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도 철도청 기관조사로 재직중 이 터널에 대해 지도기관사님께 들은적이 있습니다. 지도기관사님 께서 70년도 부산지방철도청 재직시절 말이 많은 터널 이었다고 하십니다. 하자터널이라고. 이 터널 폐쇄이유가 영상 마지막 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배수문제. 터널을 잘못 뚫었다고. 지하수가 계속 터져나오고 터널내부 균열도가고. 붕괴우려가있어 흙막이 공사후 터널내부를 석재 돌덩이로 채우고 콘크리트로 막았다고 합니다.
형제원7년있던 사람입니다 원래 형제원 뒷산이 냉정산이라 불렀죠 한문으로 써면 차가운 냉 자에 우물 정자 그래서 형제원 시성안에 소대뒤 곳곳에 여름이면 차가운 물이 솟는 작은 약수터같은 셈이 있었죠 특히 취사장과 아동27소대앞 취사장 위편 건물뒤 중간에 여름에도 차가운 서리가 올라오는 셈이있어 여름에 소대장 수발용 물을 떠다가 갖다 받친 기억이 납니다
저기 터널 바로 입구에서 미꾸라지 비슷한거나...작은 물고기 도롱뇽 잡고 제가 놀았던데에요.. 제가 78년 생이고 주례 바로 옆 개금쪽이 집이었는데 80년대 초반에 저기 터널쪽에 자주가서 놀았던 기억이 선명해요... 그 당시에 터널에 물이 꽤 차있던 기억이 있어요...터널 앞에도 웅덩이가 꽤 넓고 깊었던 기억이 나구요.. 캄캄하고 갑자기 깊어진다고 무서워서 터널안에는 못들어가본 기억이 나네요... 사실이에요.
집간다고 저곳 자주 다녔었는데 그 밑이 터널이였군요 형제복지원 아이들의 탈출구였다면 아마 지금 저곳을 개방한다면 많은 유골이 발견 되겠죠 형제복지원 생존자나 많은 분들이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되었던 폭력 살인 강간 학대에 대해 아직도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1960년대말까지 현재 주례럭키아파트 부지에 휘발유 등 기름을 보관하는거대한 원형탱크들이 여러곳에 설치된 저유소가 있었습니다. 이 저유소는 초량에서 송유관으로 유류를 이송하기도 하고, 철도를 이용한 유조화차로 수송하가도 했습니다. 이후 저유소가 폐쇄되면서 가야역에서 경부선 철도 밑으로 통과하는 주령터널을 이용한 철도수송이 필요없게되어 폐쇄되었습니다. 저유소부지는 현재의 아파트가 건축되기전에는 신진지프(뒤에 거화로 사명변경) 주례공장으로 이용되다가, 공장을 경기도 지역으로 이전되고, 주례럭키아파트가 그곳에 건축되었습니다.
초 중 고를 사상구 주례동에 살면서 지금 보여지는 동굴 내부에서 고기를 잡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전에 지나다니던 입구에 집이 생긴건 뭐....이전엔 공장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같기도 하고 영상 내용에 구멍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닙니다. 기억상 초등학교 때니까 4~5학년땐가 그때까지만 해도 기차 선로와 터널 입구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물이 있었고 밖 빛이 들어오는데까지 들어가 고기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제 나이가 50세니 계산해보면 아실듯요. 여튼 아직도 있다니 대박입니다.
일제강점기 말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한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해 부산, 경성, 평양 세 곳에 지어진 "조차장" 이라 불리는 일종의 철도 물류센터 시설의 일부입니다. 현재도 부산 가야역과 서울 수색역, 평양에 가면 굉장히 방대한 철도 차량기지가 있는데, 과거 조차장 시설들의 흔적 입니다.
저 터널은 1940년대 일제가 부산조차장(가야조차장)건설시 같이 만들었다는 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주례 경부선 아래 철길로 연결된 터널이며 그 당시 아래 철길이 가야조차장에서 위 터널을 거쳐 형제복지원 앞쪽 경부선 아래까지 가설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사상역까지 연결할려고 했으나 그 전에 해방되고 말았지요. 1950년 6.25 전쟁의 발발로 석유소비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1951년도에 현 주례럭키아파트 자리에 미군 공병대에 의해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rea Oil Storage COmpany 코스코)의 사상저유소가 건설되었으며 가야조차장과 사상저유소를 연결하는 선로를 위 터널과 철로를 이용하여 만들어 사용했었습니다. 사상저유소 저유탱크는 13개 정도 되었으며 초량동 3부두 옆 초량저유소와 경부선 철길을 따라 가설된 송유관2선로로 연결되어 경유와 빙카C유를 공급받아 저장하였으며 가야조차장으로 연결된 철로를 통해 전국 각지로 석유를 수송하기도 하고 가까운 군 부대에서는 드럼통으로 직 수령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1964년도에 대한석유공사가 울산에 준공되어 원유를 수입하여 정제유를 생산함에 따라 부산항을 통해 정제된 유류를 수입 저장하는 시설인 초량 저유소와 사상저유소 시설은 불필요 하게 되었고 1965년도에 폐쇄되게 됩니다. 그 후로 위 철길과 터널도 같이 폐쇄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뭣도 모르고 형제복지원 있던 자리에 지어진 아파트에서 자랐는데 유독 사건사고가 좀 잦았던게 기억이 나네요... 1~2년전에 이 영상 썸네일을 보고 어라 좀 익숙한데 싶어서 들어왔다가 그 아파트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지 알아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그래서 집값이 쌌던거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 동네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10~20대들이 형제복지원이 있었던 곳이라는걸 모르고 자라는 것 같더라구요
저희집도 그랬어요. 그 자리 아파트로 이사간 뒤부터 사업 망하고 아빠 수술하시고. 같은 동 아파트 사람들 자살하거나 사업 망하고 암걸리고. 결국 집이 망해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갔는데. 아빠가 이사하고 난 뒤 말씀이 그 집에서 귀신 많이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가끔(대학생때라) 집에 가면 흉흉한 꿈 꿨네요. 이사나오고 형제복지관 자리인거 알았어요.
