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생 카투사 14-01기 군번입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용투사 출신ㅋㅋ 저는 ACU 세대인데 영상에서 입으신 군복은 아무리 봐도 멋있네요ㅋㅋㅋ 우연히 영상을 보았는데 정말 공감이 많이 갑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인 4성장군과 미8군 사령관인 3성장군을 만났을 때에도 군인정신으로 제 경례를 다 받아주셨죠. 미군들은 항상 Motivation을 강요하기 때문에 장성들이 앞서서 행동하죠. 대대장이 방문했었을 때, 같이 서울타워까지 완전군장하고 뛰어갔었다는ㄷㄷ 그리고 화생방 훈련할 때, 훈련교관도 같이 방독면 벗고 푸쉬업 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제 인생은 카투사 전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상 보니까 그때 생각이 나서 정말 좋았어요. 잘 봤습니다!!
동두천에서 모텔함.. 미군유해발굴하러 미군부대가 장기투숙함. 유해발굴이라는게 결국 땅파는 일이라 일이 힘듬..부대인솔자는 흑인중령이였음 비가 엄청오는 날이였는데 그 중령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뒤집어쓰고 들어옴.. 그때 충격먹음..중령인데 그 비를 맞고 땅파고 일한거임 또 미군 군기얘기인데..일병이 뭔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복도에다가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세워둠.. 밥도 물도 안먹임.
나 완전 아재인데 댓글 써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단결! 카투사 1986년 11월 군번 예비역 병장 문00입니다! 영상에서 말씀하신 카투사 후배님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30여 년 전에도 제가 느꼈던 게 지금도 그대로이군요. 계급이 올라갈 수록 확실히 군기가 들어 사병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태도, 구타, 기합 없어도 자율적으로 자기 할 바를 묵묵히 수행하는 미군들에게 많은 부러움을 느꼈었습니다.
2018.10.9 췌장암 투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Thomas Vandal, former commander of Eighth Army and 2nd ID, dies By MARCUS FICHTL | STARS AND STRIPES Published: October 9, 2018 PYEONGTAEK, South Korea - A former commander of the Eighth Army and 2nd Infantry Division died Sunday after a battle with cancer. Retired Lt. Gen. Thomas Vandal commanded the Army’s highest headquarters unit on the Korean Peninsula from February 2016 until he relinquished the post in January. He played a major role in the deployment of U.S. troops to Camp Humphreys and the stationing of the THAAD air defense system to South Korea. “LTG(R) Thomas S. Vandal … you were a tremendous leader and a charismatic mentor,” a message on the Eighth Army’s official Facebook said. “You were the epitome of the Eighth Army Motto: “Fight Tonight!” The hearts and prayers of the Eighth Army go out to the family and friends of LTG Vandal.” The 1982 West Point graduate served prominently as one of the Army’s top generals in South Korea this decade, first taking the reins of 2nd ID in 2013 before becoming the Army’s top general in South Korea three years later. He handed over command to Lt. Gen. Michael Bills. Vandal led soldiers on the peninsula during a period of ever-intensifying tensions with North Korea that reached a boiling point last year when Washington and Pyongyang threatened each other’s destruction. He was also credited with improving coordination between U.S. and South Korean troops. During his career, he also served as director of operations, readiness and mobilization in the Army’s director of operations, readiness and mobilization at the Pentagon; commandant of the Army Field Artillery School; deputy commander of the 3rd Infantry Division in Iraq; and commander of the Joint Multinational Readiness Center in Germany.
16년 12월 군번으로 육군 현역으로 25사단 전역했습니다. 하시는 말씀들 정말 대부분이 공감이 많이 가네요 우리나라 군대 문제 많습니다. 지금은 병영문화혁신이라고 악습이나 부조리같은건 없지만 본보기가 되야할 간부들이 오히려 병사들 사기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동생도 올해 아니면 내년 군대를 가겠지만 정말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다녀오면 좋겠네요 항상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장병분들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나오시길 바랍니다~!
35년전 갔던 카투사.... 지금 우리 군인들과 비교를 해봐도 너무나 차이 납니다. 세월이 지나면 바뀔줄 알았는데...별로... 카투사들이 편하게만 지내는건 아니랍니다. 트럭 사고로 숨진 두명의 카투사 동료, 북으로 넘어간 놈 하나... 저도 DMZ근무를 하며 5분대기조로 3개월간 있었죠. 제일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카투사들만 모아놓고 선거 전에 정신교육 한다면서 한국군 장교가 김대중 = 빨갱이 식으로 말하니까 모든 병사들이 욕하면서 강당에서나가버린 사건...ㅋㅋㅋ 뻘쭘해하던 그 장교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전두환때 였는데... 시험기수라서 차출된 선배들에게 갈굼도 많이 당했지만...그래도 그 분들이 더 인간적이였던거 같아요. 웃기는건 농사짓다가 들어온 병장이 서울대 나온 이병보다 영어를 잘했다는 점. 그리고 또 떠오른 에피소드는 카투사중에 미군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여군과 결혼한 사병도 있었고... 새로온 미군 군수품 한국군으로 빼돌려서 나름 우리나라에 충성한 점...양공주들이 가져온 편지 번역해 주다가 나도 같이 울었던...ㅠ 이 영상으로 갑자기 옛날 군대 추억에 젖어 보네요. 저분 말씀 참 잘하시네요.
