입니다 창원 대우중공업의 전설적인 기능직 사원 김규환씨(20대 국회의원 1956년생)는 초등중퇴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사환으로 입사후 사장급을 역임한 후 퇴사를 했습니다
옛날엔 국민연금이고 뭐고 노후 복지 자체가 없다보니 자식한테 노후를 기댔죠 여자는 취업도 못하던 시대라 무조건 아들 아들 했고요 지금 50대~60대들이 저 시대에 부모한테 시달린 자식세대들이라 자기 자식(2030대)한테 만큼은 뭐든지 다 해주고 노후는 알아서 하려고 하죠
요즘 전원일기에 빠져삽니다! 옛날이 너무 그립네요~
모두 젊고 참 좋은시절이었네요..
드시는 연기 뿐아니라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진짜 가족같고 이웃같아요..
마음이 너무 아프다. ㅠㅠ😢
아버지가 본의아니게 자식 가슴에 대못을 박으셨네..
수사반장봤더니 ㅋㅋ; 유튜브가 계속전원일기를 보여줘서 봤더니 재밌어서 요새 다시보기 시작했네요 ㅋㅋ 복길이동생낳는거 까지 보고왔어요 ㅋㅋ
우체부아저씨가 끝까지 있어주는 오지랍에 놀라고 갑니다ㅋㅋ
난 전원일기보면 맘이 너무 편해요
오대양물산이 나올줄이야 3분19초 ㅎㄷㄷㄷ 1985년도 인데
영남이 왜이케 귀엽냐❤
정겨운 시골풍경 화면으로 들어가고 싶네여
영상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때는 공무원 하라고 해도 안하던시절입니다 ㅠㅠ 우리삼촌도 공장 일하기 싫어서 면서기 했는데 .. 계속 그만두려고 하셨는데 마지막 까지 퇴직하셔서 연금 300백 넘게 받으시면서 돈에 아쉬움 없이 사시네요
정감
최고 👍
저 시절은 취업연령제한이 공무원시험에도 존재하던 시절이죠
나두..저시절이 그립네요
누렁이가 울던 그 시절이 그립네요😢
지금 TV식사장면은 밥을 먹는것도 아닌 깨작거리는데…..저당시에는 정말 식사하는것처럼 드시네요…
그렇내요 😅 전원일기 보면 선후배 연기자들이 아닌 가족같은 분위기임
유인촌은 정말로 배 채우는 중
ㅋㅋㅋ😂
촬영전에 일부러 굶고들 오신듯 ㅎ 먹방이 따로 없네요
한때는 소품으로 나온 음식 먹으면 재수없다는 말이 연예계에 있었을걸요
시골에서 쌔빠지게 없는돈 쥐어 짜면서 대학보내면 졸업하고 취업도 못하고 세월은 계속 지나가고 부모마음 울화통 터지제
5분15초.저 시절 삼십만원이면 지금은 열배 됩니다.9급직원이나 순경 초임자 월급 10여만원 하던시절
이때 취직 어렵습니다😢
우리 내 옛날은
사돈의 팔 촌 모두 연출이 있어서
든든 했던 적도 많죠😢
대학 물 먹은 사람들
허파 의 바람 들어서
게을러서 취직 안했죠
아니, 못 했죠
배보다 배꼽이 더 컸으니😢
그래도
그리운 옛날 입니다
정겨워요
밥도 맛있게 먹잖아요😂
밥심이 힘이라고 생각을 했으니
취업 잘되던 시절입니다 대학나온 비율도 적을때라서 대기업 사무직 가던 시절입니다 저때는 공무원 하라고 해도 안하던 시절이었습니다 ㅠㅠ
저 때가 어렵다면 지금은 뭐냐??
@@쇼펜하우어-b4g 저때는 할꺼없으면 면서기(9급) 순경 하던 시절이었지요 ....
