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 34명 중 조선 종묘에 있는 유일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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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4 ก.พ. 2025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28

  • @JWoo-wy2rf
    @JWoo-wy2rf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올봄에 가족들과 종묘에 가기 전에 공부 좀 하고 다녀왔는데.. 부족했네요..
    설명해 주시는 분의 안내를 받으며 다녔지만 듣지 못한 이야기네요~
    아이들에게 영상 보여 주고 가을에 다시 방문해 봐야 겠어요. 설명 고맙습니다.

  • @김배현-t8n
    @김배현-t8n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7

    주 피디님ㆍ매미소리 요란한ㆍ폭염 더위에 종묘 가셨군요 ㆍ역사여행 멋집니다ㆍ
    항상 감사 드립니다 ㆍ꾸뻑 ^^~

  • @형순철
    @형순철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0

    오늘은 공민왕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 주셔서 유익한 도움이 되어 감사 드립니다.!!🙏🙆‍♂️🙋‍♂️💕💕

  • @대박-e4z
    @대박-e4z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많이배웁니다 감사합니다~~~구독자가되서 공부많이하겠습니다~~~^^

  • @dongchelrim2989
    @dongchelrim2989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감사합니다.

  • @이동희-i2e5q
    @이동희-i2e5q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0

    피디님 더운날씨 수고많으십니다.덕분에 나는 편하게 역사공부합니다

  • @무공훈장
    @무공훈장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9

    기다려지는 항상 좋은 역사 정보 감사합니다 ㅎㅎ ^^

  • @이정순-b9d
    @이정순-b9d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9

    다시 한번 복습의 기회를 주시네요^^

  • @매니아썬
    @매니아썬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

  • @술키즈온더블록
    @술키즈온더블록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종묘. 늘 오가던곳이었는데... 다시 가서 걷고 되새겨 봐야겠습니다^^~😂

  • @cho5377
    @cho5377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9

    이해 안되는 미스테리...
    이씨 왕조 종묘 에 고려 공민왕 사당 이라
    공식 안내문 에도 그 이유는 알수 없다...
    흥미로운 역사, 많이 배우고 갑니다

  • @매니아썬
    @매니아썬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 @왕정원-d7p
    @왕정원-d7p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왕건예후손으로주피디님감사함니다

  • @ELO-tj9uh
    @ELO-tj9uh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2

    정말 잘가셨습니다! 뜻깊은 곳을 방문해 주셨네요! 개인적으로 제일 역사속에서 역사왜곡이 심하게 이루어진 인물이 전 공민왕과 광해군이라고 생각합니다! 타도의 대상이 고려이고 자기조상을 모시는 곳이 종묘인데 그곳에 " 공민왕" 이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또한 "고려사" 에는 공민왕을 인간으로서 할수 없는 패륜과 미치광이로 묘사해놓고 여기 종묘에 모신다고요? 조선의 앞뒤가 안맞는 행동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여기다 모셨을까요? 주피디님께서 몇가지 이유를 제시 하셨지만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이것도 저만의 생각입니다 여기서도 나오지만 " 회오리 바람이 불어와 공민왕의 영정이 떨어졌고 " 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게 얼마나 우스꽝 스러운 언급입니까? 억지로 공민왕과 인연을 꿰 맞추기 위해 이런 신화를 만들어서 정통성이 없는 이성계가 억지로 공민왕의 정통성을 이어 받은 듯 연출을 하고 있지 않나요? 정비 안씨를 겁박해서 왕권을 얻은 이성계가 할 말이 없으니까 이런 신화를 만들어서 자기가 공민왕의 정통성 아니 고려의 계승자라고 포장하고 있네요! 정말 공민왕을 숭상한다면 이렇게 종묘에서 후미진곳에 초라하다 못해 그것도 제기하나 없이 이름모를 초상화만 덩그러니 걸어놓는게 말이 됩니까? 오로지 정권획득에만 혈안이 되서 죽은 공민왕까지 이용해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떠나 공민왕의 자료가 너무 희소하기에 그래도 공민왕과 너무나 아름다웠던 그녀 노국대장공주님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의미가 큰 장소임에는 틀림없네요! 이런 곳을 주피디님이 방문해서 그의미를 느낄수 있어 너무 좋네요! 영상제작을 하신 주피디님 수고에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inyeobseo9369
      @inyeobseo9369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공민왕 기록을 자세히 보시면 노국공주 살아 생전과 사후의 생활 기록이 전혀 다른 이중인격자 처럼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인데 공민왕 개혁 정책 대부분이 조선왕조에서 계승이 되었다는 점에서 공민왕의 공과 과는 별개의 문제로 기록하였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광해군도 공과 과 두부분이 모두 두드러져 어느 한쪽만으로 평가가 힘든 문제와 같습니다. 역사적 공적이 많으면 과오도 묻혀져야 하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공민왕이 조선에서 받은 대접은 고려의 어떤 왕에게도 하지 못한 파격적인 대우입니다.

