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목사님~ 목사님의 설교를 한 번 듣고싶었는데 딱 하나 있군요.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는 기회를 주시고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필요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배철현 교수의 책에 나오는 샤갈의 이라는 그림이 생각이 나네요.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그림에 대한 주석이라는 설명과 함께 해석을 했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모두 표현된 그림 같네요. 건장한 청년 이삭은 벌거벗긴채 단 위에 결박도 되지 않고 심지어 미소를 머금은듯한 그림과 뒤에 십자가와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사라의 슬픔까지 다 담아낸 그림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 작품평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설교를 듣고나니 몇가지 질문이 있네요. 첫번째 17분 이후 요한복음 3:16의 독생자를 독자로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외아들이시니 독자는 맞지만 '독생자'라는 의미는 단지 그뜻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 단어의 번역에는 숙고의 흔적이 보이는데 독생자는 '스스로 난 자'라는 의미를 번역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목사님 의견을 여쭙고 싶네요.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브라함에 대한 축복의 최종 목적이 가장 구체화 된 구절을 18장 17절부터 19절까지로 보아도 될지요.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함" 이라는 말씀이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부합하는 축복의 목적이자 명령으로 받아드려집니다. 세번째는 아브라함이 이삭의 부활을 확신했다는 말씀을 새롭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시 이 믿음은 아브라함의 선험적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되나요? 사라의 태가 죽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열린 것을 부활의 사건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경험이 이삭에 대한 부활도 믿지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이건 좀 오늘 설교와는 동떨어진 질문일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충성스러운 종에 대한 이야기가 혹시 목사님의 유투브 동영상이 있나요? 저는 누가복음의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이 엘리에셀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디. 나사로의 히브리식 이름이 엘리에셀이잖아요? 예수님께서 비유에서 이 거지의 이름을 특정하신 이유,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 아브라함이 아들처럼 생각했던 엘리에셀 성경 속에 등장하는 많은 청지기들 중 그 사명을 가장 충실하게 감당한 엘리에셀을 예수님께서 비유에 나사로로 등장시켜 듣는 청중과 지금의 독자들에게 청지기적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 해 볼 수 있도록 하실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이런 해석도 가능할까요? 질문이 좀 많죠? 저 같은 사람이 목사님의 성도라면 귀찮으시겠습니다. ㅎㅎㅎ
저는 질문 많이하시는 성도가 제일 좋습니다. 그만큼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한다는 뜻이니까요. 1. 요한복은 3:16절에 독생자라고 번역된 단어를 보면 "모노기네" 오직하나 또는 오직태어난 이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는 스스로 난자라고 해석하기 힘들지만 한자어를 번역하면 그럴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어 원문을 통해서 생각해보아야 할것이라 믿습니다. 2. 아브라함에 대한 축복은 창 12장에서 시작되고 말씀하신 것처럼 창 18장에서 구체화 됩니다. 잘 보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좋은 관점이십니다. 3. 아브라함의 부활의 신앙이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는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부활신앙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논쟁이 있습니다. 때문에 부활 신앙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미스터리 입니다. 하지만 사라의 죽은 태를 살리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부활 신앙을 가졌다는 추론도 말이되고 좋은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뒷받침할 공신력있는 학문적 문서나 교수가 있다면 더 확고해 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설을 세우고 논쟁하면서 견문을 넓혀가는것이 학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학문적 견해 감사합니다. 4. 엘리에셀과 나사로를 연관지어 생각하신 것으뉴저도 생각해보지 못한 좋은 견해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양자였던 충성스런 종 엘리에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고 나사로의 이야기가 많지 않아 좀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겠습니다. 좋은 견해이십니다.
목사님 강해 들으면서 주님의 큰 은혜를 깨닫고 묵직하면서도 편안해집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5-6개월전만해도 무속신앙을 했었는데 지금은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큰 도움이 있어 한발씩 나아갑니다 감사드립니다 🙏
항상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교재를 하시고 주 안에서 이기는 자가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내 영혼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주님 만이 ..
요즘 찬양을 부르며 눈물납니다
목사님의 하나님 말씀 찾아 듣는게 편안하고 감사합니다.
좋은 간증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목사님 목소리로만 강해를 듣다가 영상으로,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의 모습을 이렇게 뵈오니 참 좋네요. 목사님 강해 오늘도 감사함으로 잘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
존경까지는 과분히십니다.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하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항상 처음부터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의 함께하심이..