대기업경쟁률 80~90년대 3:1
현재 200:1
80년초반이면 모를까 85년이면 88특수 타기 시작할때라 취업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는 아닐거같은데
저때는 대학나오면 ㅠㅠ자동으로 대기업 사무직 가던 시절인데 대학나온 사람들이 별로 없을때라 ...
저시절부터도 공과대학이 취업이 잘 되었네요~~^^;;
전일드라마 김회장댁 먹방씬이 많더라. 넘 맛있겠다. 요.
덕수 아버지!!
세상에서 중요한게 남의 눈 인가요?!;; 아닙니다
다 소용없는일.
중요한건 나 자신의 충만인걸요... 덕수.. 안스럽네요
품어 주셔야 날개짓을 하지요❤❤
진짜 조연배우들이 쟁쟁하시네요 다들 개성있고 연기며 발성이며 대단하군요
비교하고 내가 정한 기준으로 자식평가한 내 모습이 있네요ㆍ아들의 내뜻대로 안되는것도 안타깝고 , 공대외엔 그 시대도 취직잘안된것도 알게되네요ㆍ고김지영님 도. 뵙네요ㆍ시대마다 이런 고민 공감됩니다ㆍ지금에서야 느끼네요ㆍmbc도 참 너그러웠네요
예나 지금이나
사는거 팍팍하고
없는살림에
자식공부 시키고
취업걱정에
울고 웃는건 여전하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지나온것 다 주님의 은혜.
다들 힘을 냅시다.
정말... 정말... 눈물나는 현실.
그 시대의 아픔의 젊음들...
그 시대 대학 나와서 취업 힘들었던 분들...
지금 모두 행복하시라 믿습니다.
저때는 공무원 하라고 해도 안하던시절입니다 ㅠㅠ 우리삼촌도 공장 일하기 싫어서 면서기 했는데 .. 계속 그만두려고 하셨는데 마지막 까지 퇴직하셔서 연금 300백 넘게 받으시면서 돈에 아쉬움 없이 사시네요
공무원 경쟁율까지 역대급으로 낮았던 저 시절에 대학나오고 취업 못하는 놈이면 너무 폐급인데
낮은정도가 아니라 걍 손들면 공무원 시켜줌 ㅋㅋ 레알임
근데 저러는건 공무원은 걍 직업이 아니라고 여겼으니 저랬을듯
저시절엔 너무 박봉이라 겸업금지규정이 있건없건 부업뛰는 공무원 많았음
일할수있는곳은 많지요 대학교 졸업했다고해서 돈많이주면서 계급도 높은곳만 쳐다보고있으니까 예전이나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참으로 한결같네요
85년이면 학력고사 시절이네요. 전국 광역시에서 인문계에서 중간 정도 해야 후기4년제 대학 겨우 들어가는 시절로 기억나네요.
그것도 재수하고 운이 좋아야 후기 턱걸이 했어요. 전문대 입학생은 후기 편입할수도 있었서 딱히 루저가 되는건 아니였음.
그만큼 학생이 미어터지던 시절이였어요. 당연히 취직도 미어터지던 시절이였습니다.
저때가 일본이 플라자 합의 하던 해인데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시작 년도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반사이익으로 단군이래 최대 호황시절 도래합니다. 지나가던 개도 만원짜리 물고다니던 시절이 93년정도까지 지속되다가 금융실명제 한다고 어쩌구 하고 나중에 IMF 시발점이됨.
10년전에 유럽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만 중국다음으로 한국2등 조세회피지역 큰손이였음.
아부지 죄송합니다
(❤동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보고가욧❤)
저 시절 대학 졸업하고 취업 못했다면 .... 그 놈 엉뚱한 짓 하면서 그냥 놀고 있는 건데.. 이것 조차도 아니면 그냥 무능력 그 자체.
저때는 공무원 하라고 해도 안하던 시절입니다 ..대학나오면 대기업 사무직 바로 가던 시절입니다 ㅠㅠ
김용건씨도
젊으셨네요~~
오대양물산?