@연세대송도캠원주캠 지난번 송도캠퍼스 강의하러 가니까 연세대가 원주랑 송도를 차별한다고 대자보가 붙어 있던데... 적어도 우리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힘을 모았지 그런 일로는 데모 안했소.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다는 뜻이요. 세월이 지나 어느정도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님이 당연시 여기는 지금의 자유가 50-60대들의 희생이였소, 나도 깜빵 생활 했으니...물론 4개월 뿐이지만. ㅋ) 그런데 님처럼 자생적 괴물들이 스물스물 기어나올줄은 몰랐다오. 그냥 단적으로... 노벨상 주는 곳에서 미쳤다고 아무에게나 주겠오? 이러면 또 로비해서 땃다느니 햇소리를 하겠지만... 가짜뉴스좀 그만 보시오. 적어도 노벨 위원회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읍시다. 김대중 전대통령때 노벨위원회는 처음으로 희안한 경험을 했다고 합디다. 한국에서 자기들에게 편지로, 이멜로 김대중에게만은 절대로 주지 말라고 수천통의 메일이 왔다고...특히 경상도 쪽에서 많았던 모양이요. 누구를 주라는 편지는 받아 봤어도 주지 말라고 그 당사자 나라에서 온 편지는 첨이라고 하더이다. 이걸 어찌 생각하시오. 창피하지 않소? 아직 학생이시라면 하나만 기억하길 바라오. 당신의 생각이 부디 맞아서 노벨 위원회 심사위원들이 틀렸다는걸 당신의 삶으로 증명해 보라고. 당신의 이름으로 상도 좀 주고....아닥 취업준비나 하시든지... 최소한 자기 이름을 내놓고 아이디로 쓸수 있는 사람으로 사실길 바라오. 까진 머리지만 자기 사진을 걸수 있던지. 그 대문사진도 없이.. 눈사람이요? 진심으로 마지막 한마디 하겠소, 무명의 청년에게. 더 이상 답글 없어도 너무 서운해 마시오. 그래도 이리 답글 달아주는 꼰대가 흔한줄 아시요? 영광 굴비라 여기시오. 이만 총총
용산 98군번 카투사였습니다. 한국군과 가장 큰차이점은 미군은 계급이 높을수록 책임감이 더 높고 그만큼 일도 더 많이 합니다.(잡스러운 일일 지라도) 사람마다 케바케라고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솔선수범하는 분위기입니다. NCO 나 장교라고 해서 한국군처럼 설렁설렁이 없습니다. 그만큼 후임 혹은 팀원 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거죠. 저는 Mos가 92Y로 대대 S-4 섹션인 보급과 무기고관리등을 맡아하는 보급행정이었는데 미군은 몸쓰는 일이 많을수록, 머리쓰는 일이 많을 수록 하이어 랭커가 일을 더 많이 합니다. 인스펙션할때도 무조건 메뉴얼 데로합니다. 즉 지연, 혈연, 학연 등등의 뻘스러운 잡음이 나올 구멍이 없어요. 왜 천조국인지 깨닫게 된 계기였네요. 그 외에 PT 를 하든 훈련을 뛰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미션 딱 정해주고 나를 따르라 입니다. 팀원들은 잘 수행만 하면 됩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섹션 장이나 중대장 혹은 일등상사 주임원사 등이 나눠 집니다.
15년 12월 군번 17년 9월 전역 한국 장교들도 잘받아줬어요 안받아준 장교.부사관 아무도 없었음 제가 맞주친 장교님들은 단 수도병원 에선 암묵적으로 안하더라고요ㅎㅎ 너무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ㅎㅎㅎㅎㅎ 거긴 장교가 지나가도 동네 아저씨 형 느낌이였고 3군 갔을땐 소.중.대령 분들 식당 에서도 받아줬음 여중령은 맛있게 드세요 라고 했고 대령님은 고생하시네 라고 병장 인 나에게ㅜㅜ
저는 전역 17년된 용카이고 부대명은 밝히기 어렵지만 한국군으로 치면 기무대같은 곳에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대충 다 아실겁니다ㅋ) 다른 건 오래되서 기억이 안나고 복무당시 부시 대통령이 용산에 왔었습니다. 당시 부대 특성상 미군들과 함께 의전 업무같은 걸 하면서 먼발치서 미대통령을 본 기억이 나네요 ㅋ
영상 잘 보았습니다..한국내 사실 왕관을 쓴자여 무계를 견뎌라 이말을 새겨야 하는데....다들 조금이라도 출세 하면 조선 시대 양반처럼 생각하니...그래서 그런가 한국전쟁때 중공군 사령관 팽덕웨이는 한국군 지휘관을 있는 분대만을 향해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유엔군 또는 미군 지휘관이 있는곳은 잘 뚫리지 않았는데 한국군 지휘관이있는 곳은 항상 뚫였다 하니 ...참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진짜 한국군은..짬차고 높을 수록 뭔가..가라라고 하죠? 대충대충 넘겨서 처리해버리는 것들 이있는데 미군 NCO부사관 과 Officer 장교분들은 아닙니다.. 면도 생활 몸관리 하나하나 정말 철저하시고 가라? 꿈도 못꿔요 바로 상위부대 관리조직에서 다찾아내고 엄벌합니다. 진짜 일처리 하나하나 귀찮을 정도로 단계를 거쳐서 천천히 완벽히 진행합니다(물론 군대다보니 별난사람도있을겁니다) 저는 평택 험프리에서 근무 했었는데 훈련으로 인해 1~2달씩 못나가고 못된 한국간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ㅠㅠ 그리고 일이 적은 땡보라고 생각들 하시는데, 뭐 그런 보직도 있을겁니다 카투사가 카투사라는 보직 하나가 아니고 한국군에도 여러 보직이 있듯이 미군 여러보직에 업무수행을 도와주러 가는 한국군을 통틀어 카투사라고합니다 , 그러다보니 밤샘작업, 주말근무 하는 보직들도 많고 평일에 거의 뭐하나 싶을정도의 땡보까지 어떻게 보면 일의 편차가 제일 심하다고 생각듭니다 대신 일이 끝나면 자신의 방이 있고 자신의 시간이 좀더 보장된다는점! 그게 정말 카투사의 장점같아요. 물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냐는 본인의 몫이겠지만요 ㅋㅋ
동두천은 카투사에겐 최전방입니다. 전반적으로 몸이 많이 힘들고 지칩니다. 동두천 헬케이시 라는 말도 있죠. 저는 캠프호비 근무했는데, 메인 캠프인 케이시와 호비가 불어있습니다. 케이시가 정문, 호비가 뒷문인 셈이죠. 아마 지금은... 아마 평택의 험프리로 이전이 되었을수도 있겠군요.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도 소수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순환전투목적으로 들어온 미군부대가 많습니다. 순환전투대대로 배치되어 근무하시면, 수시로 비상도 꽤 자주 걸리는 지역입니다. 같이 근무했던 한 대대는 비상을 정말 자주 걸었는데, 그때마다, "이곳이 한국의 최전방이니 언제 올지 모를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서 훈련해야 한다"라는 이유를 들더군요. ㅠㅠ 동두천에서 근무하신 카투사라면 공감하실 부분인데, 전투병과라면, 같이 근무하는 미군이 2번이상 한국에 와본적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런 경우 조심하셔야 할게, 착한 미군이라면, 카투사가 힘든걸 배려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운이 없는 경우라면, 오히려 카투사를 너무 잘 알아서 약점을 잡고 괴롭히기도 하죠. 혹시라도 이 글을 올해 3월 이후에 입대하시는 카투사분들이 읽으실수도 있어 경험에 비추어 글을 남겨봅니다.^^ 화이팅하세요.
