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주안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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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202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3)"[행4:13-31]
มุมมอง 202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202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3)"[행4:13-31]
[주일예배 155(영상) ] 241201"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3)"[행4:13-31]
มุมมอง 414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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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3] "인생의 허무를 넘어, 신비를 품고 사는 지혜" (전도서 1장 12-15절)
มุมมอง 639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전도서3] "인생의 허무를 넘어, 신비를 품고 사는 지혜" (전도서 1장 12-15절)
[전도서2] "인생의 허무를 넘어, 신비를 품고 사는 지혜" (전도서 1장 4-11절)
มุมมอง 3512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전도서2] "인생의 허무를 넘어, 신비를 품고 사는 지혜" (전도서 1장 4-11절)
[산책(31)] 241030(강의자료 댓글창 참조) "출애굽기 35장 1절 - 36장 7절"
มุมมอง 1014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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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1] "인생의 허무를 넘어, 신비를 품고 사는 지혜" (전도서 1장 1-3절)
มุมมอง 4014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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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신앙-교리나눔(71)]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8)" [마6장13절]
มุมมอง 1916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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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125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교회" (왕상3장 23-28절)
มุมมอง 2519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125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교회" (왕상3장 23-28절)
[주일예배 154_설립3주년 ] 241124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한 교회"[왕상3장 23-28절]
มุมมอง 4521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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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신앙-교리나눔(70)]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7)" [마6장 11-12절, 엡4장 31-32절]
มุมมอง 12วัน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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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신앙-교리나눔(69)]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6)" [마6장 11절,약1장 17절]
มุมมอง 15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9)]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6)" [마6장 11절,약1장 17절]
[묵상을 묵상하다] 241113 "시편 1편 강해(2)"
มุมมอง 16วัน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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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신앙-교리나눔(68)]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5)" [마6장 9-10절,롬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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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신앙-교리나눔(68)]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5)" [마6장 9-10절,롬12:2]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7)]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4)" [마6장 9-10절,골1:12-14]
มุมมอง 2714 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7)]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4)" [마6장 9-10절,골1:12-14]
[#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117 "골짜기를 지나며 : 여전히,묵묵히,잠잠히"(시편23:1-6)
มุมมอง 2714 วันที่ผ่านมา
[#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117 "골짜기를 지나며 : 여전히,묵묵히,잠잠히"(시편23:1-6)
[주일예배 153(영상) ] 241117 "골짜기 : 여전히, 묵묵히, 잠잠히"[시편23:1-6]
มุมมอง 6014 วัน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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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실한 신앙-교리나눔(66)]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3)" [마6장 9-10절]
มุมมอง 1614 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6)]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3)" [마6장 9-10절]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5)]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2)" [마6장 9-10절]
มุมมอง 2414 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5)]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2)" [마6장 9-10절]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4)]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1)" [요16:24, 히4:14-16]
มุมมอง 3114 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4)]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기도(1)" [요16:24, 히4:14-16]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3)]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성례(3)" [고전11:23-29]
มุมมอง 2621 วันที่ผ่านม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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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111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2)"(행4:5-14)
มุมมอง 2121 วันที่ผ่านมา
[#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111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2)"(행4:5-14)
[주일예배 152(영상) ] 241110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2)"[행4:5-14]
มุมมอง 5921 วันที่ผ่านมา
[주일예배 152(영상) ] 241110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2)"[행4:5-14]
[묵상을 묵상하다] 241106 "시편 1편 강해(1)"
มุมมอง 1821 วันที่ผ่านมา
[묵상을 묵상하다] 241106 "시편 1편 강해(1)"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2)]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성례(2)" [로마서 6:1-11]
มุมมอง 2621 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2)]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성례(2)" [로마서 6:1-11]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1)]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성례(1)" [마26:26-28, 마28:19-20]
มุมมอง 1821 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1)]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성례(1)" [마26:26-28, 마28:19-20]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0)]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말씀(2)" [신명기 6:4-9, 약1:22-25]
มุมมอง 2221 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60)]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말씀(2)" [신명기 6:4-9, 약1:22-25]
[견실한 신앙-교리나눔(59)]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말씀(1)" [고전2:12-13,살전4:12]
มุมมอง 2228 วันที่ผ่านมา
[견실한 신앙-교리나눔(59)] "구원의 유익에 이르게 하시는 은혜의 방편들 : 말씀(1)" [고전2:12-13,살전4:12]
[#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104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행4:1-4)
มุมมอง 2328 วันที่ผ่านมา
[#24 말씀이 삶으로, 삶이 예배로/월요새벽] 241104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행4:1-4)
[주일예배 151(영상) ] 241103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행4:1-4]
มุมมอง 36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주일예배 151(영상) ] 241103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삶"[행4:1-4]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애월부부
    @애월부부 วันที่ผ่านมา

    울 부지런한 목사님~존경스럽네요😊 신도들이 목사님의 은혜로움에 행복하겠어요~^^할렐루야😊

  • @박찬우-c4y
    @박찬우-c4y 2 วันที่ผ่านมา

    말씀 앞에서 같은 곳을 바로보며 묵묵히 걸어가는 동료공동체 되길 소망합니다^^

  • @썬-f9n
    @썬-f9n 4 วันที่ผ่านมา

    오늘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오늘도 지혜 롭게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갈수 있도록 말씀 주신 목사님 에게도 감사합니다 😊❤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6 วันที่ผ่านมา

    # 강의안 drive.google.com/file/d/14NWt2Z1mynLYAJ3NWsnu4R-BDjqEGDnw/view?usp=sharing

  • @애월부부
    @애월부부 8 วันที่ผ่านมา

    성경말씀대로 우리삶을 꾸려가느것이 우선인거같습니다~^^그런다음 신실한 예배로 더큰힘을 얻을수있을거같네요😊~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아멘😊

  • @염주열
    @염주열 9 วันที่ผ่านมา

    주님의 뜻이있어 세워주신 "울산 주안애교회 "3주년을 참으로 축하하고기뻐하며, 하나님을 아는 충만한 교회로 날로 부흥되고 주님의 은총과축복으로 차고넘치게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고 인도하옵소서...