자막 만드시는 분이 부산 출신이 아닌가봐요 ^^ 6:30 에 인터뷰 하시는 분이 '다부' 라고 하시는데. 자꾸, 딱 으로 자막을 다셨네요. 다부는 다시란 뜻의 부산 사투리 입니다. "자꾸 거기서 나오니까" 가 아니라 "다시 거기서 (돌아) 나오니까" 라는 뜻이고 "높은 줄 알고 딱 나오더라고" 가 아니라 "높은 줄 알고 다시 나오더라고" 가 됩니다.
개금초등학교 옆인데 당시에 그것을 담력 훈련처럼 간 큰아이들은 저기를 왕복하면서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영상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곳을 개발하여 와인터널이나 시원한 동굴로 개발하면 부산 경제와 주변 경제도 살릴 수 있는데 부산에 발전에 관심 없는 부산시......
아주 옛날 어릴때 개금동에 미나리 밭이라고 있었는데 거기에 기차 터널이 완전 방치된채 있었거든여? 거기 터널에도 물이 차 있어서 친구들과 뗏목(아주조잡한 ㅋㅋ) 만들어서 탐험 해보자 하고 들어가다 물도 깊고 너무 깜깜하고 .... 너무 무서워서 입구에서 몇미터 들어가다 포기한 기억이 ㅎㅎㅎ 제가 말씀 드린 그 터널이 같은 주령터널(개금쪽)이 맞을겁니다. 지금 개금쪽 터널 입구 있었던곳은 낮은 저지대였는데 개발하고 뭐하고 하면서 다 매꿔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거에요 ~ 그래도 영상에서 주례쪽 터널 입구 있던곳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ㅎㅎ 주례쪽에 사는 친구들이랑 놀러 그쪽에도 자주 갔었어 주례쪽 터널 입구도 자주본 기억이 ㅋㅋ
입구가 주례쪽과 개금쪽이 있는데 개금쪽에서(개금초등학교 졸업 88년) 83년부터 89년까지 살았고 개금쪽입구인 가야창공터(지금은 우체국 물류센터)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이야기한 개금쪽 터널쪽마을(철돗길마을이라고 당시에는 불렸습니다)친구들과도 놀았고 터널부근에서 개구리잡고 놀았죠 주례쪽은 엄니가 마침 그위 방직공장에서 일해서 가끔 놀러 다녔네요 주례쪽 입구는 당시 정말 판자촌이였습니다 전쟁후 역사드라마에서나 나오는 60년대 판자촌이였습니다. 살던 사람입장에서 궁금하신거 있다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주례ㅋ제가 어렸을때 살던 동네..저 터널은 주례굴다리 밑 영상 나오는곳에서 부터 시작이구요..물이 많이 찬이유는 그길이 개금초등학교 앞 다리 로 연결되는걸로 아는데 거기가 원래 복개천 입니다.물이 찰수 밖에 없쥬..그뒤 한일아파트 근처 가 옛 형제복지원 자리 이구요,.도망쳐 나온애들이 터널안으로 도망가다 물이 많이 찬곳에 빠져 죽었다 라는 소문도 많았고..혹시 촬영 갈때 못느끼셨나요? 유독 굴다리동네만 음기가쎄고 으스스 하고 한이 맺힌 그런 느낌요..아마 오래 있고 싶진 않았을거 같네요..
아마 안전 문제 해소 및 운행환경 개량을 위한 이설이 아니였을까 싶네요. 위 터널의 경우 이설 시기 자체가 1970년대로 상당히 오래 전이고, 새로운 눈에 띄는 시설 건설이나 부지점유 없이 기존 철도부지 내에서 진행되는 소규모의 공사였기에 현재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터널 내에 물이 상당히 높이 차 있다는 말로 보아 경부선 아래쪽으로 교차해 지나가는 터널로 보이는데, 반대쪽 터널은 교차점이 없어 비교적 구배가 작은 평평한 터널이기 때문에, 침수 문제가 두드러지는 상행 터널만 이설하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때 선로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구배를 감소시켜 동력차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더 긴 터널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항공 샷을 보시면,, 막힌 입구 뒤에 10층이 넘는 아파트가 들어 서 있습니다. 아파트를 건설하는데 터널을 그냥 두고 그 위에 짓지는 않아요,,즉 그 아파트를 지으면서 그 터널은 붕괴를 시켜서 더 밑으로 지반을 파서 지지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막힌 부분에서 얼마 안가서 터널을 붕괴시키고 더 밑으로 지반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따라서 현재 저 터널은 존재하지 않고 끊겼다고 보는게 맞음.
저도 여기 알꺼 같은데요. 개금살았거든요. 국민학교 4~6년 이었을때 터널 바깥에서 터널에서 나오는 물이 많았어여. 거기서 물고기(붕어) 잡는거 구경하고 겨울에는 썰매 탔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도 79년에서 82년사이 쯤 될꺼 같네요. 터널안에는 물이 있어서 들어갈수 없었고 터널 바깥에서 놀았어요. 저는 주례쪽은 모르고 개금쪽에서 놀았어요.
형제복지원과 위 터널을 연관 지으려고 하는데 별 연관이 없습니다, 두 지역의 위치가 좀 가까이 있다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형제복지원 아이들의 탈출 경로는 경부선철길도 있고 가야로도 있고 뒤편 백양산도 있는데 꼭 집어서 위 터널만 이야기 할 이유가 없습니다. 관심 유발용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내나이 47세 태어난곳이 주령터널 상행선 하행선 중간에 집이있었지요 하행선은 지금도 터널이 있고 거기서 미꾸라지 많이 잡고 놀았지요 우리집 기준으로 주령터널 상행선은 제가 태어날때부터 막혀있었고 터널 입구까지 고무공장이 즐비했었는데 7~8살때쯤 고무공장에 엄청 큰 불이나서 영상에 보이는 높은곳에서 아래로 내다보며 불구경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뒤로 고무공장은 없어졌지요 그리고 형제복지원은 그 복지원 원장 아들이 2명 있었는데 둘째가 저랑 동창이고 그위에 형은 우리형과 동창이었는데 우리형이 형제복지원 큰아들 따라 놀러도 가고 했었는데 집이 형제복지원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완전 집이 궁궐처럼 되어있었다고 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거기가 뭐하는데인줄 몰랐는데 다 커서 부랑아들 아니 멀쩡한 사람도 잡아다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노동시 키고 집단구타에 살인까지 저지른 악명높은 곳인지 잘몰랐네요 항상 형제복지원 지나 산에 가재잡으러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지나다 보면 감옥같은 창살에 파란 죄수복같은걸 입은 사람이 항상 불쌍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그런데인줄도 모르고 겁없이 지나다니고그앞에서 놀기도 했었는데 참...