동두천 모든 미군 부대가 전투병과는 아니고요. 전투부대가 몰려있는 캠프 케이시의 경우도 실제로 전투병과 보다는 행정병과가 더 많습니다만.. 기계화부대나 보병부대가 동두천에 다 있죠. 제가 입대하기 몇년 전 선배님들은 4개 부대가 3개월씩 DMZ미션이라고 해서 비무장지대 순찰업무도 있었어요. 제가 있던 부대의 경우도 1년 중 80~100일은 서부 전방 훈련지에서 보냈습니다. 당연히 텐트 같은거 없었고요. 사실 신체적으로 좀 더 편하고 다양한 기회를 갖기위해 카투사 지원을 하실텐데 실제 훈련만큼은 한국군보다 더 빡쎈 전투부대 가고 싶겠어요?ㅋ 그리고 훈련 없을 때 일과 후에도 동두천 시내는.. 별로 갈 곳도 없어요;;;;
미군들에게 존중받는 방법이나 대우 받는 경우는 어떤경우 인가요? 경험담이나 들은 이야기가 있으면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미군 헌병은 밖(이태원,동두천 시내)에 나가서 하는 일이 뭔가요? 미군 헌병은 주폭 일반시민을 상대로 물리력을 행사 할 수 있나요? 그리고 이태원에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데 그들과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나요? 또 미군과 카투사들 간에 싸운적이 있나요? 또 싸우면 어떻게 되나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때는 전반기 논산에서 훈련이 끝나면 후반기에 평택 캠프 험프리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고 성적에 따라 부대배치를 받습니다. 성적이라고 들었지만 어딜 가나 빽은 있습니다. 그 빽이 누구냐....캠프 험프리 카투사 식당을 운영하던 식당 아줌마 입니다. 이 분이 유명 권투선수의 엄마입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만세다" 그분이 브로커 역할을 했죠,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100만원까지. 86년도 얘기니까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지금으로 적어도 500이나 천만원? 적어도 그정도 입니다. 그러면 좋은 보직으로 빼준다고 합니다. 그걸 니가 어떻게 아냐구요? 제가 그 당사자입니다. 물론 저는 몰랐죠. 아버지가 연락을 받았데요. 도대체 연락처는 어디서 빼돌렸는지...하루는 식당 아줌마가 부르시더니 친절하게 육개장 하나 맥이시면서..."걱정 마 잘될거야"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나중에 제대후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어디로 배치받았냐구요? TDC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버지가 그 돈으로 동두천에 땅을 사놓으셨다면 지금 이 시간에 이런 댓글이나 쓰고 있지 않을텐데.... ㅋㅋㅋㅋㅋ 어차피 아버님도 돌아가셨고 그 어머니도...(돌아가셨나?) 하여간 공소시효 지났을거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동두천서 병참대로 빠졌으니 빽이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지 모르죠. 하지만 우리 기수에서 병참대 간 사람만 15명인데.... 에휴...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채널 구독 좀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후 아버님이 제가 복학후 데모하다 구속됐을때 검사에게 50만원 멕이셨는데 그 검사는 제게 영치금으로 돌려주더군요. 나에게 반성문 쓰면 잘봐주겠다던 그 한양대 출신 춘천지역 검사는 뭐하는지 모르겠네요. 만나면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 "거봐, 내가 그랬지? 세월 지나면 누가 더 쪽팔릴지 보라고" 아...그당시 아버님이 무지 원망스러웠는데.... 제가 그 나이가 되어가니까 그 맘을 알겠네요. 결론...젊은이들. 아버님에게 잘 하세요. 당신이 어찌살든 그 분의 뒤를 따라가게 될테니까....
우리부대에 미군이 백여명정도 파견이 되어 고정적으로 근무하는데 이중에 눈이 맞아 결혼한 사병이 둘, 이것들이 연애할 때 이 여군이 같은 테이블에서 내 바로 옆에 앉아 출입경계근무 했는데 밤만되면 남자놈이 찾아와 물고 빨고 함. 바로 옆에 내가 있는데, 그때는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진짜 카투사출신으로 공감합니다 ㅋㅋㅋㅋ미군높은사람들 자기관리 철처히하고 경례잘받아주는거 ㄹㅇ 인정합니다
94년생 카투사 14-01기 군번입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용투사 출신ㅋㅋ 저는 ACU 세대인데 영상에서 입으신 군복은 아무리 봐도 멋있네요ㅋㅋㅋ 우연히 영상을 보았는데 정말 공감이 많이 갑니다. 한미연합사령관인 4성장군과 미8군 사령관인 3성장군을 만났을 때에도 군인정신으로 제 경례를 다 받아주셨죠. 미군들은 항상 Motivation을 강요하기 때문에 장성들이 앞서서 행동하죠. 대대장이 방문했었을 때, 같이 서울타워까지 완전군장하고 뛰어갔었다는ㄷㄷ 그리고 화생방 훈련할 때, 훈련교관도 같이 방독면 벗고 푸쉬업 했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제 인생은 카투사 전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상 보니까 그때 생각이 나서 정말 좋았어요. 잘 봤습니다!!
미군 장교는 한국군 장교와 정말 많이 다른것 같아서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동두천에서 모텔함.. 미군유해발굴하러 미군부대가 장기투숙함. 유해발굴이라는게 결국 땅파는 일이라 일이 힘듬..부대인솔자는 흑인중령이였음
비가 엄청오는 날이였는데 그 중령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뒤집어쓰고 들어옴.. 그때 충격먹음..중령인데 그 비를 맞고 땅파고 일한거임
또 미군 군기얘기인데..일병이 뭔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복도에다가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세워둠.. 밥도 물도 안먹임.
우린 저러면 인권유린했다고 GR쳤을텐데..... 저도 미군과 쌈을 했을때...물론 말싸움이지만...같은 흑인 주임상사가 자기도 흑인이라서 나랑 싸운 흑인 상병 감싸줄줄 알았는데....
문밖에서 들어보니 엄청 혼내고 15일간 외출금지에 근무시간 외에 샌드백쌓기 공사시킴. 내가 미안해서 그 흑인 상병에게 마실거 갖다 줌. 씩 웃더라구요.
내일 카투사 입대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잘다녀오겠습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랑 이름 같네요..저도 카투사지원하는데 걸리면 좋겠네요ㅜㅜ
@박영 근 문장에 왤케 점 많이 써요?
@박영 근 틀
나 완전 아재인데 댓글 써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단결! 카투사 1986년 11월 군번 예비역 병장 문00입니다!
영상에서 말씀하신 카투사 후배님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30여 년 전에도 제가 느꼈던 게 지금도 그대로이군요. 계급이 올라갈 수록 확실히 군기가 들어 사병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태도, 구타, 기합 없어도 자율적으로 자기 할 바를 묵묵히 수행하는 미군들에게 많은 부러움을 느꼈었습니다.
ㅎㅎㅎ 전 30여 년 전 동두찬 Camp Casey 미보병 제2사단 15포병 1대대(155mm 자주포) 부대에 있었지만 말씀하신대로 업무 이후에 휴식 시간이 확실히 보장되니 좋더군요.(예외적으로 카투사 집합을 제외하고는..)
