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의 아들인 저도 제이야기를 보고있는듯 작가님의 아버지의해방일지를 밤새읽고 마지막페이지에 '아부지라는 것이 이런거갑다'를 보며 새벽녘에 눈물찍고 이곳까지찾아오게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야기 못다한 혁명가분들의 이야기로 작은조약돌이라 하시지만 큰울림으로 남는 작품탄생을 응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항상건강하십시요~
@@군여몽이 빨치산이 피해자라 생각합니다. 반공시대에는 저도 세뇌되어 그들이 나쁘다고 배워왔으나 나중에 연구해 보니 빨치산이 뭔 잘못을 했는지 찾을 수 없었고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공시대에 반공주의자들이 세뇌시킨 말들은 다 알고 있으니 내가 모르는 무슨 잘못이 있는지 나열해 주시죠. 저도 연구하게요.
좀 오래된 내용인데.. 그래도 한 말씀^^ 한국 현대사와 한국전쟁의 전문가인 미국 시카고대학 브루스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시원을 일제가 만주를 침공한 1931.9으로 본다. 그때부터 일본은 대륙 침공을 본격화했고, 동시에 중국 땅의 조선 독립군들과의 전쟁은 불가피한 필연이 되었다고 보며, 한국전쟁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간 전쟁이 아니라, 조선독립군들이 만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친일파일제부역자들이 만든 대한민국의 한국인들끼리 시작한 내전으로 본다. 물론 UN이 이 내전에 즉시 참전하고 소련에 이어 중국이 전투에 추가로 참전하면서 한국전쟁은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고 결론 짓는다. 최근 한국전쟁을 미중 전쟁의 국제전으로 본다는 것에 논쟁이 있었으나,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 관점의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전쟁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일로부터 기산하는 것은 너무 정치적인 프로퍼간다이기 때문이다. 3.8선 사이의 남북 간의 유의미한 군사적 무력 충돌 800여 회는 양측의 단독정부가 세워진 후부터 6.25가 터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소총 몇 발 주고 받은 자잘한 것을 다 포함하면 16,000여 회 이상이라고 북한은 주장한다. 그리고 이 800여 회 중 거의 대부분이 남측의 선제공격과 이에 북측의 보복전이라는 것이 당시 미국(미군정사령부, 미군사고문단, 미국무부, 미국방부)의 자료에 나온다. 그런데 이것을 한국전쟁 관련한 그 어떠한 한국인들의 책, 자료, 강의, 타큐 등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오직 미국인을 포함한 비한국인들의 그것에서만 나온다. 오로지 북한의 남침만으로 이루어진 한국전쟁을 만든 것일 터다. 이게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인가. 역대 한국정부에서 한국전쟁을 '6.25'로 지칭하고, 6월25일 부터의 전쟁으로 교육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 지금, 제주 4.3에 대한 재일교포 김석범 작가의 대하소설 를 읽고 있다. 1957년 으로 발표한 이후 40년만인 1997년 단행본 4권(3만매 일본200자원고지)으로 발표한 일본원서를 2015년 번역한 12권짜리 방대한 분량이다.