  • @애월부부
    @애월부부 13 วันที่ผ่านมา

    찬양과 기도~이두가지가 빠지면 믿음이 아니겠죠^^~아멘😊

  • @박찬우-c4y
    @박찬우-c4y 15 วันที่ผ่านมา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임을 알고 여전히, 묵묵히, 잠잠히의 은혜가 삶속에 있게 하옵소서~ 말씀 감사합니다 ^^

  • @애월부부
    @애월부부 16 วันที่ผ่านมา

    오늘도 좋은말씀~^^은혜롭네요😊나중에 시간되면 직접 설교를 듣고싶네요~^^환절기감기 조심하세요😮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15 วันที่ผ่านมา

      고맙습니다~~ 따뜻한 겨울되시길요~

  • @애월부부
    @애월부부 19 วันที่ผ่านมา

    신앙생활의 완성이 기도라 생각납니다~^^ 모든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씀~^^넘 지당하신말씀입니다😊오늘 말씀 잘들었습니다^^

  • @썬-f9n
    @썬-f9n 20 วันที่ผ่านมา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을 감사하며 저의모든 일들을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늘 하나님 말씀들으며 하루 시작할수 있게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목사님도 은혜가득한 하루 시작하세요

  • @애월부부
    @애월부부 21 วันที่ผ่านมา

    좋은말씀들 항상 감사합니다~^^ 말씀들을때마다 충만한은혜~감사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3 วันที่ผ่านมา

    *먼저 올렸던 영상에 오류가 있어서 다시 업로드합니다~

  • @애월부부
    @애월부부 28 วันที่ผ่านมา

    우리의 신앙심척도가 얼마나 하나님이 요구하는 본분에 충실하냐~인거같네요😊신실한 교리해석과 가르침 감사합니다🎉

  • @애월부부
    @애월부부 29 วันที่ผ่านมา

    제주 방주교회에 묵상의길이 있는데~두번정도 묵상하면서 걸었던 기억이나네요~말씀 은혜롭네요😊아멘~^^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8 วันที่ผ่านมา

      감사합니다~~ 나중에 제주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한번 가봐야겠어요~

  • @애월부부
    @애월부부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요즘 하나님이 온전히 요구하는걸 지키는사람들이 드믄세상이 된듯해서 안타깝네요~^^좋은말씀 감사합니다😊

  • @염규홍-i4k
    @염규홍-i4k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강의안 drive.google.com/file/d/1WIjbpiaQGU4Oo7FjMMnlIyd3l150TVaX/view?usp=sharing

  • @염규홍-i4k
    @염규홍-i4k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강의안 drive.google.com/file/d/1iSvFltBxqTyuF-TBZ9KBbxRIn4YQHYHZ/view?usp=sharing