안녕하세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30여년 전에도 비슷한 분위기였다는게 놀랍기도 하고, 아직까지 한국군은 예전 그대로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합니다... 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83년도 입대. 캠프 케이시 앞에 캠프 모빌이라는 병참대가 있었죠? 비행장 옆에. 거기서 3년 잘 지내다 왔죠. TDC 출신이라 반갑네요.
@@talkkingshin 단결! 반갑습니다. 선배님. 저희 부대는 원래 의정부 캠프 스탠리에 있다가 1988년 초에 캠프케이시로 이주해 갔습니다. TDC라.. 오랫만에 듣는 이름입니다.^^ 건강하세요.
@@talkkingshin 캠프 모빌에 계셨었군요.
제가 입대할 당시 캠프 모빌은 2사단 신병 2차 후방기 교육을 받던 곳이네요.
전 길건너 캠프 케이시 503보병 1대대에서 96~98년도에 근무했었습니다.
고인이 되신 Vandal 장군의 명복을 빕니다..
돌아가셨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8.10.9 췌장암 투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Thomas Vandal, former commander of Eighth Army and 2nd ID, dies
By MARCUS FICHTL | STARS AND STRIPES
Published: October 9, 2018
PYEONGTAEK, South Korea -
A former commander of the Eighth Army and 2nd Infantry Division died Sunday after a battle with cancer.
Retired Lt. Gen. Thomas Vandal commanded the Army’s highest headquarters unit on the Korean Peninsula from February 2016 until he relinquished the post in January.
He played a major role in the deployment of U.S. troops to Camp Humphreys and the stationing of the THAAD air defense system to South Korea.
“LTG(R) Thomas S. Vandal … you were a tremendous leader and a charismatic mentor,” a message on the Eighth Army’s official Facebook said.
“You were the epitome of the Eighth Army Motto: “Fight Tonight!” The hearts and prayers of the Eighth Army go out to the family and friends of LTG Vandal.”
The 1982 West Point graduate served prominently as one of the Army’s top generals in South Korea this decade,
first taking the reins of 2nd ID in 2013 before becoming the Army’s top general in South Korea three years later.
He handed over command to Lt. Gen. Michael Bills.
Vandal led soldiers on the peninsula during a period of ever-intensifying tensions with North Korea that reached a boiling point last year when Washington and Pyongyang threatened each other’s destruction.
He was also credited with improving coordination between U.S. and South Korean troops.
During his career, he also served as director of operations, readiness and mobilization in the Army’s director of operations, readiness and mobilization at the Pentagon; commandant of the Army Field Artillery School; deputy commander of the 3rd Infantry Division in Iraq; and commander of the Joint Multinational Readiness Center in Germany.
삼가 명복을 빕니다. Rest In Peace, General Vandal.
살아 계실 때 그렇게 원망을 했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st in peace, General Vandal
반달 장군님 돌아가셨어요?? 헐...
16년 12월 군번으로 육군 현역으로 25사단 전역했습니다. 하시는 말씀들 정말 대부분이 공감이 많이 가네요 우리나라 군대 문제 많습니다. 지금은 병영문화혁신이라고 악습이나 부조리같은건 없지만 본보기가 되야할 간부들이 오히려 병사들 사기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동생도 올해 아니면 내년 군대를 가겠지만 정말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다녀오면 좋겠네요 항상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장병분들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나오시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간부 = 직장인 or 공무원
미군 간부 = 군인
유격장가면 간부들도 형식적으로 유격 같이 받는데 대충 10분정도 하는 척하고 소풍온 것처럼 장난치고 노는것보고 어이가 없더라. 이게 군대냐
다그런건 아닌거같아요
열심히 하는 간부들은 모두 다같이 하죠
하지만 배튀어나온 간부들은 눈치보다가 도망가죠
도망가는 간부는 열심히 하는 간부들이 마음속으로 욕한답니다
특전사 그외 특수부대 장교들 말고는 제대로 훈련도 않습니다 86~88년 당시에도 장교들이 이러했는데 요즘은 볼것도없이 그냥 구경만할듯
전쟁나면 아군 장교부터 쏠지도 모름
저 2007 동두천 투나인 출신인데 오랜만에 미군부대 얘기들으니까 재밌네요. 확실히 우리나라 장교들이 뒤쳐지는 느낌은 떨칠 수가 없네요...
팩폭지리네요 한국군인들 특히 직업군인분들
각성해야합니다.
카투사&한국군 현역 모두 고생하십니다!
젊은이가 진짜 진실하게 말을 잘하네요.
끝부분 국방군 장교들의 미군들과의
비교 진짜 동감합니다.
국방군 똥별들 처리를 해야된다.
지금은 미군부사관이지만 사병이엇을때 camp carroll에서 16년에 근무했었습니다 한국계 미군으로써 근무하면서 카투사분들과 재미있게 근무했었는데 여러모로 본받을게 많은 분들이 많았었습니다. 카투사분들 화이팅!!ㅋㅋ
오호....김치GI 반가와요. 김치GI는 두 부류예요. 한쪽은 카투사랑 잘 지내는 쪽, 한쪽은 카투사랑 상종도 안하려는 쪽, 님은 전자셨네요.
@@talkkingshin 말 그따구로 하지마세요 ㅋㅋ
반갑네요.
저도 88년 1월부터 90년 1월까지 camp carroll 교육센터에서 근무하다 제대 했습니다.
ㄹㅇ 레이더부대 근무하면서 미군들 온적있었는데 산꼭대기를 걸어올라오니까 헥헥대면서도 경례는 다받아줌 근데 막 줄줄이 기어올라오니까 계속 안내리고 들고있었는데 웃으면서 다받아줌 그리고 문닫고 올라가니까 키큰흑인이 벽붙잡고 왓더뻑 하면서 오줌누고있고 ㅋㅋㅋㅋ 그와중에 미군 대령은 버스에서 산올려다보고 다시 들어갔다고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어딜가나 있는듯 전부는 아니지만
35년전 갔던 카투사.... 지금 우리 군인들과 비교를 해봐도 너무나 차이 납니다. 세월이 지나면 바뀔줄 알았는데...별로... 카투사들이 편하게만 지내는건 아니랍니다. 트럭 사고로 숨진 두명의 카투사 동료, 북으로 넘어간 놈 하나... 저도 DMZ근무를 하며 5분대기조로 3개월간 있었죠. 제일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카투사들만 모아놓고 선거 전에 정신교육 한다면서 한국군 장교가 김대중 = 빨갱이 식으로 말하니까 모든 병사들이 욕하면서 강당에서나가버린 사건...ㅋㅋㅋ 뻘쭘해하던 그 장교의 모습이 생각나네요. 전두환때 였는데...