    • @ELO-tj9uh
      @ELO-tj9uh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inyeobseo9369 무슨 파격적 대우입니까? 조선왕조가 사회사업을 하는 양심적인 집단입니까? 죽어 없는 왕을 대우한다고 해서 공민왕이 살아 옵니까? 말이 되는 말씀을 하시죠! 님께서 주관적으로 파격적이었다고 생각은 할수 있겠죠! 그저 시해되신 공민왕이 많은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생색을 낸것 뿐이죠! "고려사" 곳곳에서 공민왕과 신돈을 노골적으로 깍아 내리다 못해 악마화하면서 종묘에는 "공민왕사당" 이라는 이율배반적 행동이 보이지 않나요? 그리고 진짜 공민왕을 숭상 했다면 "제기" 하나 "향불" 하나 없는 게 말이 됩니까? 게다가 공민왕의 태생 우왕을 신돈의 아들이라고 중상모략하는게 보이질 않나요? 우왕이 신돈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우왕의 아들인 창왕을 옹립하는 건 무슨 넌센스 인가요? 이성계 일파의 앞 뒤가 안맞는 행동은 "고려사"에서 많이 나옵니다 "고려사" 자체에도 말이 않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 데 " 고려사 " 의 기록을 고지 곧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죠! 고려사를 대체할만한 사료가 부족하니까 우선은 고려사를 인용하는 것 뿐이죠! 그래서 더욱 "사료검증" 이 필요한거죠 ! 그리고 무슨 공민왕의 개혁정책이 계승되었다고 말씀 하시는 건가요? 신진사대부가 스스로 공민왕과 신돈의 정책을 계승했다고 말하던가요? 건국초 신진사대부는 신돈이 공을 들여 키워냈는데 이 신진사대부들이 패륜적으로 첫번째로 신돈을 신랄하게 비판한건 아시죠! 신돈만 비판했나요? 공민왕도 권문세족도 고려도 깍아 내렸는데 무슨 파격적 대우 운운 하시나요?

    • @김배현-t8n
      @김배현-t8n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역사 학자 시군요 ㆍ댓글 감사 드립니다 ㆍ

    • @mooyook2
      @mooyook2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inyeobseo9369 원나라 관리엿던 이자춘과 그의 아들 이성계는 고려가 멸해가는 과정에서 나라를 건국(쿠데타)하면서 쿠데타의 의미도 출생의 정통성이 없던지라
      자기 나름의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조선이라는 국호 이름을 사용한 것도 그렇고.

