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육군 28사단 화학지원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고로 희생된 병사 8명이 쓸쓸하게 묻혀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죽음의 비밀이 철저히 가려진 채 이 곳에서 조용히 묻혀있었습니다. 군부 독재 정권의 통제가 극심했던 시절,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을 어느 곳에 하소연할 수도, 알릴 수도 없었습니다. 군이 사건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기 때문입니다. 내무반 난로 곁에서 숨진 시신 더미에 뒤덮히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 병사는 20년이 흘러 어엿한 판사가 됐고, 총을 쏜 박 이병 대신 근무하러 나가면서 목숨을 구한 부대원은 사업가가 됐지만, 모두 동료들의 처참했던 모습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사고 조사 결과, 평소 내성적이던 박 이병은 고참들의 반복된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해 참극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재발 방지를 위한 군의 대책은 원시적이었습니다. 사형 집행된 박 이병의 시신 사진을 전시해 공포심을 가지게 했을 뿐입니다. 세상이 변했다 말은 많지만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참극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연 정말 그런지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2005년 6월 23일 YTN 이문석 기자의 한 맺힌 지난 20년에서 발췌.
지난 1985년 육군 28사단 화학지원대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고로 희생된 병사 8명이 쓸쓸하게 묻혀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죽음의 비밀이 철저히 가려진 채 이 곳에서 조용히 묻혀있었습니다.
군부 독재 정권의 통제가 극심했던 시절, 유족들은 억울한 죽음을 어느 곳에 하소연할 수도, 알릴 수도 없었습니다.
군이 사건이 외부로 공개되는 것을 철저히 막았기 때문입니다.
내무반 난로 곁에서 숨진 시신 더미에 뒤덮히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 병사는 20년이 흘러 어엿한 판사가 됐고, 총을 쏜 박 이병 대신 근무하러 나가면서 목숨을 구한 부대원은 사업가가 됐지만, 모두 동료들의 처참했던 모습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시 사고 조사 결과, 평소 내성적이던 박 이병은 고참들의 반복된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해 참극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재발 방지를 위한 군의 대책은 원시적이었습니다.
사형 집행된 박 이병의 시신 사진을 전시해 공포심을 가지게 했을 뿐입니다.
세상이 변했다 말은 많지만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면서, 참극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연 정말 그런지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2005년 6월 23일 YTN 이문석 기자의 한 맺힌 지난 20년에서 발췌.
이런 감성이 ㄹㅇ 좋아요
오 사랑합니다 군가a님
강릉무장공비랑 천안문 걸프전등등 이런 갬성영상 많이 나온다
요즘 이런게 많이 보이네
이런 격동의 1980년대에도 쉽게 하지 못한 계엄령을 지당이랑 국회에 까지 보고안하고 선포해버린 윤프.......
우리나라에도 드디어 생겼네
예전에도 우리나라에 이런거 많았음
이런거 많이 올려주세요 ㅎㅎ
시작부분 부터 좋내
형 괜찮아요??
와 80년대에 A-10 이 있었네 ?
1977년에 나왔다네요
신기한넹
썸네일 나만 승우아빠 닮았다고 생각하나ㅋㅋㅋ
Hello 11:11pm Fin
Rok l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