저때부터 벌써 '문송합니다'가 시작됐구나... ㅠㅠ
식사도 정말 맛나게드시네요.87년에 9째막내가 3대독자왜 왜며느리로 시집살이좀했죠ᆢ 안방구조 똑같아요.
80년대 중반에도 대학나와서 취업하기 어려웠었나 보구나!!
재미있게 볼께요. 감사합니다
유인촌은 리얼로 식사를 하네 ㅋㅋㅋㅋ
그렇다고 너무 몰아세우는 것도 좋게보이지는 않네..너무 상황이 안좋고 정신적으로 힘들면 잠시 쉬면서 재정비하고 필요한 공부를 보충하던 작은 일이라도 찾아보기라도 해줘야지...
어라 저 가방 루이비똥 아니여 ㅋㅋㅋ
❤❤❤❤❤❤
첫장면 저분,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반갑네요.
와 김용건 기럭지봐... 대박 ㅋㅋㅋ
오승룡 김지영 커플^^
두분다 작고하셨쥬~
@mothermoneylife TBN 길따라 노래따라^^
용식이는 농사꾼이라 밥을엄청잘먹네 하,,,😅하,,,😅하,,,😅,
저때 취직 못한거는 진짜 문제가 있는거같다...대학 나와서 공부못하면
은행가던 시절
아니에요~
상고에서 공부잘해야
시중 1금융,보험사 들어가던시절
이었어요
어디서 헛소리듣고왔나 은행은 공부 좀 해야 갈수있다
복길이동생순길이보고십네요
Arlete
Eu te amo
Põe na minha televisão 📺
살구나무집아들..가스시키면 그랬지요..골목들어서 쭉오다가 파란대문집 ..이러면 다 찾아오던 시절
그리운 85년도
진짜 다들 먹는거ㅜ같이 먹네요
저렇게 적당히 자시면 됐을 소주 댓병의 폐해가 너무 많았..
저 시절에는 취직해봤자 월급 몇 푼 안 된던 시절. 차라리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해서 돈 버는게 성공하는 길이었지
저 시절은 대기업도 취직 잘되던 시절인데
올림픽전후로 (올림필특수로)그냥 쓸어가는 분위기라서 개나소나 취직 잘됐고 그게 97년 imf직전까지 이어져서 나도 기억하기로 94년당시 88학번 4학년들 중하권대학도 공대는 대기업갔고 인문도 중견기업에 들어가는 걸 봤기에 우리나라 초고호황으로 아는데 85년에는 취직이 안됐나요?
85년은 아니고
3저호황은 86~89년이고요
그때 취업도 많이 뽑고 월급도 급등하면서 소득이 엄청 높아졌죠
집값도 폭등하면서 빈부격차도 커졌지만요
그렇게 90년대 중반까지는 취업이 원활했으나 97년 후반기부터는 180도 달라졌죠
86~96년까지 대졸 취업한 세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재수 좋은 세대같아요
그쵸...여자94학번 남자90 91학번이 불운이죠
저때는 대학 나온사람 별로 없던 시절이라 ㅠㅠ 대학나오면 대기업 사무직 자동으로 가던 시절입니다 그리고 저때는 공무원 안하던 시절입니다
둘째아들 장관두 되고 김회장님 자식농사 대박이시네 ㅎㅎㅎ학
덕수 역할로 맡으신 분이 임영규 맞습니까
김철화 배우입니다.
이세대가 딱80년대 학번 86세대들인데.. 대한민국 최호황기에 청년시절 보내서 취직잘되고 자산도 많이쌓은세대
저때 부터 imf직후까지 대기업경쟁률은 2:1 3:1도 안됬음..