갑자기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22살 부산 토박이, 한번도 저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부산에서 나고 자라셨고, 외할아버지도 전쟁 이후로 부산에 쭉 사셨습니다. 계속 부산에 사시면서 택시 기사까지 하셨으니 부산 관련해선 아는 게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다음에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형제복지원 맨 꼭대기는 교회가 있었고 가끔 이웃주민들을 초청해서 영화관람도 하였는 제기억에 모세 영화를 봤던것을 생각됩니다. 원생들은 머리를 빡빡밀고 마른머즘으로 가득했어며 저희들을 부러운 눈빛이였으며 긴장되어 보인걸 기억됩니다. 교회중앙에는 박인권원장 사진이 걸려있었고 반장들은 파란줄무니 체육복과 노란완장 잘다듬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국민학교 시절이였지만 왠지 무서운 느낌이였습니다. 지금도 생생합니다. 저는 50대 중반 주례 개금토박이로 70년대 형제복지원 천막시대부터 근처살아서 잘알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과 가해자 처벌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아맨
@@쏘니-u7z ㅋㅋㅋㅋ
치맨
@@bulkkeun-i 재미있냐?
@@bulkkeun-i 개념없네 잼민ㅅㄲ가
형제복지원 사건이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 주령터널이 주요 소재로도 쓰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뛰어다니면서 발굴해내는 부산의 역사의 흔적, 시민으로서 기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공포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형제복지원&제주4.3 사태를 영화소제로 쓸려고 시도한 감독이나 작가가 있다고 들었지만 자료가 거의없거나 앞뒤가안맞고 뒤죽박죽이라 힘들다고 들었어요
옥수역 귀신 영화요 !
1996년도 철도청 기관조사로
재직중 이 터널에 대해
지도기관사님께 들은적이 있습니다.
지도기관사님 께서 70년도
부산지방철도청 재직시절
말이 많은 터널 이었다고
하십니다. 하자터널이라고.
이 터널 폐쇄이유가
영상 마지막 에서도 말씀하셨듯이
배수문제. 터널을 잘못 뚫었다고.
지하수가 계속 터져나오고
터널내부 균열도가고.
붕괴우려가있어
흙막이 공사후 터널내부를
석재 돌덩이로 채우고
콘크리트로 막았다고 합니다.
헐
완전 똑똑이
헉 ㅠㅠㅠ
이게 팩트인듯
오오....
형제원7년있던 사람입니다 원래 형제원 뒷산이 냉정산이라 불렀죠 한문으로 써면 차가운 냉 자에 우물 정자 그래서 형제원 시성안에 소대뒤 곳곳에 여름이면 차가운 물이 솟는 작은 약수터같은 셈이 있었죠 특히 취사장과 아동27소대앞 취사장 위편 건물뒤 중간에 여름에도 차가운 서리가 올라오는 셈이있어 여름에 소대장 수발용 물을 떠다가 갖다 받친 기억이 납니다
@미이키 보상이 아니라 배상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보상은 정당한 행위에 대한 건데 그건 명백한 인권침해가 일어난 위헌적인 행위였으니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시길
고생하셨습니다 ㅠ 국가에게 차고 넘칠 보상을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아 지금은 백양산인데 그당시는 냉정산이었나요?
저기 터널 바로 입구에서 미꾸라지 비슷한거나...작은 물고기 도롱뇽 잡고 제가 놀았던데에요.. 제가 78년 생이고 주례 바로 옆 개금쪽이 집이었는데 80년대 초반에 저기 터널쪽에 자주가서 놀았던 기억이 선명해요... 그 당시에 터널에 물이 꽤 차있던 기억이 있어요...터널 앞에도 웅덩이가 꽤 넓고 깊었던 기억이 나구요.. 캄캄하고 갑자기 깊어진다고 무서워서 터널안에는 못들어가본 기억이 나네요... 사실이에요.
그때 복지원 존재 했었겠네요.
@@adventurer8510 아뇨 없었을껄요. 근처 슬럼가였지 싶은데
미꾸라지인지 먼지 큰물고기도 있었을껄요. 아마존 늪지같은 그런 느낌? 아무튼 쓰레기더미와 함께 신비했던 느낌이였음.
개금3동 터널입구쪽이 물이 연못처럼 넓고 깊고해서 겨울엔 썰매도 타고 동굴입구쪽에서 물고기도 잡고 했습니다.
동굴안엔 땟목 비슷한것도 있어서 그것도 타고 놀았는데...
헐..이제서야 동영상보고 댓글보고 너무 놀라 글적습니다. 저도 그때 기찻길 옆 넓은 공터에서 잠자리도 잡고 터널 앞 쪼매난 개울에서 개구리도 잡고 놀았어요^^ 고향사람 넘 반갑네요~
태어나서 부산에 그렇게 살았어도 몰랐던 묻혀진 사건들이 이렇게 있었다니 이분 정말 윤시원님 콜라보 해서 묻혀진 사건 제대로 조사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사해보셨으면x 조사해주셨으면
형제복지원사건
재조명하여야함
나 주위성인2명 부산에서 깜쪽같이 사라졋음
현재도 유골도 못찾았음
주령터널안에서유골이 나올려나
형제원관련자들 끝까지 찾아서 삼족을
멸하여야 함
소리소문없이 폐쇄한건 아마 그런이유들이 클거같네요 부패한 정부때문에 에휴
@@반사다 죽어서도 이름은 남는구나 ㅈ두환 ㅋㅋㅋㅋ
@@반사다그래 재평가해서 악랄한 짓거리를 더 들어내야지
왠지 무섭다... 저거 열면 유골나올거 같음..