  • @애월부부
    @애월부부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정말 맞는말씀만하시는 하나님 말씀이네요~^^네 부모를 공경하라~요즘 부쩍 느껴지는 말씀이네요~아멘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63문] 제 오 계명은 무엇인가? (답)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이 준 땅에서 네가 오래 살리라"하신 것이다. [64문] 제 오 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제 오 계명이 명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그 속한 지위와 인륜 관계 곧 상하와 평등을 따라 높일 자를 높이고 행할 일을 하라 하는 것이다. [65문] 제 오 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제 오 계명이 금하는 것은 각 사람에게 그 속한 지위와 인륜 관계를 따라 마땅히 높일 것과 행할 일을 하게 하지 아니하는 것이나 막는 것이다. [66문] 제 오 계명이 "지키라"한 이유가 무엇인가? (답) 제 오 계명이 지키라 한 이유는 이 계명을 지키는 모든 자에게 장수함과 흥왕하는 복을 허락하심이니 다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에게 이익이 있도록만 주시는 것이다. *네 부모는, 부모를 포함한, 모든 권위자를 의미하며, 그것으로 맺어진 모든 인륜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공경하라는 (히)카베드인데,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표현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모든 관계 속에서 권위를 대할 때, 그리고 권위를 행사할 때 "하나님"을 의식해야 됨을 의미합니다. 이는 신약에서, "주 안에서, 상호의 역할의 도리와 책임"을 다해야 됨(엡6:1-9)으로 권면합니다. 그리할 때, "네 생명이 길리라"라는 약속이 상징하는 번영과 하나님 나라의 풍요를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은 의미에서, 5계명이 이웃사랑 실천의 시작에 있음은 오늘 우리가 처한 위치에서 권위를 대하거나, 행할 때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이를 기초로해서 서로에 대한 존중과 섬김과 돌봄과 주어진 역할의 도리를 다해야 함을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가 하나님의 권위 아래서 질서를 잡아가며, 그 복됨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의 긍휼과 섭리에 관계의 지난 날들의 상처들과 내일의 기대를 맡겨드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오늘의 책임을 다함으로, 더해주시는 복을 나누며, 누리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 복된 걸음의 출발이 인생의 첫 관계의 시작이되는 가족에서 부터 이뤄져가길 기도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60문] 어떻게 하여야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겠는가? (답) 안식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날 종일을 거룩하게 쉼으로 할 것이니, 다른 날에 합당한 여러 가지 세상 일과 오락까지 그치고 그 시간을 공사간의 예배에 바쳐 사용할 것이요, 그 외에는 사세 부득이한 일과 자선 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61문] 제 사 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제 사 계명이 금하는 것은 그 명한 바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거나, 혹 주의하지 아니하여 나태함으로써 그 날을 더럽게 하거나 죄 되는 일을 행하거나 세상의 여러 가지 일과 오락에 대하여 불필요한 생각과 말과 행동하는 것이다. [62문] 제 사 계명이 지키라 한 이유가 무엇인가? (답) 제 사 계명에 지키라 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할 여러 가지 일을 위하여 여섯 날을 허락하시고, 제 칠일은 자기가 특별히 주장하는 이가 되었다 하심과 자기가 친히 모범을 보이신 것과 안식일을 축복하신 것이다. *안식일보다 더 큰 것은 "안식"입니다. 주일보다 더 큰 것은 "주님"입니다. 안식의 주일, 곧 안식의 근원이신 주님과의 관계를 <돌아봄>과 그 은혜를 힘입어, <돌봄>이 있는 삶으로 부르심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안식일 계명을 강조하실 때에도 창조주 하나님(출20장)과 구속주 하나님(신5장)을 기억하게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지키는 주일의 분위기가, 규례를 이행하고, 금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에만 강조하는 엄숙주의를 지양하고, 억압과 규제의 분위기가 아닌 안식이 있는 참된 기쁨과 회복의 날을 지향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에, 공급해주시는 맡김의 평안으로, 구속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중에, 용서와 긍휼를 공급받음으로 회복이 있는 날이 되길 사모해야 합니다. *사실, 뭔가를 금하는 것의 의미도, 단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하 가치와 의미가 있음을 보이는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오락을 금하라 하심은, 그것보다 "더한 기쁨"이 있음을 선포하는 행위로서 우리의 주일의 예배가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의 주일은 휴식(멈춤)을 넘어, 안식(채움)이 있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은 드리는 날이나, 실상은 채워지는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예배와 함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채워진 삶은 계속해서 채워져야 합니다. 이 땅에서 이러한 반복의 필요성은 그 날에, 영원한 안식을 꿈꾸게 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인 예배로 안식을 누리며, 그 은혜를 나누는 은혜의 선순환을 따라 살아가되, 이미와 아직의 실존 속에서 겪어야 할 안식의 채움과 나눔을 반복함 속에서, 결핍이 없는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은, 단지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정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모든 경우에 <오용>하지 말라는 좀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오용>하지 말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남용>(저주, 욕하거나 뜻없이 공허하게, 주술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경계), <도용>(자신의 뜻을 관철하는데 하나님의 이름의 권위를 사용), <악용>(죄와 해악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성을 부여함)하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의 존귀한 이름의 영광을 연약한 우리 인생에 묶어두셨다는 이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말,행실,표정을 통해 일상 속에서 바르게 드러내는 우리의 삶 되시길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다른 말로 <거룩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라>고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시간을 내어, 지켜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주일을 지키는 주일성수 신앙은, 단지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를 지키켜가는 것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염려를 이기는 평안과 슬픔을 감당케하는 기쁨과 평강의 안식을 공급받으며, 받은 안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을 넘어, 주일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할 수 있습니다. 이레 중 한 날을 정하여 쉬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의중을 잘 헤아려, 단지 몇 가지 금한 규레를 준수하는 것을 넘어, 쉬되 주님과 함께 쉬며, 이웃과 더불어 쉼으로, 참된 안식을 구현해가는 주일신앙이 되길 기도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강의안 drive.google.com/file/d/1hzuhZ6BSH9OYGPzihrTousd1Q_396ksV/view?usp=sharing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3문] 제 삼 계명이 무엇인가? (답) 제 삼 계명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아니하리라" 하신 것이다. [54문] 제 삼 계명이 무엇인가? (답) 제 삼 계명이 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와 속성과 규례와 말씀과 행사를 거룩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라 하는 것이다. *이름은 존재를 대변합니다. 성경에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 지에 대해 알려줍니다. 예를 들어, 아담은 히브리어 "아다마"로, <흙>을 뜻합니다. 즉, <아담>의 이름은 인간이 흙에서 온 존재라는 본질적 사실과 또한 흙처럼 부서지기 쉬워 하나님께 의존해야 하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 "네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시 시인의 <꽃>의 내용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대상의 본질을 인식하고, 그 대상과 인격적 관계를 맺게됨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각자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이름이 더럽혀지거나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이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이름을 곧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사역, 말씀을 알려주는 계시의 방편이며, 그 이름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기에, 우리에게 인식의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곧 하나님께 대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대하며, 부를 때, 우리는 그 이름 안에 담으신 하나님의 존재, 그 영광의 무게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볍게 또는 함부로 불려지거나, 온갖 미사여구로 뜻없이 불려지지 않도록 돌아봐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3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을 에배하며, 섬기는 신자의 자세와 태도의 중요성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계명이 예배의 대상, 2계명이 예배의 바른 방법을 생각했다면, 3계명은 예배의 자세와 태도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경외감을 점검하길 도전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느새 익숙함 속에서 가벼워지거나, 뜻과 의미를 상실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겠습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하는 하나님의 성품,사역,말씀을 바로 알고,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임재를 누려가는 삶의 매순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 @박찬우-c4y
    @박찬우-c4y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앞모습과 뒷모습이 동일한 주안애 공동체 되게 하시고 우리의 뒷모습이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길 소망합니다 ~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2문] 제 이 계명이 "지키라"한 이유가 무엇인가? (답) 제 이 계명에 지키라 한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주재가 되시며, 우리의 소유자가 되시며 홀로 자기에게만 경배하는 것을 바라시는 것이다. *2계명은, 하나님을 형상화하여, 우상을 섬기듯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서 섬기지말라는 것입니다. 2계명은 출20장 5절 중반절에서 부터 "왜냐하면"(원문상) 이하의 내용에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덧붙여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서 우상을 금하신 이유를 바로 알아야 함을 보여주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은 영광의 하나님을 헛되이 제한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영광의 하나님은 온 세상으로도 담을 수 없는 분이신데, 하물며 인간이 만든 작은 조각품 안에 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사40:15-18) *또한, 하나님은 함부로, 마음대로 우리 생각대로 조정, 통제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램프의 요정 지니가 아니십니다. *무엇보다도, 출20장 5절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신인동형론적 표현으로서,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 자신의 속성과 성품을 나타내신 것인데, 그의 백성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죄는 3~4대까지, 은혜은 1000대까지 미친다는 불균형의 대비는, 벌을 주어야 한다면 당대의 한 가족[※당시는 보통 3~4대 대가족을 이루어 함께 살고 있었음]으로 제한하시고, 반면 복은 될 수 있는 한 풍성하게 주시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를 시편30편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노염은 잠깐이고,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우상을 만드는 인간의 이면에는 '신이 우리를 도와우실까?, 우리의 형편을 헤아려주실까?"라는 큰 불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을 형상화하여 곁에 두고 섬기려고 합니다. 