지금 아래 세대들은 대기업가려면 경쟁률 몇백대 일이고 서연고나와서도 노는사람도 많음
삶의난이도 차이는 뭐
고두심 김혜자는 저시대에 써클렌즈낀것처럼 눈동자가 크네
85년도에 4년대 나왔으면 왜 취직을 못해 ㅎ
오대양 사건 나기 전이라 오대양이란 말이 나오나 보네
근데 저시절 대학나오는 사람이 몇퍼센트 안됐을텐데 대학졸업해도 취직이 안될수가 있나?
저때는 공무원 하라고 해도 안하던 시절입니다 ..대학나오면 대기업 사무직 바로 가던 시절입니다 ㅠㅠ
저때도 취업난이 심했나 보네 ㅠㅠ
저때는 공무원 하라고 해도 안하던 시절입니다 ..대학나오면 대기업 사무직 바로 가던 시절입니다 ㅠㅠ
옛날 현대전자 명화 그려진 월급명세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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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장 만 있어도 취업되던 시기다 . 취업이 안된다니
저 때도 인서울 특정과 그중에서도 학점 높아야 대기업 들어갔음
심지어 대학진학률 30%던 시절인데 그 중 2년제는 대학으로 치지도 않았음
의경가서 그냥 경찰지원 하면 그냥 붙던 시절
동사무소 공무원-남자무능력 상징, 지금으로 치면 준백수
지금 생각해보면 전두환 시절은 예수님이 재림한다 해도 다시 오지않을 단군이래 최고의 태평성대입니다 전두환은 하나님이 가난하고 불쌍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돈걱정 물가 걱정 범죄걱정 라도걱정없이 마음 편하게 살라고 보내준 천사이자 의인입니다
@@이통영-y9v 박정희 말기에 태어나 그 전두환이 시절에 시골농촌의 가난한 집에서 자랐던 나입니다. 공부를 못 한다고 아버지에게 맞고 촌지를 안 준다고 선생님들에게 뒤지도록 맞으면서도 어디 한 군데 하소연도 못 하고 편도 2.6Km, 왕복 5.2Km나 되는 구불구불한 시골 비포장길과 산을 두개나 넘어서 걸어서 학교에 다녔던 나입니다.
@@STARGATE_SGC 이거 보세요 편도2.6킬로 같으면 불과30분이면 걸어갈수 있는데 무슨 엄살을 떨어쌌소 시골에서 그 정도면 아주 가까운 거리 아니요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 하루 6킬로씩 일부러 운동 삼아 걷는 사람들도 많은데 오히려 돈안들이고 운동하면 좋은것 아닌가요
박정희 같은 분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가 12킬로(30리)나 떨어져 있어서 하루 24킬로씩 왕복으로 걸어다니고 통학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4년제 소학교)
그리고 당신이 머리나쁘고 게을러서 공부 못한 것을 누구탓을 해쌌소 그런식으로 본인의 무능과 모자람을 사회탓을 하면 되겠습니까 오히려 당신의 한심함을 스스로 널리 퍼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절만 해도 선생이라 하면 사회의 모범이 되는 분들인데 요즘은 교사라 해도 평범한 직업인에 불과하지만 당시만 해도 심지어 여교사가 화장만 요란하게 해도 크게 비난받을 때입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시절에 선생이 촌지 안준다고 학생을 때렸다면 아주 악질적인 인간인데
그게 사실이라면 경찰이나 교육청에 제보를 하지 그랬습니까 그 시절에는 그런 제보 한통이면 당사자는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바로 매장됩니다 그만큼 엄한 도덕성이 요구되던 시절입니다
전두환 시절 경북 모벽촌의 시골에서 고교 교감 선생이 학부형과 간통을 한 사실이 폭로된 적이 있습니다