그냥 일제강점기때 지어진것들은 하나같이 분위기가 음침함
@효린 뼈
경부선 건설이 강점기때임
@@QNA581 네
@서아 머리뼈
@@lovely37888 사람의 모든 뼈가 유골 입니다^^
집간다고 저곳 자주 다녔었는데 그 밑이 터널이였군요 형제복지원 아이들의 탈출구였다면 아마 지금 저곳을 개방한다면 많은 유골이 발견 되겠죠 형제복지원 생존자나 많은 분들이 형제복지원에서 자행되었던 폭력 살인 강간 학대에 대해 아직도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지만 진전이 없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복바을거여
삼과고인의 명복을빕니다(?)
@@Tlqkf-이노 웃냐?
영화로 제대로 만들어졌으면 하네요
1960년대말까지 현재 주례럭키아파트 부지에 휘발유 등 기름을 보관하는거대한 원형탱크들이 여러곳에 설치된 저유소가 있었습니다. 이 저유소는 초량에서 송유관으로 유류를 이송하기도 하고, 철도를 이용한 유조화차로 수송하가도 했습니다. 이후 저유소가 폐쇄되면서 가야역에서 경부선 철도 밑으로 통과하는 주령터널을 이용한 철도수송이 필요없게되어 폐쇄되었습니다. 저유소부지는 현재의 아파트가 건축되기전에는 신진지프(뒤에 거화로 사명변경) 주례공장으로 이용되다가, 공장을 경기도 지역으로 이전되고, 주례럭키아파트가 그곳에 건축되었습니다.
정답입니다
거화가 바로 지금의 KG모빌리티, 즉 쌍용차지요
@@MrBruceKorea "쌍용자동차"의 원 뿌리는 경인지방에서 다수 운행된 버스제작사인 "하동환자동차"입니다. 이 회사는 "동아자동차"로 사명이 변경되었다가, "거화"를 인수 합병한 후 "쌍용자동차"가 되었습니다.
벌써 주례럭키아파트 재건축 들어갈려고 안전진단 합격받은상태네요
주례살면서 처음 들어본 얘기입니다. 너무 신기한 얘기예요.
초 중 고를 사상구 주례동에 살면서 지금 보여지는 동굴 내부에서 고기를 잡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전에 지나다니던 입구에 집이 생긴건 뭐....이전엔 공장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같기도 하고
영상 내용에 구멍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닙니다. 기억상 초등학교 때니까 4~5학년땐가
그때까지만 해도 기차 선로와 터널 입구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물이 있었고 밖 빛이 들어오는데까지 들어가
고기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현재 제 나이가 50세니 계산해보면 아실듯요. 여튼 아직도 있다니 대박입니다.
@@ohku9497 ㄷㄷㄷ 저 이사가기 전에 거기 살았었는데 ㄷㄷ
저희 집이라 생각하니...!!!!
반도보라가 1976년인가 쯤에 지어졌으니 년도도 맞는군요 ㄷ
@@ohku9497 지금 우리집이넼ㅋㅋㅋ
일제강점기 말 중일전쟁을 시작으로 한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해 부산, 경성, 평양 세 곳에 지어진 "조차장" 이라 불리는 일종의 철도 물류센터 시설의 일부입니다. 현재도 부산 가야역과 서울 수색역, 평양에 가면 굉장히 방대한 철도 차량기지가 있는데, 과거 조차장 시설들의 흔적 입니다.
저 터널은 1940년대 일제가 부산조차장(가야조차장)건설시 같이 만들었다는 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주례 경부선 아래 철길로 연결된 터널이며 그 당시 아래 철길이 가야조차장에서
위 터널을 거쳐 형제복지원 앞쪽 경부선 아래까지 가설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사상역까지
연결할려고 했으나 그 전에 해방되고 말았지요.
1950년 6.25 전쟁의 발발로 석유소비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1951년도에 현 주례럭키아파트
자리에 미군 공병대에 의해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rea Oil Storage COmpany 코스코)의
사상저유소가 건설되었으며 가야조차장과 사상저유소를 연결하는 선로를 위 터널과 철로를
이용하여 만들어 사용했었습니다. 사상저유소 저유탱크는 13개 정도 되었으며 초량동 3부두
옆 초량저유소와 경부선 철길을 따라 가설된 송유관2선로로 연결되어 경유와 빙카C유를
공급받아 저장하였으며 가야조차장으로 연결된 철로를 통해 전국 각지로 석유를 수송하기도
하고 가까운 군 부대에서는 드럼통으로 직 수령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1964년도에
대한석유공사가 울산에 준공되어 원유를 수입하여 정제유를 생산함에 따라 부산항을 통해
정제된 유류를 수입 저장하는 시설인 초량 저유소와 사상저유소 시설은 불필요 하게 되었고
1965년도에 폐쇄되게 됩니다. 그 후로 위 철길과 터널도 같이 폐쇄되게 되었습니다.
존경합니다
난 왜 주령터널을 주량터널로 검색했냐..어쩐지 영상에 술이 가득하더라..
이렇게 알기힘든걸 취재해주셔서 감사한데 걱정돼요ㅠㅠㅠㅠ 항상 몸조심하시면서 취재해주세요
진짜 조심하세요
그늘진 세월속에 형제복지원을 보면서 그시대의 암흑함과 역사의 터널을 보면서 뭔가 착찹한 마음이 드네요 백병원근처 보면 건너편 산언덕에 길쭉 길쭉 하게 있었던 형제복지원 건물이 마치 교도소을 연상케 했던 나의 젊은 시절에 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밤이면 용접불이 계속번쩍번쩍
무섭습니다..
좋다.... 복잡한 도시에서 이런 신비한(?)장소들 찾는거..넘내스탈..
