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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 the City - 도시를 말하다
เข้าร่วมเมื่อ 18 มิ.ย. 2022
'다신교'를 믿던 고대 유대인과 그들의 도시 '예루살렘'
안녕하세요
오늘은 유대교의 성지'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고대 다신교를 믿던 유대인의 조상부터,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의 탄생까지
유대인과 유대교의 역사와 이들의 도시, 예루살렘의 이야기 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 드리겠습니다.
#유대인 #예루살렘 #바알 #유대교
오늘은 유대교의 성지' 예루살렘'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고대 다신교를 믿던 유대인의 조상부터, 유일신을 믿는 유대교의 탄생까지
유대인과 유대교의 역사와 이들의 도시, 예루살렘의 이야기 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 드리겠습니다.
#유대인 #예루살렘 #바알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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วีดีโอ
일본은 어떻게 홋카이도를 차지했을까? (선사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인과 아이누의 전쟁)
มุมมอง 12K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오늘 준비한 영상은 일본 홋카이도의 주요도시 삿포로 이야기 입니다. 기원전부터 이어져 온 도래인과 조몬인의 이야기부터, 아이누의 마지막 땅 홋카이도 그리고 홋카이도를 차지하기 위해 세워진 도시 삿포로까지 많은 시청 부탁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삿포로 #아이누 #원령공주 #조몬인 #일본역사
남베트남의 현충원 빈증성 '비엔호아 군사묘지'
มุมมอง 1.9K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오늘 영상은 남베트남의 현충원이 있던 도시. 빈증(Binh Duong)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많이 진출해있는, 베트남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지방중 하나인 빈증에는, 과거 베트남 전쟁 시절, 남베트남군 전사자들을 위한 군사 묘지 '비엔호아 군사묘지'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군사 묘지는 남베트남이 패망한 후 잊혀지게 되었죠. 오늘은 이 비엔호아 군사묘지와 빈증성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베트남역사 #현충원 #베트남전쟁 #빈증
'작센 코부르타 고타'에서 '윈저'로, 영국 왕실의 이름을 바꾼 도시! (feat. 이튼 칼리지)
มุมมอง 1.9K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국 왕의 이름, 정확히는 영국왕실의 성(姓)이 된 도시 '윈저'의 이야기 입니다. 영국 왕실을 대표하는 윈저성과 귀족 사관 학교 이튼 칼리지까지, 영국에서 가장 영국스러운 도시 '윈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스카치 위스키'의 영광을 만든 도시가 오늘날은 찬밥이 된 이유 (ft. 캠벨타운)
มุมมอง 397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동영상에 까만 화면만 나오는 문제로 재업로드 하였습니다. 오늘 준비한 영상은 한때 전세계 고급위스키의 대부분을 공급하며, 영구 최고의 부자 도시로, 위스키의 수도 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나, 이제는 몰락해버린 도시 '캠벨타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비시'는 왜 프랑스의 수도가 되었을까?
มุมมอง 88K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오늘 준비한 영상은 프랑스 괴뢰정권 '비시 프랑스'의 수도였던, '비시' 의 이야기 입니다. 어쩌면 프랑스에서 가장 억울할지도 모르는 도시 '비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꼬냑'은 어떤 술일까? 미운오리에서 백조가 된 술 '꼬냑'의 이야기
มุมมอง 2.3K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오늘 준비한 영상은 명품 술 '꼬냑' 의 이야기입니다. 버리는 와인에서 만들어졌지만, 너무도 맛있어 도시 이름 자체가 브랜드가 된 술 '꼬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명품 생수의 대명사! '에비앙'은 누가, 언제, 왜 마시기 시작했을까?