목사님을 통해 바라보게 됩니다.
말씀을 나누어 주시며.
밝히심에..
저로 주변을 밝히는 기름이 되어지게 하시니..
모두의 축복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고 그 축복을 세상과 나누시길 축원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이방의 빛이 되십시오.
굿모닝 목사님~
목사님의 설교를 한 번 듣고싶었는데 딱 하나 있군요.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는 기회를 주시고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필요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다시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몇 년 전에 읽었던 배철현 교수의 책에 나오는 샤갈의 이라는 그림이 생각이 나네요.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그림에 대한 주석이라는 설명과 함께 해석을 했는데 목사님의 설교가 모두 표현된 그림 같네요. 건장한 청년 이삭은 벌거벗긴채 단 위에 결박도 되지 않고 심지어 미소를 머금은듯한 그림과 뒤에 십자가와 예수그리스도 그리고 사라의 슬픔까지 다 담아낸 그림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 작품평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설교를 듣고나니 몇가지 질문이 있네요.
첫번째 17분 이후 요한복음 3:16의 독생자를 독자로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외아들이시니 독자는 맞지만 '독생자'라는 의미는 단지 그뜻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 단어의 번역에는 숙고의 흔적이 보이는데 독생자는 '스스로 난 자'라는 의미를 번역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목사님 의견을 여쭙고 싶네요.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브라함에 대한 축복의 최종 목적이 가장 구체화 된 구절을 18장 17절부터 19절까지로 보아도 될지요.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함" 이라는 말씀이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부합하는 축복의 목적이자 명령으로 받아드려집니다.
세번째는 아브라함이 이삭의 부활을 확신했다는 말씀을 새롭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혹시 이 믿음은 아브라함의 선험적 경험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되나요? 사라의 태가 죽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열린 것을 부활의 사건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 경험이 이삭에 대한 부활도 믿지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이건 좀 오늘 설교와는 동떨어진 질문일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 충성스러운 종에 대한 이야기가 혹시 목사님의 유투브 동영상이 있나요? 저는 누가복음의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이 엘리에셀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디. 나사로의 히브리식 이름이 엘리에셀이잖아요? 예수님께서 비유에서 이 거지의 이름을 특정하신 이유,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 아브라함이 아들처럼 생각했던 엘리에셀 성경 속에 등장하는 많은 청지기들 중 그 사명을 가장 충실하게 감당한 엘리에셀을 예수님께서 비유에 나사로로 등장시켜 듣는 청중과 지금의 독자들에게 청지기적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 해 볼 수 있도록 하실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이런 해석도 가능할까요?
질문이 좀 많죠? 저 같은 사람이 목사님의 성도라면 귀찮으시겠습니다. ㅎㅎㅎ
저는 질문 많이하시는 성도가 제일 좋습니다. 그만큼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이 한다는 뜻이니까요.
1. 요한복은 3:16절에 독생자라고 번역된 단어를 보면 "모노기네" 오직하나 또는 오직태어난 이라고 직역할 수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는 스스로 난자라고 해석하기 힘들지만 한자어를 번역하면 그럴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그리스어 원문을 통해서 생각해보아야 할것이라 믿습니다.
2. 아브라함에 대한 축복은 창 12장에서 시작되고 말씀하신 것처럼 창 18장에서 구체화 됩니다. 잘 보셨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좋은 관점이십니다.
3. 아브라함의 부활의 신앙이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는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부활신앙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논쟁이 있습니다. 때문에 부활 신앙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미스터리 입니다. 하지만 사라의 죽은 태를 살리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부활 신앙을 가졌다는 추론도 말이되고 좋은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뒷받침할 공신력있는 학문적 문서나 교수가 있다면 더 확고해 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설을 세우고 논쟁하면서 견문을 넓혀가는것이 학자들이 하는 일입니다. 학문적 견해 감사합니다.
4. 엘리에셀과 나사로를 연관지어 생각하신 것으뉴저도 생각해보지 못한 좋은 견해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양자였던 충성스런 종 엘리에설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고 나사로의 이야기가 많지 않아 좀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겠습니다. 좋은 견해이십니다.
@@BibleTV 답변 감사드립니다. 아주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가더라.
창세기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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