어릴 때 뭣도 모르고 형제복지원 있던 자리에 지어진 아파트에서 자랐는데 유독 사건사고가 좀 잦았던게 기억이 나네요... 1~2년전에 이 영상 썸네일을 보고 어라 좀 익숙한데 싶어서 들어왔다가 그 아파트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지 알아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그래서 집값이 쌌던거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이 동네에서 자라는 대부분의 10~20대들이 형제복지원이 있었던 곳이라는걸 모르고 자라는 것 같더라구요
저희집도 그랬어요. 그 자리 아파트로 이사간 뒤부터 사업 망하고 아빠 수술하시고. 같은 동 아파트 사람들 자살하거나 사업 망하고 암걸리고. 결국 집이 망해서 다른 집으로 이사 갔는데. 아빠가 이사하고 난 뒤 말씀이 그 집에서 귀신 많이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가끔(대학생때라) 집에 가면 흉흉한 꿈 꿨네요. 이사나오고 형제복지관 자리인거 알았어요.
자막 만드시는 분이 부산 출신이 아닌가봐요 ^^ 6:30 에 인터뷰 하시는 분이 '다부' 라고 하시는데. 자꾸, 딱 으로 자막을 다셨네요. 다부는 다시란 뜻의 부산 사투리 입니다. "자꾸 거기서 나오니까" 가 아니라 "다시 거기서 (돌아) 나오니까" 라는 뜻이고 "높은 줄 알고 딱 나오더라고" 가 아니라 "높은 줄 알고 다시 나오더라고" 가 됩니다.
다부나 대반에 라고 보통 말하죠 ㅋㅋ 다부 나오드라고 대반에 나오드라고
마 니뜨급나 개이쉐이야
다부는 '다시'보다는 '도로'가 더 정확한 설명이예요
말짱도루묵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원상태로 되돌리다)
다시=반복할때
도로=원래대로
개금초등학교 옆인데 당시에 그것을 담력 훈련처럼 간 큰아이들은 저기를 왕복하면서 재밌게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영상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곳을 개발하여 와인터널이나 시원한 동굴로 개발하면 부산 경제와 주변 경제도 살릴 수 있는데 부산에 발전에 관심 없는 부산시......
저희 아부지가 개금초 졸업생
@@haaaaaa4535 아휴 반갑네요 ..그냥 안부전해 주세요.^^
저 동네에 살고 있는데 저 터널이 있단 것도 몰랐네요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형제복지원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부산태종대 예전 80년대에 길따라 가보면 산 기슭 지하 콘크리트 벙크가 있었지요. 그게 괘 컸던 걸로 기억하는데 찾아서 역사유적지로 쓰면 좋을 듯
일제시대에 일본군이 만든 것으로 보이던데?
소중한 제보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다비줌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취재해보고 싶은데 구체적인 장소 등을 알 수 있을까요? 메일 주소 남겨드립니다 lee88@busan.com
더 쉽게 찾자면은 지적도보면 흔적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철도는 지적도상 지목이 "철"로 나오므로 "철"자 찾으시면 됩니다.
한진 주유소 밑에 있는거 말하나 보네?
옛날 얼라때 햇불에 랜턴들고 깊숙이 들어가 놀고 했는데^^
부산은 일본처럼 미스터리한 해결 안된 일들이 많네
부산이 그런게 좀 많긴 하더라구요
저 여기 어릴적 살앗었는데
기차다닐때부터 저기서 놀먼서 도룡뇽 잡고 놀앗는데... 저한테 인터뷰왓음 100%리얼 전부 대답햇을텐데
뭐라고 답하심?
@@user-ft8lm7sr6s 무슨말임?
@@신준섭-p4n 인터뷰 왔을때 어떻게 답하심?
@@user-ft8lm7sr6s 아니 ㅋㅋ 왓으면 대답잘햇을거라구요.. 저기앞에살았었거든요 ㅎㅎ
@@신준섭-p4n 아
주례에 11년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 :O 신기하네요
아주 옛날 어릴때 개금동에 미나리 밭이라고 있었는데 거기에 기차 터널이 완전 방치된채 있었거든여? 거기 터널에도 물이 차 있어서
친구들과 뗏목(아주조잡한 ㅋㅋ) 만들어서 탐험 해보자 하고 들어가다 물도 깊고 너무 깜깜하고 .... 너무 무서워서 입구에서 몇미터 들어가다 포기한 기억이 ㅎㅎㅎ
제가 말씀 드린 그 터널이 같은 주령터널(개금쪽)이 맞을겁니다.
지금 개금쪽 터널 입구 있었던곳은 낮은 저지대였는데 개발하고 뭐하고 하면서 다 매꿔져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거에요 ~
그래도 영상에서 주례쪽 터널 입구 있던곳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ㅎㅎ 주례쪽에 사는 친구들이랑 놀러 그쪽에도 자주 갔었어 주례쪽 터널 입구도 자주본 기억이 ㅋㅋ
67년도 부터 85년 까지 주례2동 에 살아습니다
당시 기찻길 뒷쪽에 형제복지원(그당시엔 몰랐음)
이 있었고
저희집과 형제복지원 사이에 기찻길이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그 터널이 주령터널 이였던것 같습니다
터널이고 뭐고 그 주위가 그립네요..
1:44 주례 왕굴다리..
여기서 돈 안빼겨본놈 없을정도로..
양아치들 많았음..
주례동 39년 살아본 1인입니다.
영상으로 보니 정겹네요..
@@QNA581 영상에 보신곳이 왕굴다리 맞습니다.
전 아직도 여기 근처 살고 있어요.
www.walkview.co.kr/m/1236
ㄹㅇ 양아치 형냐들 많았음 개무서웠는데
입구가 주례쪽과 개금쪽이 있는데
개금쪽에서(개금초등학교 졸업 88년) 83년부터 89년까지 살았고
개금쪽입구인 가야창공터(지금은 우체국 물류센터)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이야기한 개금쪽 터널쪽마을(철돗길마을이라고 당시에는 불렸습니다)친구들과도 놀았고 터널부근에서 개구리잡고 놀았죠
주례쪽은 엄니가 마침 그위 방직공장에서 일해서 가끔 놀러 다녔네요
주례쪽 입구는 당시 정말 판자촌이였습니다
전쟁후 역사드라마에서나 나오는 60년대 판자촌이였습니다.