시험기수라서 차출된 선배들에게 갈굼도 많이 당했지만...그래도 그 분들이 더 인간적이였던거 같아요. 웃기는건 농사짓다가 들어온 병장이 서울대 나온 이병보다 영어를 잘했다는 점.
그리고 또 떠오른 에피소드는 카투사중에 미군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여군과 결혼한 사병도 있었고... 새로온 미군 군수품 한국군으로 빼돌려서 나름 우리나라에 충성한 점...양공주들이 가져온 편지 번역해 주다가 나도 같이 울었던...ㅠ 이 영상으로 갑자기 옛날 군대 추억에 젖어 보네요. 저분 말씀 참 잘하시네요.
DMZ미션을 하셨던 선배님이시군요.
저는 동두천 503보병 1대대 출신입니다.
503보병 2대대 당시에도 3개월 DMZ 미션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sholakim 네. DMZ체험이 저에게는 참 귀한 시간이였어요.
@연세대송도캠원주캠 에이...연세대 다니는 분이 그런 무식한 말씀을.... 그러니까 카투사 못가신 거랍니다. 메롱~~
연세대 욕 안멕일래면 아이디 바꾸삼.
@연세대송도캠원주캠 지난번 송도캠퍼스 강의하러 가니까 연세대가 원주랑 송도를 차별한다고 대자보가 붙어 있던데... 적어도 우리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힘을 모았지 그런 일로는 데모 안했소.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았다는 뜻이요. 세월이 지나 어느정도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님이 당연시 여기는 지금의 자유가 50-60대들의 희생이였소, 나도 깜빵 생활 했으니...물론 4개월 뿐이지만. ㅋ) 그런데 님처럼 자생적 괴물들이 스물스물 기어나올줄은 몰랐다오. 그냥 단적으로... 노벨상 주는 곳에서 미쳤다고 아무에게나 주겠오? 이러면 또 로비해서 땃다느니 햇소리를 하겠지만... 가짜뉴스좀 그만 보시오. 적어도 노벨 위원회의 이야기는 귀담아 들읍시다. 김대중 전대통령때 노벨위원회는 처음으로 희안한 경험을 했다고 합디다. 한국에서 자기들에게 편지로, 이멜로 김대중에게만은 절대로 주지 말라고 수천통의 메일이 왔다고...특히 경상도 쪽에서 많았던 모양이요. 누구를 주라는 편지는 받아 봤어도 주지 말라고 그 당사자 나라에서 온 편지는 첨이라고 하더이다. 이걸 어찌 생각하시오. 창피하지 않소? 아직 학생이시라면 하나만 기억하길 바라오. 당신의 생각이 부디 맞아서 노벨 위원회 심사위원들이 틀렸다는걸 당신의 삶으로 증명해 보라고. 당신의 이름으로 상도 좀 주고....아닥 취업준비나 하시든지...
최소한 자기 이름을 내놓고 아이디로 쓸수 있는 사람으로 사실길 바라오. 까진 머리지만 자기 사진을 걸수 있던지. 그 대문사진도 없이.. 눈사람이요? 진심으로 마지막 한마디 하겠소, 무명의 청년에게.
더 이상 답글 없어도 너무 서운해 마시오. 그래도 이리 답글 달아주는 꼰대가 흔한줄 아시요? 영광 굴비라 여기시오. 이만 총총
웨포출신 여군과 결혼한건 신기하네요...일하다보면 오히려 정분나는게 신기하던데..
용투사 선배인데요.. 을지훈련때 수방사벙커에서 근무하던 중.. 하루는 비가 왔었는데.. 한국군 장교들은 우산쓰고.. 미군 장교들은 판쵸나 그냥 그대로 맞고 걸어가는 모습 보면서 "참!!!" 하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용산 98군번 카투사였습니다. 한국군과 가장 큰차이점은 미군은 계급이 높을수록 책임감이 더 높고 그만큼 일도 더 많이 합니다.(잡스러운 일일 지라도) 사람마다 케바케라고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솔선수범하는 분위기입니다. NCO 나 장교라고 해서 한국군처럼 설렁설렁이 없습니다. 그만큼 후임 혹은 팀원 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거죠. 저는 Mos가 92Y로 대대 S-4 섹션인 보급과 무기고관리등을 맡아하는 보급행정이었는데 미군은 몸쓰는 일이 많을수록, 머리쓰는 일이 많을 수록 하이어 랭커가 일을 더 많이 합니다. 인스펙션할때도 무조건 메뉴얼 데로합니다. 즉 지연, 혈연, 학연 등등의 뻘스러운 잡음이 나올 구멍이 없어요. 왜 천조국인지 깨닫게 된 계기였네요. 그 외에 PT 를 하든 훈련을 뛰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미션 딱 정해주고 나를 따르라 입니다. 팀원들은 잘 수행만 하면 됩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섹션 장이나 중대장 혹은 일등상사 주임원사 등이 나눠 집니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 팩폭이 진짜 뼈속 골수를 때리내요 ㄷㄷㄷ 군대뿐만아니고 정치,군대,공무원 ㄷㄷㄷ 요즘 기업들은 좀 바뀌는 추세 이고 좋은방송 감사합니다
PT나 달리기 같은걸 카투사가 더 잘하는 경우도 부대 마다 케바케라고 하더라고요.
캠프 케이시 & 호비 (영상에서 말한 동두천) 같은 전투부대 배속되면 당연히 미군들이 월등할 수밖에요.. 실전경험이 있는 군인들도 있다고 하고..
한달에 한번.... 동두천 2사단 정문에서 시작해서 부대를 가로질러 호비로 넘어갔다가 동두천 시내를 지나 부대로 돌아오는 코스를 달렸는데..... 지금은 젠장.
일반병사가 안보땜에 휴대전화 소유를 못한다면 일단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소위까지 다 금지시켜야되는게 논리에 맞지 않나
저도 간부들은 다 쓰면서 병사들은 금지 시키는 게 앞뒤가 맞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청 감사합니다.
우리나라 군대장교들 부끄럽다
15년 12월 군번 17년 9월 전역 한국 장교들도 잘받아줬어요 안받아준 장교.부사관 아무도 없었음 제가 맞주친 장교님들은 단 수도병원 에선 암묵적으로 안하더라고요ㅎㅎ 너무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ㅎㅎㅎㅎㅎ 거긴 장교가 지나가도 동네 아저씨 형 느낌이였고 3군 갔을땐 소.중.대령 분들 식당 에서도 받아줬음 여중령은 맛있게 드세요 라고 했고 대령님은 고생하시네 라고 병장 인 나에게ㅜㅜ
와...진짜 마지막 공감입니다.