이런 불안에 대해, 하나님께서 2계명을 통해서 우상을 금하시면서, 그 이유로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답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아, 네가 너희를 사랑으로 돌보고 있다. 나를 형상화하여 붙들려 하지 말고, 내가 너희를 사랑으로 붙들고 있음을, 너희가 내 소유됨을 잊지마렴" *이런 차원에서, 우상을 금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2계명은 또 다른 면에서는 단지 부정의 명령을 넘어, 하나님의 그 백성을 향해 간절한 호소입니다. "제발, 나를 믿고 좀 따라오렴. 내가 열방을 지었고, 그 영광의 능력으로 사랑 안에서 너희를 인도하고 있으니,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처럼, 나를 섬기지 마렴"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열정이 우리의 삶을 품고 계시고, 지으신 만물 곳곳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있으며,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말씀하고 계심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모든 신앙의 형태를 경계하고, 계시된 말씀의 근거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사랑과 능력에 기대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아내느 우리의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8문] 제 일 계명 중에 "나 외에"라 한 말씀이 우리에게 특별히 교훈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 제 일 계명 중에 "나 외에"라 한 말씀이 우리에게 특별히 교훈하는 것은 만물을 보시는 하나님이 아무 다른 신을 위하는 죄를 <내려다보시고> 분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나 외에>는 나르 제외하고, 다른 건 다 쓸데 없다는 뉘앙스를 들려집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근거해, 타종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나 외에>는 <타종교에 대한 배척>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어야 <관계의 배타성>입니다. 오직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마음 다하여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무엇도 끼어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4-5절에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달리말해, <코람데오의 진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나 외에>는 히브리어로 <알 파나이>인데, 그 뜻은 <내 얼굴 앞에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마음으로 다른 신을 품고 하나님도 섬기는 모순을 지적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여전히 섬기면서, 우상도 같이 섬기는 것을 문제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다다익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품고 예배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만으로 충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부족한 분으로 만드는 처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욕하는 신자들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우리 안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며, 하나님도 예배하고 있다면, 그 마음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보실 때, 분을 일으키는 모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1계명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늘 살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만을 바라보라고, 우리에게 전부를 요청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부를 주셨고, 하나님은 참 신으로서, 전능,전지하시고, 부족함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분(신)이 어디있겠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은 1등도 아니고, "0"순위이길 바라십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않도록, 늘 마음을 살피며, 하나님 앞에 진실함을 지켜갈 수 있는 우리의 신앙의 여정 되시길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5문] 제 일 계명이 무엇인가? (답) 제 일 계명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위하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46문] 제 일 계명이 명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제 일 계명이 우리에게 명하는 것은 하나님은 유일한 참신이 되심과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고> <승인하여> <그대로> 그에게 경배하며 영화롭게 하라 하는 것이다. [47문] 제 일 계명이 금하는 것은 무엇인가? (답) 제 일 계명이 금하는 것은 참신을 하나님으로 알지 아니하거나 우리의 하나님의 경배하지 않고, 영화롭게도 하지 아니하는 것과 그에게만 드리기에 합당한 경배와 영화를 다른 이에게 드리는 것이다. *십계명은 계명에 앞서서, 그 서문(서언)으로 시작하여, 10개의 계명들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거야 할, 참 자유의 삶으로 이끄는 은혜,책임,사랑의 여정임을 안내해줍니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선언되는 그 첫번째 계명은, "너는 나외는 다른 신들을 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신들을 위하지 말라>는 것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드려야 할 경배와 영광과 사랑과 신뢰를 참된 신이신 하나님외에 다른 대상에 두는 것입니다. *1 계명이 "너"라고 불려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졌음을 놓치면 안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했던 가나안땅은 다신적 문화였습니다. 자신들의 살아가는데, 바라는 것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존재들을 <신격화>하여서, 여러 우상들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이스라엘도 그 문화에 <동화>되어, 만들어진 여러 우상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들처럼, 눈에 보이는 우상의 형상에 절하거나 섬기지 않기에, 자칫 우상숭배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도 1계명에서 예외가 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우상 숭배의 유혹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우상이 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보이는 형상에 절하지 않기에,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당시 교회 성도들에게 "자녀들아, 너희를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5:21)고 권고하였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진화되어가는 우상들[성공,물질,쾌락,권력...]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다른 신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우선, 이 말씀이 실제로 다른 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인간이 만든 신"을 의미하고, 신이 아닌 피조물을 <신격화>하는 행위를 뜻합니다(롬1:25). 또한, 다른 신들은 여러 신들을 만들어서 섬겼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위 이면에는 인간 본연의 두려움과 불안, 더 나아가 탐심이 깔려있고, 그러한 것들을 자신들의 힘과 노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이 볼 때에 도움이 될 것만한 것들을 신으로 추앙하는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믿고,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신들을 믿는 게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뭔가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칼빈은 이처럼 우상을 추구하는 인간의 현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우상을 만드는 공장"과 같다. *이러한 우상의 현상은 세상에서만 아니라, 교회, 신앙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신앙,교회생활의 <우선된 관심과 목적>이 자신의 만족,행복, 기대하는 종교적 체험을 채우는데에 있다면, 이는 우상을 섬기는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을 받기 위한 어떤 규칙과 원리를 정해놓고, 그것들을 따르는 것을 신앙생활이라 생각하는 것이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따르며, 성령님을 따르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러기에, 1계명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그 첫걸음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46문에서, "하나님은 유일한 참신이 되심과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고 승인하여[=기꺼이 따름] 그대로 그에게 경배하며 영화롭게 하라 하는 것"이 1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참된 신앙의 출발이며,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섬기며, 그 뜻안에서 살아가는 삶의 균형을 만들어가는 근본입니다. 1계명이 분명해야, 2~10계명이 우리의 삶에,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1계명이 제대로 이뤄질 때,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며, 날마다 1계명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것을 기꺼이 따를 수 있는 우리의 삶 이 되시길 바랍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문49] 제 이 계명이 무엇인가? (답) 제 이 계명은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신이시니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자손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고 나를 사랑하며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수천 대까지 베풀리라 " 하신 것이다. [문50] 제 이 계명이 명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 제 이 계명이 명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말씀 중에 정하신> 종교상 모든 예배와 규례를 받아 순종하며 깨끗하고 완전하게 지키라 하는 것이다. [51문] 제 이 계명이 금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 제 이 계명이 금하는 것은 우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정하지 아니한 어떤 다른 방법으로 경배하는 것>이다. *2계명은 1계명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1계명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금하는 것이라면, 2계명은 하나님을 우상과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을 금하는 말씀입니다. 즉, 1계명이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분명히 하며>, 피조물을 하나님의 자리로 끌어오리는 <신격화>를 금한다면, 2계명은 하나님을 피조물의 자리로 <격하>하는 우상 작업을 금함으로, <예배의 바른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50,51문에서 명하는 바와 금하는 바를 통해 말씀해주듯이, 말씀 중에 정하신 바를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말씀에 근거해 하나님 방식으로 예배하며 섬길 것을 단호하고, 엄격하게 경고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형상화하여,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려 하는 이면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해서든지 한 장소에 묶어 놓고,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즉, 자신의 구미에 맞는 신을 만들려는 욕망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20장 4절에서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너를 위하여...". 이 구절 한 마디에, 하나님을 형상화 하려는 의도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 내 뜻에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형상 안에 가둘 수 없는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뜻과 의도를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함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형성화여,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불안을 덜어내고, 욕망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마음과 자세는 없는 지 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새기신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데 더 힘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늘 2계명에 순종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정하신 뜻 안에서 예배하며, 섬기는 존재로 살아내어, 우리의 구미에 맞는 하나님을 구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우리의 삶이 되어가시길 소망합니다~