살던 사람입장에서 궁금하신거 있다면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여름장마때 비가많이 오면 주례쪽에서 물이넘쳐 개금쪽터널 새마을동네는 물난리나곤했습니다 감회가 새롭네^^
터널에 5/1정도 물이 차있었죠
위쪽 아파트 단지 사는디 이런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맨날 보는 풍경이고 그 터널 바로 윗길은 건너편갈때 가끔 이용하기도 하는디
행제복지원 탈출한 사람들이 백양산으로 가면 대부분 잡혀서 가는 경우가 많았고 폭행으로 심한경우 사망해서 시체를 몰래 묻거나 대학병원 실습용 넘기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아마 주령터널 도망차는 경우가 있었을겁니다.터널안에는 물이 고여있었습니다.
일한사람에게들엏는데 소문아니래요
4월인가 구덕산쪽에서 주례방향으로 내려오다 길을 잃고 헤매일때 깊은 산속에나뭇패말로 숫자? 와 이름들이 적혀있는 다 쓰려져가는 무덤들이 수백정도가 있어서 놀랐습니다ㆍ연신 이곳에 왜 있지 라는의문을 가지면서 내려왔던 기억이있습니다ㆍ비슷한 년도 였답니다ㆍ
주례ㅋ제가 어렸을때 살던 동네..저 터널은 주례굴다리 밑 영상 나오는곳에서 부터 시작이구요..물이 많이 찬이유는 그길이 개금초등학교 앞 다리 로 연결되는걸로 아는데 거기가 원래 복개천 입니다.물이 찰수 밖에 없쥬..그뒤 한일아파트 근처 가 옛 형제복지원 자리 이구요,.도망쳐 나온애들이 터널안으로 도망가다 물이 많이 찬곳에 빠져 죽었다 라는 소문도 많았고..혹시 촬영 갈때 못느끼셨나요?
유독 굴다리동네만 음기가쎄고 으스스 하고
한이 맺힌 그런 느낌요..아마 오래 있고 싶진 않았을거 같네요..
헉. 그런 이야기도 있었군요..!
그래서 다음 역 이름이 냉정ㅋ 차가운 우물
나만느끼는거 아니었구나..다리위론 안가봤지만 주례근처는 환승할때다녀서 이상하다싶긴했음 마치위에서 음기같은게 흘러내리는느낌 굴다리 너머로가고싶지 않더라구요ㄷㄷ 병원있어서 그런가 싶은거 치곤 다른병원은 그정돈 아니라서 뭐지 싶었었음ㄷㄷㄷ
민주공원아래도 그런곳있긴함 한참돌아다니다 발을 잡아끄는 느낌있어서뭐지?했었는데 그런정도면 사람들이 많이죽임당한장소아닌가?그런말은 못들었는데 싶었는데 민주화?때 민주공원근처에 사람들 암매장했었는데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함. ㄷㄷㄷ
음기는 무슨 어릴때 터널안에서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옆에 나무에는 다람쥐도 살았는데요
무섭다,,,,,,,ㄷ
구독했어요. 부산 오래 살았지만 이런 미스터리(?) 너무 재미있네요.
주례동에 저런 터널이 있는줄은 몰랐는데 갑자기 소름돋네요 ...ㄷㄷ
ㅇㅈ
ㅠㅠ..응?
부산 사는 누구도 모른다
터널만 모르는게 아니라
형제복지원 그 처참한 ..
이 채널 우연히 첨 보게 되는데
응원 합니다 진심으로 ~
부산이 오래전부터 살던 주민들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고 사상의 경우에도 서면의 산업공장들이 이전하면서 개발되어서 이전부터 사람이 모여있던 곳이 아니라 더 그럴거라 생각합니다.
형제교도소
당신이 모르는걸 누구도 모른다고 단정해서 말하는게 웃기네요
형제교도소, 삼청교육대는 잘 만들었음
@@촛불쿠데타그 잘만든데다 니같은애들잡아다놔야하는데 아쉽노
아마 안전 문제 해소 및 운행환경 개량을 위한 이설이 아니였을까 싶네요.
위 터널의 경우 이설 시기 자체가 1970년대로 상당히 오래 전이고, 새로운 눈에 띄는 시설 건설이나 부지점유 없이 기존 철도부지 내에서 진행되는 소규모의 공사였기에 현재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터널 내에 물이 상당히 높이 차 있다는 말로 보아 경부선 아래쪽으로 교차해 지나가는 터널로 보이는데, 반대쪽 터널은 교차점이 없어 비교적 구배가 작은 평평한 터널이기 때문에, 침수 문제가 두드러지는 상행 터널만 이설하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때 선로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구배를 감소시켜 동력차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더 긴 터널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형제복지원은 생각도 못했네요. 참 암울한 역사네요. 지금 형제복지원 했던 작자가 기장에 또 불법으로 요양원 만들었는데...거기도 패쇄 되었습니다. 흉물로 남았습니다. 참 그 놈은 상종 못할 놈 입니다.
고맙습니다
와 잠깐만 3:54 저기 개금에서 냉정 갈때 맨날 지나가던 골목길인데 그 밑이 터널이였음?
고개 좀만 내밀어 봤어도 바로 봤겠는데 그걸 안보고 맨날 그냥 지나다녔네ㄷㄷ
심지어 반대쪽도 엄청 많이 지나다녔던 길임ㄷㄷ
부산의 주령 터널이 사라졌군요.
형제복지원 비극의 역사는 늘 아픔으로 기억되네요.
항공 샷을 보시면,, 막힌 입구 뒤에 10층이 넘는 아파트가 들어 서 있습니다. 아파트를 건설하는데 터널을 그냥 두고 그 위에 짓지는 않아요,,즉 그 아파트를 지으면서 그 터널은 붕괴를 시켜서 더 밑으로 지반을 파서 지지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막힌 부분에서 얼마 안가서 터널을 붕괴시키고 더 밑으로 지반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따라서 현재 저 터널은 존재하지 않고 끊겼다고 보는게 맞음.