저는 전역 17년된 용카이고 부대명은 밝히기 어렵지만 한국군으로 치면 기무대같은 곳에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대충 다 아실겁니다ㅋ)
다른 건 오래되서 기억이 안나고 복무당시 부시 대통령이 용산에 왔었습니다. 당시 부대 특성상 미군들과 함께 의전 업무같은 걸 하면서 먼발치서 미대통령을 본 기억이 나네요 ㅋ
3:48 한국 여군들 반성해라 당직서면서 셀카나 찍지말고
2020년 2월 카투사 입대합니다!! 좋은 정보들 감사합니다 ㅠㅠ
동기님
저는 3월에 입대했습니다!
솔직히 군대 있을 때 간부보다 존경심이 드는 것은 선임이었음.
ㅇㅈ 딱 카투사는군인인느낌 오히려 근무시간중에는 일반국군보다 일많은데 근무시간끝나면 그냥 자유
궁금한데 카투사는 몇년간 하는거에요 ? 우리나라 육군 처럼 1년 몇개월 하고 그러나요 ?
영상 잘 보았습니다..한국내 사실 왕관을 쓴자여 무계를 견뎌라 이말을 새겨야 하는데....다들 조금이라도 출세 하면 조선 시대 양반처럼 생각하니...그래서 그런가 한국전쟁때 중공군 사령관 팽덕웨이는 한국군 지휘관을 있는 분대만을 향해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유엔군 또는 미군 지휘관이 있는곳은 잘 뚫리지 않았는데 한국군 지휘관이있는 곳은 항상 뚫였다 하니 ...참 생각해 볼 일입니다..
진짜 의미있는 말이네요~ 윗대가리들은 지멋대로 하면서 사병들에게만 빡빡하게 생활을 강요하는 뭐같은 모습... 이게 우리나라의 군대 모습...
재밌어요 ㅋㅋㅋ
재미있게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 한국군은..짬차고 높을 수록 뭔가..가라라고 하죠? 대충대충 넘겨서 처리해버리는 것들 이있는데 미군 NCO부사관 과 Officer 장교분들은 아닙니다.. 면도 생활 몸관리 하나하나 정말 철저하시고 가라? 꿈도 못꿔요 바로 상위부대 관리조직에서 다찾아내고 엄벌합니다. 진짜 일처리 하나하나 귀찮을 정도로 단계를 거쳐서 천천히 완벽히 진행합니다(물론 군대다보니 별난사람도있을겁니다) 저는 평택 험프리에서 근무 했었는데 훈련으로 인해 1~2달씩 못나가고 못된 한국간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ㅠㅠ 그리고 일이 적은 땡보라고 생각들 하시는데, 뭐 그런 보직도 있을겁니다 카투사가 카투사라는 보직 하나가 아니고 한국군에도 여러 보직이 있듯이 미군 여러보직에 업무수행을 도와주러 가는 한국군을 통틀어 카투사라고합니다 , 그러다보니 밤샘작업, 주말근무 하는 보직들도 많고 평일에 거의 뭐하나 싶을정도의 땡보까지 어떻게 보면 일의 편차가 제일 심하다고 생각듭니다 대신 일이 끝나면 자신의 방이 있고 자신의 시간이 좀더 보장된다는점! 그게 정말 카투사의 장점같아요. 물론 그 시간을 어떻게 쓰냐는 본인의 몫이겠지만요 ㅋㅋ
육사 출신과 카투사 출신 두 군대중
어느 소속이 엘리트 집단 인가요???
궁금하네요??
육사는 장교 카투사는 사병입니다. 기준이 좀...
카투사 지원 희망하는 학생인데 카투사 가면 영어회화 많이느나요 ㅎㅎ?
지원단 소속으로 가면 한국군하고 근무하죠 영어쓸 일이 별로 없을껍니다. 대부분은 미군들과 생활하기땜시 ㅎ
저는 미군 몇주 안봤지만 거기서도 많이 느꼈어요.ㅠㅠ 우리군이 부족한 점과 더 나은 점들을..
참 카투사들 ㅎㅎㅎ 평택에서 미군으로 일할때 나랑 같은 섹션에 일했던 친구들 ㅎㅎㅎ 언젠간 또 보고싶네여
카투사도 한국의 전문하사 처럼 복무연장을 할 수 있나요??
안돼죠. 그러면 말뚝 박을 사람 많습니다. 사회로 나오니까 더 먹고 살기 힘들더라고요. ㅠ 그립다. 매스홀 음식
전문하사 가능합니다 육군의 전문하사지 미군은 전문하사가 없어요
동두천은 왜요? 뭔가 더 현지 스럽게 배울 수 있을거같은데 할렘처럼ㅋㅋㅋ많이 안좋나요? 전혀 아는바가 없어서
생활환경은 비슷합니다 전투병과라 훈련이 개많고 몸이 오지게 힘들뿐..
동두천은 카투사에겐 최전방입니다. 전반적으로 몸이 많이 힘들고 지칩니다. 동두천 헬케이시 라는 말도 있죠.
저는 캠프호비 근무했는데, 메인 캠프인 케이시와 호비가 불어있습니다. 케이시가 정문, 호비가 뒷문인 셈이죠. 아마 지금은... 아마 평택의 험프리로 이전이 되었을수도 있겠군요.
한반도에 주둔하는 미군도 소수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순환전투목적으로 들어온 미군부대가 많습니다. 순환전투대대로 배치되어 근무하시면, 수시로 비상도 꽤 자주 걸리는 지역입니다.
같이 근무했던 한 대대는 비상을 정말 자주 걸었는데, 그때마다, "이곳이 한국의 최전방이니 언제 올지 모를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서 훈련해야 한다"라는 이유를 들더군요. ㅠㅠ
동두천에서 근무하신 카투사라면 공감하실 부분인데, 전투병과라면, 같이 근무하는 미군이 2번이상 한국에 와본적이 있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런 경우 조심하셔야 할게, 착한 미군이라면, 카투사가 힘든걸 배려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운이 없는 경우라면, 오히려 카투사를 너무 잘 알아서 약점을 잡고 괴롭히기도 하죠.
혹시라도 이 글을 올해 3월 이후에 입대하시는 카투사분들이 읽으실수도 있어 경험에 비추어 글을 남겨봅니다.^^ 화이팅하세요.
동두천 모든 미군 부대가 전투병과는 아니고요.
전투부대가 몰려있는 캠프 케이시의 경우도 실제로 전투병과 보다는 행정병과가 더 많습니다만..
기계화부대나 보병부대가 동두천에 다 있죠.
제가 입대하기 몇년 전 선배님들은 4개 부대가 3개월씩 DMZ미션이라고 해서 비무장지대 순찰업무도 있었어요.