-. 동시에 위 브루스 커밍스의 1980년 초판을 43년만인 2023년 5월 드디어 완역한 전3권을 읽고 있다. 총 1977쪽 분량이다. 전두환 정권이 불온서적으로 낙인, 부분적 번역만 나온 것을 이번에 완역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은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들의 한국전쟁의 이해를 돕기위해 쓴 것이다. 정지아 작가께서 한국전쟁에 관한 작품을 쓰시려면 최소한 이 소설과 책은 읽으셔야 되지않을까 한다.. 모쪼록 좋은 역대급 작품이 나오길 바랍니다. ㅊㅅ : 한국전쟁을 포함한 한국현대사는 왜곡과 조작, 은폐, 각색, 윤색이 너무나 많고 많아 대부분 비한국인이 쓴 책과 다큐, 기밀해제된 관련 국가 자료,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인들이 쓴 자소설 형식의 것 등 약 70여 권을 보았습니다. 크로스체크로 진실을 걸러내기 위해서죠. ㅋㅋ //
한국전에 대한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후학들이 계속해서 답습을 한다면 우리는 떳떳하지 못한 역사관을 가진 민족으로 남을것 입니다. 글쓴이의 "한국전 기산일이 6.25이 아니라는 글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 합니다. 작든 크든 역사는 올바로 기술, 전달돼야 합니다. 역사는 국익(國益)에 따라서, 통치자의 의견 에 따라서 그사실이 둔갑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상과 노래를 좋아 했던 별난 공산주의자 정율성과 부친 영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영화 주제 곡을 들으면 뭔가 혼이 빠져든다. 그래서 인지 딸애가 7살 때 좋아하는 노래가 소련 국가였다. 유튜브에서 즐겨 찾아 듣기에 왜 좋아 하냐고 하니 그냥 웃기만 한다. 곡이 얼마나 좋았으면 소련이 붕괴되자 가사만 바꿔 러시아 국가로 이어졌다. 북한 애국가를 들으면 남한 애국가 이상으로 잘 만들었다고 본다. 10년 전 대북 전단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 베이징 역에서 이다. 역사 안에 여기저기 삼성 핸드폰 광고도 놀라웠지만 역 탑의 대형 시계 시침이 한 시간 될 때마다 은은히 울리는 이란 모택동 노래가 감미로웠다. 수 천 만을 죽인 모택동이지만 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세계에 공산 혁명의 바람을 불게 한 이상으로 역시 억 눌린 자들이 스스로 일어나게 만든다. 이 기운을 따서 중국 국가도 만든 것이다. 역시 그 비장함에 이념을 뛰어넘어 남한 영화에 반영할 정도이다. 14억 중국의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만든 정율성은 남한의 광주사람이다. 그의 음악 기질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에 반해 기독 교회에서 배양 되어 시작된다. 독립 운동가였던 그는 연안의 모택동 부대에서 현재의 중국 군가를 만든다. 815 해방 후에는 북한에 가서 조선인민군가를 만든다. 조선 인민군 협주단도 그가 창립하였다. 하지만 김일성의 숙청 기운이 싫어 중국으로 다시 갔지만 역시 문화 대혁명에서 간첩으로 몰리게 된다. 한편 그가 연안에서 창작한 노래들은 폐기되는 수모를 겪는다. 작곡가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그가 유일하게 남긴 육성 노래는 이다. 주 특기인 혁명 가요가 아닌 것이다. 은 미국 민요이다. 사랑하는 여인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결혼하였는데 결혼 한 해에 죽자 그녀를 추억 해서 만든 노래였다.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악하다고 볼 수 만은 없다. 공산 이념에 맞지 않게 별난 행보자들도 있다. 또 평등 사회를 추구하는 노래를 잘 만들 만 큼 감성적인 자도 있다. 정율성과 같은 청년 기부터 공산주의를 신봉한 저의 부친 역시 비슷한 면이 있다. 전라도 익산군 선전 비서로 부친은 절대 학살을 못하게 막아 나섰다. 빈자가 부자를 죽인다고 나서면 며 통제하여 관할 지역에서는 학살이 없었다고 한다. 유엔군이 북진하자 부친에게 보호를 받은 부자들이 보증 서겠으니 당신은 북한으로 가지 말라 하였으나 공산이념이 좋아서 가셨다. 부친 역시 노래를 좋아하셨다. 1970년대 중반 북한에서 집 몇 채 살 가치라고 할 정도인 소련 제 전축을 소지한 유일한 집이었다. , 노래를 애창하셨다. 하지만 정율성이 죽기 전에는 를 부른 것처럼 부친 역시 였다. 1946년부터 남로당원으로서 나름의 백전 노장이지만 당수 박헌영이 미제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니 남 출신들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 자녀들까지 출세 길이 막힌 꼴을 본다. 일생을 평등 사회를 위해 바친 부친은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기신다. 나는 과학 연구와 공부를 하다 흔히 새벽 1시 정도에 퇴근하였다. 집으로 가는 허허벌판 길에서 어른의 통곡 소리가 난다. 놀라서 뛰어가 보니 뜻밖에도 부친이었다. 은퇴를 앞둔 부친은 그 후 2년도 못 사시고 자살 아닌 자살하셨다. 부친은 평등을 찾아 월북 하셨다. 그 아들인 나는 자유를 찾아 월남 하였다. 부자가 대를 이어 살아 본 공산 사회를 집약화하여 결론 한다. . 공산주의 이상과 노래를 좋아했던 정율성과 부친을 이제 와서 어떻게 보아야 할 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저 두요
글에 철학과 힘이 있어요.멋진 작가님~ 응원합니다
빨치산의 아들인 저도 제이야기를 보고있는듯 작가님의 아버지의해방일지를 밤새읽고 마지막페이지에 '아부지라는 것이 이런거갑다'를 보며 새벽녘에 눈물찍고 이곳까지찾아오게되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야기 못다한 혁명가분들의 이야기로 작은조약돌이라 하시지만 큰울림으로 남는 작품탄생을 응원하며 기다리겠습니다 항상건강하십시요~
그곳에 가고싶다
정지아 작가 있는
그곳 구례 멋지다
부모님은 작가님을 통해서 당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이루셨다고 생각합니다.