저도 여기 알꺼 같은데요. 개금살았거든요. 국민학교 4~6년 이었을때 터널 바깥에서 터널에서 나오는 물이 많았어여. 거기서 물고기(붕어) 잡는거 구경하고 겨울에는 썰매 탔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도 79년에서 82년사이 쯤 될꺼 같네요.
터널안에는 물이 있어서 들어갈수 없었고 터널 바깥에서 놀았어요. 저는 주례쪽은 모르고 개금쪽에서 놀았어요.
점점 흥미진진하고 궁금한 내용들이 많네요
갈수록 퀄리티가 ㅠㅠㅠ 대박입니다!!!!!
........ 계속 내버려 두는 것도 안 좋은 선택 같습니다. 유지보수가 안되는 터널은 결국 붕괴됩니다. 그 터널 위에 건물이 세워져 있다면 이 터널이 나중에 노후화로 붕괴시 위에 있는 건물은 다 붕괴 될 테니까요. 거의 시한폭탄 달고 다니는 셈이군요.
뭐지 왜 진용진님 닮았다는 댓 없지?
다 돌아본곳이어서 뭔가 신기하네...ㅋㅋ
오륙도 sk뷰 아파트 근처에 옛 일본군 방공호가 있다고 하던데 조사해주실수 있으신가요?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보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다비줌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취재해보고 싶은데 구체적인 장소 등을 알 수 있을까요? 메일 주소 남겨드립니다 lee88@busan.com
없어진 정보 복원은 추천이지
이게 바로 언론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알 권리 보장 아닐까.
동감입니다
제 어릴때 그때 그철도 터널에는 미 군수 철도로 많이 사용 된걸로 기억이 납니다
형제복지원과 위 터널을 연관 지으려고 하는데 별 연관이 없습니다,
두 지역의 위치가 좀 가까이 있다보니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형제복지원 아이들의 탈출 경로는 경부선철길도 있고 가야로도 있고 뒤편
백양산도 있는데 꼭 집어서 위 터널만 이야기 할 이유가 없습니다.
관심 유발용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저도 동감이요
내나이 47세 태어난곳이 주령터널 상행선 하행선 중간에 집이있었지요 하행선은 지금도 터널이 있고 거기서 미꾸라지 많이 잡고 놀았지요 우리집 기준으로 주령터널 상행선은 제가 태어날때부터 막혀있었고 터널 입구까지 고무공장이 즐비했었는데
7~8살때쯤 고무공장에 엄청 큰 불이나서
영상에 보이는 높은곳에서 아래로 내다보며 불구경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뒤로 고무공장은 없어졌지요 그리고 형제복지원은 그 복지원 원장 아들이 2명 있었는데
둘째가 저랑 동창이고 그위에 형은 우리형과 동창이었는데 우리형이 형제복지원 큰아들 따라 놀러도 가고 했었는데 집이 형제복지원안에 있었다고 하는데 완전 집이 궁궐처럼 되어있었다고 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거기가 뭐하는데인줄 몰랐는데 다 커서 부랑아들 아니 멀쩡한 사람도 잡아다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노동시
키고 집단구타에 살인까지 저지른 악명높은 곳인지 잘몰랐네요 항상 형제복지원 지나 산에 가재잡으러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지나다 보면 감옥같은 창살에 파란 죄수복같은걸 입은 사람이 항상 불쌍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땐
그런데인줄도 모르고 겁없이 지나다니고그앞에서 놀기도 했었는데 참...
왜 찾아야하는지 그 이유라도 알고 전개를 시키지 그냥 다짜고짜 찾으러 가면 보는사람은 무슨이유로 봐야하는지 모르잖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주례동에 살고 있지만 주령터널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네요...
옛날에 역이 있었다는건 아는데 저런 곳이 있었고
여러 이야기가 있었군요...처음 알았네요
나중에 근처에 한번 가봐야겠네요
와 주례동 주감초출신인데 크 어릴적 살던 동내
처음 사진 장소는 보통 주례램프 굴다리라 부르지 가야굴다리가 아닌데;;
가야굴다리는 가야역, 부암역 사이에 있는데;;
내하고 나이도 같은 또랜데
바로 밑인데도 여지것 모르고 살았네요
집하고 대충 300미터네요
지금은 그분들도 저 처럼
50대 중후반 이시겠죠?
참 그당시 저도 부산이 객지지만 어렵게 사는 시절 이었죠! !
어릴때 저기 근처에서 살아서 터널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형제복지원이야기는 몰랐네요ㅠㅠ
괜찮죠
흠...
펭수다
저두요
허걱진짜용?
형제복지원은 그냥 카더라 일수도 있고 그러지만 정확한 건 저기 터널이 물이 많이 차요. 그냥 뚫었을 땐 거기까지 생각못했겠지요. 고속도로도 고속철도 복선화처럼 새로 생긴 곳일 수록 도로가 직선화. 그러다보면 옛날에 뚫은 터널 폐쇄 많이 되지요.
지금 사상구에 살고 있는데 익숙한 지역에 익숙한 장소들이 이렇게 보이니 신기하네요! ㅋㅋㅋ 재밌습니당
근데... 새로생겼다는 기찻길 앞에 있는 아파트 보셨나요? 거기에 사는데 보셨으면 너무너무 영광인듯!!!!
수원 꿈의궁전 관련해서도 취재 해주실수있나요?
오래되기도했고 증거도 부족하지만. ..