มุมมอง 581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오늘 준비한 영상은 명품 생수의 대명사 '에비앙'이 만들어지는 마을 '에비앙 르 벵' 입니다. 오늘날 에비앙의 유명세를 만든 두 인물 '레저 후작'과 '가브리엘 카샤' 그리고 카샤의 샘에 얽힌 안따까운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에비앙르벵#에비앙#카샤의샘#생수
꺼지지 않는 불의 도시, 전세계 석유의 50%를 생산하던 도시
มุมมอง 2.4K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과거 조로아스터교의 성지이자 러시아 석유의 시작을 알렸으며, 노벨도 투자했던 석유 도시 '바쿠'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봅시다. #아제르바이잔 #노벨#러시아석유#바쿠
패션과 명품의 도시 '밀라노', '밀라노'는 어떻게 패션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มุมมอง 3.2K2 ปีที่แล้ว
안녕하세요 오늘은 패션과 명품의 도시 '밀라노'입니다. 감사합니다. #밀라노#패션#패션위크#명품#이탈리아#도시
'베네치아' 천년간 물과 싸우는 도시 / '모세 프로젝트'는 베네치아를 구원할수 있을까
มุมมอง 1.5K2 ปีที่แล้ว
베네치아가 물 위에 세워진 이유, 그리고 1000년 이상 물과 싸우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베네치아 #모세프로젝트 #도시 #베니스 #홍수
'하와이'의 주도 '호놀룰루' / 일본인들은 어떻게 하와이에 정착하게 되었을까(ft.파인애플 피자)
มุมมอง 55K2 ปีที่แล้ว
'하와이' 의 주도 '호놀룰루' 와 일본인들의 하와이 정착기 그리고 조선계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의 이야기 입니다.
'마카오'가 카지노의 도시가 된 이유 / 카지노의 황제 스탠리 호 이야기
มุมมอง 3.2K2 ปีที่แล้ว
카지노의 도시 '마카오' 입니다. #마카오#카지노#스탠리호#밤의황제#마카오역사#홍콩
'사천 요리'가 매워진 이유 / 사천성의 성도 '청두' 이야기
มุมมอง 1.7K2 ปีที่แล้ว
사천성의 성도 '청두' 이야기 입니다 #사천요리 #사천 #청두 #청두역사 #도시 #삼국지 #훠궈
'홍콩'은 어떻게 발전했는가, 특별 행정구 '홍콩' 이야기
มุมมอง 8892 ปีที่แล้ว
오늘의 도시는 중국의 특별 행정구 '홍콩' 입니다. #홍콩#홍콩역사#홍콩집값#침사추이
이완용도 한국의 페탱이 될수 있겠네요.. 이런 논리면.. 완용씨도 현실을 인지하고 훗날을 도모했겠죠
유대인 차별법이야 대놓고 협조하지 않으면 진짜 큰일나서 어쩔 수 없이 해야한 것이었음
그러니까 예전엔 땅이 비옥하고 한강 때문에 농사 짓기 좋고 , 중국이랑 교류 할려고 서울로 간건데 지금은...집 값만 ㅈㄴ 비싸고 부자들 아니면 살기가 힘듦 ㅠㅠ
프랑스가 계속해서 항전했으면 지금 프랑스는 진짜 흑인+무슬림 국가 되어버렸음 이미 1차대전에서 나라의 미래가 죄다 갈려버린 상황에서 2차대전에서 까지 다 갈렸으면 지금 프랑스는 없지
드골의 자유프랑스와 레지스탕스가 항전해서 실제로 지금 반은 흑인 무슬림 천국됨 ㅅㄱ
개인의사욕이나 권력욕으로 나라를팔아넘겼다면모를까 찾아본기록으로는 그저 프랑스라는 나라를유지하기위해 나치에손잡은걸로밖에안보임
프랑스의 전라도네요
감사합니다🎉
매국노 아니라 애국노내 😢😢😢😢😢😢😢😢
패탱이 욕을 먹을 이유가 있나? 별로 싸우지도 않고 금방 항복한 프랑스인들이야 말로 패탱에게 미안해 해야 하지 않을까?
누가보면 페탱이 독일에 협력하면서 돈이라도 받은 줄 알겠네
프랑스는 식민지한테 했던걸 지들이 당했네ㅋㅋㅋㅋ
그리고 6주 컷 당한 상황에서 프랑스가 저항을 할 경우 말 그대로 프랑스 국토가 싹다 페허가 될 가능성이 높았음. 독일은 무조건 항복 외엔 받지 않겠다는 조건이었고 그게 아니면 프랑스 주요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 했음 물론 프랑스가 그럼에도 결사 항전을 계속 했다면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더 끌었겠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비시 프랑스 정권보다 훨씬 가혹한 상황에 노일 가능성이 높음.
페탱이 되고 싶어서 저자리 간 것도 아니고 완전히 짬처리 당한 케이스인데 그럼에도 딴 양반에게 토스 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프랑스를 지키려 한 인물임. 존버 하다가 독일이 이기면 한몫 요구 하려고 했고 질거 같으면 통수 각 재려고 하고 있었음. 다만 그 과정에서 반역자으로 간주한 자유 프랑스나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거나 숙청한 경력이 있어서 결국 말년이 좋지는 못했음. 다만 스페인국왕이나 군부가 망명 제안 에도 거절하고 프랑스로 돌아 간거 보면 본인 스스로는 떳떳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임.