왜곡된 시각으로만 보았던 빨갱이의 삶을 바로 알게 된것이 다행이며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의 사회주의자 어머니의 순수한 한남자의 따른 사회주의와사랑 그 사이에서 보고 배운 느낌이 작가니의 변화가 궁금 했는데 아주 조금이나마 옅볼수있어 감사 합니다^^
좌우의 소용돌이 속을 지나 한시대의 인생을 속박당하며 살아온 우리들의 일그러진 삶! 역사속으로 사라진 아버지들! 원망은 하지 맙시다!
저는 은사님이 두제자를 불러놓고
다짐을 받는 부분이 너무도 울컥했습니다.
(좌익이 우세하면 우익인 네 친구를
도와주고, 우익이 우세하면 좌익인
네 친구를 도와줘라~)
스승님은 이념이 곧 피비린내 나는
적대감으로 펼쳐질것을 예감하신것
같았습니다.
존경합니다
빨치산은 자랑스런 전라도 광주의 인민영웅입니다...
힘내세요
정지아 작가님 말씀도 너무 어렵지 않고 술술 재미있게 잘하십니다~ 대개 글은 잘 써도 말솜씨는 떨어지는 작가들이 많은데, 두 솜씨가 둘다 뛰어나십니다.ㅋㅋㅋㅋ
그대의 부모님은 진짜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해 청춘과 인생을 바친것입니다
그건 이념이 아니라 신념
입니다
양민 괴롭힌 빨치산이지 뭔... 나참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해 북으로 가시오. 체제 전복 분자들일 뿐.
눈물나는 작가님이시군요. 우리 문단에 용기있는 대단한 작가라 여겨집니다. 빨치산의 후손들 이제 멸시천대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우리의 이웃입니다. 메카시즘 극복하여 잘못된 이념사상에 찌들지 말고 통일로 가자. 통일되면 제조명이 되기를 바랍니다.
빨치산 자손을 차별해선 안 되겠지만 빨치산은 잘못한 거지.
@@군여몽이 빨치산이 피해자라 생각합니다. 반공시대에는 저도 세뇌되어 그들이 나쁘다고 배워왔으나 나중에 연구해 보니 빨치산이 뭔 잘못을 했는지 찾을 수 없었고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반공시대에 반공주의자들이 세뇌시킨 말들은 다 알고 있으니 내가 모르는 무슨 잘못이 있는지 나열해 주시죠. 저도 연구하게요.
전라도 광주의 아들이자 인민영웅 북한인민군 정율성동지기념관 설립에 범진보친북시민단체들의 여론공론화가 필요합니다..
추가로 김일성주석의 흉상도 당연히 세워야합니다...
진보친북 민주시민들은 계몽군주 김정은위원장의 평등사회주의정책을 지지합니다..
좀 오래된 내용인데.. 그래도 한 말씀^^
한국 현대사와 한국전쟁의 전문가인 미국 시카고대학 브루스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시원을 일제가 만주를 침공한 1931.9으로 본다.
그때부터 일본은 대륙 침공을 본격화했고, 동시에 중국 땅의 조선 독립군들과의 전쟁은 불가피한 필연이 되었다고 보며, 한국전쟁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 간 전쟁이 아니라,
조선독립군들이 만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친일파일제부역자들이 만든 대한민국의 한국인들끼리 시작한 내전으로 본다.
물론 UN이 이 내전에 즉시 참전하고 소련에 이어 중국이 전투에 추가로 참전하면서 한국전쟁은 내전에서 국제전으로 확대되었다고 결론 짓는다. 최근 한국전쟁을 미중 전쟁의 국제전으로 본다는 것에 논쟁이 있었으나, 그것은 다분히 정치적 관점의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전쟁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전면 남침일로부터 기산하는 것은 너무 정치적인 프로퍼간다이기 때문이다.