제가 있던 부대의 경우도 1년 중 80~100일은 서부 전방 훈련지에서 보냈습니다.
당연히 텐트 같은거 없었고요.
사실 신체적으로 좀 더 편하고 다양한 기회를 갖기위해 카투사 지원을 하실텐데
실제 훈련만큼은 한국군보다 더 빡쎈 전투부대 가고 싶겠어요?ㅋ
그리고 훈련 없을 때 일과 후에도 동두천 시내는.. 별로 갈 곳도 없어요;;;;
카투사는장기 복무를할수있나요..? 아니면 무져건 정해진복무기간만 채우고 나와야하는지요...
박지성 법적으로 한국군 사병이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만 가능해요
전문하사 6개월 가능합니다
복무기간은 육군과 같나요??
복무기간은 육군과 동일합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thepeople1816 살짝 다릅니다..... 카투사는 제대 전 길게는 6개월 짧게는 3개월 미리 집에 갑니다. 그랬다가 얼마전 걸려서 ㅈ 됐어요. 오래전부터 그랬는데...
2014년 평택헌병으로 배치됐다 줸장. 헌병............ 쓰벌 ............... 엿같았지만 그래도 전역 후 뒤돌아보면 스펙터클하기도 하고 재밌었다.
고생하셨어요!
557?? 저는 06년 군번이었는데 헌병근무 당시엔 진짜 ㅈ같았지만 돌아보면 그런일 언제해볼까 싶을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일을 해본듯하네요ㅋㅋ
@@gaazuaa 저보다 한 8년은 앞서서 하셨었네요. 짬질 꽤 심하셨던 때같은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ㅇㅇ
아, 복무할땐 맨날 "뻐킹 557"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게 전부 추억으로 승화되면서 회상할때마다 그냥 웃습니다 ㅋㅋ
본인이 있던 시절이 젤 힘든법이죠ㅎㅎ 1057배럭 썼던 기억이 나네요 위치도 험프리스에서 제일 외진곳에 있어서 게이트 나가려면 한참걸리고ㅋㅋ
말 재밌어요
우리나라 군간부들이 얼마나 군기가 빠졌는지 부끄러울 정도네요~
미군들에게 존중받는 방법이나 대우 받는 경우는 어떤경우 인가요? 경험담이나 들은 이야기가 있으면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미군 헌병은
밖(이태원,동두천 시내)에 나가서 하는 일이 뭔가요? 미군 헌병은 주폭 일반시민을 상대로 물리력을 행사 할 수 있나요? 그리고 이태원에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데 그들과 싸우게 되는 경우도 있나요?
또 미군과 카투사들 간에 싸운적이 있나요? 또 싸우면 어떻게 되나요?
올해 4월 입대 예정인 예비 카투사입니다! 혹시 입대 전 영어 공부나 체력 시험 대비 어느 정도로 해야하는지 궁금합니다!
@an Iy 토익 780점 이상 지원 가능이고요! 그 담엔 뺑뺑이에요 ㅠㅠ 경쟁률 7~8:1 정도 돼요 ㅠㅠ 저 가는 4월은 7.5:1이었네요
걱정 안하셔도 카투사 훈련소 3주동안 죽어라 운동만 시키기 때문에 거기서만 성실하게 따라가시면 푸시업 0개하던 사람도 35개 하고 합격해서 나갑니다.
성실하게만 하세요 진짜 힘들긴 해도 결국엔 합격합니다. 저도 모든 종목 기록 2배되서 나왔어요.
KTA가서 보는 영어시험 진짜 중요합니다. 꼭 잘 보셔야 헌병 전투병 안갑니다.
헌병도 꿀이에요~오프가 한달에 15일이상
Daegeun Kim 그리고 영상 저분처럼 무슨 컴퓨터 자격증같은거 있음 좋나요??
모든 카투사가 존경했던 반달 장군 소천하셨어요 ㅠㅠ
카투사는 주말마다 나올수있나요??
모든카투사가 그렇지는않습니다 보직특성에따라 못나갈수도있고 부대마다 패스가 또 틀려서..
미친일등상사가있는 전투부대라면 몇달동안 못나가는 경우도봤습니다
두유럽미 ㄹㅇ 부대바이부대임
부대바이 부대 직무 바이 직무
제가 성인되면 꼭 카투사 입대하고싶은 생각이드는 영상이네요
군사학과 장기복무를 하면서 카투사에 지원할 수 있나요?
카투사출신들이 혹시 미국에가서 군인이나 경찰되면 호봉, 경력인정해주나요?
카투사는 미군에 증원된 한국군 요원의 약자를 줄여 부르는 단어입니다. 즉, 미군 한국군지원단 소속의 한국군입니다. 다만 군생활동안 미군의 지휘계통을 따를 뿐입니다.
저는 지금 중학생인데 경래가 영어로 무엇인가요?
Salute 한다고합니다 ㅎㅎ
카투사의 꽃은 동두천 헌병입니다. 다들 꼭 운전면허만들고 입대하시길. 시간 잘갑니다. 55th....
142d Regulators
저 해군헌병출신인데요 카투사 헌병생활은 어땟나요?
헌병은 다 힘든듯... 55, 142, 557 ㅋㅋㅋ
동두천도 감사하죠
고등학교 선배는 7월 입대해서 9월에 911 터짐..ㅠㅜ
비상걸려 힘들었을텐데...
근데 저 멀티캠 군복은 사신 건가요? 예전에 아는 사람에게 듣기론 미군 유니폼은 전역하고 반납해야한다고 들어서요. 반납 안되면, 뒤에 있을 사람들이 돈?을 쓴다고 하던데. 사실 여부 확인해주십쇼
멀티캠은 아니고 일반 OCP 군복입니다.
용산 부럽네요 ㅠㅠ
혹시 개인 노트북같은것도 자대안에 들고들어갈수있나요? ㅠ 개인시간에 포토샵작업같은거 하고싶은데
씹가능함ㅋㅋ 플스도 가능
카투사 지원자격어떻게되요??
전역 20차 보기에: 한국군 여전하네.
부정적인 것은 점점더 부정적으로 발전합니다, 20년전에도 그랬다면 지금은 더 안 좋아졌겠죠.
오른쪽분 티에 불꽃이 묘하게 글씨랑 매치가 된당ㅋㅋㅋㅋㅋ
한 21년 전쯤? 8군 근무할 때 롬바르디 필드에서 바비큐파티 행사하는데 추레하게 입은 백인 아저씨가 와서 바비큐 먹고갔음. 뭐 높은 사람 같기는 했는데... 랜돌프 하우스 8군사령관이었음ㅋㅋㅋ 3성장군님께 인사 제대로 한 번 못드리고 그냥 햄버거나 먹고 있었다니...