패탱이 남 프랑스를 지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스페인과 독일이 국경을 마주 보게 됨 스페인은 친독 국가였으나 눈치를 보면서 직접적인 참전을 하지 않고 중립을 선언한 상태였음. 의용군을 보내긴 했는데 미적지근하게 보내는 둥 마는 둥 해서 시간 끌다 질거 같으니 복귀 시켰고 근데 코 앞에 나치가 있다? 그럼 바로 붙어 먹을게 뻔함 이거만 보면 뭐가 대단한데 할 것인데 스페인에는 지브롤터가 있음 지브롤터 해협만 해도 지중해의 입구로써 엄청난 전략적 가치가 있었는데 여기가 막히면 일단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는 연합국이 포기해야 했었을 수 있음 또 영국령 지브롤터에는 거의 본토 수준의 영국 함대가 주둔하면서 추축군을 괴롭혔는데, 스페인이 그냥 영토 자체를 먹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음. 함대는 후퇴해야지 사실상 2차대전에서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전선의 전진 기지가 영국령 지브롤터였는데 여기가 없으면 게임이 안된다는 소리임.
그 자리에 서보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했을 지 논할 의미가 없다
애초에 책임 묻자면 동등하거나 우세한 전력 가지고 독일에게 무참하게 패해서 외국으로 도망친 군부와 정치인들에게 책임 물어야 하는 거 아닐까? 처음부터 군인들과 정치인들 죄다 도망치고 항복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선택지는 있을 수가 없다.
전쟁을 그지같이 못해서 처벌한다는 법률은 없긴 함 ㅋㅋㅋㅋ
옹호하는 사람들이많네, 광복 후 우리나라도 이랬겠지 그래서 지금도 이렇고ㅎㅎㅎ
이분 초반에 구독했는데 왜인지 구독 취소 되어 있었네 ㅠㅠㅠㅠ 그래서 이 영상 이제야 봅니다 ㅠㅠ 정주행할게여
안 그래도 화장수가 다 떨어져서 뭘 사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걸 보고 나니 비시(Vichy) 온천수 토너를 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야, 페탱과 함께하는 스킨케어!
이것도 바이럴임?
이사람 때문에 프랑스가 의문의 1승을 거둔거임.. 이차대전 가장 피해가 적은 국가임..
페탱은 프랑코 말대로 기성 정치인들과 군부가 지들 실패를 설거지 시킨거임 문제는 페탱의 의도는 순수했을지라도 수반이 된 이후 바지화되면서 밑의 대독협력자들이 맘대로 설치게됨 이들은 베르됭의 영웅이던 페탱의 이미지에 또한번의 위기를 구한 영웅이란 이미지까지 만들어서 전면에 내세운뒤 알뜰하게 이용해먹음 안타깝게도 페탱은 여전히 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1940년 여름의 패전을 보불전쟁에서의 패배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음 "이번엔 졌지만 보불전쟁 패배 이후 국력회복해서 역전승에 성공한 1차대전처럼 상황보다 나중에 다시 한판붙어서 이기면된다"는식의 생각을 했음 제2제정이 무너진후 세워진 파리의 임시정부가 계속저항하다가 포위가 이어지고 더 큰 댓가를 치뤄야했던걸 청소년기에 지켜봤던 그 복수심으로 군인의 길을 걸었던 페탱이기에 이미 대세가 기운상황에서의 저항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을것
좋은 내용에 쓰레기 배경음악
강도가 칼을 던져주며 네 자식을 하나 네손으로 죽이면 나머지는 목숨을 살려줌 이라는데 샤를 드 골 같은 사람은 그 칼로 강도에게 덤빈거고 이 사람은 직접 자식을 죽인 것임 그 전의.공로가 훈장으로 남았듯 말년의 죄 또한 형을 내려 남겨야 맞지. 훈장갯수만큼 죄를 지어도 되는듯이 사칙연산하는 건 논리적 오류임 옳지도 않고 이상한 정당화하는 인간 많아져서 사회개판날듯
그래서 사형판결을 했는데 드골이 쉴드쳐준건 논외라고 볼 수 있지
당장 그 칼로 강도랑 싸워도 승산이 없음 강도는 총을들었거든 그리고 그렇게 강도를 자극하면 자식한명으로 안끝나지 ㅇㅇ
@@굿잡-d6n 그럼 샤를드골은 사실 병신임? 옳고 그름은 없고 대충 또 사칙연산하노...ㅠㅠ결국 강도한테 잡히면 제대로 살 수도 없는데
@@junhochoi2442 결론적으로 샤를드골이 성공했지만 그 육군강국 프랑스가 6주만에 털렸는데 여기에서 항전을 택하는건 무모한짓임 결과를 아니까 페탱이 븅신같아보이는거지 ㅇㅇ
@@junhochoi2442 그럼 니말대로면 낫질작전으로 6주만에 다털리고 주력군 다잃었는데 항전함? 덩케르크에 장비 다놓고와서 영국 본토도 겨우막았는데 그렇게 프랑스 본토에서 꾸역꾸역 버틴다고 지원군이 옴? 옳고 그름은 없다면서 왜자꾸 불필요한 희생을 무리하면서까지 만들려는거임?