이게 소문이 나자 간통죄는 친고죄임에도 제3자가 검찰청에 제보를 해서 당사자는 즉각 구속된 후 겨우 합의를 하고 풀려났는데도 학교에서 파면되고 퇴직금 연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그 사람은 그후 먹고 살길이 막연한 관계로 멀리 떨어진 대구에서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20여년간 근무했다고 합니다 지금 같으면 공직자가 파면되어도 퇴직금 연금을 절반을 받게 됩니다
요즘은 간통죄는 폐지되었지만 폐지되기 전에는 간통현장에서 붙잡혀도 끝까지 잡아떼고
심지어 두남녀가 벌거벗은 상태에서 정액까지 채취한 상태에서 끝까지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잡아떼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에는 대부분 불구속상태로 기소돼 재판을 시작한것입니다
그런데 전두환 시절만 해도 간통죄는 증거고 나발이고 간에 제보만으로도 바로 구속되던 시절입니다
1983년에 최고인기 여배우 정윤희 씨가 (당시 27세) 중소기업 사장이던 43세의 유부남과 자기집(아파트)에서 바람을 피우다가 현장을 덮친 유부남의 부인과 경찰관들에게 적발된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그 부인은 일부러 방송사에 제보를 해서 언론사 카메라까지 동원했는데 현장에서 두사람은 옷을 입은채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출동한 경찰에 연행됐는데 처음부터 정윤희가 엉엉 울면서 용서를 비는 장면이 생중계 하듯이 뉴스에 그대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두사람은 함께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 상태로 있다가 그사장이 부인과 합의를 하고 3일인가 있다가 함께 풀려났는데도 정윤희는 그대로 연예계를 떠나고 그 사장과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도덕성이 높은 시절이었습니다
저때는 취업난이라뇨 대학만 나오면 무조건 기업체에서 데려가려하고 면접비받고 신입연봉은 2억하고햇음
2억은 무슨요
개뻥 치시네 ㅋㅋ
님 저때 2억이면 얼마인줄 아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네 2억이 뉘집 개이름인가
대졸자 취업못하는거는 병신중에 상병신이지만
요즈음 농촌보다 더 잘 사는 시골이네요
저시절이나 지금이나 이공계아니면 취직 어렵구만요!!
저땐 대학진학률이 지금의 절반도 안되었고
대졸자 뽑는 대기업 숫자도 훨씬 적었음
지금도 전체 일자리중 대기업 비중이 14%밖에 안되는데 저땐 더 낮았고
반면 매년 100만명씩 태어난 청년들끼리 빡터지게 경쟁하던 시기임
저 시절 전문대는 취업율이 거의 100%였고 심지어 여성은 상고만 나와도 어지간한 은행에 다 들어갔습니다 은행 우체국 동사무소 시청 민원실 창구에는 여상 나온 직원이 근무했고 인문계 여고졸업한 여성도 한글타자 칠줄 알면 어지간한 회사에 다들어갔습니다
오대양물산이 사이비종교 거기아닌가요 다른데인가 요 순간놀라서요
거기 맞습니다. 1984 창립 민속공예품 수출 수입품 판매점 운영 1987년 집단 자살 1990년 해체
생각 했던게 맞네ㅋㅋ 설마 사이비 종교가 나올까 했는데
눈이 얼마나 높으면 저떄 대학나와도 무직이냐 ㅋ
이당시엔 취업도 잘됬다던데 그게 아닌가보네요? 드라마로도 나올정도니…
아버지가 아들만 못하네 아들은 참 착실하고 근면한 사람 같구만
아버지가 쯔쯔쯔
83년도 초등학교 졸업할 때 장학금으로 5만원을 받은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래서 85년도에 30만원이면 시골에서도 생각보다 큰돈은 아닌데, 가끔보면 전원일기 작가분들이 당시 현실 보다 어렵게 묘사하는 것 같군요.
전원일기에 배경이 되는 곳과 멀지않은 곳에서 중학교 시절까지는 보냈는데,
어쨌든 그래도 옛날 생각나고 좋습니다.