  • @박찬우-c4y
    @박찬우-c4y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영적 거지인 나를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변화 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삶의 작은 변화로 기적을 경험하는 일상이 되길 소원합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3문]십계명의 서문이 무엇인가? (답) 십계명의 서문은 이러한 말이니, 곧 나는 너희 하나님이시니, 너를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자로다 하신 것이다. [44문] 십계명의 서문이 교훈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 십계명의 서문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도 되시고, 우리 하나님도 되시고, 또 우리의 구속자도 되시는 고로 우리가 마땅히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하겠다 하는 것이다. *십계명에 앞서서, 십계명의 서문[출20장 1-2절]이 먼저 언급됩니다. 서문에서는 하나님의 자신을 소개하심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와 왜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로 소개하십니다. 여호와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네 하나님 곧 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셔서, 애굽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를 통해, 종이 아닌 참된 자유의 삶이 무엇인지를 증거해야 합니다. 바로, 그 방향과 통치 원리를 담고 있는 율법의 요약이 십계명입니다. *이런 면에서, 십계명은 자유의 대헌장입니다. 즉, 십계명은 일방적이고, 구원을 얻기 위해 행할 의무적인 규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 가운데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맺혀가야 할 열매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십계명 앞에 언급된, <서문>은 십계명을 단지 윤리적 측면에서만 아니라, <언약적 측면>에서 바라보도록 우리를 안내합니다. *그렇게 볼 때, 십계명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헌신으로 회복된 관계 속에서 주어졌다는 점에서 <은혜(특권)>이며, 언약의 관계 속에서 감당해야 할 <그 백성으로서의 책임>이며, 우리를 위해주시며, 복을 주시기 위해 주셨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계명을 통해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십계명이 이끄는 참된 거룩의 길에 순종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요구를 받을 수 있는 신분을 얻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결국, 십계명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풍성함을 누리도록 돕는 든든한 울타리입니다. 규제와 억압의 감옥이 아닌, 참된 자유로 안내하는 가이드입니다. 이를 바로 알고,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더 깊어지며, 순종으로 거룩을 이뤄가고, 참된 자유의 삶을 증거하는 우리의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2문] 십계명의 대강령이 무엇인가? (답) 십계명의 대강령은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 사랑하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하라 하신 것이다. *대강령은 <어떤 일의 으뜸이되는, 핵심이 되는 큰 줄거리>를 의미합니다. 십계명의 대강령은 <사랑>입니다. 십계명(율법)이라고 하면 자칫 경직되고, 차가운 느낌이 들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맥락, 문맥 안에서 십계명이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점에서 십계명을 이해하는 것은, 크게 2가지 방향성을 갖습니다. 우선, 십계명이 사랑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십계명을 완성해간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사랑을 지향한다는 것은, 단지 계명을 준수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사랑의 존재로 완성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십계명의 계명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로 성숙되어져가길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행동만 사랑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사랑이길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되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함의 실천에, 자신의 몸 곧 그 존재와 인격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을 다함과 성품을 다함, 그리고, 뜻과 힘을 다함으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초점은, 사랑의 실천을 넘어 사랑의 존재를 지향합니다. 그러기에, 십계명을 통해서 우리는 사랑을 고민해야 합니다. 다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전13장)는 사랑장의 말씀처럼, 행동은 사랑인데, 그 마음과 성품과 존재는 사랑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십계명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의 존재로 빚어가는데 있어서, 우선적으로 우리 안에 사랑없음을 보게 하십니다. 계명이 요구하는 사랑의 실천 앞에서, 우리 안에 자리잡은 이기적 욕망과 탐심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의 실력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의 원천이신 십자가로, 예수님께로 이끄십니다. 그 사랑에 힘입어, 우리 안에 계명을 완성시켜가십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점점 존재와 인격이 사랑을 갖추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십계명이 몽학선생(초등교사)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사랑의 흐름과 맥락에서 헤아려지고, 십계명을 배우며,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사랑의 존재>로 자라가는 여정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강의안 drive.google.com/file/d/1Flek3bRvf0M38ywclz7uiQID40cRFj49/view?usp=sharing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0문]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이 무엇인가? (답)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종할 규칙으로 사람에게 처음 나타내 보이신 것은 도덕의 법칙이다. [41문] 이 도덕의 법칙이 어디에 간략히 포함되었는가? (답) 이 도덕의 법칙은 십계명에 간략히 포함되었다.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하나님께서 나타내 보이신 뜻에 복종하는 것인데, 복종할 규칙(원칙)으로 우리에게 처음 보이신 것은 "도덕법"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마음에 "도덕법"이 본성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새겨 놓으신 양심이 그 법을 증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생을 도덕적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구원을 받아 창조의 모습을 회복한다는 것은 도덕적 존재로서 완성됨을 포함합니다. *구원의 계시로 쓰임받은 이스라엘을 통해서도, 그러한 하나님의 관심을 알게됩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율법은 제사법(의식법), 시민법, 도덕법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제사법은 예수님의 속죄 사역 가운데,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전처럼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시민법은 이스라엘 민족에 해당되었기에, 오늘 우리에게는 문자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도덕법은 "사람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율법"으로서, 오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을 때, 그 율법은 도덕법과 관련됩니다. *그런데, 도덕법이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영원한 도덕법으로서,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할 지를 제시해줍니다. 그러기에, 신자된 우리에게는 나아갈 길이 됩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십계명을 지킴의 공로에 힘입어 구원받는다 율법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이것이 지나쳐 십계명(율법)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율법폐기론도 주의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십계명을 통해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우리 안에, 삶에 구체화하게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십계명은 몽학선생이 되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도덕법을 대하며 스스로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자신의 모자람을 깨달으며,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받으시고, 모든 율법을 성취하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이끌며, 예수님 안에 있음이 감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그 은혜에 대한 감사에 힘입어 다시 일어나, 순종하게 하심으로서, 십계명을 통해 계시된, 우리 양심에 처음 심으셨던 도덕적 존재[하나님 앞에 전인격적 존재]로서의 완성을 이뤄가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순종의 차원에서, 율법(도덕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앞으로 살펴가는 과정에서, 그 의미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순종하며 그 유익을 누려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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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9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본이 무엇인가? (답)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은 그 나타내 보이신 뜻을 복종하는 것이다. *소요리 3문답에서, "성경에서 요긴하게 교훈하는 것"은 크게 2가지로 설명됨을 살폈습니다. 