와우 룸바르도 필드 121병원앞에있는거 아닌가요ㅋㅋㅋㅋㅋ
@@autom368 맞습니다. 완투완하스삐럴ㅋㅋㅋ
@@yobarjobsey357 121호스피탈에서 카투사들이 빼돌린 약이 엄청났다고 하던데...사실일까요? ㅎ 폐기물을 하수관에 버려서 괴물이 탄생했다는건 사실로 드러났지만...ㅋ
저는 우리 4성장군이 지나가는데 창고뒤에 누워 있었음, 그런데 이 양반이 우리 옆으로 지나가버림.
전 2인실썼는데 ㅂㄷㅂㄷ...
90년대에는 카투사 3인실도 있었습죠.
대학안나왔는데 카투사가면 무시하나여 ㅠㅠ
안뽑혀요~
토익점수 되서 지원했다가 뺑뺑이 떨어져서 못갔는데ㅠㅠ
KTA영어시험 잘보세요~ 그 점수로 보직 결정됩니다.
90년 8월 군번입니다. 카투사는 자대보다는 보직.
군복무시 군복무 태도! 미군의관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 군의관은 그냥 군복입은 민간인
민간인이면 양반입니다, 사병은 실습대상입니다.
진짜 이번년도 붙고 싶다
카투사를 꿈꾸며 토익학원 다니고있습니다!!!
장교나 부사관 하기에는 한국군이 짱이네요.
사병하기에는 미군이 최고이고
그래도 가고싶다 전방보다 편하겠지
의경,카투사,수방사 등 꿀보직
신의아들
부럽다 카투사 나는 7사단 인데
저는 육군 파견보직이었는데 카투사 정말 부럽더라구요...!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투사도 의무병과가 있나요?
있어요 ㅋㅋ 병원에서 일해요 꿀보직입니다. 후반기 교육에서 영어성적 잘나와야해요
@@테스트테스트-k9d 와 감사합니다
도전해 봐야겠네요
121은 확실히 꿀이긴한데 컴벳메딕 이런데로 가면..
121병원 클리닉 카투사들 개꿀입니다ㄷㄷ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우리때는 전반기 논산에서 훈련이 끝나면 후반기에 평택 캠프 험프리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고 성적에 따라 부대배치를 받습니다. 성적이라고 들었지만 어딜 가나 빽은 있습니다. 그 빽이 누구냐....캠프 험프리 카투사 식당을 운영하던 식당 아줌마 입니다. 이 분이 유명 권투선수의 엄마입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만세다"
그분이 브로커 역할을 했죠, 적게는 50만원., 많게는 100만원까지. 86년도 얘기니까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지금으로 적어도 500이나 천만원? 적어도 그정도 입니다.
그러면 좋은 보직으로 빼준다고 합니다. 그걸 니가 어떻게 아냐구요? 제가 그 당사자입니다. 물론 저는 몰랐죠. 아버지가 연락을 받았데요. 도대체 연락처는 어디서 빼돌렸는지...하루는 식당 아줌마가 부르시더니 친절하게 육개장 하나 맥이시면서..."걱정 마 잘될거야"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지 몰랐어요. 나중에 제대후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어디로 배치받았냐구요? TDC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버지가 그 돈으로 동두천에 땅을 사놓으셨다면 지금 이 시간에 이런 댓글이나 쓰고 있지 않을텐데.... ㅋㅋㅋㅋㅋ
어차피 아버님도 돌아가셨고 그 어머니도...(돌아가셨나?) 하여간 공소시효 지났을거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동두천서 병참대로 빠졌으니 빽이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을지 모르죠. 하지만 우리 기수에서 병참대 간 사람만 15명인데.... 에휴...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채널 구독 좀 부탁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후 아버님이 제가 복학후 데모하다 구속됐을때 검사에게 50만원 멕이셨는데 그 검사는 제게 영치금으로 돌려주더군요. 나에게 반성문 쓰면 잘봐주겠다던 그 한양대 출신 춘천지역 검사는
뭐하는지 모르겠네요. 만나면 한마디 해주고 싶은데.... "거봐, 내가 그랬지? 세월 지나면 누가 더 쪽팔릴지 보라고"
아...그당시 아버님이 무지 원망스러웠는데.... 제가 그 나이가 되어가니까 그 맘을 알겠네요.
결론...젊은이들. 아버님에게 잘 하세요. 당신이 어찌살든 그 분의 뒤를 따라가게 될테니까....
미친 ᆢ언제적 이야기를
강대국이 돈만 많다고 강대국이 아니다! 계급이.높을수록 본분을 잘지킨다는말이.괜히.초강대국이.아니네요! 배나온 똥별들보면 패고 싶다능!
제 스푼크루에 크루장님 오빠가 카투사라던데
하긴 2년전인가 1년전인가 대전 본부 네트워크 북한태 털렸는데 지들이 뭘 잘했다고 밑에 기지들 갈구는지 ㅋㅋㅋ 화풀이를 막 해드라 갑자기 점검한다고 지랄이던데 니들이나 잘해라
2:19 시x
우리부대에 미군이 백여명정도 파견이 되어 고정적으로 근무하는데 이중에 눈이 맞아 결혼한 사병이 둘,
이것들이 연애할 때 이 여군이 같은 테이블에서 내 바로 옆에 앉아 출입경계근무 했는데 밤만되면 남자놈이 찾아와 물고 빨고 함.
바로 옆에 내가 있는데, 그때는 아주 죽는 줄 알았습니다.
KTA에서 기초훈련받는 레벨이 육군부사관 기초훈련보다 훨 퀄리티 있을듯 ㅋㅋㅋㅋ
킹산....
똑똑한 놈들이 는게 아니라 영어 잘하는놈들이 가는곳이다.....
앞서 말하셨듯 어딜가나 정신나간놈이 있으니 폰 함부로 못 쓰게 하는거지..사실 부사관,장교도 지금 뭐 한달에 한번씩 보안검사같은 거만 받도록 되어있는데 사실 규제해야됨. 카메라나 GPS이런거 다 막도록
왜여기 핸드폰댓글 삭제함 개싸가지없네 카투사들존나 약았음ㅋㅋㅋㅋㅋㅌ
님은왜 긁어부스럼을 만들라해요?
@@야굴 너구나?
훈현 뭐가 약았어요???
@@Hhhhhh-v8m 카 적 카 서로 신고하고 민원넣고 ㅋㅋㅋㅋ 나보다 잘되는 꼴 못본다
@@훈현-x4k 말하는 꼴을 보니 딱 너의 인생일듯 하다. 너같은 애들은 제발 카투사 가서 이미지 떨어뜨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
우리나라장교들이 뭔 장교냐ㅋㅋ 전쟁나면 프레깅쳐당할준비나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