시골에서 안 살아서 헛소리를 하시는가 봅니다 1980년대 초반에 30만원이면 짜장면이 5백원 정도 하던 시절이니까 그걸로만 비교하면 현재 가치로 3백만원 정도 하겠지요
그런데 저 시절에 농촌과 도시의 수준차이가 너무 커서 농촌에서는 현금이 귀하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은 현금1만원도 귀하게 여길 때입니다
그래서 현금품귀 현상으로 어지간한 거래는 현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애들 학원비 교회 십일조도 현물로 내고 병의원 한의원 진료비도 연말에 몰아서 후불 현물로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때만 해도 시골 한의사들은 초등학교 정도 나온 도제식 한의사들이 많았는데 대한민국에서 한의과대학이 정식으로 설립인가 받고 개교한 것이 1970년인가 그렇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시골에는 의대 치대를 나오지 않고 조수출신 도제식 의사 치과의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로 그 지역에 한해 (주로 읍면지역) 진료허가를 받은 한지의(限地醫)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안과의사 공병우 선생님도 의대를 다닌적이 없습니다 (회고록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국딩시절 85년도에 짜장면 500 짬뽕600 롯데리아 디럭스버거(빅맥크기)500원 그당시 만원이면 꿈의 용돈 이였음
30만원이 1년에 한번 받는것도 아니고 용돈차원에서 수시로 받는돈이라면 대단히 큰돈이죠. 30만원이면 당시 왠만한 논 한마지기에서 1년 수확해서 얻는 소득을 넘는돈입니다.
@@akagi42 이분도 무식한 말씀을 하는데 논1마지기면 200평인데 상답(上畓)의 경우는 1년소출이 쌀80kg정도입니다 지금 마트에서 소매가격으로 약20만원입니다
1980년대 시골에서 30만원이면 어지간한 집 한채 값입니다
김두식 대감
농촌은 너무 다 가깝게 오픈하고 지내니 남과의 비교를 안할수가 없는듯. 살림이야 어차피 다 비슷하고 자식 농사만은 다르길 바라는. 그게 유일한 자랑거리인. 아들 취업 못하는것도 좀 한심하긴한데 그렇다고 저렇게 닥달하는 아버지도 좋은 아버진 아닌듯.
저당시 85년도에 3저호황시대에 서울권대학에서 놀고 먹고 졸업해도 웬만하면 대기업 골라서 가는 시절에 취업이 안돼?
그러게 80년초반이면 모를까 85년이면 88특수 탈기 시작할때라 취업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는 아닐거같은데
81년 대학입학정원을 대폭늘려 80년대중반 일시적으로 취업난일때가 있었음. 특히 문과계통은.. 물론 지금보다는 덜했지만 항상 일정기간 취업못하는 부류는 있어왔음.. 그거 자체는 있을수 있는데 대학졸업하고 1년남짓 취업안된다고 낙심해서 귀향해서 농사짓는다는 설정은 무리가 있음. 보통은 부모들이 내려오라해도 도망다니면서까지 안내려오는게 일반적..
3저호황-> 86~89
그 전에는 다 힘들었음
그게 너희들이 좌파 운동권 뽑아서 그런거야
하 저때부터 취업난, 농촌 일손부족, 인구부족을 외쳤는데
잘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더 못사는 세상이 되버렸네 ㅜ
저 시절에도 이과였네
애좀 써보라니..... 청탁.....
저시대에 4년제 나와서 취직못하면 팔푼이 아닌가요?
진짜 상병신중에 상병신임
선거바람에공술이라...다들선거법위반으로혼나봐야알지.