그 첫번째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믿을 것" 곧 <신앙>(믿음의 내용)에 대한 것이며,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본분" 곧 <믿음의 실천 : 순종>에 관한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에서는 4~38문답까지가 <신앙>편이고, 39문답에서부터 마지막 질문(107문)까지가 <순종:실천,행위>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처럼, 신앙과 순종은 함께합니다. 각각 구분은 되지만,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순종의 행위로 완성되며, 순종의 행위는 믿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순서상, 믿음이 우선됨을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 곧 그 은혜를 바로 아는 것이 순종함의 근거와 동기와 방향이 되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행위에 관해서 시작이 되는, 39문답은, <사람에게 요구하는 본분>에 대해 묻습니다. 여기서, <본분>은 마땅히 지켜야할 바를 의미합니다. 얼핏하면 의무로만 여겨집니다. 그러나, 4~38문답에서 보여주시는 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뜻과 긍휼과 능력과 은혜에 의해서 생명을 얻은 자라는 점에 보면, 단지 <의무>가 아닌, 받은 은혜에 합당한 신령한 <책임>이며, 은혜를 받았기에 행할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 은혜를 받음으로 구원받은 신자들의 본분은 무엇입니까? <나타내 보이신 뜻>을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신명기 29장 29절 말씀처럼, 감춰진 뜻, 숨겨진 뜻, 다른 말로, <섭리적 뜻>과 <나타내신 뜻> 곧 계시적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러 불안과 걱정, 호기심에서라도<감춰진 뜻>에 많은 관심을 둡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 했는지, 왜 지금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 모든 일들이 앞으로 어떡해 펼쳐지며,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답을 찾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자된 우리에게 나타내신 뜻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길 바라십니다. 지금, 오늘, 여기서의 순종을 기대하십니다. 그러기에, 매일 맞이하는 하루의 시작에, 우리 하루의 관심은 "오늘도 하나님의 뜻이 내 삶 가운데 순종을 통해 이뤄짐"이 되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정의를 행하는 하루가 되도록 은혜를 구함이 우리의 중요한 관심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감춰진 뜻>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감춰진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안다는 것은, 어찌해볼 수 없는 과거는 하나님의 긍휼에 내어드리고, 왜 지금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해할 수 없는 중에도, 오늘 살아내야 할 삶의 책임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며, 또한 어찌될지 모르는 내일에 대해선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드리며, 지금 할 수 있는, 또하 해야하는 오늘의 순종의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신 생명과 받은 은혜에 뒤따르는 요구하시는 본분을 믿음의 순종으로 이뤄가는 우리의 매일의 삶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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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8문] 신자가 부활할 때에는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답) 신자가 부활할 때에는 영광 중에 다시 살아남을 입어, 심판날에 밝히 안다 하심과 죄 없다 하심을 받고, 완전히 복을 받아 영원토록 하나님을 흡족하게 즐거워하는 것이다. *신자는 죽음의 순간에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영혼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낙원에서 주님과 함께 머물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땅에 묻혀서 썩은 몸이 다시 살아 변화된 신령한 몸을 덧입게 되어, 영혼과 육체가 다시 결합됨으로써, 영육통일체의 온전한 인간으로 다시 부활합니다. 죄와 사망이 없고, 눈물과 고통이 없는 현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면에서, 부활은 소생과 다릅니다. 소생이 이전 모습대로 되살나고, 그 뒤 죽음으로 되돌아가지만, 부활은 신령한 육체로 젼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고, 죽거나 썩지 않는 강하고 영원히 사는 몸을 덧입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모든 성도들들은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부활의 유익을 경험합니다. *부활 후, 최후의 심판 앞에서 죄 없다 하심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부활은 심판을 이김입니다. 또한, 구원의 완성을 경험하게 되어, 새하늘 새땅에서 하나님과 생명의 교제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을 흡족하게 즐거워하게 되며, 지복의 생명 곧 영생을 온전히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1문답에서 선언했던, 사람의 제일된 목적이 우리 안에 완전히 성취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이루신 승리로 가능케 되어집니다. *부활의 유익은 <사망을 이김>입니다. <심판을 이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신 승리, 구원의 완성>에 참여함입니다. 부활할 때에 누를 이같은 영광을 소망하며, 낮은 몸을 입고 살아내야 할 하루하루를 도리어 넉넉히 감당해가길 소망합니다. 순례의 여정 중에 겪는 여러 고난, 고통 때문에 오히려, 고통이 없는 부활의 날들일 그리워하며, 사모하는 역설의 삶, 곧 부활의 생명이 역사하는 우리의 하루하루 되심으로,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써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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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37문] 신자가 죽을 때에, 그리스도에게서 무슨 유익을 받는가? (답) 신자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즉시 영광 중에 들어가고, 그 몸은 여전히 그리스도께 연합하여 부활할때까지 무덤에서 쉰다. *성경은 2가지의 종말을 말합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종말로서, 죽음으로 경험됩니다. 또 하나는, 우주적인 종말로서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임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와 최후심판으로 이뤄집니다. 우주적인 종말은 언제 우리에게 임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으나, 개인적인 종말은 죽음은 누구나에게나 예외없이 찾아오기에 좀더 실제적으로 와닿습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해 사람들은 대부분 반가워하지 않고, 두려워합니다. 히2장15절 말씀처럼,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합니다. 하지만, 37문답에서는, "죽음"과 "유익"을 연결짓습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 신자들에게 "죽음의 의미"가 달라졌음을 뜻합니다. *신자들에게 죽음은, 멸망, 무너짐이 아닙니다. 신자들에게 죽음은 고대하던 바대로, 영혼이 완전히 거룩해져,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복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낮은 몸을 입는 동안 짊어져야 했던, 힘겨운 죄와의 투쟁을 끝내고, 이제는 죄의 훼방을 받지 않고, 주님과 함께하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영혼이 소멸되고, 잠들지 않습니다(영혼소멸,수면설). 곧, 죽음은 역설적이지만 성화의 완성과 영광으로 이끄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는 마치, 활동을 그치고 쉬기 위해 마치 거실에서, 문을 열고 문턱을 넘어 안방에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온전한 영화에 이르는 잠정적 축복의 시작입니다. 죽음과 함께 영혼은 주님 계시 곳으로 가지만, 몸은 이 땅에 남겨집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는 주님처럼 부활의 영광의 몸을 덧입을 날을 약속받고, 잠시 영혼과 몸이 분리되어, 안식을 누립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전까지, 영혼과 몸이 분리된 상태를, 교리적으로 <중간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유익과 상태는, 죽음과 <즉시> 경험됩니다. 한편 강도에게 예수님은 그 나라를 허락하시면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거하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신자는 죽음과 함께 즉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갑니다. 죽음 이후, 낙원에 이르기 전, 중간 단계로서, 죄를 정결케하기 위해 머무는 <연옥 교리>는 성경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임을 바로 알고 분별해야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은 도리어 우리를 영광으로 이끄시는 은혜의 과정임을 바로 알고, 죽음에 대한 우리의 마음과 자세는 어떠한지를 돌아봐야겠습니다. 좀 더 의연한 자세로, 죽음이 언제 찾아오든지, 허락하신 날들 동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더 집중해야겠습니다. 물론, 이 땅에서 죽음은 큰 슬픔입니다. 성경도 슬픔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슬퍼함으로 상실의 고통을 나누는 것은 참 귀한 것입니다. 애도의 시간을 보내며, 슬픔을 정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망없는 슬픔을 지양해야 합니다. 슬퍼하되 소망으로 서로를 위로하는데까지 나아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죽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유익이 되었는지를 바로 알고, 언제 죽음이 찾아오든지, 개의치 않고 도리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가치와 방향에 더욱 집중하며, 슬픔을 당한 자에게 소망의 위로를 나누는 사랑으로 우리의 삶이 그날을 향해 채워져가길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6문] 금생에서, 의롭다하심과 양자로 삼으신 것과 거룩하게 하심에서 함께 받는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유익이 무엇인가? (답) 금생에서 의롭다하심과 양자로 삼으신 것과 거룩하게 하심에서 함께 받는 유익과 여기서 나오는 유익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아는 것과 양심의 화평한 것과 성령 안에서 얻는 기쁨과 은혜의 증가함과 끝까지 굳게 참는 것이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35문> 거룩하게 하신 것이 무엇인가? (답) 거룩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역사인데,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온 사람이 새로워짐을 얻고, -점점 -죄에 대하여는 능히 죽고, -의에 대하여서는 능히 살게 되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을 적용해가시는 과정을 "구원의 서정"이라고 합니다. 