      어쨌건, 나름 부패한 고려를 개혁을 하고 과거 부흥강성했던 고려로 회기하고자 했던 공민왕이 기황후의 원나라와 연을 끊고 신진 국가였던 명나라와 힘을 도모하여
      원나라로부터의 귀속에서 벗어나고자 원나라 관리이지만 친명 세력이었던 이자춘과 이성계를 밀어줄 수 밖에 없었죠.
      강력하고도 충직한 장수이지만 고려말의 권력 중심이자 친원파였던 최영과 경쟁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겠죠.
      공민왕이나 이성게나 서로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요.
      그런 조선개국의 정통성의 의미로서 공민왕을 기리고 대우한다는 이미지를 살려야 하느라 대우를 해준 것이지
      정말 공민왕을 대우해주고 싶어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근위대와 노국공주 사이에 임신을 시킨 것도 공민왕 나름의 기존 귀족 세력들의 힘을 줄이기 위해 신분제도를 완화시킨 연장선으로 봐야 할 것이며,
      이 것또한 상당히 왜곡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것이지요.
      남색을 즐겻다는 것 또한, 삼국시대나 고려 시대에는 그닥 흉이 될 수 없었던 성지향성중에 하나였을테구요.
      또한 남색의 대상이라던 친위대들도 공민왕의 왕권을 공고히 하고자 마련한 최측근 인사 등용의 방법이라 생각이 들어요.
      즉 이 부분도 과하게 해석한 부분이라 여겨지는 것이지요
      대신에 공민왕의 형이자 선임금이었던 충혜왕은 친원파 대신들의 힘을 얻어 임금이 되었고.
      친원파 일 수 밖에 없었으니 연산군에 준하는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패륜망덕한 임금으로 기록하였으리라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인지라. 고려사는 물론, 고려시대에 보존하고 있던 고구려 역사서 120여권의 서적들도 오리무중 사라졌구요.
      고구려말에 기록된 고구려사들이 고구려만이 아니라 고조선과 부여등 한국 고대사의 증거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책들인데
      사라진 것이 너무 안타깝죠. 발해사도. 그렇고,
      유교학자였던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불교 승려 일연에 의해 쓰여진 삼국유사 외에는
      화려한 문화를 이룩했던 고려 스스로가 쓴 고려사가 없다는 것도 붕서갱유가 아니고서는 너무 말이 안되는 ///
      어쨌건 승자의 기록만으로 그 기록의 진실성을 백퍼 믿을 필요는 없겠죠.
      더구나, 단순한 승자도 아니고, 고려와 그 이전의 역사 시대를 대부분 부정해야하는 조선의 입장에서 쓰여진 기록만으로는

  • @김우현-y5u
    @김우현-y5u วันที่ผ่านมา

    음 이성계 집안이 원소속 쌍성총관부 관리였다니 충격이네요😮

  • @소호금천신라
    @소호금천신라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일본이 진짜 천재네 일본이 말한대로 100년이 넘었는데 조금도 역사 못찾음ㅋㅋㅋ

  • @r.jh.r7147
    @r.jh.r7147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쌍성총관부는 함흥이 아닌 현재 중국 심양근처 철령입니다

    • @김우현-y5u
      @김우현-y5u วันที่ผ่านมา

      이게 뭔 🐕 솔

  • @hanjiney
    @hanjiney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이성계가 인정한 마지막 고려왕(우왕 창왕은 가짜로 보고 공양왕 또한 자신이 죽인 왕)이고 또한 이성계가 조선왕이 아닌 고려 마지막 왕으로 즉위했기 때문에 공민왕을 잇는 것으로 여겨서 모시지 않았나 싶네요

  • @강창환-h1l
    @강창환-h1l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6

    주피디님의 영상 항상 감사합니다.
    한가지... 원나라 쌍성총관부의 위치는 요동입니다.
    '함경도'라고 교과서에 나옵니다만,
    원나라 정사인 '원사'에도 그 위치가 요동으로 나옵니다.
    오늘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광복 79주년입니다.
    ... 그런데, 아직도 일본인들이 그어놓은 고려의 영역과 국경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고려의 영토가 '만주'를 포함하고 있다는 여러 논문 발표가 있었고
    많은 곳에서 인용하고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정설로 인정될 것 같습니다만,
    우리는 왜? 아직도 일본인들이 축소하여 왜곡한 것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는지
    답답할뿐입니다.

  • @女忍者
    @女忍者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공민왕과노국대장공주 영정사진이 있다 나도 보았다 종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