김대중 김영삼 시절에도 선거때는 공짜로 술사고 밥사고 현금 박치기로 표를 사는 일이 비일비재 입니다 저때만 해도 선거때마다 전국 식당 술집 인쇄소(불법 홍보물이 난무함)가 호황을 누리고 했습니다 얼어붙은 경기가 선거만 되면 풀리고 심지어 노태우와 3김이 맞붙은 1987년 대선후에는 물가폭등으로 전국에서 집값이 크게 폭등했습니다 1987년 6월에 대구시 수성구에서 2천만원 하던 집이 1988년 6월에 1억에 거래됐습니다
열 손꾸락
ㅋ
저당시 4년제나와서 백수면
진짜개노답아닌가
지금도 대학 졸업하고 백수라면 진짜 한심하지
저땐 대기업 숫자가 적어서 들어가기 힘든건 매한가지였음
저때 청년들은 매해 100만명씩 태어났고 80~90년까지 대졸자가 급증하기 시작하던 시기임
저당시 사범대만 나와도 교사했음 그냥 무능력 했겠지
양반집
5대양 집단자살 핬잖아 ㄷㄷ
밥 신에서 박순천 부엌에서 공급만하고 얼굴도 못 보여주네. 푸하하.
삼저 호황 시대에도 취업이 어려웠나??
저 시절 전문대는 취업율이 거의 100%였고 심지어 여성은 상고만 나와도 어지간한 은행에 다 들어갔습니다 은행 우체국 동사무소 시청 민원실 창구에는 여상 나온 직원이 근무했고 인문계 여고졸업한 여성도 한글타자 칠줄 알면 어지간한 회사에 다들어갔습니다
@@이통영-y9v imf 이후에도 전문대 취업율은 거의 90% 이상이었어요
다만 죄다 생산직이나 중소라서 문제인거지
지금도 2년제 나와서 마음만 먹으면 생산직 중소는 다 들어갑니다
@@sanglee7877 1980년대에는 대구공고만 나와도 어지간하면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같은 곳에 정규 생산직 사원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2003년에 보니까 울산 현대자동차의 5년차 생산직 사원 연봉이 1억원 입니다
창원 대우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의 전설적인 기능의 명장 김규환(20대 국회의원 1956년생) 씨는 초등중퇴의 학력으로 사환으로 입사했다가 사장급으로 승진한후 퇴사했지요
@@sanglee7877 1980년대에는 공고만 나와도 현대중공업 대우중공업 현대자동차 같은 곳에 다 들어갔습니다 2003년에 보니까 울산 현대자동차의 생산직 사원 연봉이 1억원 입니다
창원 대우중공업의 전설적인 기능직 사원 김규환씨(20대 국회의원 1956년생)는 초등중퇴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 사환으로 입사후 사장급을 역임한 후 퇴사를 했습니다
아무리 아들 대학 나와 취업 못했다고
너무 오버인 듯
현실에선 이 정도는 반응은 아닐 듯
그냥 표현 덜하고 속으로 부글 끓겠지
인물이 좋으니 돈많은 여자들이 달라붙겠구만 ㅋㅋ
1985년이면 엄청 취직 잘될때 아닌감?
오대양. 지금의 신천지급이지 아마 허허허 세상좋구먼..갠안타 어차피 인간은 죽는데..조카치 살아도 어차피 한세상. 복종해라.. 돈 같다 받쳐라
전원일기 CD로 나였으면 좋겠어요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합니다
자식공부시킨게 덕보고 자식자랑하려고 시켰나? 참 어리석은 애비네요..
지금의 가치관으로 살아보지않은시대에 잣대를 들이대고 어리석다 말하면 안된다.
옛날엔 국민연금이고 뭐고 노후 복지 자체가 없다보니
자식한테 노후를 기댔죠
여자는 취업도 못하던 시대라 무조건 아들 아들 했고요
지금 50대~60대들이 저 시대에 부모한테 시달린 자식세대들이라
자기 자식(2030대)한테 만큼은 뭐든지 다 해주고 노후는 알아서 하려고 하죠
옛날 우리네 삶이 그대로 묻어 있네요
농촌에서 고생해서 뒷바라지 한 지식이 백수 부모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조 우리 다 어리석은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