이는 시간적 순서가 아닌 논리적 순서로서,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이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과 능력 가운데 적용되어가는지,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이해하며, 구원받은 현실을 바르게 이해하고, 누리며, 살아내도록 하는데 큰 유익이 됩니다. *부르심과 중생으로 복음이 들려지고, 와닿게 하시고, 회심과 믿음으로 이끌어 우리의 죄책과 죄의 현실(부패하고 오여됨 본성)에 눈을 떠, 소망되신 예수님께 우리의 구원을 맡기게 하십니다. 오직 그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는 불의한 죄인에서, 의로운 자로, 진노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여겨지는 신분이 변화의 은헤를 얻게 됩니다. *이후 이어지는 <거룩하게 하심> 곧 성화의 여정은, 자녀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목적과 방향으로 이끌어가시는지를 알려줍니다. 즉, 신분의 변화가 피상적이지 않으며, 실제적인 변화로 나타나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전 인격이 새로워짐을 <얻게>하시며, 그 과정 속에서 <점점>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산 자>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는 자녀됨의 신분의 변화는 <즉각적>이지만, 옛사람의 옷을 벗고, 새사람의 옷을 덧입는 매일의 순종 속에서, <점진적으로> 성취됨을 의미합니다. 바울도, 해산하는 수고를 다시 한다고 복음에서 실패한 교회를 향해 말합니다. 이렇듯, 실패와 퇴보 속에서 거룩의 진전과 깊이을 더 해가시는 신비의 여정이 성화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은혜라고 하심은, 성화의 여정 중 우리의 어떠함으로 인해, 우리 안에서 시직하신 구원의 거룩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고, 여전히 새롭게 된 신분에 합당하지 않은 죄된 본성과의 힘겨운 싸움이 하나님의 승리로 완성될 것을 약속해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서정 중 <거룩하게 하심>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안다면, 우리의 매일의 기도제목이 바뀌어야 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을 닮아가는 거룩의 진전을 이루는 하루 되게 해주십시오." *거룩을 이뤄가는 만큼, 천국은 더 영광스러운 곳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만큼, 더 온전한 기쁨을 누리는 복을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룩은 <진부>한 것이 아닌, 우리를 <진>짜 <부>요함을 경험해가는 새롭게 된 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이를 바로 알고, 오늘도, 우리의 기도가 우리를 이끄시는 거룩을 향한 갈망함과 이에 합당한 순종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강의안 drive.google.com/file/d/1wQmptkrfAVVgcMkHJC1jySZkBSs2fH4H/view?usp=sharing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34문] <양자>로 삼으심이 무엇입니까? (답) 양자로 삼으심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고,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수에 들게 되고, 자녀의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의롭게 하심, 곧 칭의의 결과로 <하나님의 자녀됨>을 얻게 됩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 삼으셨다>고 합니다. 이전에 죄의 종이었고, 그래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2-3)였던 우리에게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서, 이 또한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은혜의 행위입니다. *비유하자면, "의롭게 됨"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마이너스 통장이 "0''원이 된 것이라면, "양자 삼으심"은 그 통장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입금해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됨의 모든 특권을 바로 알고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 언제든지 나아가 기도하며, 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를 아뢰고, 용서와 긍휼을 구할 수 있습니다. (2) 또한, 하나님께 아신 바 되어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습니다. (3) 그리고, 영광의 후사로서, 장차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함을 약속받고 있고, (4) 이 땅에 있는 동안 그 영광에 합당한 자로 빚어가시기 위해 징계(히12:6-8/징계 : [헬] 파이데이아 = 자녀답게 만들기]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아래 있습니다. (5) 이 모든 과정에서, 결코 잃어버린 바 되지 않습니다. 자녀됨의 신분을 양자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보증, 확증해주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자녀를 우리는 바로 알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됨 안에 약속된 은혜 안에서, 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사죄의 확신, 승리의 확신, 인도의 확신을 가지고 신앙의 여정 중에,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무엇보다도, 세월이 갈 수록, <하나님의 자녀됨>의 명예로움이 세상 그 어떤 명성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며, <하나님의 자녀>됨으로 족한 신앙의 여정 되시길 바랍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2문] 효력있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이생에서 무슨 유익을 얻습니까? (답)효력있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생에서 의롭다하심(33문)과 양자로 삼으심(34문)과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35문), 또한 그것들과 함께 오거나, 그것들에서 나오는 유익(36문)을 얻습니다. [33문]의롭다 하심이 무엇입니까? (답)의롭다 하심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이고, 이로써 그분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자기 앞에서 의롭다고 여겨> 주십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일>이고,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역사하시며, 그로 인해 얻는 유익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감을 통해서, 받은 구원을 더욱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유효한 부르심 곧 중생하심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회개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심을 알 때, 우리의 의지로 이를 수 없는 자리에 서있음에 담긴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감사가 됩니다. 끝없이 저항하는 우리의 의지를 꺽고, 저항할 수 없는 은혜로 붙들어주심이 감사가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29~31문에서 다루고 있다면, 이제 32문에서 36문까지는 유효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이생에서 얻는 유익>에 대해서, 나눕니다. 37문에서는 죽음으로 얻는 유익을 38문에서는 죽은 뒤에 부활함으로 얻는 유익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구원은 우리가 생명있는 날 뿐만 아니라, 죽음과 죽음 이후에도 누리는 은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33문에서는 <이생에서 얻는 유익> 첫번째로, <의롭다하심>에 대해 나눕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정한 자로서, 행하는 모든 것이 불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증언대로, 우리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누더기>일 뿐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대단해 보여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선 우리의 실상이 숨겨지지 않습니다. *그랬던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고, 우리는 그 의를 믿음으로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받았다는 것은 왕이 주시는 선물을 받기 위해 단지 내미는 손과 같습니다.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주셨기 때문에 단지 받음으로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은혜이며,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이처럼, 입혀주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그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가야 합니다. 쉼없이 우리를 향해 정죄의 화살을 쏟아내며, 참소하여 어떻게든 주저앉게 만들려는 악한 자의 공격에 대해 "의를 호심경(가슴 방패)"로 삼아야 합니다. * "너는 그저 실망 자체야..."라고 참소,정죄하는 악한 자의 비방의 예리한 칼날을... 의의 호심경을 가슴막이 삼아, "그래, 그런 나를 위해 예수님이 죽으셨다. 나는 그 진리를 신뢰하며, 그 은혜가 절실한 자이다. 그 은혜로 사는 자이다..."라고 선언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마음이 생명을 잃지 않고, 오롯이 하나님만 섬기는 복 누려가시길 기도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구속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구원은 성삼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이 효과있게 적용되게 하시는 과정을 "구원의 서정(=순서)"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물리적 시간의 순서가 아닙니다. 