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의 시 망각 원문
걸든거름 멈추고서서도 얼컥 생각키는것 죽엄이로다
그죽엄이사 서룬살적에 벌서 다 이저버리고 사라왔는듸
웬노릇인지 요즘 작고 그죽엄 바로닥처온듯만 싶어져
항용 주춤서서 행길을 호기로히 달리는 行喪을 보랐고있느니
내 가버린뒤도 세월이야 그대로 흐르고 흘러가면 그뿐이오라
나를 안어길으든 山川도 萬年한양 그모습 아름다워라
영영 가버린 날과 이세상 아무 가겔것 없으매
다시 찾고 부를인들 있으랴 億萬永劫이 아득할뿐
山川이 아름다워도 노래가 고았드레도 사랑과예술이 쓰고달끔하여도
그저 허무한노릇이여라 모든 산다는것 다 허무하오라
짧은 그동안이 행복했든들 참다웠든들 무어 얼마나 다를나드냐
다 마찬가지 아니남만 나흘러냐? 다 허무하오라
그날 빛나든 두눈 딱감기어 暝想한대도 눈물은 흐르고 허덕이다 숨다지면 가는거지야
더구나 총칼사이 허매다 죽는 태어난 悲運의 겨레이어든
죽엄이 무서웁다 새삼스레 뉘 卑怯할소냐 만은 卑怯할소냐 만은
죽는다―고만이라―이 허망한 생각 내마음을 웨 꼭붙잡고 노칠안느냐
忘却하자―해본다 지난날을 아니라 닥쳐오는 내죽엄을
아! 죽엄도 忘却할수있는 것이라면
허나 어디 죽엄이사 忘却해질수 있는것이냐
길고먼 世紀는 그죽엄 다 忘却하였지만
해설
1. 주제
• 시 망각은 죽음이라는 존재와 그로 인한 허무를 직시하며, 이를 초월하고자 하는 화자의 내면 갈등을 담고 있다.
•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운명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허무함과 고독감이 중심 정서이다.
2. 내용 구조 및 분석
1. 1~2연: 죽음에 대한 성찰
• 화자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든다.
• 젊은 시절에는 죽음을 잊은 듯 살아왔으나,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 “行喪(상여 행렬)“을 바라보며 죽음의 현실감을 체감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2. 3~4연: 죽음 이후의 세계
• 화자는 자신이 죽은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흘러갈 것임을 인정한다.
•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라는 허무한 깨달음을 표현한다.
• “억만영겁이 아득할 뿐”이라는 표현을 통해 죽음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3. 5연: 삶과 허무
• 자연의 아름다움과 예술, 사랑이 빛난다 하더라도 결국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선언한다.
• 짧은 삶의 행복과 아름다움조차 죽음 앞에서는 큰 차이가 없음을 강조한다.
• “다 허무하오라”라는 반복을 통해 허무의 절대성을 더욱 부각한다.
4. 6~7연: 죽음의 공포와 숙명
• 죽음이 공포스럽지만,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숙명임을 받아들인다.
• 전쟁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더욱 무겁게 다가오며, 이를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적인 본능임을 시인은 인정한다.
• 그러나 죽음이라는 생각이 화자의 마음을 계속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고통을 묘사한다.
5. 마지막 연: 망각의 불가능성
• 화자는 죽음을 잊으려 하지만, 죽음은 망각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깨닫는다.
• “길고먼 세기”라는 표현을 통해 시간이 흐르면 죽음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수는 있지만, 현재의 순간에서는 결코 잊을 수 없음을 토로한다.
3. 시어와 상징
• “죽엄”: 필연적이면서도 두려운 존재. 시인은 죽음을 직접적으로 반복 언급하며 그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 “行喪(상여 행렬)”: 죽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화자가 자신의 죽음을 더욱 실감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 “억만영겁”: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며, 인간의 죽음이 그 안에서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강조한다.
• “허무”: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주제어로, 시인의 내면 감정과 철학적 깨달음을 나타낸다.
4. 시적 정서
• 허무와 초월: 삶과 죽음의 본질적 허무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직시하며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적 갈등.
• 고독과 두려움: 죽음 앞에 선 화자가 느끼는 고독과 본능적 두려움을 담담히 풀어낸다.
이 시는 김영랑 특유의 깊은 성찰과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으며, 죽음을 둘러싼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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