배경음악 정신 사납다. 말투 유치하다. 쓸데없이 떠들썩한 썸네일과 제목 재수없다.
폐탱이 1차대전에서 활약한 배경이있다는것도 국익을 지키려한 사람이라는 주장을 더 뒷바침해준듯
비시 페탱 덕분에 프랑스내 유태인은 히틀러 치하유럽에서 가장 많이 살아 남았고 프랑스인들도 비교적 나치 피해가 적었다. 독일 침공 직후 외국인 영국으로 도망간 드골은 전쟁 중 안전한 영국에서 입으로 싸운 후 전후 영웅 행세. 반면 대전 부산으로 후퇴하며 전쟁을 지휘하여 자유 한국을 지켜낸 이승만은 런승만이라고 비난. 북진 때 신의주로 피신한 김일성을 비난하는 소리는 없다.??
난 비시프랑스 수도 리옹인줄 알았는데 비시가 도시 이름이네
지들이 항복해놓고 싫어하는 도시 ㅋㅋㅋㅋㅋ 어휴
에비앙과 다른 물의 차이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물과는 다르게 인식하게 한 스토리가 있었기에 인식 가치가 프리미엄으로 들어간 거네요 마치 명품 가방이랑 가방랑 가격이 차이 나는 것처럼요
빚이 많아서
안준생의 프랑스 버전....인가...
가믈랭이 아니라 페탱이 총사령관이었다면 어땠을까?
욕받이가 된거지 뭐
밀라노가 짧은 역사라기엔 로마때부터 있었는디요 패션의 역사를 말하시는거겠죠?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도 과장되었고 비시 정권에 협력한 프랑스인 많았습니다. 제 3공화국이 잦은 정권교체로 혼란스러웠고 특히 36년 총선에서 사회주의자와 공산당의 연립정권이였던 popular front가 집권해서 프랑스의 급격한 좌경화를 경계하는 우파들도 많았음. The sorrow and the pity (Le Chagrin et la Pitié) 라는 1969년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비시 협력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프랑스에서는 한때 상영이 금지되었었죠. 바펜 SS에 자원했던 협력자 인터뷰 등 볼만합니다. 나찌/비시에 대한 협력자 중에는 기회주의적인 출세주의자도 있었지만 이념적인 이유에서 협력한 사람들, 그냥 체제순응적인 사람들 등 여러 종류였습니다.
요즘에 왜저렇게 한국인들 프랑스 욕하냐? 한국이 망해가긴 하나보다 아주 미움과 극혐이 가득하네 대한민국은 프랑스인들은 여름이라고 한달 휴가가는데
한국의 전라도 같은 곳 이군요
저 시절 프랑스 국기는 흰색인줄 알았는데 아니네.....
한국 좌파들 프랑스 무지 좋아하는데 그 내면에 드골이 반민족행위족친다면셔 마녀사냥이랑 숙정을 단행했는지 재평가가 시급하다. 패탱이 살려놓은 프랑스를 드골이 후루찹찹한거지
페탱의 당시 심정과 결정은 너무도 이해가 잘된다. 우리나라의 친일파처럼 자신의 사리사욕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국가과 국민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독일군에 순식간에 밀려버릴 정도로 개같은 군대 상황인데 어떤 지도자가 이런 결정을 절대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물론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런식으로 국민들과 인프라를 지켜내고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 당시 최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름.
...? 당시 친일파가 없었으면 조선이 독립해서 유지가 될꺼라고 생각하는거냐?? ㅋㅋ 진심으로? 잘생각해봐라 당시에는 친일파뿐만 아니라 친청 친러도 있었다 이게 뭘 의미할까?