3.8선 사이의 남북 간의 유의미한 군사적 무력 충돌 800여 회는 양측의 단독정부가 세워진 후부터 6.25가 터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소총 몇 발 주고 받은 자잘한 것을 다 포함하면 16,000여 회 이상이라고 북한은 주장한다. 그리고 이 800여 회 중 거의 대부분이 남측의 선제공격과 이에 북측의 보복전이라는 것이 당시 미국(미군정사령부, 미군사고문단, 미국무부, 미국방부)의 자료에 나온다. 그런데 이것을 한국전쟁 관련한 그 어떠한 한국인들의 책, 자료, 강의, 타큐 등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오직 미국인을 포함한 비한국인들의 그것에서만 나온다. 오로지 북한의 남침만으로 이루어진 한국전쟁을 만든 것일 터다. 이게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인가.
역대 한국정부에서 한국전쟁을 '6.25'로 지칭하고, 6월25일 부터의 전쟁으로 교육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 지금, 제주 4.3에 대한 재일교포 김석범 작가의 대하소설 를 읽고 있다. 1957년 으로 발표한 이후 40년만인 1997년 단행본 4권(3만매 일본200자원고지)으로 발표한 일본원서를 2015년 번역한 12권짜리 방대한 분량이다.
-. 동시에 위 브루스 커밍스의 1980년 초판을 43년만인 2023년 5월 드디어 완역한 전3권을 읽고 있다. 총 1977쪽 분량이다. 전두환 정권이 불온서적으로 낙인, 부분적 번역만 나온 것을 이번에 완역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은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들의 한국전쟁의 이해를 돕기위해 쓴 것이다.
정지아 작가께서 한국전쟁에 관한 작품을 쓰시려면 최소한 이 소설과 책은 읽으셔야 되지않을까 한다.. 모쪼록 좋은 역대급 작품이 나오길 바랍니다.
ㅊㅅ : 한국전쟁을 포함한 한국현대사는 왜곡과 조작, 은폐, 각색, 윤색이 너무나 많고 많아 대부분 비한국인이 쓴 책과 다큐, 기밀해제된 관련 국가 자료, 그리고 한국전에 참전한 미국인들이 쓴 자소설 형식의 것 등 약 70여 권을 보았습니다. 크로스체크로 진실을 걸러내기 위해서죠. ㅋㅋ
//
우리의 역사교육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방대한 자료를 다 읽기는 어려우니 작가님들의 희생을 빌어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진실을 알아서 오늘을 잘 살아가고 싶어요.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한국전에 대한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된 역사를 후학들이 계속해서 답습을 한다면 우리는 떳떳하지 못한
역사관을 가진 민족으로 남을것 입니다. 글쓴이의 "한국전 기산일이 6.25이 아니라는 글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 합니다. 작든 크든 역사는 올바로 기술, 전달돼야 합니다. 역사는 국익(國益)에 따라서, 통치자의 의견
에 따라서 그사실이 둔갑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始와 末이 어떠하든지간에 인간의 고통은 무서운 것이다.
국방군이나 인민군(빨치산 포함)은 우리 민족에게 못쓸 짓을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무슨 한쪽에 편향하여 동조를 해.
세상 많이 좋아졌다. 그쟈?
이상과 노래를 좋아 했던 별난 공산주의자 정율성과 부친
영어를 하나도 모르지만 영화 주제 곡을 들으면 뭔가 혼이 빠져든다.
그래서 인지 딸애가 7살 때 좋아하는 노래가 소련 국가였다.
유튜브에서 즐겨 찾아 듣기에 왜 좋아 하냐고 하니 그냥 웃기만 한다.
곡이 얼마나 좋았으면 소련이 붕괴되자 가사만 바꿔 러시아 국가로 이어졌다.
북한 애국가를 들으면 남한 애국가 이상으로 잘 만들었다고 본다.
10년 전 대북 전단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 베이징 역에서 이다.
역사 안에 여기저기 삼성 핸드폰 광고도 놀라웠지만
역 탑의 대형 시계 시침이 한 시간 될 때마다 은은히 울리는
이란 모택동 노래가 감미로웠다.
수 천 만을 죽인 모택동이지만 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세계에 공산 혁명의 바람을 불게 한 이상으로
역시 억 눌린 자들이 스스로 일어나게 만든다.
이 기운을 따서 중국 국가도 만든 것이다.
역시 그 비장함에 이념을 뛰어넘어 남한 영화에 반영할 정도이다.