신자들이 구원받음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논리적 순서"입니다. ※ [구원서정] 부르심-중생(거듭남) - 회개 - 신앙 - 칭의 - 성화 - (성도의 견인) - 영화 *우리는 이 순서를 이해하며, 우리에게 임한 구원에 대한 이해와 누리게 되는 유익을 더 풍성하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되, 더 구체적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구속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과정에, 처음 하시는 일은 "부르심"입니다. 부르심의 사역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복음 전도와 선교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여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를 믿음으로써, 죄사함과 영생을 얻으라는 은혜의 초청입니다. 우리는 이를 <외적 부르심>이라고 하며, 그 부르심에 차별이 없다하여, <보편적 부르심>이라고도 합니다. *두번째 부르심은 "내적 소명" 또는 "유효한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전해진 복음이, 우리 귀에만 남지 않고, 마음에 빛이 되어, 복음이 말하는대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여,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으로 영접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적타락으로 복음 앞에,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었던, 그래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였는데, 그런 우리의 영혼을 중생(=거듭남, 다시 태어남)케 하셔서, 복음이 믿어지고, 예수님과 연합케하며, 우리의 전인격을 동원하여,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의 또 다른 별칭은 "부르셔서, 부를 수 있게 된 존재"(고전1:2)입니다. 내가 스스로 깨닫고, 의지를 동원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먼저 부르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부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 때, 그 은혜와 사랑과 신비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설복하여 믿게 하신다"라고 표현함을 주목해야 합니다. "설복"은 "설명하여, 수긍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인격적인 설득의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이 주어짐을 말씀해줍니다. 강요와 겁박과 강압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복음의 진리를 알려주시고, 수용하기까지 기다려주시는 인내의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이를 바로 알고, 영혼을 섬기는 과정에서, 성령의 사역에 동참하기 위해, 섬기는 영혼들이 "들리는 자리"(외적소명)에 머물도록 초청, 도와주며, "들려지기 까지"(내적 소명) 설복해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우리 또한 인내와 지속적인 섬김을 보일 수 있어야 겠습니다. *기억하십니다. "부르셨기에, 부를 수 있었습니다." 예배할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이 진리가 어느새 메마른 우리의 심령이 큰 울림이 되어지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30문] 그리스도의 값주고 사신 구속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 (답) 성령께서는 우리를 효력있는 부르심으로 부르셔서, ①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 ②그리스도와 연합케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값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십니다. [제31문] 효력있는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답) 성령께서 하시는 일로서, ①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 ②우리의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③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복음 가운데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우리를 <설복>하여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우리는 살펴봤듯이, 13~19문에서, 인간이 선하게 창조되었지만, 타락하여 죄 가운데 살면서, 비참하게 되었음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영적으로 죽은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능력도 없고, 자신을 구원한 능력도 없습니다. *29문은 이런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었는가라고 묻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성령께서 그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잇게 적용하심"으로 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성삼위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의 뜻하심, -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순종하신 성자 하나님, - 그리고, 이루신 그 구원을 뜻하신 인생들 가운데, 적용해가시는 성령 하나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구속이 우리에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비이요, 설명할 수 없는 은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1장 11절에서도, 영접하지 않는 자리에 우리가 있었고, 12절에서, 그랬던 우리가 영접했는데, 13절에서, 그 이유는 "혈통,육정,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났다고 말씀합니다. 딛3:5절 이하에서는 이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설명해주십니다. *평생,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또한, 우리의 신앙의 지식 곧 객관을 주관화하며, 현재화하여, 우리의 신앙에 호흡을 부여하시고, 생명력있게 해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더 간절히 의지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29문]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까? (답)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적용>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강의안 drive.google.com/file/d/1EBnYmOdT97qPNdtKTxvAHFJ0RKmSnd6a/view?usp=sharing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무덤에 계신 예수님은 무력하며,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이 주되신 영광의 하나님이심과 순종하신 구원의 온전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부활의 약속이며, 소망이 되십니다. 또한, 죽음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붙드심을 약속해주십니다. 이전까진, "죽음으로 보이신 사랑"이었다면, 이제는 "죽음을 이기신 사랑"으로 우리를 위해주십니다. *부활 후 40일간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신 후,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우편은 능력과 권세를 의미합니다.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주의 백성과 교회와 온 세상을 향해 <삼중직(제사장,왕,선지자)>울 계속해서 수행하고 계십니다. *<거기로부터 : 은혜와 섭리의 통치를 베푸시는 보좌 우편> <심판>하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심판은 끝이 아닌, 다만 응징의 날이 아닌,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대로 이뤄졌음을 선언하는 <구원의 완성>의 날입니다. 그러기에, 심판에 대한 공포감으로 신앙을 통제하고, 행동을 조정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도리어, 영광의 날에 주어질 위로와 안식에 대한 기대와 소망 안에서, 두렵고 떨림의 경건함으로 구원을 이뤄감이 합당합니다. *이대로 끝날 것 같았던 상황 속에서, 일으키신 부활과 승천, 심판의 반전을 통해 증거해주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목적하신 바를 이뤄가시는 신실하심은, 동일하게, 오늘 우리에게 약속된 은혜입니다. *이대로 끝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루실 것이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짙은 어둠은 역설적이지만, 동틀 날, 주의 나라의 완성이 가까이 왔음을 반증해줍니다. 이 소망으로 서로를 위로하며, 견디고, 버텨내며, 인내로 끝까지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주안애 모든 가족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 @울산주안애교회
    @울산주안애교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그리스도의 생애는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으로 요약됩니다. 구조가 "V"형태를 닮았습니다. 참된 승리(Victory)의 길을 보여주시는 듯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된 존재가 되심, 율법의 창시자가, 율법 아래 자신을 두시고 순종하심, 인간의 모든 인고를 겪으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시고, 무덤과 음부의 자리에까지 가셨습니다. *이 모든 <낮아지심의 여정>은 온 인류를 향한 성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순종의 걸음이었습니다. 우리를 그의 자녀로 <높이심>이며, 그 일에 작은 부족함 하나 없이, 온전하게 구원을 완성하시려는 <신실함>이셨습니다. 또한,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의 행보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곧 그의 태도와 자세를 가지라!(빌2:5)"라는 도전의 말씀 앞에, 우리의 인생의 태도와 자세를 돌아봅니다. 우선, 어디까지 자신을 내어주셨는가?라는 묵상 중에, ①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헤아릴 수 없는 긍휼의 <깊이>를 알게 됩니다. ②이만하면 됐지라고 생각하며, 멈칫한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내딛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③또한, 주님의 온저한 순종의 낮아지심을 닮아, 하나님 앞에, <인생의 주도권을 더욱 이양>하며, ④사람들 앞에 나를 낮춤을 넘어, 타인을 더욱 인정하고, 낫게여기는데까지 나아가며, ⑤모든 상황 앞에서, 겸손히 주의 선하심을 더욱 바라보길 소망해봅니다. *오늘 우리의 행보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따라 "추락하는 상승"의 인생의 역설을 경험해가시길 기도드립니다~