아무 근거없는 이야기라고 하네요
갑자기 알고리즘에 떠서 보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22살 부산 토박이, 한번도 저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 부산에서 나고 자라셨고, 외할아버지도 전쟁 이후로 부산에 쭉 사셨습니다. 계속 부산에 사시면서 택시 기사까지 하셨으니 부산 관련해선 아는 게 많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다음에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우리동네인데 오지게무섭네 맨날지나가던곳인데 이렇게보니깐새롭다
제가 주례반대편 개금쪽 터널 새마을동네에 살았습니다 터널에 물이 아주 시원했고 터널앞은 미나리밭이였습니다^^
터널앞은 양어장이고 그 다음이 미나리밭이죠
개금동에도 있음
어릴적 놀든 곳
터널에서 나오는 물이고여 물놀이 했든 기억
주령터널은 결국 일제때 뚫어놓은 철길인데 해방후에 기름저장고로 가는 철도 역활을 하다가 정유시설이 울산으로 옴겨가면서 기름저장고가 폐쇄되면서 주령터널의 쓰임새도 없어져서 페쇄가 된것이네요
터널관련자료를 철도청등 정보공개 청구한다면 주령터널 역사 자료를 정확히 추적할 수 있을 듯 하네요
관련자료 보존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주민 탐문에 의존 추적 한다면 고령의 주민들 기억의 한계 그렇타 카더라 통신 아닐까요
0:30 우와.......실 생활 속에 우리가 몰랐던 부분들이......이렇게라도 알게되네요~~
부산은 살지는 않지만...그래도 몰랐던 부분들을 이런 영상들을 보고 알게 됩니다
혹시 터널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는 완전히 막혀있나요...?
형제원이 있던곳 근처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살고 있는데 꼬꼬무에서 형제원 보고 물어본 기억이 있음.. 할머니 말로는 매일같이 뭉둥이 들고 형제원에서 도망나온 사람들 잡으러 뛰어다니고 그랬었다고 했음..
날라Lee님 대단하세요!
입구가 개금3동 어린이놀이터 부근에 있었고
어릴때 터널입구에서 얼음 얼면 썰매타고
했었는데 터널입구부터 물이 많이 차 있었고
제가 호기심으로 봤었어요.
그리고 또 뭔가 흔적이 사알짝 있어요 약간 부숴진 흔적이라고 해야되나 제 시력이 2.0은 좀 넘어서 이상하게 본거라고는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어쨋든 그렇게 봤어요 그리고 제 기억에는 아마 20년쯤전에 부숴졌는데? 뭐야.. 무서워 ㅠ
몽골 사람은 아니고 몽골에서 옴
ㅋㅋㅋ
네이버 지도로 주령터널을 찾아서 위에 년도마다 찍힌게 있는데 거기서 가장 오래된 사진으로 확인 가능할것 같네요
저 블로그 이웃인데, 주례터널 답사기도 봤었어요. 근데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을 줄이야.. 형제복지원.. 미국이였으면 몇백년 or 사형이였을텐데요..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오 저기 철길 흔적은 알고 있는데 터널이 있었다는것은 몰랐내요. 혹시 반대쪽 이 어디일지 궁금 하내요. 환번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우리할아버지가 이거보고 해준이야기인데 그당시70년대 중반즘에 할아버지가 거의한2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 할아버지가 거기터널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행복지센터 아이들이 들어가는거 봤데요ㅠㅠ
ㅠㅠ 너무 슬프네요
@@shengri79 네ㅠㅠ
@@가와사키-e9v 45초 ㄷㄷ
ㅜㅠㅠㅠㅠ
@@최병권-d7i ?
저 곳의 가치와 아픔을 다시 알려지게 해주시는 시초가 되지않을까요? 큰일하신 듯요^^
부산 정보 비밀리에만아는건있긴한데 이걸발설하면 거기있는주민들을 입막음하게 물거품이되니깐 말안하는겁니다.
헐 저 주례 근처에 살아요 ! 애기땐 주례에 살았지만요
와 스카에서 바로 보이는 곳인데 여태 아무것도 몰랐어요...
터널에 물이 차 있었고 제가 그동네 살아서 자주갔음. 끝까지는 못가고 박쥐들 땜에 친구들이랑 10분정도 걷다가 나왔음.물은 허벅지 조금 및에까지 물이 차있었음.그때나이가 10살쯤..1983년쯤
저길 조사해서 안전한지부터 확인해야할거 같네요. 그런후에 보수공사를 해서 안전하게만이라도 해놔야 할거 같아요. 그 후에 어떻게 쓸건지를 생각해야겠지요.
일제시대 때 부터 있던 거면 확인 해 볼 필요가 있네요. 보물이 숨겨져 있을수도도 있고, 살인 사건이 숨겨 있을수도...
패쇄된 기록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 인것 같아요?
용상을 제작 하신분 수고 하셨습니다.
역사같은 건 잘 모르겠으나
80년도 쯤에
저 부근에서 실종사건이 일어나
언제 물속에서 시체가 나올 것이 염려되어 지자체에서 막은걸로 압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새벽에 진행했는데 술먹고 귀가하다가 현장사람들에게 들어서 술깨고 그 이후로 무서워서 피해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어! 스마트 아파트쪽 길 네비가 안내를 잘 못해서 초록색 펜스 쪽으로 들어간적 있는데 길이 어찌나 꼬불꼬불 하던지.. 왕굴 다리는 오랫만이네요^^
대박이다 사회 같으면서 도 (?) 재밌어요💕
서회요?? 과목?
맞아여!
@사랑이TV Juny TV 3학년 안넘었나봐요
와 !! 대단한 사실을 고생하시면서 찿으셨네요 유투버님 응원합니다
대박이다
틱톡보고 넘어옴! ㅎㅎㅎ
저도 궁금해서요 ㅎㅎ
콘크리트로 막혀 있다는 걸
아스팔트로 막혀 있다고 하네요
근데 굴따리 있잫아요?거기 재가 많이 다니는곳이구요 내가 살아요..
TV보다가 봤는데 너무 흥분해가지구 같은 고향사람이로써 구독!
그러면 기차 길이 있었던 자리를 따라 이어진 주택들은 철도청 땅 위에 지어진 무허가 건물들인가요?
무허가도 있고 철도청에서 매매도 했습니다
사라진 역사가 갇혀있다고 생각하는게 더 이상하네
그렇게 물이차는곳을 진보된 과학으로 철도를 다른곳을 뚫는게 당연한거지
형제 복지원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의도는 알겟는데 너무 억지스럽네
와.. 개금에 거의 30년을 살았는데 저런 터널이 있는지도 몰랐네요.... 형제복지원 사건은 다시 다뤄져서 진실규명을 제대로 하고 피해보상도 했음하네요 ㅠ
엥 주례 진짜 어릴때부터 살았는데 저런 터널이 있는지도 몰랐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