14억 중국의 군가와 북한 인민군 군가를 만든 정율성은 남한의 광주사람이다.
그의 음악 기질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그에 반해 기독 교회에서 배양 되어 시작된다.
독립 운동가였던 그는 연안의 모택동 부대에서 현재의 중국 군가를 만든다.
815 해방 후에는 북한에 가서 조선인민군가를 만든다.
조선 인민군 협주단도 그가 창립하였다.
하지만 김일성의 숙청 기운이 싫어 중국으로 다시 갔지만
역시 문화 대혁명에서 간첩으로 몰리게 된다.
한편 그가 연안에서 창작한 노래들은 폐기되는 수모를 겪는다.
작곡가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그가 유일하게 남긴 육성 노래는 이다.
주 특기인 혁명 가요가 아닌 것이다.
은 미국 민요이다.
사랑하는 여인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결혼하였는데
결혼 한 해에 죽자 그녀를 추억 해서 만든 노래였다.
공산주의자들을 모두 악하다고 볼 수 만은 없다.
공산 이념에 맞지 않게 별난 행보자들도 있다.
또 평등 사회를 추구하는 노래를 잘 만들 만 큼 감성적인 자도 있다.
정율성과 같은 청년 기부터 공산주의를 신봉한 저의 부친 역시 비슷한 면이 있다.
전라도 익산군 선전 비서로 부친은 절대 학살을 못하게 막아 나섰다.
빈자가 부자를 죽인다고 나서면 며
통제하여 관할 지역에서는 학살이 없었다고 한다.
유엔군이 북진하자 부친에게 보호를 받은 부자들이 보증 서겠으니
당신은 북한으로 가지 말라 하였으나 공산이념이 좋아서 가셨다.
부친 역시 노래를 좋아하셨다.
1970년대 중반 북한에서 집 몇 채 살 가치라고 할 정도인
소련 제 전축을 소지한 유일한 집이었다.
, 노래를 애창하셨다.
하지만 정율성이 죽기 전에는 를 부른 것처럼
부친 역시 였다.
1946년부터 남로당원으로서 나름의 백전 노장이지만
당수 박헌영이 미제 간첩으로 몰려 처형되니
남 출신들은 개밥의 도토리 신세가 되었다.
자녀들까지 출세 길이 막힌 꼴을 본다.
일생을 평등 사회를 위해 바친 부친은 유언처럼 이런 말을 남기신다.
나는 과학 연구와 공부를 하다 흔히 새벽 1시 정도에 퇴근하였다.
집으로 가는 허허벌판 길에서 어른의 통곡 소리가 난다.
놀라서 뛰어가 보니 뜻밖에도 부친이었다.
은퇴를 앞둔 부친은 그 후 2년도 못 사시고 자살 아닌 자살하셨다.
부친은 평등을 찾아 월북 하셨다.
그 아들인 나는 자유를 찾아 월남 하였다.
부자가 대를 이어 살아 본 공산 사회를 집약화하여 결론 한다.
.
공산주의 이상과 노래를 좋아했던 정율성과 부친을
이제 와서 어떻게 보아야 할 가?!
청춘을 바쳐 그냥 속은거지 , 볼 게 뭐 있습니까.
빨치산 미화하는 진보좌파 작가님.. 힘내세요...
훗날,,압록강,두만강,대동강,한강,임진강,섬진강,낙동강물 바다에서 만나자.
唯物주의,唯一神주의 태평양에 다 버리고...
바다는 넓고 깊다.
사회주의는 실패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진행형인 나라도 있습니다.
자본의 논리로 북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 좋으면 북으로 가라
탈북민 유튜브보세요..차마 눈뜨고 못봅니다..
한국에 태어난 걸 감사하십시오. 반대로 북한에서 남한 대한민국 찬양하는 집안이었으면 다 방사포 맞아서 먼지가 되었을 겁니다. 반성하시고 역사를 똑바로 보시길.
대한민국은 다양한 사상을 담을수 잇는 그릇입니다
그들도 역사의 한 부분이고 나 보다는 세상을 생각햇던 사람들 입니다
무엇을 반성하라는 건가요? 시대가 그들을 분노하게했고 스스로의 이득보다 사회의 부당함 . 불평등 해소를위해 희생하신 용기있는 분들이었어요.
가진자의 여유!
미 제국주의자들 몰아내고! 그란디 굥가놈은 미쿡넘들 시다바리니......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