@@vug8uguh180 독해력이 얼마나 바닥을 기면 이딴 댓글을 쳐 적냐 ㅋㅋㅋㅋ 단어 하나에 꽂혀서 딴소리하네 맥락을 좀 읽어라 사리사욕 채우는 친일파랑 대비되는 면모가 인상깊어서 그걸 강조하고자 저런 댓글을 쓴 거 아니겠냐 임마 ㅋㅋㅋ 위에 어떤 친일파 관련 댓글이 있었는데 그게 삭제된 거라고 믿고 싶다 ㅋㅋㅋㅋㅋ 실질적 문맹
@탱크보이-d8h 풉ㅋㅋ 맥락은 너같은 반일병자들이 말아먹은거고 ㅋㅋ 근대화 완료한 일본에 꼴아박아서 이천만 조선인들 전부 증발하면 만족하겠냐? 당시 조선보다 월등한 국력 자랑하던 중화민국이 중일전쟁으로 이천만가까이 민간인포함 증발함. 솔직히 일제가 인종청소 맘먹으면 당시 조선인들 대부분 갈려서 지금 남미 메스티소 꼴날수도 있었음
@@Wisniewski1참나 ㅋㅋ 대단한 깨시민 납셨노 야이 저능지야 사리사욕이고 뭐고간에 당시 조선이 근대화 끝난 일본이랑 싸우는건 걍 국민들 믹서기에 넣겠다는 소리인건아냐?
대치 상황의 프랑스부터 맡은 것도 아니고 이미 독일에 완패한 후 구원 투수로 나온 상황에서 똥치우러 나온 사람이 이길 가능성도 거의 없는데 국민을 전쟁터로 갈아넣었어야 했나? 패탱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본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갈아넣어야 정의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게 어떻게 정의가 될 수 있는가 현실을 볼 줄 알고 국민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진짜 애국자고 영웅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어떠한 전쟁에 전투 병력을 파병하며 직접적으로 참전한다 했을 때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를 전장에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국가도 국가지만 누군가의 가족, 친구, 지인을 지켜내고 살려낸 거다
히틀러도 싫었지만 빨갱이가 더 싫었을 뿐...
무릎을 꿇음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현대식 Artille의 아버지, 불명예를 뒤집어 쓴 페탱이 있었기에 드골이 자유 프랑스를 재건한게 아닐까요.
프랑스 3공의 끔찍한 좌우대립 생각하면 파업 시위 피하려고 비시 수도 삼은 게 제일 정답일 듯. 전후에도 나치 부역자보다 좌익 레지스탕스 때려잡는 걸 우선한 프랑스 우익 생각하면 이게 맞다
페탱이 애국자였던 것은 맞지만, 페탱이 충성한 것은 우파가 통치하는 프랑스였을 뿐이죠. 독일을 미워했다 하더라도 좌익보다는 덜 미워했을 뿐이구요. 이 점만 이해하면 페탱의 얼핏 보기에는 모순된 행보가 전부 설명됩니다.
결국 꼴통이었다는거.
저 당시 좌는 공산과 파시즘, 우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였기에 프랑스 왕가와 자유 프랑스는 전부 우파였습니다. 당연히 우파가 통치하는 프랑스만이 페탱의 조국이기 때문에 우파가 통치하는 프랑스에 충성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ruak0107 무슨 말씀을 하세요 프랑스 사회당/급진파 계열은 아예 말씀도 안 꺼내시네요?
@ruak0107 파시즘은 극우인데요..
ㅋㅋ 파시스트가 좌파래 ㅅㅂ 개그맨임?
페탱이 뭐가 잘못된건지 하나도 모르겠음 어차피 질거 무의미한 죽음 하나라도 더 건지는게 맞는거지 뭐하러 저항을 함? 저항도 힘이 비슷할때나 해볼만 한거지
이완용
그 시기 프랑스는 혼란 두 글자가 프랑스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었음. 이 시기 해외에 있던 앙리 필리프 페탱은 '패전 덤터기'라는걸 알고도 고집을 꺾지 않고 귀국했고, 그 덤터기에 엉망이 된 나라를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상으로 다시 조각해나갔음. 페탱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길을 택했고 프랑스를 위하는 길을 택했으며, 본토의 프랑스인들을 어떻게든 재규합하여 회복의 길을 걸으려 했으나, 그러나 그 길은 궁극적으로는 오답에 다다르는 길이었다는 것이었다는 것이 페탱에 대한 평가를 유보시키는 이유로 보임.
프랑스에게는 엘랑이 필요해요.
비쉬는 오늘날 화장품 브랜드 비쉬로도 유명하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